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새벽

마해송

출판사 문지아이들 | 발행일 2015년 5월 15일 | ISBN 9788932027463

사양 변형판 152x212 · 834쪽 | 가격 22,000원

책소개

‘한국 창작 동화’의 개척자, 마해송 전집 전 10권 완간!

마해송 산문 미학의 정수, 『편편상』『전진과 인생』『아름다운 새벽』

수필가․언론인․편집인으로서의 진솔한 삶과 문장들!

책 소개

‘마해송 전집’ 8․9․10권, 『편편상』 『전진과 인생』 『아름다운 새벽』 등 수필집 3권이 출간됨으로써 ‘마해송 전집’ 10권이 모두 출간되었다. 2013년 6월에 제1권 『바위나리와 아기별』이 출간된 것으로부터 2년 만이고, 2011년 ‘마해송 전집 편집위원회’ 구성으로부터 4년 만이다. 이로써 한국 창작 동화의 개척자인 마해송의 빼어난 동화들을 한자리에 모은 데에 이어, 그의 수필가․언론인․편집인으로서의 진솔했던 삶과 문장들, 그리고 시대를 앞서 갔던 그의 문학 정신을 아울러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마해송 전집’ 8․9․10권에는 그의 시대정신과 비판정신의 기록인 ‘편편상(片片想)’ 류의 수필들과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등 혼란의 시대를 살아낸 그의 진솔한 삶, 그리고 어린이 혹은 아동인권 문제를 비롯해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그의 다양한 관심과 지성적 면모들을 살펴볼 수 있는 글들로 빼곡하다. 편 수로는 309편, 원고지 6,200여 매 분량이며, 십대 후반이던 1923년부터 1966년 작고하기 전까지 쉼 없이 적어 온 그의 문학적 편력이 시대 순으로 정리되었다. 특히 기 출간되었던 단행본 외에 신문과 잡지 등에는 발표되었으나 책으로는 엮이지 못했던 53편의 ‘미발간 수필’들이 발굴되어 추가됨으로써 그의 문학과 삶의 비었던 자리들을 가름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마해송을 연구하는 후학들에게도 소중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수필 문장가로서의 마해송

1923년 한국 최초의 창작동화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개성에서 있었던 제2회 어린이날의 동화회에서 구연(口演)하고, 1926년 『어린이』에 게재한 이후 마해송이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새 지평을 연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1923년부터 4년간 「복남이와 네 동무」 등 다섯 편의 동극을 발표했고, 1923년 수필 「설날」을 발표한 이래 1927년 「최촉(催促)」 등 여덟 편을 『송경학우회보』에 실었던 일은 크게 주목 받지 못했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미발간 수필’ 원고들을 찾아 전집에 수록하며 첫머리에 실린 「마음의 극장」은 그의 관심이 비단 동화 창작에만 있었던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해송의 본래 전공이 극문학(劇文學)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원고지 140여 매에 달하는 분량을 『조선일보』에 연재(1927. 6~1929. 10)하며 「모원(毛猿)」 등 일곱 편의 연극을 조국에 소개한 일은 그가 문화예술인․언론인․편집인으로서도 선구적인 활동을 펼쳤음을 증명한다.

이는 당시의 지식인들이 어느 한 분야에만 몰두할 수 없었던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이기도 했을 터. 사상가와 정치가와 언론가를 겸해 글을 쓰는 문인이기도 했던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있어 ‘문학’이란 예술 활동이기 이전에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매체’였기 때문이다. 마해송은 아동문학가요 아동인권운동가를 겸해 다방면의 문화와 정치․사회적인 이슈들을 ‘편편상(片片想)’이라는 그만의 글쓰기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였다. 이는 동화와 수필이, 또 그 외의 다른 글들이 서로 맞닿아 상호 보완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신문에 ‘편편상’을 쓰는 것에 대한 이른바 그의 「전공의 변(辯)」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냉전(冷戰)이 아니라 백열화(白熱化)하는 세상에 아무리 집 안에 들어박혀 산다고는 하지만 일 년에 세 편의 동화만을 쓰고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쓴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마음이 후련하고 직성이 풀리는 것 같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혓바닥 짧은 어린이 말투로 동화를 쓰건 입이 비뚤어질 지경의 ‘편편상’을 쓰건, 주제는 같은 것이요 정신은 하나다.(「전공의 변(辯)」)

