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110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5년 5월 29일 | ISBN 9771227285006

사양 변형판 223x152 | 가격 15,000원

책소개

여름호를 엮으며

“예술은 하나의 정신계가 이룩할 수 있는 최상의 창조적인 모습이며 역사는 우리에게 개인과 사회의 존재양식을 밝히면서 지혜와 관용을 가르치고 자유는 예술과 역사, 개인과 사회, 정신과 사상이 자리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토대를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어왔다.”

1971년 『문학과지성』 창간 1주년 기념호의 서문에는 위와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요컨대 인간은 예술을 통해 인간의 정신이 이룩할 수 있는 최상의 창조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역사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존재에 대한 지혜와 관용을 갖추게 되고, 이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자유라는 주장이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이 주장이 예술은 물론 최소한의 언론 자유마저 심각하게 훼손되어가던 1970년대의 상황에서 어떤 울림으로 다가왔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대는 많이 변했고 예술과 역사와 자유에 대한 우리의 사유는 훨씬 더 견고하게 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문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진행형의 문장처럼 읽힌다. “우리는 믿어왔다”라며 단정이 아닌 어떤 믿음에의 확인으로 끝맺는 저 문장은 그 확인이 여전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2015년의 우리에게도 요청하는 듯하다. 이는 당연히도 오늘날의 사회가 역사의 흐름을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전 시대의 투박함과는 다른 교묘한 방식의 통치가 우리 시대 예술의 자유를 훨씬 더 심각하게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본적 생존을 위협하는 예상치 못한 폭력들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 사회가 시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 상황 속에서 예술의 자유를 운운하는 것이 여러모로 시대착오적인 요청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예술의 부자유가 예술의 종말을 초래하고 결국 이는 인간 정신의 파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예술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시대의 야만화를 예술의 위기와 관련하여 사유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문학과사회』 2015년 여름호는 “예술과 통치성— 검열, 제도, 시장”이라는 이름의 기획 코너를 마련, 현재 이른바 ‘시장’과 ‘제도’라는 거대한 두 축의 교묘한 공모로 인해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길들여지고 위축되어가는지 반성적으로 진단해본다. 문학 분야에만 국한해 말하면,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문단은 새로운 세기의 젊은 문학을 소개하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고 기억된다. 그러나 10년 사이 한국 문단은 유례없는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한국의 정치 현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퇴보하고 있는 사정과 관련하여, 문학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이 오히려 문학의 가능성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진단을 내려볼 수도 있겠지만, 가장 현실적이고도 분명한 원인으로는 시장 경쟁력의 축소와 여러 제도적 지원의 축소를 지적할 수 있다. 아주 우연적이거나 특수한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 한국 문학의 시장 경쟁력은 거의 말소에 가까운 정도로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지원은 축소되거나, 예술에 대한 ‘지지’가 아닌 ‘통치’의 다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떠한 예술도 사회적 지원 없이 자생하기 힘들다는 것은 오래된 명제이며, 더불어 그러한 사회적 지원이 예술의 생존을 가능케 함과 동시에 결국 예술의 근본적인 자율성을 압박한다는 점도 모두가 알고 있는 오래된 역설이다. 한 사회의 예술이 절대적인 다양성을 보장받으며 발전하기 위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무관심의 지원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2015년 한국 사회에서 예술에 대한 여러 제도적 지원들은 묻고 따지며 관여하고, 결국 지지자가 아닌 관리자가 되고자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이 스스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은 오직 시장에서뿐이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경쟁에서 예술은 어김없이 패배한다. 패배의 결과는 물론 다양성의 축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예술의 자율성을 어떻게 새롭게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실천들이 필요할까.
