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그리께

마해송 전집 5

마해송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4년 9월 2일 | ISBN 9788932026534

사양 변형판 152x212 · 299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한국 아동문학의 개척자 마해송 전집 5권
『앙그리께』 출간!

한국 최초의 창작동화 「바위나리와 아기별」 「어머님의 선물」로
동화의 첫 길을 연 마해송, 그의 문학의 진면목을 조명하다!

마해송 전집 다섯 번째 권인 장편동화 『앙그리께』가 출간되었다. 『앙그리께』는 열 살짜리 여자아이 영애를 통해 한국 전쟁의 이모저모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와 재결합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 전쟁의 실상과 단면들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이어서 전집 6권 『물고기 세상』(장편동화)이 출간될 예정이다.

마해송은 우리나라의 아동문학이 아직 전래동화 개작 수준에 머물러 있던 1920년대 초반, 작가의 개성과 문학성이 강하게 표출된 새로운 동화를 발표하여 이 땅에 창작동화의 첫 길을 열어 놓았다. 이에 문학과지성사는 한국 근현대 아동문학사의 큰 산을 이루고 있는 그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기 위해 2005년 일차로 마해송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에 ‘마해송문학상’을 제정․시행해 오고 있는 것에 이어, 2011년 ‘마해송 전집’ 편집위원회(편집위원: 조대현, 이재복, 김영순, 김지은)를 구성하여 문학사적 가치가 높은 그의 작품들을 총망라하는 전집을 기획하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워낙 다양하여 한마디로 말할 수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언제나 시대와 현실에 맞서 불의와 모순에 저항하는 자세로 창작에 임해 왔다는 것이다. 일제의 침략과 폭정을 고발한 「토끼와 원숭이」가 그렇고, 광복기 강대국들의 횡포와 경제 침탈을 풍자한 「떡배 단배」가 그러하며, 자유당 독재 정권의 몰락을 예고한 「꽃씨와 눈사람」이 그러하다. 이러한 창작 활동을 통해 그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남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주체성을 살려 나갈 때 나라와 사회가 바로 선다는 교훈이었다. 오늘날처럼 세계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시대에 그의 동화가 전하는 교훈은 지금도 되새겨 보아야 할 귀중한 정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_조대현(아동문학가)


■ 『마해송 전집』 편집 체제와 특색
1. 문학과지성사판 『마해송 전집』은 장편동화, 중 ․ 단편동화, 동극, 노래가사, 수필 그리고 작가가 발표했으나 단행본으로 발간되지 않은 작품과 미완성작 등을 모두 엮었다.

2. 『마해송 전집』은 작가 생존 시 마지막으로 출판된 단행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며, 단행본으로 묶이지 않은 작품은 최초 게재지에 수록된 것을 저본으로 삼았다.

3. 전집의 작품은 장편동화의 경우 최초 발표 연대를, 중 ․ 단편동화의 경우 게재지에 처음 발표된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 발표된 순서대로 수록하였으며, 각 작품 말미에 발표 연도와 출처지를 밝혀 놓았다.

4. 제목만 전하고 실체를 알 수 없던 동화와 수필을 발굴하여 지금까지 찾아낼 수 있는 마해송의 모든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독자가 손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집대성했다. 이것은 작가 생전이나 사후에 한 번도 이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의의가 크다.

5. 개별 작품마다 최초 발표 연대와 출처를 밝히고 따로 배경 설명이 필요한 작품에는 각주를 달아 사료적 가치를 높였다.

6. 근대 잡지에 실린 문학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들과 주요한 단행본들은 그 당시 출간된 판본을 사진으로 찍어 참고자료 형태로 작품 말미에 실었다.

7. 전집의 편제는 단편집, 중편집, 장편동화, 수필집 등이다.


■ 『앙그리께』를 통해 본 한국 전쟁-가족 해체와 재결함
마해송은 1955년 잡지 『소년세계』에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연작 형태의 작품을 2회 연재하였다. 같은 해 8월 21일부터 10월 26일까지 『한국일보』에 60회를 연재하였고, 이듬해인 1956년 6월 29일부터 9월 19일까지 『경향신문』에 82회를 연재하여 끝을 맺었다. 이 작품들은 1959년 1월 가톨릭출판사에 『앙그리께』란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한국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을 맺을 때까지 약 3년 1개월간 지속되었는데, 마해송이 『앙그리께』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55년 휴전 협정을 맺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다. 전쟁을 겪은 사람의 체험과 심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때인 만큼 이 작품에는 전쟁의 참상과 단면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전쟁 중에 단란하게 살던 가족이 어떻게 해체되고,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 결합하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는 『앙그리께』는 세 축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전쟁을 형상화하고 있다. 공산군에게 끌려갔다가 돌아온 영애 이야기, 서울 집에 남아 있던 마산 할머니 이야기, 대구로 피난을 떠났던 민애네 가족 이야기를 마해송 자신과 가족의 전쟁 체험에 바탕을 두되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형상화한 것이다.

