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마음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 지음 | 김상유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5년 2월 9일 | ISBN 9788932027142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90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혹시 비밀이 생기거나 이미 비밀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 말하지 말거라”

 

듣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곧 안다는 것이며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듣는 것으로 새하얀 마음이 더럽혀질 수 있는 것이다

 

 

스페인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매해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언급되는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새하얀 마음』이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29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새하얀 마음』은 성찰적이고 시적인 문체로 현대인의 존재론적 불안을 예리하게 그려내는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형이상학적 스릴러’라는 독특한 작품 성격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새신랑인 화자 후안의 이야기, 아내를 두 번이나 잃고 세 번 결혼한 아버지 란스 이야기, 불륜 커플인 기예르모와 미리암 이야기, 잡지의 개별 만남 섹션이나 소개소를 통해 짝을 찾는 베르타 이야기, 스페인과 영국 정상의 회담 이야기 등 매우 독립적인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다양한 이야기들은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독특하고 섬세한 문체와 유기적인 작품 구조를 통해 거대한 의미망을 구축한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비롯된 작품이자 연결고리로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가 20세기 사건들에 군데군데 깊숙이 파고들어 인간의 행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고뇌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반복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아버지 그리고 화자인 ‘나’의 시대를 오가며 말의 강력한 힘과 ‘앎’이 가져오는 끔찍한 대가, 끈질긴 과거의 멍에를 묘사한 이 작품은 독창적인 방식으로 인간 행위의 본질과 고뇌를 성찰한다. 또한 인간의 몸과 마음처럼 문학 작품의 형식과 내용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주는 치밀한 구성력은 이 작품에서 절정을 이룬다. 임팩 더블린 국제문학상 수상작이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사람들은 비밀을 이야기해주면 자신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손님들과 식사를 하던 신부 테레사는 욕실로 가 거울 앞에 서더니 권총으로 심장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마냥 행복해야 할 새신부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일까!

약 40년 후, 이 미스터리한 사건은 당시 신랑이었던 란스의 아들이자 갓 결혼한 ‘나’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우연히 알게 된 과거의 진실에 점차 다가감에 따라 ‘나’는 나를 둘러싼 관계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40년 전 그 사건을 궁금해해도 좋은지, 그 사건을 밝혀내는 것이 좋을지 고민한다.

신혼여행 직후 자살한 테레사와 주인공 ‘나’의 어머니는 자매다. 그리고 당시 신랑은 ‘나’의 아버지다. ‘나’의 아버지는 자매와 잇따라 결혼하여, 언니는 자살로 먼저 보내고 동생과 재혼하여 나를 낳은 것이다. 새신부의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시작한 이 소설은 갓 결혼한 나와 아내가 테레사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이자 인간관계, 남녀 관계에 대한 치밀한 고찰이다.

결혼식 날 새신랑인 나를 불러내서 아버지가 한다는 충고는 “혹시 비밀이 생기거나 이미 비밀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 말하지 말거라”였다. 결혼피로연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나’는 부인 루이사에 대해 아버지가 무언가를 아는 것은 아닌지 자꾸 신경이 쓰인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는 한밤에 내 신혼집을 몰래 바라보고 있고, 해외 출장이 많은 통역사인 나는 집을 비운 사이 일어난 일들에 대해 남몰래 의심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흔한 치정 로맨스로 흐르지 않는다.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이러한 통속적인 요소들로 극적 긴장감은 긴장감대로 유지하면서 인간관계와 이성관계의 본질을 예리한 시선으로 분석한다. 결혼과 관련하여 괴로운 과거가 있는 아버지의 시간과 새로운 시작을 하는 나의 사건 등 급격한 시공간의 이동은 미혼에서 결혼이라는 극적인 변화를 겪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 상태와 연결되어 긴장감을 한층 강화하고, 주인공이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제 두 손은 당신과 같은 색깔이에요.

하지만 전 새하얀 마음을 가진 게 부끄러워요.”

이 소설의 제목 ‘새하얀 마음’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 나오는 표현이다. “제 두 손은 당신과 같은 색깔이에요. 하지만 전 새하얀 마음을 가진 게 부끄러워요”라는 표현은 맥베스가 잠자고 있던 던컨 왕을 살해하고 막 돌아왔을 때 그의 부인이 한 말이다.