출판계의 복잡한 사정들과 순문학 출판의 축소 문제, 여러 예술 지원 제도의 맹점과 보이지 않는 검열의 문제,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공유하며 이에 맞서려는 예술계 내부의 다양한 모색들을 포괄적으로 검토해보려는 것이 이번 기획의 목표다. 『문학과사회』의 지면에서는 처음 만나는 영화감독 이송희일의 글 「영화, ‘정치’의 복원」은 한국 영화판에서 수십 년째 동어반복되고 있는 위기론이 정작 한국 영화계의 “진짜 위기”를 은폐하려는 하나의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한국 영화산업이 1970년대의 엄혹한 시절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권을 거치며 어떻게 진화 혹은 퇴화되어왔는지를 두루 살피며, 최근 영화계의 “진짜 위기”로 ‘상상력의 살균’과 ‘다양성의 소멸’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가 반문화적인 보수정부와 신자유주의 양극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잊지 않고 지적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그가 제시하는 이른바 “주체의 새로운 구성과 인식의 전환을 요청하는 정치의 복원, 일희일비하지 않고 생태계 전체를 성찰하는 사유의 복원,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의 복원”이라는 방법론은 너무나 근본적이고 그래서 당장에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군부독재의 그 엄혹했던 시절도 견뎌내고, 1990년대 중반부터 다시 신발 끈을 조이며 열심히 재활했던 그 한국 영화의 힘을 믿는다”는 마지막 문장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되고 그러므로 시장성에 더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는 영화산업과 달리 문학은 그 규모에 비례해 위기의 정도가 덜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송희일이 영화계의 위기가 상상력과 다양성의 축소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면, 문단을 중심으로 한 위기론에 대해 논하는 장은수의 「문학은 국가와 결별해야 한다」는 문학의 위기가 아직은 문학 내부의 병듦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 문학이 아직까지는 병들지 않았더라도 문학에 대한 “비소비” 또는 “무소비”라는 “공황” 상태가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그 결과는 문학의 파멸임을 그는 경고한다. 이러한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이 요청되지만 문학에 대한 국가의 직접 지원은 (이송희일이 언급한 영화계의 경우처럼) 결국 문학을 둘러싼 다양한 상상력의 박탈을 초래할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할 것이라고 이 글은 말하고 있다. 즉 문학이 국가와 결부되는 방식은 재조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시민사회를 통해서 서로 긴장과 도움을 주고받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결론 내려진다.
영화계와 출판계를 비롯하여 한국 문화계가 전반적으로 위기에 봉착해 있는, 그리고 당장의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 암흑의 시대에 그렇다면 한 명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명의 인문학 연구자이자 인문학 활동가로서의 개인적 체험이 소개되는 함돈균의 「공공적 삶과 시민 인문학, 인문정신— 대학의 인문학 연구자는 왜 인문 활동가가 되었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참조가 되는 글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인문학의 공공성 위기”에서 찾는 함돈균은 대학과 국가와 시민 3자가 협업하여 인문정신의 회복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실천의 한 사례로서 함돈균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실천적 인문공동체 시민행성’을 소개한다. “‘인문’이라는 실천 방법론”과 “‘시민’이라는 주체” “‘시민적 공공성’이라는 최소도덕”에 기초한 이러한 공동체의 활동을 통해 한국 사회 전반에 ‘인문학의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확산되기를 바라는 그의 글은 일독의 가치가 크다. 이처럼 세 편의 글이 제출하고 있는 구체적인 진단과 치열한 고민들을 경청하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예술의 자율성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지, 나아가 예술의 공공성이 어떻게 발전될 수 있을지를 근본적으로 사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성> 코너에서는 올해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바라보는 유럽 지성의 의견들을 소개한다. 훼손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Je suis Charlie”라는 선언과 더불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도 하였지만, 결국 이 테러사건은 이슬람에 대한 프랑스 내부의 오랜 적대를 종교, 문화, 정치, 계급의 차원에서 새롭게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글로서 2015년 1월 28일자 『르몽드 Le Monde』에 실린 알랭 바디우의 「붉은기와 삼색기」를 번역・소개한다. 번역과 해설을 함께 맡아준 서용순이 적절히 요약하듯, 바디우는 샤를리 에브도 사태가 결국 정체성 정치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샤를리 에브도 만평은 표현의 자유와 무관하며 “식민지 피지배자 출신의 프롤레타리아들에 대한 서구 민주주의의 ‘교양 있는(?) 