2016년 11월, 박민정

「행복의 과학」(『문예중앙』 2016년 가을호)

선정의 말

신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 사이, 그 해체적 긴장

―박민정의 「행복의 과학」

‘행복의 과학’이란 제목의 소설을 접하면서, 일본의 신종교와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라는 짐작을 전혀 하지 못했다. 도쿄대 법대 출신인 오카와 류호(大川隆法)가 1986년 창시했다는 ‘행복의과학’ 교단은 속세와 일정한 거리를 둔 상태에서 수행 내지 고행을 강조하는 전통 종교와는 달리, 책을 통해 대중적으로 교리를 전파한다는 점에서 “출판과 독서의 종교”라는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을 읽은 후 확인해본 사실이다. 오카와가 2014년 말까지 출판한 책만 하더라도 무려 1,500여 권에 달한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일종의 기적적인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박민정의 소설 「행복의 과학」에는 이 신흥교단과 관련한 이야기와 한일 양국 사이의 해묵은 원한 및 혐오 감정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다루어진다. 여기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가리는 작업은 흥미로울 수 있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새로운 경향의 민족주의가 지구촌 여러 곳에서 문제되는 현 상황에서 보면 의미심장한 맥락을 붙잡을 수 있다. 그동안 일본에서 있었던 한류 열풍의 대안에서 혐한 기류에 대한 기민하면서도 신중한 문학적 성찰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과거 식민지 지배 때 자행했던 여러 행위들에 대해 사과하라는 요구에 대해 언제까지나 피해자 의식을 가지고 일본과 일본인 전체를 가해자로 몰아세울 것이냐는 신민족주의적 혐한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줄기에서는 어처구니없는 한국인 살해 사건까지 이어진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런 경향에 대한 반성적 이야기도 있다. 살해자의 아들이 SNS를 통한 고해를 하는 장면을 통해 그 반성의 계기를 부여하려 한다.

그런가 하면 이런 고해를 하는 일본인 젊은 작가의 번역서(『류의 이야기―행복의 과학』)를 편집하는 실무 담당자 ‘하나’는 그 작가 류의 할아버지와 한국인 현지처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소설이 끝나기까지 하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고, 동료인 수영만이 알고 있다. 이런 설정은 신민족주의 경향에 대한 탈민족주의적 해체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수영은 “영원히 알지 마. 쓸데없는 사실들은 몰라도 그만이야”라는 생각을 하나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 한 세상 살아가면서 사실을 확인하고 진실을 발견해나가는 문제에 대해 곰곰이 고민하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식자우환(識字憂患)의 역설이 관통하는 사례도 많으니까 말이다. 아울러 하나와 수영의 커뮤니케이션 과정만을 초점화하여 살피더라도 흥미로운 성찰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 행복의 문제는 여러 층위, 여러 심급에서 고려해야 할 일이 많은 법이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이래저래 복잡한 심사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사족처럼 덧붙인다.

– 우찬제(문학비평가)

 

박민정의「행복의 과학」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정치적 퇴행 조류, 외국인과 소수자 그리고 여성에 대한 혐오를 토대로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적 역사주의와 겹쳐 읽을 때 더욱 흥미롭게 논할 수 있는 동시대적인 텍스트이다. 퇴행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단순한 복고적인 흐름으로 여기기에는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그간 관용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이해되어온 서구식 민주주의 이념과 탈민족주의적 사유의 한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역사’라는 이름이 그와 같은 극단적인 우파적 정념을 되살리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동안 역사적 상상력이 문명의 개진 과정에서 양산한 수많은 폭력을 반성하고 피해자를 복원하기 위한 진보적 성찰의 거점일 수 있었다면, 오늘날 우익들이 욕망하는 것은 그와 같은 자기 비판적 태도를 부인하고 망각함으로써 역사를 단일화하려는 정치적 운동에 가깝다. 이러한 부인과 망각의 욕망은 그 자체적으로 종교적인 데가 있다. 박민정의 소설이 소재로 삼고 있는 ‘행복의 과학’이 역사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종의 유사 종교라는 점은 그런 맥락에서 흥미롭다. 국정 교과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란에서도 드러나듯, 단일한 이야기에 대한 욕망은 그 자체적으로 종교와 다를 바가 없으며, 종교는 다른 교리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정치적이기까지 하다. 역사를 종교적으로 정치화 하려는 우익적 흐름을 해체하는 것. 그것은 역사를 다시금 정치적으로 역사화 하는 길, 더 나아가 거대 서사에 짓눌려 있는 이야기들을 복원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박민정이「행복의 과학」을 통해 보여준 소설적 상상력이 드러내고 있는 가능성 역시 거기에 있을 것이다.

