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횔덜린 시인

독일 서남부 라우펜에서 태어났다. 튀빙겐 신학교 시절 헤겔, 셸링 등과 교유하면서 칸트의 비판철학, 그리스 문학과 철학 공부에 매진하고 프랑스혁명을 지켜보면서 혁명의 이상에 심취했다. 졸업 후 성직자가 아닌 작가의 길을 택한 뒤, 1796년 프랑크푸르트 은행가 가문의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여주인인 주제테 부인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는 이후 횔덜린의 작품에 인간과 자연의 완벽한 조화를 상징하는 인물인 ‘디오티마’로 등장한다. 1802년 정신착란의 징후를 보이면서 귀향했고, 1806년 튀빙겐의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했다. 이듬해부터 성구 제작 목수인 에른스트 치머 일가의 보살핌 속에서 남은 생을 보냈다.

소설 『휘페리온』, 미완의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과 「빵과 포도주」 등 많은 서정시를 남기고, 핀다르의 송시,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등을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괴테와 쉴러의 동시대인으로서 당대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반평생을 정신분열증으로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으나, 20세기 초 그의 후기 시들이 발굴되고 재평가되면서 현대적 시인으로 부활했다. 릴케, 첼란과 같은 독일 현대 시인들은 횔덜린을 자신들의 선구자로 여겼으며, 횔덜린은 지난 50년 동안 독일 시인들 중 전 세계 각국어로 가장 많이 번역 소개된 시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