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늙지 않는다

김경욱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4년 10월 24일 | ISBN 9788932026664

사양 변형판 134x202 · 314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정교하게 짜인 소설의 성벽 안에서

가장 현실적인 어른아이들과 만나는 경험

스스로 경신하는, 언제나 새로운, 업그레이드형 소설가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순간, 겨우 터득한 소설 쓰는 법을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것. 어김없이 작가 지망생으로 돌아간다는 것. 막막함에도 불구하고, 막막하기 때문에 또다시 쓰게 된다는 것. 그리하여 언제나 첫 소설, 첫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것.

열세번째 책이다. 아니, 열세번째 첫 책이다._「작가의 말」에서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21년간 왕성한 작품 활동을 계속해온 김경욱의 일곱번째 소설집 『소년은 늙지 않는다』가 출간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책을 자신의 “첫 책”이라고 소개한다. 문학평론가 김남혁은 김경욱을 두고 “전문가들이 오른손으로 쌓은 견고한 체계에 왼손 펀치로 결정적인 일격을 가하는” “아마추어”(『작가세계』 2009년 봄호)라고 소개했고, 이번 소설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백지은은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 현란한 표정의 소설들은 그 자체로 그의 거침없는 소설 편력의 증거”라며 작가를 “바람둥이”라고 칭한다. 물론 항상 새로워지면서도 끊임없이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준 부지런한 소설가라는 점도 김경욱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일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다음에 쓸 작품이야말로 내가 글을 쓰게 하는 힘이 된다”라고.

1990년대 김경욱은 하드보일드적인 스타일과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기법을 통해 대표적인 ‘신세대 작가’로 떠올랐다. 등단작 「아웃사이더」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황폐한 내면을 섬세하게 펼쳐 보인 그는 조금 더 앞선 시기 등장한 백민석이나 김영하와는 다르게 건조하고 열정이 거세된 인물을 전면으로 내세워 “냉혹성은 더욱 치열해지고 그런 세계를 대하는 냉담한 태도는 오히려 진지하다”(문학평론가 김병익)는 평을 받았다. 하드보일드적 색채가 점차 농밀하게 무르익은 김경욱의 ‘스타일’은 이 책에 수록된 「염소의 주사위」나 「아홉번째 아이」에서도 그 연결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빙하기의 도래로 눈 덮인 마을에 유기된 채 살아가는 소년의 일상을 담은 「소년은 울지 않는다」나 방사능에 오염된 지구를 버리고 달에 정착한 사람들이 다시 지구를 탐사하러 떠나는 이야기인 「지구공정(地球工程)」 등에서 종말론적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는 점이 새롭게 눈에 띈다.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군상의 면면, 특히 사회적으로든 생태적으로든 합리적 질서가 붕괴된 채 오작동되는 세계 속에서 성장을 멈춰버린 소년들이 보여주는 반전으로 김경욱은 읽는 이에게 또 한 번의 깜짝 놀랄 ‘레프트훅’을 맛보게 할 것이다.

지독하게 고지식하고 병적으로 결벽스런 사람들

2012년 이상문학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던 단편 「스프레이」에는 대표적으로 왜곡된 시각을 가진 채 살아가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백화점 구두 매장의 점원으로 늘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씻고 용변을 보며, 구두를 아홉 켤레나 신어보고 그냥 돌아서는 손님에게도 깍듯하게 인사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남의 택배 상자를 가져오는 실수를 하고 축축해지는 손을 내려다보며 크게 당황한다.

긴장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첫사랑에게 차인 것도 축축해진 손 때문이 분명했다. 손을 처음 잡고 며칠 뒤 돌연 결별 통보를 받았으니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여자의 손을 멀리함으로써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첫사랑에게 차인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랑을 얻는 것보다 실수를 피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가 실수를 저지르면 아버지는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넌 대체 뭐 하는 놈이냐? 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축축한 놈._「스프레이」에서

실연의 원인을 다한증 탓으로 돌리던 그는 택배를 잘못 가져온 이유도 옆집 고양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안정적이던 일상에 침입해 그의 잠을 깨우고 피로하게 한 고양이 울음소리를 탓하는 이 맹목적 단정이 복수를 계획하고, 옆집 여자를 향한 집착과 스토킹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이상야릇한 광기는 낯설지 않다. 백지은이 지적하듯 “그들의 착각과 오인은 현실에 이미 작동 중인 환상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착각과 오인의 원천은 이미 이곳에, 일상의 현실 곳곳에 있다. 그것이 현실의 한복판에서 현실을 지탱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이 왜곡된 시선은 우리의 현실에 익숙하게 존재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입사 이래 한 번도 결근한 적 없으며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사극을 즐기는 사내(「염소의 주사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월남에 갔다가 화랑무공훈장을 받을 뻔했으며 이제는 제시간 맞추려고 양팔에 각각 시계를 두르고 다니는 노인(「아홉번째 아이」), 뇌물을 굳이 돌려주다가 상사에게 밉보여 좌천된 남자(「승강기」) 등 가장 지독하게 선량하고 원칙적인 이들은 자신의 신념에 복무하느라, 아니 자신이 믿는다는 행위를 믿느라 영원히 크지 못하는 소년이 된다.