‘편편상’이란 ‘칼럼(Column)’의 우리식 표현이요, ‘수상록(隨想錄)’의 겸손한 명명(命名)일 텐데, 아무려나 동화만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수많은 메시지들이 이 안에 담겨 우리에게 전해졌다. 이미 각각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바 있는 『역군은(亦君恩)』 『요설록(饒舌錄)』 『아름다운 새벽』 등의 긴 산문은 물론이고, 이른바 ‘편편상’ 류의 짤막한 신문 잡지 칼럼들, 그리고 기름한 수필들에 이르기까지, 동화 집필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돼 1966년 작고하기 직전까지 꾸준히 발표된 산문들은 마해송의 또 다른 면모, 아니 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마해송, 그의 삶의 여정과 수필 문학

마해송이 살았던 시대는 ‘대한제국-일제 강점기-미군정기-대한민국’이다. 그가 태어난 1905년에 대한제국은 을사조약 체결로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5년 뒤에는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그는 잦은 동맹 휴학과 퇴학으로 변변한 공부도 할 수 없는 청소년기를 보내야만 했다. 일본에 유학했지만, 연인 ‘순’과의 염문으로 고향에 붙들려와 연금(軟禁) 생활을 해야 했던 일련의 과정(이때의 심정을 동화로 승화시킨 작품이 「바위나리와 아기별」이다)들은 트라우마로 남아 재차 ‘도망꾼’이 되어 고향을 등진 채로 오랜 타국 생활을 하도록 만들었다. 아버지는 연애를 인정해주지 않고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가둔 ‘폭군’이라 생각했다. 하여 하숙방 벽에 붙여놓았던 조그만 쪽지의 글귀처럼 “너는 의지할, 아무도 없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도― 단지 너 하나가 있을 뿐”(「인생 노트」)이라는 비장한 각오를 세웠던 것이지만, 마음의 병은 결국 폐결핵이란 중병으로 나타나 1년여에 걸친 요양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스승 기쿠치 칸(菊池寬)을 만나 편집자로서 능력을 한껏 펼쳐 보이고, 무용가 아내와 결혼한 후 삼남매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과정은 주변의 모든 인연에 감사하는 ‘역군은(亦君恩)’의 마음새라 하겠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기 1년여 전에 마해송 일가는 귀국한다. 해방 정국에 주변에서는 ‘한몫’ 볼 것을 부추기기도 했지만 그는 정치에도 언론에도 출판에도 직접 간여하지 않았다. “대학도 흔하고 교수도 흔하고 월급도 좋다지만 당장 궁해도 내 길 아닌 길을 갈 생각은 없다. 교단(敎壇)을 모독하는 일이라기보다도 지금 세월이 없지만 나의 길은 나의 길 대로 가난하나 일생을 걸어 겨누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인생 노트」)는 말에서는 어떤 결기조차 느껴진다. 요컨대 타인의 글로써 책을 만들던 출판․편집자로서의 인생 제1막을 내리고, 이제부터는 자신의 글을 쓰는 전업 작가로서의 인생 제2막에 매진하겠다는 뜻일 터. 우연치 않게도 두번째 도일(渡日)에서 귀국까지가 21년이고, 귀국 후 작고하기까지가 21년인데, 어쩌면 그에게 있어 글을 쓰는 행위란 식민지 시대를 타국에서 보냈던 세월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러한 결의는 ‘해방 공간’에서는 민중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담아낸 글로써, 6․25전쟁 시기에는 최전선의 ‘종군기(從軍記)’와 후방에서의 궁핍한 삶을 기록하는 것으로써, 그리고 이승만 독재정권 시기에는 그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는 직설적인 문장들로 오롯이 남았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만약 정치나 언론이나 출판에 직접 간여하며 전면에 나섰더라면 혼돈의 시절에 휩쓸려 하지 못했을 일을, 그는 동화와 산문을 쓰는 문인의 삶에 진력(盡力)함으로써 그 의기(意氣)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대도 과언이 아닐 터다.