조롱”, 즉 “문화적 인종주의의 폭력”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바디우는 “특수한 정체성을 겨누는 폭력과 특수한 정체성에 근거하는 폭력은 그저 서로를 비추는 거울상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서로 다른 정체성들의 적대라는 이 무한지옥으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공산주의가 실패한 자리에서 새로운 보편주의를 어떤 실천으로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또 한 편의 흥미로운 글이 번역・수록되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대한 지젝의 논평은 올봄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배성민 옮김, 글항아리, 2015)이라는 저작으로 국내에 소개되기도 하였거니와, 그 책의 기저가 되었던 신문 기고글은 발표 당시 여러 논객들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항할 ‘급진 좌파’를 호출하는 지젝의 글에 대해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적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반론을 『디 차이트 Die Zeit』에 기고한다. 독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이경진의 번역으로 한병철의 이 글을 소개한다. 조롱을 수용할 수 없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열등의식이 테러를 일으켰다고 말하는 지젝은 “갱신된 좌파”만이 자유주의의 중심적 가치들을 구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한병철은 지젝의 이러한 논의에 “급진 좌파”의 가능성이나 그 구체적 모습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한병철은 새로운 삶의 형식이 지젝의 지적처럼 혁명을 통해서만 성취되는 것은 아님을 말해본다. 이 두 편의 번역문과 더불어 정치철학자 홍철기의 글도 일독을 권한다. 그는 최근의 사태를 “문명의 충돌”이 아닌 우상파괴자들과 우상숭배자들 사이의 오래된 적대로 이해해보며, 이러한 오래된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근본주의를 “광신”의 개념으로 재인식해볼 것을 제안한다.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는 정현종 시인과 곁에서 그와 그의 시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정과리 평론가의 대담은 많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해줄 듯하다. 정현종의 시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들이 오가는 것은 물론, 시인이 시를 쓰기 시작하던 시절의 문단 풍경이 그려지기도 하며 최근의 시단에 대한 진단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쟁점>의 이수형과 문성욱의 글은 넓게 보아 평단에서 지난 수년간 반복되어온 문학의 정치 혹은 문학의 윤리에 관한 논의에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지는 글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당혹스러운 현실의 요구로 인해 한국 문단은 문학의 정치성을 다급하게 호출했으나, 현실의 정치 사정이 괴팍해지는 만큼 이러한 논의들은 애초의 목적과는 멀어져 이론적 격론에만 그치는 우울한 결과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수형과 문성욱의 글은 문학과 정치에 관한 논의가 처음 촉발되던 당시와는 또 많이 달라진 현실 조건을 염두에 두며 기존의 고민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점화하고자 한다.
이수형의 글은 최근 ‘공감’ ‘동정’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지지되고 있는 문학의 실천적・윤리적 기능에 대한 주장들을 비판적으로 점검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요구하는 최근 ‘동정’에 관한 윤리적・실천적 접근법이, 오래전 민족 형성기에 권장되고 학습된 ‘동정(동포의식, 동류감정)’ 개념의 역사성에 대한 이해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으며, ‘문학의 윤리’와 ‘동정의 실천’을 연결시키는 논의들의 맹점을 지적해본다. 나아가 ‘고통’이라는 감정을 주된 대상으로 삼는 ‘동정’에의 요구가 “고통의 민주주의”로 명명될 수 있을 정도로 병리화된 우리 사회의 문제적 현상을 오히려 강화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묻고 있다.
문학의 정치에 관해 여러 민감한 화두를 던지며 이에 대해 오래도록 진지하게 고민했던 진은영의 글들을 『문학의 아토포스』(그린비, 2014)라는 저작을 통해 재검토하는 문성욱은 ‘감각적인 것의 새로운 분배’라는 랑시에르의 논의와 이에 대한 진은영의 천착들을 정치, 문학/텍스트, 감성의 재분배, 삶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치밀히 검토한다. 문성욱의 주장은 문학의 정치성 문제가 문학과 현실 사이의 여전한 간격을 좀더 숙고해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문학의 정치성이 쉽게 맹신될 수는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텍스트가 없다면 문학의 정치는 없다. [……] 텍스트를 두고, 텍스트에서, 텍스트가 싸우지 않는다면 문학은 싸우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문학의 한계이고 부끄러움이지만, 부끄러움 없는 영예는 문학의 것이 아니다”라는 이 글의 비장한 결론은 문학의 정치성에 관한 문단의 오래된 열패감을 텍스트에 관한 새로운 열정으로 극복해보려는 시도로 읽힌다. 두 편의 글을 함께 읽으며 우리는 문학의 정치성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할 수 있을 듯하다.