오로지 인물로, 이야기로만 말하겠다는 신념

내가 세상을 지켜보고 꼼꼼하게 읽어보려고 노력을 할 때, 세상이 나를 때린다. 어떤 각도에서 어떤 강도를 가지고 어떤 펀치로. 그 액션을 내가 받아들이면 나도 리액션을 한다. 그 리액션이 소설로 드러나는 것이다. 우스개로 나는 ‘체험형 작가다. 내가 겪지 않은 것을 쓸 수가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질료가 없는 상상은 불가능하다._김경욱, 「작가 인터뷰」(『작가세계』 2009년 봄호)

김경욱은 자기 스스로를 ‘체험형 작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백형 글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위의 인용된 인터뷰에서 김경욱은 소설에 대해 ‘애초부터 허구적으로 만들어내는 건축적인 장르’였으며 자신은 소설을 ‘ 당대에 대한 인문학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밝혔다. 작가는 정치, 사회, 철학적 주제를 아주 구체적이고도 일상적인 이야기로 형상화한다. 백지은은 김경욱이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방식을 “최종적인 말을 남기지 않는 그 대화의 조직자이자 참여자”라고 표현한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수많은 소년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어간다. 기본적인 존엄조차 보장되지 않는 극악의 환경이나 최소한의 신뢰마저 붕괴된 약육강식의 사회 속에서 이들이 왜 성장을 멈추게 되었는지, 이들을 머무르게 하는 억압은 무엇인지 읽는 이에게 낱낱이 보여주고 이해시킨다. 이 작업은 직접 서술 없이 오로지 인물의 행동과 이야기의 짜임으로만 드러난다. 김경욱의 소설은 항상 변화하지만 이 철두철미한 원칙, 소설가의 신념은 그의 열세번째 ‘첫 책’에서도 여전히 고수되고 있다.


■ 본문에서

길을 감춘 것도 길을 열어준 것도 찍어낸 듯 똑같은 고층 아파트였다. 한 그루 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마천루를 지어 올린 것일까. 아니면 나무를 뽑아낸 구덩이에 콘크리트를 부은 것일까. 아파트 단지들은 하나같이 나무 이름을 달고 있었다. 폐교를 종양처럼 품고 있는 아름다운 이름의 ‘마을’에는 남쪽으로 갈 돈이 없거나 남쪽에 친척이 없는 사람들만 핏기 없는 얼굴로 주저앉아 있었다._「소년은 늙지 않는다」에서

노후 대책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는 가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자식 셋을 세계 유수의 대학에 보내느라 등골이 휘었다. 첫째는 예일대 판문점 캠퍼스, 둘째는 스탠퍼드대 횡성 캠퍼스, 셋째는 베이징대 이천 캠퍼스. 애국하는 마음으로 셋을 낳아 길렀지만 역시 무리였다. 이런저런 빚을 갚고 나니 퇴직금은 달랑 쥐꼬리만큼 남았다. 아내는 여생을 어찌 사느냐고 한탄하더니 해외여행을 위해 부은 곗돈을 타기 두 달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둘째네 부엌에서였고 젖병을 쥔 채였다._「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어르신이 꿈에 나타나기는 처음이었다. 올가미 밧줄 뒤에 서 있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것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무슨 변고라도 생긴 걸까. 유감스럽게도 안은 어르신의 행방을 몰랐다. 장이라면 혹시? 하지만 장의 행방도 몰랐다. 일이 있을 때면 장이 찾아왔다. 매번 안이 김을 찾아간 것처럼. 김은 장의 행방을 알까? 김을 마지막으로 찾아간 것은 6 년 전이었다. 빨갱이의 씨를 말리려 했다는 죄 아닌 죄로 어르신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출감했을 때였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장이 주먹을 불끈 쥐며 울먹였던가. 어르신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말했다. 나를 찾지 마라. 때가 되면 너희를 찾아갈 것이니 녹슬지 않게 잘 갈아둬라._「개의 맛」에서

아직도 나는 잇새로 침을 뱉지 못하고 연단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황청심환을 깨물어 먹어야 한다. 그러니까 나는 문을 걸어 잠근 서재에 처박혀 설교를 준비하다 신경이 곤두서면 잇새로 침 뱉는 연습을 하고, 우황청심환에 의지해 연단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어떤 말로 사람들을 휘어잡을까 고민한다. 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만약에 형이라면._「빅브라더」에서


■ 작가의 말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을 견디기 위해 쓰는지. 그럴 때면 끝없이 반복해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가 떠오른다. 소설 쓰기에 ‘마일리지’는 없다. 매번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열두 권의 책을 냈든, 120권의 책을 냈든 마찬가지. 이것이야말로 소설 쓰기의 매력이 아닐까.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순간, 겨우 터득한 소설 쓰는 법을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것. 어김없이 작가 지망생으로 돌아간다는 것. 막막함에도 불구하고, 막막하기 때문에 또다시 쓰게 된다는 것. 그리하여 언제나 첫 소설, 첫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것.

열세번째 책이다. 아니, 열세번째 ‘첫’ 책이다.

2014년 가을
김경욱

목차

스프레이
개의 맛
빅브라더
소년은 늙지 않는다
인생은 아름다워
승강기
아홉번째 아이
염소의 주사위
지구공정(地球工程)

해설 잘하는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_백지은
작가의 말

작가 소개

김경욱

김경욱은 1971년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아웃사이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소설집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 『베티를 만나러 가다』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장국영이 죽었다고?』 『위험한 독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장편소설 『아크로폴리스』 『모리슨 호텔』 『황금 사과』 『천년의 왕국』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 『소년은 늙지 않는다』를 펴냈다. 한국일보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종합예술학교 협동과정 서사창작과 전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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