「역군은」 「새너토리엄」 「아름다운 새벽」 등 자서전적 수필들]

이번 ‘마해송 전집’에서 그의 산문들은 세 시기로 구분하여 편집되었다. 단행본 출간 순서에 따라 수록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8권 『편편상』에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수필들이 실렸으며, 9권 『전진과 인생』에는 6․25전쟁 시기와 그 후의 혼란기가, 그리고 10권 『아름다운 새벽』에는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의 여러 모습들이 담겼다.

그의 산문 중 가장 긴 글인 「아름다운 새벽」은 마해송이 가톨릭에 입교하게 된 내면 풍경을 담고 있는 자서전적 수필 혹은 자전소설이다. 일상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편편상 류’의 수필들도 대부분 자서전적이랄 수 있겠으나,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계보를 찾자면 『편편상』에 수록된 「역군은」과 『전진과 인생』에 수록된 「새너토리엄」, 그리고 「아름다운 새벽」을 들 수 있다. 작가의 인생을 회고한다는 측면에서 일정 부분 겹치는 면이 적지 않으나, 「역군은」이 첫사랑에 대한 애틋한 기억과 가슴 아픈 이별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새너토리엄」이 투병의 고비에서 스치듯 마주했던 인연들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에 맞추어졌다면, 「아름다운 새벽」은 유․소년기 이후에 체험했던 여러 종교들에 대한 사적 단상들과 더불어 생사의 고비에서 그토록 갈구하며 찾았던 ‘임’을 마침내 마주하는 여정을 담담히 담고 있다.

짤막한 편편(片片)의 수필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세 편의 산문은 ‘풀어 쓴 작가의 이력서’래도 좋을 만큼 사실에 기반을 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세 편을 두루 통해 일치하는 정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그가 평소 역사․전기소설에 대해 생각했던 바와도 일맥상통하는데, 여기서의 ‘불행한 임무’란 내내 혼란한 시절을 살아왔던 우리네 역사에서 진실을 찾아야 하는 작가로서의 임무를 일컫는 것이어서 의미심장하다.

역사소설, 전기소설에 있어서, 외국 작가들은, 정사(正史)를 약간 무시하고, 작위(作爲)가 풍부해도 하등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 작가는 될 수 있는 한, 충실하게 써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불행한 임무’란 생각이 떠올랐다.(「편편상」)

아무려나 「아름다운 새벽」은 오랜 시간 불화했던 아버지와 화해하는 극적인 내용을 포함해, 하느님을 만나는 영적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성장소설’의 요건도 갖추고 있다. 이는 마해송이 책으로 펴낸 첫 수필집인 『역군은』과도 일맥상통하는데, 가톨릭을 받아들이는 과정 역(亦) ‘역군은(亦君恩)’의 또 다른 모습이며, 그 안에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유․불․선’의 정수조차 담겨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은 ‘복되고 복된 대화이며 참회의 기록’이라 할 것이다.

편편상에 담긴 시대정신과 비판정신

마해송의 산문에서 이루 다 분류할 수 없는 가장 많은 글들은 여러 가지 일상에 대한 ‘편편상(片片想)’이다. 그 속에는 가난하고 궁핍하고 억압 받는 민중들의 면면이 그야말로 ‘만인보(萬人譜)’처럼 펼쳐진다. 사랑방에서 소일해야 했던 식민지의 남정(男丁)들, 궁핍한 시대에 남성들보다도 더 생활력을 발휘해야 했던 여성들, 전쟁통에 신문을 팔아 연명하는 고아나 다름없는 소년들, ‘불굴’의 ‘긍지’로 공산군과 맞서는 사병들과 장교들, 혼란기를 틈타 점점 ‘이약해지는’ 사람들, 입시에 치어 고문당하는 십대들, 대학생들, 신여성들, 그리고 수많은 어린이 어린이들……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의 공통분모는 ‘식민지를 거쳐 전쟁을 치른 분단국가의 민중들’이라는 점이다.