105호에서부터 새롭게 마련한 <동향> 코너는 작가 특집과 서평 코너의 관행을 반성하여 해당 계절의 문학적 현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소개하려는 의도를 지닌 일종의 문학 특집 코너라 할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문학과사회』가 그간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으며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다섯 명의 젊은 소설가들을 집중 조명한다. 김솔, 김엄지, 윤해서, 이상우, 정지돈이 그 주인공이다. 김솔의 첫 책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문학과지성사, 2014)는 올해 김준성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출신인 정지돈의 단편도 최근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작으로 뽑히며 그의 새로운 글쓰기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역시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출신으로 그간 개성적이고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김엄지와 윤해서는 첫 책의 출간을 앞두고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근 열정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상우의 에너지 넘치는 작품들에 대해서도 『문학과사회』는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우찬제, 이광호, 김형중, 김대산, 조연정 평론가가 섬세한 작가론을 통해 이들 문학의 가능성을 확인해주었다. 조만간 이 코너에서 『문학과사회』가 지지하는 젊은 시인들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미리 귀띔을 해둔다.

여러 제도적 사정으로 인한 예술의 위기라는 <기획>의 진단이 무색하리만치 이번 호의 <창작>란도 풍성하다. 연재 2회째를 이어가고 있는 백민석의 장편은 많은 독자들의 기다림을 충족시켜줄 것이다. 한편 윤대녕, 기준영, 이상우의 단편을 함께 읽는 독자들은 한국 문단의 깊이와 넓이를 만족스럽게 확인할 것이라 믿는다. 잔인하고도 우울한 봄을 보내며 힘들여 작품을 써 보내주신 김혜순, 조은, 허연, 김소연, 최하연, 이근화, 서효인, 김현, 민구, 장수진 시인들께도 특별한 감사의 말을 건넨다.
이번 호에서는 시인과 평론가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두 명의 신인을 만나볼 수 있어 특별히 더 기쁘다.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임지은과 평론 부문 수상자인 김주선에게 다시 한 번 축하의 말을 건넨다. 한국 문학이 이들의 열정과 더불어 오늘날의 위기를 지혜롭고 치열하게 돌파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_문학과사회
출판사는 수많은 계약을 한다. 작가, 에이전시, 인쇄소, 제본소, 직원,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거래처들. 겹겹이 쌓인 계약서들 위에서 책이 만들어진다. 계약을 위해서는 세세한 조건이 필요하다. 계약이 성사되도록 만드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이익을 고려한 경제적인 합리성이다. 그런데 경제적 합리성은 우리에게 늘 고민을 안겨준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다른 것들을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는가? 비싸고 질 좋은 재료와 제작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어느 지점에서 비용과 편익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작가와는 어떤 형태의 계약을 해야 경제적 합리성을 지키는 것이 될까? 질을 높이고 비용을 줄인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줄다리기를 우리는 끊임없이 해야 한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 행동의 궁극적인 동인을 유전자 차원의 이기심에 두고 설명한 것은 ‘경제적 합리성’으로 세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끝까지 밀고 간 것이다. 제법 호응을 크게 얻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타적으로 보이는 것들까지도 밑바닥에 깔린 이기심으로 일관되게 설명을 했으니, 과학의 미덕인 ‘오컴의 면도날’을 실현한 셈이다. 하지만, 그럴싸한 설명이라고 해서 진리도 아니며 모두를 설명하지도 못한다. 『이기적 유전자』의 설명이 그 전까지 설명하지 못했던 것들 중 일부를 설명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손대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는 점은 현실. 설명하지 못하는 것까지 한꺼번에 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런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까? 과학적 탐구의 결말이 무엇이든 아직까지 분명한 것은 ‘경제적 합리성’만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규정짓거나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홍콩에서 시작해 중국의 대표적인 출판사로 성장한 삼련서점三聯書店은 생활서점生活書店(1932), 신지서점新知書店(1935), 독서출판사 讀書出版社(1934)가 1948년에 합병하면서 만들어졌다. 중국인들의 현대를 만드는 데 근간이 되었던 생활, 신지식, 그리고 독서라는 가치를 한꺼번에 가진 이 출판사는 오랫동안 지식인들의 자부심이었다. 설립 때부터 출판사가 만들어진 이유와 가치를 잊지 않고 꾸준히 출판을 해왔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었는지, 창립 반세기 즈음해서 경제적인 이익 추구를 가장 큰 목표로 삼는 정책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에 많은 독자와 서점이 들고일어났다. 출판사 내부에서도 그런 방향 전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세게 항의했다. 결국, 삼련서점 보위투쟁이 일어났고 이 출판사는 제일 중요한 가치를 경제적 이익에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좋은 책을 읽고 싶은 독자들이야 그렇다고 해도 경제적 이익을 많이 얻으면 당장 혜택을 입을 내부 직원들까지 반대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적 합리성을 거스를 수 있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그것도 더 큰 경제적 합리성의 일부는 아닌가?

