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하이데서에서 랑시에르까지, 현대철학자들의 미술론

현대의 지성 155

서동욱 엮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4년 6월 10일 | ISBN 9788932026268

사양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532쪽 | 가격 30,000원

책소개

“철학은 미술을 빌려 구체적인 삶의 무늬를 입는다”

현대철학자들이 펼치는 미술에 관한 철학적 탐구의 결정판!

철학하는 사람치고 ‘그림’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이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시대를 막론하고 철학자들이 문학과 회화 등 예술 전반에 기울인 애정은 특별하다. 철학자들은 예술을 자양분 삼아 자신의 세계관을 펼치고 확장시켜왔으며, 미술을 통해 추상적인 철학의 논제들에 색깔을 입히고자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현대철학자들의 미술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여주려는 시도는 미미한 수준에 그쳐왔다.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하이데거에서 랑시에르까지, 현대철학자들의 미술론』(서동욱 엮음)은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탄생한 책이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 하이데거, 사르트르,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 대표적인 현대철학자들의 미술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한 권으로 엮었다. 최초 기획부터 출판에 이르기까지 장장 8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는데, 그동안 책의 내용은 좀더 깊이 그리고 넓게 확장될 수 있었다. 미술에 관한 그리고 미술을 통한 철학적 탐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한 이 책의 유례없는 시도는 일반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독서 경험을 제공할 것은 물론, 학문적으로도 중요하고 귀한 업적이 될 것으로 감히 평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刊)


철학으로 미술 읽기, 미술로 철학하기—세 가지 질문들

■ 미술이란 무엇인가?

현상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것은 바로 전통 미학의 극복이다. 전통적으로 예술은 인간만의 고도의 정신적 활동의 결과라는 생각, 예술이 실재를 모방하는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예술은 미를 추구한다는 통념이 있어왔다. 이와 달리, 하이데거는 회화의 본질을 ‘미’가 아닌 ‘진리’ 개념에서 찾는다. 하이데거에게 회화의 본질은 사물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진리, 특히 도구의 기능에 대한 ‘비은폐성’에 있다.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근원’이 무엇인지, 회화를 통해 드러나는 진리가 무엇인지 반 고흐의 「구두」 그림을 통해 해명한다. 한편 메를로-퐁티는 예술을 사유에 이를 수 있는 의미를 지닌 ‘표현’이나 ‘언어’로 해석한다. 끊임없이 생트 빅투아르 산이라는 모티브를 되새김질하는 세잔에 대한 그의 현상학적 분석을 예술 일반에 적용할 수 있을까? 신인섭 강남대 교수는 메를로-퐁티의 미술론에서 예술이 은밀하고도 뿌리 깊은 지각의지를 통해 어떻게 스스로를 규정하는지를 가늠하고자 했다. 들뢰즈의 철학 역시 재현에 대한 비판을 핵심 과제로 삼는다. 비재현적 층위는 개념의 능력인 지성과는 다른 ‘감성’에서 발견된다. 감성을 기존의 개념에서 해방시킨 그림 속에서 우리는 재현적 개념이 개입하지 않은 ‘수동적 종합’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서동욱 서강대 교수는 바로크 회화와 베이컨의 회화에 관한 들뢰즈의 분석을 통해 이 철학자의 미술 이론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지영래 고려대 교수는 사르트르에게서 미에 대한 성찰이 어떠한 철학적 사유의 바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바탕이 된 초기의 상상력 이론이 예술론에 어떻게 접목되는지, 그리고 자코메티에 관한 구체적인 미술비평 속에서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었는지를 살펴본다.


■ 그렇다면 왜 미술인가?