단아하면서도 세련되고, 간결하되 풍자미가 돋보이는 유려한 문체는 「오후의 좌석」에 와서 더욱 굳건해졌다. 어린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편편(片片)’에 여전하며, ‘전진(戰塵)’ 이후의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근심에 찬 필봉(筆鋒)은 한국적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해송이란 한 작가의 내면에서 돌고 있는 발랄한 언어 감각”을 “소리 내서 읽어 보면 아주 묘한 울림을 주는 입말의 리듬을 탄다”(이재복)거나 “동화작가이면서 특유의 미문을 지닌 당대의 수필가”(김지은)로서의 면모는 그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과 마찬가지로 우리 문학과 모국어에 대한 사랑 역시 소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씨의 단문이 가진 표현의 묘미는 능숙한 풍자에 있다. 불합리한 세태의 가지가지를 포착하여 조소와 분노로써 적발(摘發)하고 있는 다채(多彩)한 필치는 특히 해방 이후 조선 사회에 차 있는 위선의 범람에 대하여 그것을 부정하고 그것을 근절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지사(志士)의 열의를 볼 수 있다.”(석생; 『편편상』)

“아무런 과장과 수식이 없는 간명(簡明), 직재(直載)한 세련된 필치로 느닷없이 그 대상을 도려내는 이 몇 줄식(式)의 단시감(短時感)은 어디까지나 리얼하고 평이하고 단편적이면서도 풍부한 함축성과 예리한 비판과 매움한 풍자미(諷刺味)를 가지고 있습니다.”(박두진; 『전진과 인생』)

또 하나, 마해송의 문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비판과 풍자정신이다. 그는 스스로를 일컬어 “편편자(片片子)”라거나 “휘뚜루 잡문가(雜文家)”라 칭하며 늘 겸양하였으나 글이 향하는 바에 있어서는 늘 꼿꼿한 선비정신으로 일관했다. “권세에 아부하고 비굴하여 무문곡필(舞文曲筆)하고 독자의 기호에 첨(諂)하여 엽기 탐색 말초신경의 자극을 일삼는다면 그것은 결코 신문의 사명을 다한다고 볼 수 없는 것”(「저널리즘의 공죄」)이라는 말은 그의 언론관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려나 “유연한 선의지 구현의 모드로 변모”한 말년에조차 날선 비판을 가했던 대상이 있으니 그것은 독재와 부정선거로 일관했던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에 대한 것이다. “무효표를 만들기 위해서 표에 인주를 찍는 손가락 재주 부린”(「피아니스트와 육손이」) 이른바 ‘피아니스트’에 대한 야유에서부터, 미국 대통령 워싱턴이 육십 이전에 은퇴한 것을 예로 들며 “한 사람이 오랫동안 집권하면 본의 아니라도 독재에 흐르기 쉽다”(「오래 사는 것만이 잘난 것 아니다」)고 말하는 것이라든지, 이러한 독재가 이승만의 ‘악(惡)의 정점’이었다고 분석하는 데는 서슬이 퍼렇다.

2기만 하고 깨끗이 물러났더면 그래도 외딴 섬에서 바다만 바라보고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는 안 되었으련만, ‘내가 아니면’ 나라가 망한다는 신념이 굳었기 때문에 국회의원이나 정객(政客)도 아닌 회손(會孫)이나 현손(玄孫) 뻘밖에 안 되는 학생들의 아우성으로 쫓겨나게 되었으니, 사람의 꼴이 말이 아니라고 가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쌀값이 폭등했을 때에 “쌀값은 내려야 한다”고 한마디 하면 내릴 것으로 생각하는 따위의 어리석음보다도, 물러나야 할 때를 가리지 못한 것이 그의 악(惡)의 정점(頂點)이었을는지 모른다.(「이승만악」)

이 외에도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음식과 맛의 향연은 그야말로 휘황한 것이다. 「식도락근처」를 보면 고향인 개성을 비롯해 유학했던 서울과 동경의 음식들, 자주 찾았던 중국 음식들, 피란 시절 대구의 음식들, 그리고 유럽, 미국, 러시아, 몽골 등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들이 총망라되고 있다. 하여 마해송 특유의 독특한 필치에서 연상하는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법을 읽고 있을라치면 입속에 침이 고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청주, 양주, 소주, 막걸리, 칵테일을 비롯한 다채로운 술들도 빼놓을 수 없고, 또 집(「멋 제1장, 집」)과 옷(「멋 제2장, 옷」) 등 문화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은 그야말로 ‘박물지(博物誌)’를 연상케 한다.