보통 ‘하얗다’의 의미를 ‘하얗게 질리다 혹은 창백하다’로 해석할 수 있으나, 맥베스 부인의 관점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라는 의미에 가깝다. 자신의 남편이 저지른,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된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도록 하기 위해, 그 행위의 중요성을 덜어내기 위해 한 말이다. 이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인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범죄를 부추겼을 뿐만 아니라 사건의 발생을 알게 되었다. 이 ‘앎’이 그녀를 공범으로 만든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두 손을 피로 물들인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맥베스를 진정시키기보다는 그녀 자신이 알게 된 내용을 최소화하여 회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에게 동화되고, 그럼으로써 그가 그녀에게, 그녀의 새하얀 마음에 동화되도록 의도하는 것이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나눈다기보다는 그가 그녀 자신의 실행적 측면에서의 결백함 혹은 비겁함을 나누도록 애쓰는 것이다. 직접 범죄를 실행하지는 않았으나, “그 말을 내뱉은 사람”(부추긴 사람), “자신의 말이 실현되는 것을 본 사람” 역시 견디기 힘든 것이다.

 

 

‘말’의 무거움, ‘앎’의 무서움

주인 없는 번역 가능한 말들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이 언어에서 저 언어로, 이 세기에서 저 세기로 이어지며 반복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말[語]’이다. 왜 맥베스 부인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 사건에 죄책감을 느끼고 벗어나려 하는가? 왜 아버지 란스는 아들에게 비밀을 ‘만들지 말 것’이 아니라 비밀을 ‘말하지 말 것’을 충고하는가? 란스는 가장 행복한 순간, 가장 순수한 열정으로 한 말들이 가져오는 참혹한 결과를 보고, 그 사건 자체보다 ‘말’의 힘, ‘안다는 것’이 가지는 무게에 대해 생각한 듯하다.

말은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무한히 복제되고 증식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말과 행위는 서로 긴밀하게 맺어져 있다. 란스는 이런 운명을 피하고자 자신의 비밀을 수십 년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겪은 비극이 아들에게는 반복되지 않게 하고자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란스는 또다시 누군가(루이사)에게 무거운 ‘말’과 무서운 ‘앎’을 전달하게 된다.

하비에르 마리아스가 보기에 ‘말’이란 시대와 공간을 넘어 변형되고 반복되는데, 이것은 인간이 본질적인 특성에 의해 같은 상황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11세기의 맥베스와 20세기의 아버지 란스가 그랬듯이.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인간은 개인의 의지에 따라 반복되는 숙명을 변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란스와 같은, 인간 공통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만의 극복 방식을 터득한 화자 ‘나’처럼.

인간의 몸과 마음처럼 문학 작품의 형식과 내용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매우 긴밀하게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유기적 연결이 강할수록 작품의 단어나 문장 하나하나가 가진 의미가 깊고 넓어진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새하얀 마음』은 형식으로 내용을 구현하는 기법의 절정을 보여주며, 고도의 함축을 풀며 맞춰가는 스릴러 특유의 지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이 책에 바쳐진 찬사들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당대 최고의 작가 중 하나다. _ 존 맥스웰 쿠체(소설가)

인간과 성적 애착에 대해 예리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 그의 작품에 마음을 빼앗겼다.

_『가디언』

마리아스의 도전적이고 매혹적인 기법은 『새하얀 마음』에서 절정에 도달했다. _『뉴욕타임스』

세련미와 감정 교류의 독특한 혼합을 보여준다. _『뉴요커』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품격 있는 소설가다. …… 독자들은 그를 통해 굉장히 매력적이고 충격적으로 이국적인 세계로 들어간다. _ 마거릿 드래블(소설가)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우아하고 재치 있으며 설득력 있는 작가다. 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것은 정말로 매력적인 일이다. _『스코츠맨』

 

 

■ 본문 속으로

그 일에 대해 나는 굳이 알고자 하진 않았지만 결국 알게 되었다. 그 집의 딸들 중 하나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었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욕실에 들어가 거울 앞에 서더니 블라우스를 열어젖히고 브래지어를 벗은 뒤, 자기 아버지의 권총으로 심장을 겨누었다. [……] 사람들은 한결같이 매제이자 남편이자 내 아버지인 란스가 정말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내를 두 번이나 잃었기 때문이었다. _11~17쪽