뉴먼, 몬드리안, 칸딘스키, 폴록, 로스코 등의 현대 화가들은 회화의 본질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에 도전하고 저항한다. 사진과 영화 기술의 등장은 더 이상 회화의 가치나 본질이 3차원의 환영을 만들어내거나 대상을 재현하는 데 있을 수 없음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회화는 자신의 운명이 다했음을 고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만 할 것인가? 추상표현주의는 회화의 본래적 가치를 복원시킴으로써 회화에 새로운 운명을 부여한다. 이제 캔버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대상이자 작품이 되며 작품의 의미는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 독자의 해석에 맡겨지는 추세이다. 현대철학자들은 이러한 예술 영역의 새로운 실험과 변화에서 끊임없이 자극을 받으면서 현대철학의 과제를 발견하고 응답하는 중이다. 레비나스는 예술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은 대상을 그 대상의 이미지로 대체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는 특히 ‘오블리테라시옹’이라고 지칭되는 소스노의 조각 기법에 관해 설명하면서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전개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사유를 위한 풍부한 영감을 얻고 있다. 리쾨르는 회화가 ‘실재에 이르는 또 하나의 길’이라고 본다. 일상적인 사물들에서 볼 수 있는 색과 형태를 굳이 그림의 방식으로 보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림을 뭔가 다른 것으로 또는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미셸 앙리는 회화가 제기하는 이러한 미학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에 주목한 철학자다. 앙리는 칸딘스키 회화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내면의 정신적 실재에 근거한 정서적 울림의 표현으로 간주하고, 칸딘스키의 추상화 작업에서 비가시적인 실재를 탈은폐하는 현상학적 환원의 탁월한 범례를 발견한다. 마리옹은 외관에 대한 묘사를 배제하고 평면을 색으로 가득 채우는 로스코의 작품 세계를 통해 ‘얼굴’ 혹은 ‘우상’에 관한 사유를 발전시키는데, 레비나스가 제시하는 ‘타인의 얼굴’이 자신이 설명하는 ‘아이콘’에 부합한다고 본다. 로스코의 그림은 인간적 가치를 드러내는 아이콘의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마리옹은 해석하고 있으며, 시선의 문제를 중심으로 미술작품의 심연을 이해하고자 한다. 라캉 역시 ‘정신분석 세미나’에서 그림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는데, 그림이 시각에 담긴 몰인식의 함정 속에서 진리를 일깨우는 훌륭한 안내자라 보았기 때문이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의 눈은 세계에 리비도를 투자하는 구멍이며, 그림이란 인간이 타자의 욕망에 직면하기 위해 고안해낸 주체적 장치이다. 라캉의 회화론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 철학은 미술과 어떻게 대면하는가?

철학과 회화가 마주칠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 봐야 하는데 보지 못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것을 볼 수 있는가? 도대체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해체의 철학자 데리다는 철학의 타자로서 항상 그리고 이미 해체의 작업을 실천해온 문학과 예술의 남다른 위상을 인식하고 있다. 한 점의 그림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회화의 진리인가 그 기원인가. 데리다는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면서 진리가 자명하고 표상 가능한 어떤 것으로 군림해온 역사를 비판한다. 우리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론적 상황은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삶을 언제나 타인의 것으로, 실험실의 대상으로 바라볼 줄만 알았지 자기 안에서 느끼고 체험할 줄 모른다.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은 타인의 삶을 봄으로써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삶을 느낄 때이다. 온 몸으로 느끼는 고통과 기쁨의 순간에 나는 나의 살아 있음을 자각한다. 그런데 나의 이 주관적인 고통과 기쁨은 과연 타인에게 전달되고 소통되며 공유될 수 있을까? 그 공명의 가능성이 바로 가시적인 것을 비가시화하면서 동시에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예술의 역량에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왜 현대철학자들이 그토록 예술에 천착했는지 수긍할 수 있다. 철학의 추상성에 삶의 구체적인 국면들을 개입시켜 색을 입히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현상학과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현대철학의 지평을 깊이 이해하고 넓게 사유하는 또 하나의 길을 갖게 될 것이다.