마해송 수필들의 내용에 따른 분류

인생에 대한 회고담: (중․장편이라 할 「역군은」 「새너토리엄」 「아름다운 새벽」을 포함하여) 「후지미 고원에서」 「조선을 사랑하자」 「어린 날의 회상」 「나의 연극 청년 시대」 「나와 색동회 시대」 「나와 여름방학」 「인생 노트」 「해송의 변」 「명명」 「일본에 다녀와서」 「나의 문학 생활」 「연금에서 빚어진 ‘바위나리와 아기별’」 「사주의 영감」 등.

어린이 또는 어린이의 인권 문제: 「유치원의 위기」 「소학생과 소제」 「원숭이」 「재언」 「아동과 미신」 「아동․인간․위대」 「가난한 조선 어린이」 「어린이날을 위하여」 「폭군」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 「서로 사랑하는 소년이 됩시다」 「어른들이 반성하자」 「33회 어린이날에」 「34회 어린이날에 즈음하여」 「아동들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꿈과 과학」 「아름다운 광경」 「십대 고문의 계절」 「아동헌장에 대하여」 「어린이날의 이상」 「어린이헌장과 대구」 「공군과 어린이」 「새 사람을 대하는 자세」 「동안에 어린 명암」 등.

인물에 대한 회고담: 「몽양 영결」 「방정환 군」 「어린이날과 소파」 「기쿠치 칸과 나」 「P 시인」 「소파와 나」 「거룩한 장례」 「인생의 의의」 「6․25에 생각나는 사람」 「살고 있다며」 등.

고향(개성) 생각: 「향수」 「만월대」 「깨끗하고 곧고 바르게」 「고향 산수」 「시원한 내 고장」 등.

종군기: (본격적 종군기인 ‘종군초’ 열 편을 포함하여) 「생사」 「종군문인」 「최후의 긍지」 「권 중위」 등.

언론에 대한 생각: 「최촉」 「언론의 자유」 「신문의 자유」 「저널리즘의 공죄」 등.

문화예술 관련: 「마음의 극장」 「문학 외교의 긴요성」 「멋 제1장, 집」 「멋 제2장, 옷」 등.

음식 또는 식도락 관련: 「식도락근처」 「삼복 식성」 「개성에만 있는 찜」 「봄철의 풍미」 「맛의 감각, 청주」 「개성 음식은 나라의 자랑」 등.

여성에 대한 생각: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국 여성의 비극」 등.

아동문학가+수필가+문장가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비롯해 단편동화 42편과 중편동화 4편, 동극․노래․어린이를 위한 수필 등 기타 글 35편, 그리고 『모래알 고금』 『앙그리께』 『물고기 세상』 『멍멍 나그네』 등의 장편동화를 통해 마해송이 한국문학사상 독보적이고도 굵직한 족적을 남긴 아동문학가로서의 면모는 이미 ‘마해송 전집’ 1권~7권에서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외의 모습들, 이른바 아동인권운동가, 수필가, 편집인, 언론인, 문화예술인, 그리고 독실한 신앙인으로서의 면모는 ‘마해송 전집’ 8․9․10권, 즉 『편편상』 『전진과 인생』 『아름다운 새벽』의 행간에서 찾을 수 있다.

“동화를 쓸 때가 제일 즐겁더군요”(「나의 문학 생활」) 하고 스스로 밝힌 것이라든지, 수필을 쓸 때조차 원고 말미에는 항상 ‘아동문학가’라 적시한 것을 보더라도, 마해송은 아동문학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글들을 적재적소에 쉼 없이 발표해온 수필가요 당대의 빼어난 문장가라는 사실도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마해송은 아동문학가이고, 수필가이고, 문장가이다. 동화뿐 아니라, 그의 다양한 수필집 역시 일독을 권한다.

 

뒤표지 글 (‘해설’ 중에서)

