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 (반양장)

이청준 전집 10

이청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5년 1월 30일 | ISBN 9788932020907

사양 반양장 · 변형판 138x212 · 394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이청준 문학 속 인간

 

〈이청준 전집〉 10권 중단편집 『이어도』(문학과지성사, 2015)는 1974년 초부터 1976년 봄에 걸쳐 이청준이 발표한 13편의 길고 짧은 단편소설을 싣고 있다. 표제작 「이어도」를 비롯해 「안질주의보」 「뺑소니 사고」 「구두 뒷굽」 등 정체불명의 인물이나 공간에 대해 제3의 인물의 추적하고 탐문해가는 형식과 내용의 작품들이 한데 묶여 있어, 그간 ‘관념소설’ ‘지식인 소설’ 등으로 분류되어온 이청준 소설에 익숙한 우리에게 실종된 타인들, 신원미상인 존재들,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탐색하는 ‘범죄문학’ ‘미스터리 소설’로 해석되는 그의 또 다른 문학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탐정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 특유의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논리적인 해명이나 탁월한 추리보다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 감정이나 윤리, 자연의 파국적인 힘 등이 주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청준 소설의 여전한 특징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 이청준은 범죄를 통해 악이 가시화된 소설적 상황 속 인간에게 과연 절실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날카로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라 돌아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도」, p.96

 

표제작 「이어도」는 1974년 가을 계간지 『문학과지성』에 발표된 작품으로, 제6회 한국일보창작문학상 수상작이다. 정체불명의 전설적인 섬 파랑도에 대한 수색작전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실제 이어도의 공식 명칭은 파랑도(破浪島)로서 지정학적으로 한국, 중국, 일본 3국에 고루 인접해 있는 탓에 치열한 영해 분쟁지이기도 하다. 풍부한 어종과 해저광물의 보고인 데다, 해양 연구·기상 관측·어업 활동 측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한국과 중국의 신경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어도는 대부분 물속에 가라앉아 있어 육안에는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제주도 설화에 따르면, 어부들이 죽으면 옮겨가는 환상의 섬으로 불리며 실제로 다양한 문학작품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한국은 2003년 6월, 이곳에 해양과학기지를 세웠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수색 현장 취재를 위해 동행했던 천남석 기자가 실종되고 이 사건 경위를 조사하기 선우현 중위가 파견된다. 그가 천남석의 상사인 양주호 편집국장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천남석의 개인사를 뒤밟아가게 되고, 소설은 ‘전설의 섬 이어도를 좇던 천남석의 아버지←그 아버지를 찾고 기다리던 어머니←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 각인된 이어도를 찾던 천남석 기자←천남석의 실종 원인을 밝히려는 선우현 중위←이 모든 인물들을 뒤쫓는 독자의 시선’이라는 연쇄추적 구조를 드러낸다.

 

“그는 섬을 보고 나서 그 섬으로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난 그걸 어제도 아마 무척은 황홀한 절망이었으리라 말했을 겝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그의 자살이 불가피했던 이유는 천남석 자신도 그가 그 이어도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던가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다른 사람처럼 섬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번 일에선 그 점이 무엇보다 섭섭한 대목입니다만, 만약에 그가 그런 걸 알고 있었다면 그는 자신이 섬으로 가지 않고도 좀더 그 이어도를 사랑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는 오래도록 섬을 두려워할 줄밖에 몰랐습니다. 그리고 한사코 자기 섬에 외면만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그 섬을 만나서 나서 그 섬을 오래오래 사랑해온 사람들처럼 자신의 섬을 정직하게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 섬의 운명이 원래 그런 것처럼 그렇게밖에 자신의 섬을 사랑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어도」, p.172)

 

수사 과정에서 천남석과 양주호의 폭력적이고 비밀스런 경험을 공유하는 선우현 중위 역시 진실에 대한 열망과 자신의 지적 호기심으로 결국 이어도라는 환상(의 섬)에 갇혀버리고 만다. 이청준은 탐정(선우현 중위)과 범인(천남석 기자)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심문의 대상도 주체도 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흠과 허물, 죄가 없는 완전무결한 인간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작가의 질문에서 이청준 문학의 인간학(人間學)을 엿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섬’을 배경으로 하는 이청준의 작품들로 대표작 『당신들의 천국』과 「이어도」의 신화를 제주도로 옮겨가는 『신화를 삼킨 섬』을 꼽을 수 있다.