– 강동호(문학평론가)

인터뷰

김신식_이번 작품과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를 다시 읽으면서 떠올려본 질문입니다. 평소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나 히스토리 채널 ,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잘 챙겨보시는 편인지요? 사회적 사건, 역사적 일화들을 잘 고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박민정_물론 잘 챙겨보는 작품들입니다만 소설을 쓰기 위해 보진 않아요. 저에게는 과거 「그것이 알고 싶다」의 사건을 표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사건을 표절하는 이야기라는 것 자체가 이후 제게 하나의 화두가 되었고요. 사건이 이야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신식_주인공인 편집자 하나는 비교문학을, 동료편집자인 수영은 표상문화학을 전공했습니다. 박민정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특히 소설 속에서 여러 학문 분과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자주 발견합니다. 저는 이를 다종다양한 학문과 지적작업을 수렴하고 정리하는 데 특화된 ‘문화연구자들의 화법’이라고 부르곤 하는데요. 작가님은 소설가의 이력치곤 인상적인 문화연구를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화연구를 공부한 것이 소설 속 학문분과를 그려내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박민정_1번 질문에 대한 답변과 마찬가지로 소설을 쓰기 위해 공부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소설 쓰는 사람에게는 그 무엇이든 소설 공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공했던 ‘문화연구’는 현대문화연구소의 이론기획 하에 맑스주의, 페미니즘, 정신분석, 이데올로기론 등을 소개하지만 한국 대학의 온전한 분과로 자리 잡지도 못했고, 더구나 언젠가부터 ‘문화콘텐츠’ 따위가 유행하게 된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이 공부할 여건이 마땅치 않다고 여깁니다. 아직도 제가 대학원에서 문화연구를 공부했다고 하면 (제대로 공부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졸업만 했을 뿐이지만요) 문화콘텐츠나 미디어콘텐츠, 하여간 그 상업적인 ‘콘텐츠’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어느 한 시기에 학제 간 연구에 몸담은 것도 사실이고, 지금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다양한 정보를 얻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모든 소설가들은 잡학의 꾸러미를 이고 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김신식_‘행복의과학’이란 실제 종교와 연관된 서사가 전개되는 가운데, 주인공 하나가 연루된 키노시타 류와의 혈연관계와 그 내력이 서사의 한 축으로 등장합니다. 행복의과학교가 등장하는 경제적, 사회적 배경인 재팬 버블과 내셔널리즘, 혐한이란 축 그리고 하나-류의 가족사를 그려내는 축을 동시에 가져가다보니, 행복의과학교가 가진 다채로운 사회적 특성이 가족사에 조금 희석된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작가님이 보다 주안점을 두고픈 서사의 축은 무엇인지요.

박민정_소설은 종교를 둘러싼 이야기지만 제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무엇보다 하나-류의 가족사입니다. 그것이 행복의과학이라는 종교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하나는 설정상 재팬 버블의 상징과 같은 코카콜라 광고 감독의 사생아입니다. 하나의 어머니는 1980년대 후반에 현지처였고요. 한편 류를 통해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는 3대의 이야기가 있는데 특히 일본과 한국의 가족주의, 증오도 사랑도 가족 내부로 향하는 그 정서를 ‘삼대’라는 문화를 통해 풀어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류가 행복의과학교에 빠지거나 탈출하게 되는 계기 모두 아버지에 있다고 봤습니다. 류의 아버지는 1991년 살인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그 시기는 버블이 마감되던 시기이기도 하므로 소설 속 버블의 시작과 끝에 전부 어떤 여성이 있어요. 잘나가던 한때를 말해주는 ‘현지처’가 있고, 1991년에 살해당한 여공 박 양이 있습니다. 행복의과학교가 경유하는 네오 내셔널리즘은 당연히 정치경제적 조건과 맞물리고요. 그러므로 유토리 세대 소년이 행복의과학교에 심취해 넷우익이 되는 데 거슬러 올라가면 3대를 통과하는 가족사가 있다고 봤습니다. 단편 「행복의 과학」은 제목 그대로 그게 왜 행복의과학교를 통해 드러나는지에 주목했지만 곧 새로운 작품을 통해 삼대의 가족사에 좀더 집중해볼 생각입니다.

 

김신식_ 1991년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이전 작 「굿바이 플리즈 리턴」엔 1991년이 가족의 불화와 붕괴가 아로새겨진 시기로 나옵니다. 이번 작품에서 류가 알게 된 (류의 아버지가 연루된) 압구정동 맥도날드 살인사건은 1991년에 일어납니다. 아시다시피 1991년은 한국의 대표적인 3대 미제사건 중 이형호 군 유괴사건,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이 일어난 해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쓰시면서 혹시 1991년에 어떤 강조점을 심어놓으신 걸까 궁금했습니다.