제8권 『편편상』

마해송은 ‘어린이=아기별’을 위한 이야기를 창작하는 데 상상력의 수고를 아끼지 않은 작가이다.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고 해서 바위나리의 오색영롱한 아름다움만을 초점화하지 않았다. 그것은 동화 세계에서나마 진실하지 않다. 한국 동화의 근대성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바위나리의 이면에서 시든 풍경을 발견하고 그 산문적 현실을 깨우쳐 나가면서 어린이가 새로운 도전과 희망의 지표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에 ‘산문적 현실=바위나리’에 대한 성찰이 마해송에게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해송이 살았던 시절의 민족현실은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황량한 해변가에 홀로 버려진 채 시들어갔던 ‘바위나리’ 신세나 한가지였다. 마해송 산문의 핵심은 바위나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감 있는 탐색과 문제의 발견에 있다. 그의 발견하는 산문정신은, 동화 「바위나리와 아기별」에서 아기별의 빛을 다시 가져다주었듯이, 산문적 현실에서 소망의 빛을 꿈꾸기 위해 엄정하게 현실을 인식하게 한다. 그것이 간결하지만 날카로운 마해송 산문의 특징이다. 요컨대 마해송의 ‘편편상’ 시리즈는 현실성과 가능성, 이야기성과 관념성, 시대성과 미학성, 비판과 소망 등이 얽히고설키며 빚어낸 의미심장한 산문들이다.

_우찬제(문학평론가)

제9권 『전진과 인생』

전쟁 이후 마해송의 산문들은 거대 서사로 기록된 역사가 간과하고 있는 한 개인의 삶의 구체적인 국면들을 생생하게 드러내준다. 거대 서사로서의 역사가 신화화되고 상징화된 것으로서의 시간을 이념화하는 것이라면, 삶의 사소한 장면들 속에서의 개인의 기록과 증언들은 미시적인 역사의 실재를 대면하게 해준다. 그의 산문들은 한 동화작가의 경험과 감각과 내면이 마주한 한 시대의 미세한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의 종군기가 생생하게 드러난 ‘종군초’, 요양원 체험을 다룬 ‘새너토리엄’, 음식의 이미지들로 한 시대의 경험을 증언하는 ‘식도락근처’ 같은 글들은, 거대 역사가 드러내지 못하는 한 시대의 정밀한 벽화이며 섬세한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산문들이 단순히 한 시대의 미시적인 증언이라는 자료적인 가치로만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해송 산문들의 궁극적인 문학적 가치는 그의 산문들의 글쓰기 주체의 위치와 문체와 형식이 만들어내는 예기치 않는 담론적인 성격이다. 전쟁기의 수많은 죽음과 궁핍과 인간의 비참을 목도하면서 작가 마해송의 글쓰기가 가닿은 곳은 창작가와 사상가의 권위와 확고한 신념이 아니라, 인간의 약함이라는 경계에서 문학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이 만나는 산문의 장소이다._이광호(문학평론가)

제10권 『아름다운 새벽』

「아름다운 새벽」은 마해송이 가톨릭에 입교하게 된 내면 풍경을 담고 있는 자서전적 수필 혹은 자전소설이다. 무속신앙 내지는 토속신앙을 접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불교를 접했던 청소년기를 거치고, 동양사상을 막연히 동경하던 청년기 이후, 숙명처럼 가톨릭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숙명처럼 잔잔하게 스몄으되, 그 고뇌에 찬 갈등은 깊고도 넓은 것이었다. “무어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릅니다” 하고 막연하게, 그러나 애타게 찾던 대상에서부터 마치 “바다 그 밑에서 한때 빛을 잃었던 아기별이 다시 빛나”듯 오롯이 가슴속에 자리 잡는 과정은 신새벽에 깃드는 여명(黎明), 바로 그것이다. 민족이나 국가나 인류사회에 죄를 범한 자들조차 고해함으로써 수월히 용서 받을 수는 없다는 양심적 지식인으로서의 오랜 번민은 종교를 여러 차례 거부하는 몸짓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역(亦) ‘역군은(亦君恩)’의 또 다른 모습이며 그 안에 ‘유․불․선’의 정수조차 담겨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은 ‘복되고 복된 대화이며 참회의 기록’이다. 단아하면서도 세련되고, 간결하되 풍자미가 돋보이는 유려한 문체는 「오후의 좌석」에 와서 더욱 굳건해졌다. 어린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편편(片片)’에 여전하며, ‘전진(戰塵)’ 이후의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근심에 찬 필봉(筆鋒)은 한국적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준다._원종국(소설가)

목차

아름다운 새벽

오후의 좌석

편편상(片片想)
불 삼대
악(惡) 삼대
부(富) 삼대
소낙비
폐허
내 집
습성
이약한 사람들
주름살
원(圓) ․ 환(圜)
묻힌 장상(將相)