현대철학자들의 미술 이론—묵직하고 깊이 있는 사유의 아카이브 속으로

이 책에는 들뢰즈, 라캉, 푸코, 데리다, 랑시에르 등 13명의 주요 현대철학자와 베이컨, 홀바인, 마네, 아다미, 로댕 등 그와 짝을 맺은 미술가가 등장한다. 하이데거의 진리와 유희 공간, 사르트르의 절대와 실존,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리오타르의 숭고, 레비나스의 얼굴과 우상, 데리다의 파레르곤과 시뮬라크르, 마리옹의 아이콘 등 철학자들이 주창한 개념들과 학적 시각들이 미술이라는 창을 통해 엄밀하고 섬세하게 드러난다. 엮은이인 서동욱 서강대 교수에 따르면, 이 책은 최고의 시각 체험인 미술과 최고의 사유 체험인 철학이 조우하여 세상의 저 비밀에 다가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재를 떠도는 투명한 신 같은 철학이 미술의 몸을 빌려 놀라운 색채와 형태를 드러내는지, 그리고 어떻게 미술이 흙과 물 같은 자신의 질료 속에 숨겨둔 드높은 이념을 철학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모두 2부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현상학과 실존주의로 묶일 수 있는 하이데거, 사르트르, 레비나스, 메를로-퐁티, 리쾨르, 미셸 앙리, 마리옹이, 2부는 구조주의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상가로 묶이는 라캉, 리오타르, 들뢰즈, 푸코, 데리다, 랑시에르가 다루어진다. 정신분석가 맹정현, 푸코 전공자 허경, 칸트 미학을 연구한 김상현 등 굴지의 국내 연구자 12명이 농밀하고 압축된 철학자의 사유 세계를 유감없이 펼쳐 보여준다. 각 장의 도입부에는 해당 주제를 미리 탐색할 수 있도록 압축적인 요약문을 붙였고, 각 장에서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40여 컷의 작품 도판을 수록했다. 부록에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철학자와 미술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실어 독자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현대철학자들의 미술론을 집대성한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를 통해 독자들은 겉핥기식의 교양미술론이 아닌, 보다 묵직하고 깊이 있는 사유의 아카이브를 가지게 될 것이며 진정한 교양의 전범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으로

일견 예술작품이 ‘진리’에 관계한다는 주장은 마치 회화의 본질이 화가(주체)에 의한 예술작품의 사실적 재현에 있다고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반 고흐의 「구두」가 진리와 관계한다는 것은 천재적인 화가 반 고흐가 눈앞에 실재하는 구두를 있는 그대로 화폭에 재현했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지만 [……] 하이데거가 회화론에서 말하는 진리는 전통 형이상학적 진리의 경우처럼 사물과 지성의 ‘일치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1장 「하이데거의 미술론(반 고흐)」, 19쪽)

사르트르는 자신이 소설이나 철학 작품 속에서 구현하려고 애쓰고 있던 기획, 즉 인간의 실존적 현실을 분해될 수 없는 역동적인 단일성 속에서 재현하려는 현상학적 시도를 자코메티의 작품 활동 속에서 발견하고는 깊은 감명을 받는다. 사르트르가 쓴 짧은 두 자코메티론, 「절대의 추구」와 「자코메티의 회화」는 이 예술가의 작품 이해에 본질적인 해석의 열쇠를 제공해주는 동시에, 사르트르의 철학과 미학적 성찰의 핵심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2장 「사르트르의 미술론(자코메티)」, 57쪽)

유대인이자 기독교화한 유럽의 일원인 레비나스의 미술론에서 이미지는 침묵의 우상으로, 죽은 미래 외에는 갖지 못하는 지속으로 나타난다. 또한 반대로 그것은 존재 저편의 무한으로, 무한한 미래로, 타자와의 관계로 이끈다. 과연 이 모순은 해결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 오히려 저 모순은 이미지 자체의 본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문화들 자체 역시 저 모순을 숨김없이 반영하고, 나아가 저 모순 위에 축조되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저 모순이 바로 비평을 포함하여 우리가 예술을 체험하는 모든 방식 자체의 추동력이자 한계를 이룬다. (3장 「레비나스의 미술론(소스노)」, 108~109쪽)

메를로-퐁티에게 감각과 예술은 존재와의 간극이라 할 수 있는 모종의 차원에 함께 속하는데, 이러한 간극은 다름 아니라 단절과 재개를 함축하고 있는 인간의 차원, 바로 그것이다. 그에게 작품이란 인위적 구조물이 아니라 ‘표현’이며, 모든 탐미주의를 추방하고 표상을 위한 그 어떤 간청도 배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그림이란 무엇보다 “자기-구상적”이라 하겠다. (4장 「메를로-퐁티의 미술론(세잔)」, 136~37쪽)

현대에 들어서 더 이상 그림을 “자연의 거울”로 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자연의 풍경을 두고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사람들의 평가나 인상은 그동안 그림이 얼마나 자연을 담아내는 중요한 통로이자 표현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그림이 자연의 거울이 아니라는 점을 십분 인정한다 해도, 여전히 그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에 관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답이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오히려 리쾨르는 더 이상 그림이 구상적이지 않게 된 20세기 들어서야 그동안 아주 평면적 차원에서만 수용되어온 “미메시스”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고 말한다. (5장 「리쾨르의 미술론(렘브란트)」, 159쪽)