박민정_두 작품에 공통적으로 1991년이 등장한다는 것을 방금 알았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1991년이 제게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빠는 부자야, 엄마는 예뻐, 아기는 행복해, 랄랄라”의 시절인데, 얄궂게도 1991년 이후 실제로 가정에 파산과 교통사고 등이 있기도 했었지만 이듬해 한국에서는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표면적으로는 나쁜 놈들 전성시대가 마감되는 듯 보였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저는 어릴 때 어른들의 대화를 유난히 귀 기울여 듣곤 했는데, 김영삼 대통령 당선 후에는 주변에 ‘망했다’를 외치던 어른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망한 걸까 생각했는데 중고등학교에 가서 역사 공부를 하고 존경하는 전교조 선생님들을 만나 87민주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도 자세히 듣고 하니 내가 살아온 요람은 부동산 투기를 하던 나쁜 놈들의 세계 위에 있더라는 거예요. 이런 식이다 보니 1991년이 상징적으로는 우리 집은 망했지만 세상은 나아져가던 시기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모든 창작자가 그렇겠지만 자기가 존재는 했지만 엄밀히는 무의식의 살덩어리에 불과했던 그 시절에 대해, 그러니까 내 앞 세대의 이야기에 대해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있습니다. 마침「행복의 과학」에서는 재팬 버블이 붕괴하는 시점입니다.

 

 

김신식_일본 사회는 종교에 대한 논의가 서브컬처로도 간주되는 토양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특정 종교가 생기는 데 개입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배경을 두텁게 알게 되고요. 또 종교의 창시자나 신도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많이 접하게 되는 듯합니다. 본 소설 덕분에 행복의과학교와 창시자인 오오카와 류호에 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출판과 독서의 종교’라는 소개가 눈길이 가더군요. 혹시 작가님이 특별히 주목하시는 (사회문제와 맞닿은) 한국 사회의 종교성이 있다면.

박민정_일본이 출판강국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편집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대부분 모르는 것도, 사이비 종교가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수단이 활발한 출판이라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말 그대로 교주의 책을 수십 권씩 편집해야 하는 곳이 행복의과학 출판사겠죠. 한국 사회의 주목할 만한 종교성이라 하면 당연히 한국 기독교를 개성 있게 만드는 정치적 보수주의가 아닐까요? 한국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문제가 워낙 심각하기는 하지만 한국적 샤머니즘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김신식_ 소설 내 주요 인물인 류가 행복의과학에 입교한 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이들을 혐오했던 대목이 나오는데요. 넓게 보면 등단작인 「생시몽 백작의 사생활」부터 「행복의 과학」까지, 작가님은 사회가 구조화하는 ‘피해자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한국 사회 안에서 우리가 더욱 고민해볼 피해자성은 무엇일까요.

박민정_한국 사회가 구조하는 잘못된 피해자성이 너무나 많고 또한 시급하겠지만 우선 소설 속 인물 류가 왜곡하는 부분만 이야기를 드리면, 류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이들을 혐오한다고 합니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가해자성을 가진 인물이 내뱉을 때, 그만큼 마법 같은 단어가 또 있을까요. 그 말을 내뱉는 사람의 타락을 보여주는 마법 같은 조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소년이지만 일베의 정서를 참고해서 만든 인물입니다. 동아시아 청소년들이 “역사를 강건하게 공부하는 방식”을 넷우익을 경유해 주장한다는 것이 제게는 흥미로우며 괴로운 사실입니다. 실제로 제가 만났던 고등학생들 중에도 그런 아이들이 많았는데,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죠. 그들이 생각하는 피해자의 연약함과 역사의 강건함이 대척에 있다고 믿고 싶은 듯합니다. 피해자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피해 입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을 ‘징징댄다’고 치부하지만 외려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피해자성을 스너프 필름처럼 수단화하는 거죠. 일베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도덕의 최전선으로 삼았는지를 보면 분명한 것처럼요. 굳이 넷우익으로 대상화할 것도 없이 한국 사회와 문화는 전반적으로 정말이지 피해자를 두려워하는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연약하고 징징대고 예민하고 과하다고들 하면서요. 특히 여성의 목소리를 그렇게 치부하는데, 남성이 이룩해온 이런저런 역사와 전통 아래 감수성의 일대 변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피해자의 말을 온전히 들을 귀는 없을 겁니다.

관련 작가

박민정 소설가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 문화연구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단편소설 「생시몽 백작의 사생활」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민음사, 2014)로 제22회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자세히 보기

우찬제 평론가

서강대학교 경제학과와 동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하여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세계의 문학』『오늘의 소설』『비평의 시대』『포에티카』『HITEL문학관』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소천이헌구비평문학상과 김환태평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욕망의 시학』(1993), 『상처와 상징』(1994), 『타자의 목소리―세기말 자세히 보기

강동호 평론가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현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제5회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 및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다. 자세히 보기

김신식 일반저자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성공회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이론을 전공했다. 2008년 <당비의 생각>(舊 당대비평)을 통해 비평, 출판활동을 시작했다. 1인 사회과학출판연구소 '김샥샥 연구소'를 차려 학문제도권 바깥에서의 감정사회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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