해마다 설
애회반장(愛賄班長)
싫증
육친(肉親)
모순(矛盾)
악동 탄생
심부름
꿈과 과학
최후의 긍지
권 중위
까부는 아이
위조(僞造) 협력
값 떨어지는 미인
편지질하는 여학생
안 나오는 수도
거짓말 전화
구두닦이와 제사
능금 반쪽의 살인
세대는 다르다
버르장머리

오후의 좌석
오후의 좌석
아름다운 광경
잘 살으리
깨끗하고 곧고 바르게
노교사의 독백
진짜 ․ 가짜
거리에서
변소에서
부자이간설(父子離間說)
거룩한 장례
사람 나름
기생
저널리즘의 공죄(功罪)
나와 여름방학
독서수상(牘書隨想)
십승지(十勝地)의 풍속
인생의 의의
논산 ․ 인천 ․ 대전
상식이 문제
웃음에 층이 있다
공산주의의 만가(挽歌)
의(義)는 하나다
방중한담(房中閑談)
문학 외교의 긴요성
피아니스트와 육손이
오래 사는 것만이 잘난 것 아니다

인생 노트
인생 노트
족보
족보 2
해송(海松)의 변(辯)
명명(命名)
내 방
나와 8․15
고향 산수
시원한 내 고장
화초 없는 정원
박과 수요일
납량무용(納凉無用)
불고기에 칵테일
정불서(靜不署)
삼복(三伏) 식성
세월의 흐름을 그저 바라보며
전공의 변(辯)
취미역정(趣味歷程)
내 생활 내 가정

어린이 ․ 어머니
십대 고문의 계절
해방 십 년의 어린이들
입학시험장의 인생
33회 어린이날에
식모에의 참회
아동헌장에 대하여
어린이날의 이상(理想)
어린이헌장과 대구
공군과 어린이
광복 13주년에
화려한 결혼식
봄 ․ 여인 ․ 유행
한국 여성의 비극
멋 제1장, 집

미발간 수필
시계
심향(沈香)과 똥
개성에만 있는 찜
멋 제2장, 옷
문전구악(門前舊惡)
6․25에 생각나는 사람
돈의 꼴
나의 취미․여기(餘技)
벌거벗은 도의
일본에 다녀와서
나의 문학 생활
출세훈(出世訓)
새 사람을 대하는 자세
봄철의 풍미(風味)
연금(軟禁)에서 빚어진 「바위나리와 아기별」
살고 있다며
이승만악(李承晩惡)
법과 어린이
사주(四柱)의 영감(靈感)
맛의 감각, 청주(淸酒)
개성 음식은 나라의 자랑
또 일본에서 드린 미사
한일수교(韓日修交), 내가 보는 문제점
동안(童顔)에 어린 명암(明暗)
넓은 교양의 지침서
생활의 여유
이사기(移徙記)

해설 아름다운 성사와 편편의 성찬 / 원종국

작가 소개

마해송

1905년 1월 8일 개성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상규(湘圭). 개성학당을 거쳐 경성중앙고보와 보성고보에 다니다가 동맹휴학으로 퇴학당한 뒤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유학생 극단 ‘동우회’를 조직하여 국내 각지를 순회하며 신극 운동을 벌였다. 1920년대 초반부터 아동문학에 힘을 기울여 창작동화 개척에 헌신했는데, 이 무렵에 발표한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한국 최초의 창작동화로 평가받고 있다. 아동문학과 병행하여 수필문학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는데, 특히 그의 자서전적 수필은 진솔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대학 졸업 후 일본의 종합 잡지 『문예춘추』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32년에는 잡지 『모던니혼』을 인수하여 경영인으로 활약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데 일조했다. 광복 직전에 귀국하여 작품 집필에만 전념하면서, 1957년 강소천 등과 단체를 만들어 ‘대한민국어린이헌장’을 기초하는 등 아동 인권회복 운동에 기여했다.
자유문학상, 한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해송동화집』 『토끼와 원숭이』 『떡배 단배』 『모래알 고금』 『앙그리께』 『멍멍 나그네』 『마해송아동문학독본』 등의 동화집과, 『역군은』 『편편상』 『속 편편상』 『전진과 인생』 『사회와 인생』 『요설록』 『아름다운 새벽』 『오후의 좌석』 등의 수필집이 있다. 1966년 11월 6일, 만 61세로 서울에서 작고했다.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9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