‘제 두 손은 당신과 같은 색깔이에요.’ 그녀는 맥베스에게 말한다. ‘하지만 전 새하얀 마음을 가진 게 부끄러워요.’ 만일 여기서 ‘하얀’이라는 표현이 ‘창백하고 두려움에 질린’ 혹은 ‘겁에 질린’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면, 그녀는 던컨의 피를 자신에게 묻힌 대신에 자신의 평안함을 남편에게 전염시키고자 한 것 같았다. 그녀가 알고 있었고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잘못이었다. [……] ‘물로 씻으면 우린 깨끗해질 거예요’(혹은 아마도 ‘우릴 말끔하게 할 거예요’). ‘이번 행위로부터’라고 그녀는 맥베스에게 말한다. 그녀 자신은 그럴 수 있다는 걸, 말 그대로 그럴 수 있다는 걸 알면서 말이다. 그녀는 그에게 동화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그녀에게, 그녀의 새하얀 마음에 동화되도록 의도하는 것이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나눈다기보다는 그가 자신의 돌이킬 수 없는 결백함, 혹은 비겁함을 나누도록 애쓰는 것이다. _94~95쪽

란스와 어머니는 테레사 이모가 란스와 결혼했었다는 사실을 감춘 적이 없었다. 나는 그들의 결혼이 아주 짧은 기간 유지된 것은 이모의 때 이른 죽음 때문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그 죽음의 이유에 대해서는 몰랐다(묻지도 않았다). _150쪽

‘침대에선 모든 걸 이야기한다.’ 침대를 함께 쓰는 사람들 사이엔 비밀이 없다. 침대는 고해소이다. 말하기, 안내하기, 알려주기, 논평하기, 의견 주기, 잡담하기, 듣고 웃기, 쓸모없는 계획 세우기 등등 그 본질은, 사랑 때문이건 원래 그렇기 때문이건, 사람들이 비밀로 간직한 것이나 그들의 모든 과거를 배신한다. [……]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머지를 욕한다. 떠나버릴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만족시키고 보증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부정하고 비방한다. _177쪽

억제할 수 없는 사랑의 환희 속에서 내가 테레사에게 말했던 것을 그 숱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너는 모르겠지. 그때는 우리의 신혼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 같구나. 입을 다물 수도, 영원히 입을 다물 수도 있었단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밀을 이야기해주면 자신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이야기할 때마다 선물하는 것처럼 보인단다. 그게 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선물이고, 가장 커다란 정절이고,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는 가장 커다란 증거라고 말이야. _330쪽

‘듣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곧 안다는 것이며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귀에는 들려오는 소리를 본능적으로 차단하는 눈꺼풀 같은 것이 없으며, 이제 듣게 될 말을 미리 예측하여 조심할 수도 없다. 언제나 너무 늦어버리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듣는 것으로 우리의 새하얀 마음이 더럽혀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창백해지고 두려움에 질리거나 겁에 질릴 수도 있다.’ _340쪽

목차

새하얀 마음

옮긴이 해설 ‧ 부정과 절망의 반복에서 긍정과 희망의 변주로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작가 소개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 지음

스페인의 저명한 철학자 훌리안 마리아스의 아들로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미국 웰즐리 대학교, 스페인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스페인 문학을 가르쳤다.

특유의 성찰적인 내용과 시적인 문체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1990년대에 들어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한 그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등 32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새하얀 마음』으로 스페인 비평상, 임팩 더블린 국제문학상을 받았으며,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로 남미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로물로 가예고스 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프랑스 페미나 외국문학상, 독일 넬리 작스 문학상, 이탈리아 몬델로 문학상 외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08년에는 스페인 왕립학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매해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장편소설 『늑대의 영토』 『시간의 군주』 『모든 영혼』 『새하얀 마음』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베르타 이슬라』 등과 다수의 단편집, 수필집을 출간했으며, 토머스 하디와 조지프 콘래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로렌스 스턴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김상유 옮김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스페인 알칼라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강사 및 연구원,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책임연구위원(입학사정관)으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이데아의 동굴』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EBS 입에서 톡 스페인어』, 함께 지은 책으로 『서유럽문화기행』 『차이를 넘어 공존으로』 『축제로 이어지는 한국과 유럽』 『한국문학의 외국어 번역』 『한국문학의 해외 수용과 연구 현황』 『세계 속의 한국문학』 『스페인 문화 순례』 등이 있다.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9 +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