문학과지성사도 삼련서점처럼 이익보다 먼저 고려하는 분명한 목표와 가치를 갖고 있다. 1970년 가을 『문학과지성』 창간호에서 문학과지성사의 1세대 동인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태도를 취한다. 하나는 폐쇄된 국수주의를 지양하기 위하여, 한국 외의 여러 나라에서 성실하게 탐구되고 있는 인간 정신의 확대의 여러 징후들을 정확하게 소개·제시하고, 그것이 한국의 문화 풍토에 어떠한 자극을 줄 것인가를 탐구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폐쇄된 상황에서 문학외적인 압력만을 받았을 때 문학을 지키려고 애를 쓴 노력이 순수문학이라는 토속적인 문학을 산출한 것을 아는 이상, 한국 문학을 <한국적인 것>이라고 알려져온 것에만 한정시킬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하자면 한국 문학은, 한국적이라고 알려져온 것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보편적 인식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노력마저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태도는 한국의 문화 풍토, 혹은 사회·정치 풍토를 정확한 사관의 도움을 받아 이해하려는 노력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우리가 취할 또 하나의 태도는 한국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의 제반 분야에 관한 탐구의 결과를 조심스럽게 주시하겠다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라고 우리는 썼는데, 그것은 우리가 지나치게 그것에 쉽게 빨려들어가 한국 우위주의란 패배주의의 가면을 쓰지 않기 위해서이다.”