주인공 영애는 박영식 씨네 식모아이이고, 마산 할머니는 박영식 씨 부인의 양어머니이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얼마 뒤에 가족들은 몸이 불편해 피난길에 오를 수 없는 마산 할머니와 영애를 집에 남겨 두고 피난을 떠난다. 서울 집에 남겨진 영애는 공산군에게 끌려가다 간신히 탈출해 국군 부대에서 지내게 된다. 여러 부대를 거쳐 영애는 서울로 돌아와 헤어졌던 마산 할머니를 비롯해 가족과 상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애는 자기 편하자고 자신을 버리고 떠난 친어머니가 찾아오지만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가족을 선택한다. 이를 통해 마해송은 피를 나누어야 가족이 아니라, 서로 아끼고 돌보아야 비로소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족의 개념을 보여 준다. 또한 마해송은 작품 속에서 반공주의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전생의 참상을 직접 겪은 탓도 있지만, 한국 전쟁 이후 강화되는 남한의 반공주의와도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 작품 속에 드러나는 종교관과 사회의식
마해송은 작품 속에 종교를 가진 인물을 자주 등장시킨다. 『앙그리께』의 주요 인물인 마산 할머니는 불교도였다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천주교도가 된다. 이는 천주교도인 뒷집 할머니가 홀로 된 마산 할머니를 극진히 보살펴 줄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느 땅 어느 나라에서 살건 믿는 사람은 모두 한결같이 한마음으로 똑같은 축문을 올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열게 된다. 종교는 정치와는 다른 각도에서 그 사회 구성원의 열망과 지향점을 보여 준다. 한국 전쟁 이후 피폐한 현실 속에서 종교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마해송은 한국 전쟁 중에 피난도 가지 못하고 집에 남아 있던 힘없는 노인들, 즉 마산 할머니와 뒷집 할머니의 일화를 통해 종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러한 질문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 해설
『앙그리께』는 반공주의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으나 꿈이라는 기제를 통해 북한 공산군이라고 모두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공주의가 강화되는 1950년대에는 이 정도의 발언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꿈속 장면에서 영애는 울고 있는 김 동무에게 “싸우지 말고 집으로 엄마를 찾아가!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잖아!” 하면서 김 동무의 어깨에 매달린다. 그러면서 문득 “누가 보고 영애도 빨갱이로 몰고 죽일까 봐 겁”을 낸다. 꿈속에서조차 ‘빨갱이’로 몰리는 것이 무서운 시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상을 염두에 둘 때, 이른바 마해송의 반공주의는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마해송은 아동문학사에서 이원수, 이주홍과 함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을 피력했던 작가이고, 종교적 입장을 드러냈던 작가로 아동문학의 외연을 크게 확장했다. 마해송의 이러한 관점은 권정생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고 확장된다고 하겠다.
_엄혜숙(아동문학연구자)

목차

영애네 집
6 ․ 25 고생
돌아온 아버지
피난 길
가면 갈수록
낯선 곳 살림
끌려간 영애
마굴 탈출
싸우는 사람들
외로운 할머니
대구의 거리
두 어머니
괴로운 가운데
영애의 봄
흘러 흘러서
자리 잡은 곳
불쌍한 사람
꽃다발 인연
그리운 서울
알 수 없는 일
어머니 아니다
영애의 잠꼬대
끝장
끝에

작가 소개

마해송

1905년 1월 8일 개성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상규(湘圭). 개성학당을 거쳐 경성중앙고보와 보성고보에 다니다가 동맹휴학으로 퇴학당한 뒤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유학생 극단 ‘동우회’를 조직하여 국내 각지를 순회하며 신극 운동을 벌였다. 1920년대 초반부터 아동문학에 힘을 기울여 창작동화 개척에 헌신했는데, 이 무렵에 발표한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한국 최초의 창작동화로 평가받고 있다. 아동문학과 병행하여 수필문학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는데, 특히 그의 자서전적 수필은 진솔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대학 졸업 후 일본의 종합 잡지 『문예춘추』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32년에는 잡지 『모던니혼』을 인수하여 경영인으로 활약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데 일조했다. 광복 직전에 귀국하여 작품 집필에만 전념하면서, 1957년 강소천 등과 단체를 만들어 ‘대한민국어린이헌장’을 기초하는 등 아동 인권회복 운동에 기여했다.
자유문학상, 한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해송동화집』 『토끼와 원숭이』 『떡배 단배』 『모래알 고금』 『앙그리께』 『멍멍 나그네』 『마해송아동문학독본』 등의 동화집과, 『역군은』 『편편상』 『속 편편상』 『전진과 인생』 『사회와 인생』 『요설록』 『아름다운 새벽』 『오후의 좌석』 등의 수필집이 있다. 1966년 11월 6일, 만 61세로 서울에서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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