철학에서든 회화에서든 ‘추상抽象’은 기본적으로 뺄셈이다. 추상이라는 것은 구체적이고 복잡한 실체의 부분들을 하나둘씩 빼면서 그 실체가 투명해지도록, 그래서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단순한 관념만을 남기는 것이다. [……] 앙리는 칸딘스키의 작품과 특히 그의 이론적인 텍스트들에서 회화와 예술의 본질, 나아가 삶과 존재의 근원적인 차원이 탁월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본다. 칸딘스키가 제시한 추상의 원리가 모든 회화와 예술 활동의 가능 조건뿐만 아니라 삶과 우주의 존재론적 구조를 해명하는 열쇠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 앙리는 칸딘스키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구체적으로 예화하고, 칸딘스키는 앙리를 통해서 새롭게 부활한다. (6장 「미셸 앙리의 미술론(칸딘스키)」, 174~75쪽)

우리의 시선으로 포착이 불가능하게끔 우리의 시선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행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아이콘의 역설이다. 이러한 불가능성으로의 길, 외관에 대한 거부를 통해 비로소 드러나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의 길, 이 길을 내기 위해 로스코는 일체의 외관과 재현을 거부했다. 더 나아가 1950년대 이후로 가면, 색면추상 기법에 입각한 로스코의 작품들은 이름을 거부한, 즉 제목이 없는—흔히 “무제”라고 불리는—작품이 주를 이룬다. 이것은 우리의 시선을 어떤 개념이나 표상에 묶어두지 않는 효과를 지닌다. [……] 마리옹은 “이름의 결여가 시선을 열어주며 아이콘을 나타나게 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7장 「마리옹의 미술론(로스코)」, 241쪽)

하지만 그림(「대사들」)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두 인물 사이에 허공에 떠 있는 듯이 보이는 요상한 물체가 있다. 그림의 일부라기보다는 그림 위를 낮게 날고 있는 비행체처럼 보이기도 하고, 온전한 그림 위에 무늬가 있는 셀로판지를 덧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일까? 만약 이 그림이 걸린 방을 빠져나가면서 뒤돌아서 그림을 삐딱하게 본다면, 우리는 그것의 원래 모양이 해골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냥 해골이 아니라 원근법을 뒤집어서 그려놓은 해골이다. 그렇다면 이 해골의 뒤틀린 형태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8장 「라캉의 미술론(홀바인)」, 261~62쪽)

리오타르는 칸트의 숭고 분석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의 존재와 그것의 형식 파괴적인 힘(반목적성)에 주목하여, 숭고를 목표로 삼는 현대 아방가르드 예술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의 존재를 암시해야 하며 표현 형식으로서의 예술 자신을 부단히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칸트 미학에서 미의 감정은 이미지 능력과 개념 능력 간의 자유로운 합치로부터 나오는 쾌인 반면, 숭고의 감정은 보다 비규정적인 것으로서 불쾌와 혼합된 쾌이며 불쾌로부터 나오는 기쁨이다. 또한 그것은 단적으로 큰 대상, 모든 절대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감성적 직관을 거치지 않고 오직 이성에 의해 절대적 총체성이라는 이념으로서만 사유될 수 있는 대상이다. (9장 「리오타르의 미술론(뉴먼)」, 313쪽)

이 그림은 ‘새’라는 동일성을 지닌 개념을 전제하고서 이 개념과의 유사성에 입각해 그려진 것이 아니다. 그려진 것은 새가 아니라 걸려 있는 고기이고, 우산이며, 그 아래서 웃고 있는 입이다. 그림을 구성하는 이 요소들은 새와는 전혀 관계없을 뿐 아니라, 각각의 요소들 사이에도 아무런 유기적 관계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형상들이 종합된 결과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 새와 유사한 미학적 이미지가 효과로서 생산되는 것이다. 들뢰즈가 즐기는 표현을 빌려 말하면, ‘유사한 것들만이 서로 다르다’가 아니라 ‘서로 다른 것(관계없는 것)만이 서로 유사하다.’ (10장 「들뢰즈의 미술론(베이컨)」, 348쪽)