문학과지성사는 한국을 정확히 인식하고 파악하면서도 그것을 인류 보편적 가치와 연결시켜 이해하려는 노력을 40년간 계속해왔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출판사들이 몸집을 키우고 갖가지 마케팅 기법이 동원되어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처음의 뜻과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의 가치로 승부하겠다는 취지의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었지만 아직까지 독자들은 책의 가치와 경제적 효용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출판시장은 더 어려워졌다. 세운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문학과지성사를 오랜 기간 지켜보면서 사랑해준 독자들에 대한 보답이다. 문학과지성사 보위운동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문학과지성사만은 오랜 가치를 저버리지 말기를 바라는, 오래된 독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독자들과 함께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독자들이 늘어나야 문학과지성사가 오랜 세월 지켜온 가치를 담은 책들을 끊임없이 만들 수 있다. 늘 그랬듯이, 그것으로 얻은 이익이 있다면 그것은 다시 한국 문학, 한국 문화, 그리고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책으로 돌려줄 것이다.

2015년 거의 모든 출판사들이 도서정가제의 후과로 매출 부진에 시달렸고, 당장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힘들어했다. 우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문학과지성사는 여전히 우리가 거의 반세기 전에 내걸었던 가치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그 가치를 지지하는 독자들을 만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좋은 내용을 담을 더 나은 전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시대에 맞는 그릇을 구상하고 만드는 일이 우리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4월 눈부신 봄날, 김현, 김치수, 황인철 선생의 묘소에 다녀왔다. 그분들을 떠올릴 때 따라오는 말은 지성, 소통, 정의다. 같은 때에 1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를 함께 추념했다. 이 사건의 슬픔에 공감할 뿐만 아니라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해보는 것이 문학과지성사가 견지해온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해왔는데 아직도 끊이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우리를 내려치는 채찍이 아닐까? 그것을 마음에 깊게 새기면서 감당할 체력을 키우는 이중의 과제를 열심히 풀어야 하는,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_ 문학과지성사

목차

30 여름호를 엮으며

<기획>
예술과 통치성―검열, 제도, 시장
266 영화, ‘정치’의 복원 이송희일
286 문학은 국가와 결별해야 한다 장은수
303 공공적 삶과 시민 인문학, 인문정신 함돈균
―대학의 인문학 연구자는 왜 인문 활동가가 되었나

<동향>
323 도서관 작가와 콜라주 스토리텔링 우찬제
―정지돈 소설에 다가서기
341 누가 비트를 두려워하랴―이상우와 소설의 유령들 이광호
360 개와 돼지와 비둘기의 세계에서―김엄지론 김형중
374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보이게 해주는 것 김대산
―윤해서 소설의 행간을 향하여
389 김솔이 쓴 김솔―김솔의 소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조연정

<지성>
이슬람과 유럽 지성
443 붉은기와 삼색기 알랭 바디우
455 바디우의 정치적 개입에 대한 짧은 주해 서용순
461 적에 대한 그리움 한병철
469 광신자의 구원에 대하여 홍철기

<쟁점>
484 문학과 감정 논의에 대한 (재)검토 이수형
496 문학의 정치, 텍스트의 정치 문성욱

<시>
45 슬픔이 울러 퍼진다|모욕과 목욕|혼자 김혜순
53 눈보라|너무 늦었다|그날의 길 조 은
58 상하이 올드 데이즈|Nile 407|Nile 421 허 연
61 경배|관족|방법들 김소연
70 기억 범람|기억 군락|설거지―읍泣 최하연
77 바나나 전선|내 죄가 나를 먹네|탄 것 이근화
83 귀향|압구정|장충체육관 서효인
86 유구|가슴에 손을 얹고|종말론 김 현
99 나고야살롱|뤼르엥|슬레이트 지붕이 보이는 해변 민 구
105 사랑의 고통|달고 더운 귀|엄마는 히치콕 장수진

<소설>
116 닥터 K의 경우 윤대녕
145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 기준영
171 프리즘 이상우
190 장편 연재 2회 1공포의 세기 백민석

기획 대담
411 정현종 등단 50주년 기념 1그림자의 향기에 취하다 정현종&정과리

제15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발표
539 시시 1임지은 1「개와 오후」 외 4편
551 평론 1김주선 1「증언의 아카이브―박솔뫼론」

571 색인『문학과사회』 100~109호
579 정기 구독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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