 

“나는 소설 「이어도」에서 이어도의 전설을 소개하고 그 섬의 정체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 섬이 어떻게 우리들의 삶을 거꾸로 간섭해왔고, 또 모습 지어왔는가를 보려고 노력했다. 이어도를 빌어서 피안의 그것이 아닌 현실의 삶의 한 참 모습을 해명해보고 싶어 한 것이다. 바라건대 우리에게 더 많은 이어도가 있어줬으면 좋겠다. 그것은 이어도가 실재 아닌 허구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때로 가시적인 사실에서보다는 그 허구 쪽에서 오히려 더 깊은 진실을 만나게 될 때가 있으며, 자유로운 정신의 모험을 꿈꾸는 한 개인의 내면사와 그가 실존하고 있는 현실과의 갈등 속에 우리는 가장 절실한 우리 삶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청준, 이어도의 실재와 허구의 의미, 1976: 이어도가 연극으로 공연될 때 쓴 글로 1998년 작품집에 작가노트로 따로 수록된다.)

 

「안질주의보」(『문학사상』 1974년 6월호)는 이청준 자신의 고향 마을 추억을 투영한, 전라도 출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시 예비군복을 입은 한 사내(김길수)가 함께 예비군훈련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남도 사람을 추적해내는 행적을 그리고 있다. 실제로 작가의 육필 초고상의 표제는 ‘남도 사람’이기도 했다. 흔히 이청준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피할 수 없는 ‘어린 날의 독법’ 여섯 개(죽음, 삶, 보리밭-연-허기, 해변의 육자배기, 여선생과 피난민, 내쫓긴 자의 귀향) 장 가운데 바로 ‘해변의 육자배기’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해변의 육자배기’를 한마디로 풀어내면 ‘한(恨)’일 테고, 이것은 이청준의 〈남도 사람〉 연작의 핵심 정서이기도 하다.

 

「뺑소니 사고」(『한국문학』 1974년 9월호)는 대의를 위한 금식기도 중 타계함으로써 자유를 위한 해방운동의 상징이 된 일파 선생의 숨겨진 정체를 밝혀내려는 배영섭 기자와 역사에 대한 책임을 명분으로 일파의 거짓단식에 침묵할 것을 강요하는 양진욱 부장의 팽팽한 대립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과 관련해 작가가 남긴 아래 글은 지금-여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대편을 이기기 위해 상대편보다 유리한 명분의 고지를 차지하려 드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상대편을 이기기 위하여 자기주장이나 행위의 명분을 아전인수 격으로 자꾸 미화하고 고급화시켜간다. 명분이란 대의에 입각한 것일수록 보다 큰 도덕적 구속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세계’ ‘사람다운 사람’ ‘민주주의’ ‘역사’ 같은 것을 위해서라 함은 명분 중의 일급 명분에 속할 말들이다. 명분이라는 것도 이쯤 되면 한낱 남을 설득하고 굴복시키기 위한 치사한 구실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거창한 명분에 승복을 아니치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괴롭고 불편스런 협박이요 굴레가 아닐 수 없다.”

이청준, 수필 명분에 대하여에서

 

왜 우리는 소설을 읽는 것일까? 이성과 논리에만 기반한 범죄문학의 서사는 한번 수수께끼가 풀리고 나면 더 이상 어떤 ‘잔여물’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우리에게 내밀한 영향을 깊게 미치는 것은 부수적으로 보이는 잉여의 것들, 목적 지향적인 인간이 되어 앞으로 달려가는 데 하등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안질주의보」나 「낮은 목소리」로 같은 작품들에서 묘사되는 온갖 불쾌하고 부정적인 감정이나 사내들의 킬킬거리는 웃음기, 「이어도」에서 선우현 중위가 예정에도, 계획에도 없던 장소에서 마신 술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아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것을 만나기 위해서,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모르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다. 소설의 핵심은 작가가 숨겨두고, 독자가 찾아서 다시 감추는 비밀이 아닐까.

허윤진(문학평론가), 해설 어떤 미스터리(이어도, 이청준 전집 10)에서

 

목차

건방진 신문팔이 7
안질주의보 21
줄 뺨 64
이어도 96
뺑소니 사고 177
낮은 목소리로 214
장 화백의 새 245
마지막 선물 249
구두 뒷굽 256
필수 과외 275
따뜻한 강 296
사랑의 목걸이 310
해공(蟹工)의 질주 321

해설 어떤 미스터리/허윤진 350
자료 텍스트의 변모와 상호 관계/이윤옥 366

작가 소개

이청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후 40여 년간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낮은 데로 임하소서』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 『춤추는 사제』 『이제 우리들의 잔을』 『흰옷』 『축제』 『신화를 삼킨 섬』 『신화의 시대』 등이, 창작집 『별을 보여드립니다』 『소문의 벽』 『가면의 꿈』 『자서전들 쓰십시다』 『살아 있는 늪』 『비화밀교』 『키 작은 자유인』 『서편제』 『꽃 지고 강물 흘러』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등이 있다. 한양대와 순천대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은 한편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산문학상, 21세기문학상, 대산문학상, 인촌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으며, 사후에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2008년 7월, 지병으로 타계하여 고향 장흥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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