「올랭피아」의 무엇이 그렇게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을까? 이 ‘파렴치한’ 스캔들은 다름 아닌 마네가 등장인물을 비추는 빛을 이용하는 방식에서 온 것이다. [……] 올랭피아의 벌거벗음과 가시성에 책임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시선이다. 「올랭피아」에서 화폭을 바라보는 행위와 화폭에 빛을 비추는 행위는 같은 일이다. 이런 ‘벌거벗음과 빛의 놀이’가 19세기 말 파리의 부르주아들을 경악케 했던 것이다. 「올랭피아」는 어떻게 하나의 미학적 변형이 도덕적 스캔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11장 「푸코의 미술론(마네)」, 374~76쪽)

파레르곤의 작용을 통해 회화가 진리의 죽음이나 부재의 기록일 수 있다는 데리다의 생각은 아다미와 티튀스-카르멜의 회화를 다루는 부분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데리다는 헤겔적 진리관을 해체한 자신의 책 『조종』에 담긴 개념들을 회화로 표현한 아다미의 그림들을 의도적으로 『회화의 진리』라는 책에 덧붙여진 부록인 양 취급하고, 티튀스-카르멜의 성냥갑 모양의 관 그림 연작에는 카르투슈라는 명칭을 부여한다. 한마디로 말해, 데리다는 두 화가의 그림이 실재하는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는 몸”의 부재 혹은 결핍을 기록한다고 주장하는 쪽에 가깝다. (12장 「데리다의 미술론(아다미)」, 409~10쪽)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다른 실천들 및 존재 방식과 구별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랑시에르에 따르면, 어떤 것이 예술로서 인정되고 식별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예술로서 경험하고 규정하는 특정한 관점 혹은 사유가 있어야 한다. 어떤 그림이 존재한다고 해서 곧바로 예술로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예술로 바라보는 시각 혹은 경험이 있어야 한다. 예술을 예술로서 인정하고 식별하는 특정한 사유 방식, 이것을 랑시에르는 ‘예술 체제’라고 부른다. (13장 「랑시에르의 미술론(로댕)」, 448~49쪽)

목차

프롤로그

제1부 실존주의와 현상학의 미술 체험
1장 하이데거의 미술론(반 고흐)—반 고흐의 「구두」 그림과 미학적 진리 개념 ___하피터
2장 사르트르의 미술론(자코메티)—절대에 대한 탐구 ___지영래
3장 레비나스의 미술론(소스노)—우상 또는 타인의 얼굴 ___서동욱
4장 메를로-퐁티의 미술론(세잔)—세잔의 번뇌와 메를로-퐁티의 현상학 ___신인섭
5장 리쾨르의 미술론(렘브란트)—실재에 대한 또 다른 탐구 ___윤성우
6장 미셸 앙리의 미술론(칸딘스키)—추상, 비가시적인 삶의 파토스 ___김재희
7장 마리옹의 미술론(로스코)—시선의 역설과 신비 ___김동규

제2부 미술의 포스트모던적 모험
8장 라캉의 미술론(홀바인)—새들의 사유와 제욱시스의 욕망 ___맹정현
9장 리오타르의 미술론(뉴먼)—숭고와 전체주의에 맞선 대항 ___김상현
10장 들뢰즈의 미술론(베이컨)—감성의 수동적 종합으로서 회화 ___서동욱
11장 푸코의 미술론(마네)—현대 회화의 물질적 조건을 선취한 화가 ___허경
12장 데리다의 미술론(아다미)—파레르곤과 시뮬라크르 ___강우성
13장 랑시에르의 미술론(로댕)—표면의 탐험가 오귀스트 로댕 ___박기순

참고문헌
도판 목록
이 책에 나오는 철학자 소개
이 책에 나오는 미술가 소개
필자 소개
찾아보기(개념)
찾아보기(인명)

작가 소개

서동욱 엮음

벨기에 루뱅 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5 년 『세계의 문학』과 『상상』 봄호에 각각 시와 평론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래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집으로 『우주전쟁 중에 첫사랑』, 『랭보가 시쓰기를 그만둔 날』이 있으며, 저서로 『익명의 밤』,『일상의 모험―태어나 먹고 자고 말하고 연애하며, 죽는 것들의 구원』, 『들뢰즈의 철학―사상과 그 원천』, 『차이와 타자―현대철학과 비표상적 사유의 모험』 등이 있다.

"서동욱"의 다른 책들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6 +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