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푸르니에 소설가

알랭 푸르니에Alain-Fournier(본명 Henri-Alban Fournier, 1886~1914)
1886년 10월 3일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라 샤펠당지옹에서 부부 교사인 오귀스탱 푸르니에와 알바니 바르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에피뇌유 르 플뢰리엘은 대자연의 따뜻하고 넉넉한 품으로서 이후 그의 성격과 작품세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1898년에 파리 볼테르 학교에 입학, 우수한 성적으로 3년의 중등 과정을 마친다. 어려서부터 이국과 바다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었던 탓에 해군장교를 꿈꾸고 대서양변의 브레스트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귀향, 1902년 부르주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대입자격시험을 통과한다. 1903년 부모님을 따라 옮겨간 소Sceaux 지방의 라카날 고등학교에서 훗날 여동생 이사벨의 남편이자 그의 문학인생의 동반자·조력자로서 절대적인 역할을 했던 비평가 자크 리비에르와 처음 만난다.(두 사람의 우정은 푸르니에가 죽기 직전까지 12년간 주고받은 서한문에 잘 드러나 있다.) 1905년 6월 파리에서 운명의 여인 이본 드 키에브르쿠르를 만나 2년 뒤 그녀가 결혼할 때까지 만남을 지속한다. 그녀는 푸르니에의 유일한 장편소설 『대장 몬느』에서 이상적인 여인 ‘이본 드 갈레’로 형상화된다. 1907년 10월에 군에 입대하고 같은 해 12월에 자신의 첫 글 「여인의 육체」를 ‘알랭-푸르니에’라는 필명으로 La Grande Revue지에 발표한다. 2년간의 군복무를 마친 후, 1910년 5월부터 Paris Journal지 출근과 당시 유명한 시인이자 사상가였던 샤를 페기와의 서신 왕래를 계기로 본격적인 문필 생활에 들어간다. 마침내 1912년 12월에 탈고한 『대장 몬느』를 이듬해 7월부터 11월까지 N.R.F.(La Nouvelle Revue Fran뛞ise)지에 연재하고 곧이어 에밀-폴(Emile-Paul)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한다. 그해 연말 공쿠르상 후보로 최종심까지 올랐다. 1914년 소설 『하얀 비둘기Colombe Blanchet』와 희곡 『숲속의 집La maison dans la F셱et』 집필을 시작하나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8월에 재입대하여 9월에 28세의 나이로 전쟁터에서 요절하고 만다. 그의 사후 77년의 세월이 흐른 1991년에야 비로소 시신이 확인되어 생-레미-라-칼론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1924년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이 수여되었다. 1954년에 R. Gibson이 전기 『알랭 푸르니에를 찾아서The Quest of Alain Fournier』(Yale Univ., 1954)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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