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

문학과지성 시인선 447

성윤석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4년 3월 24일 | ISBN 9788932026145

사양 변형판 128x205 · 447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버린다”

퍼덕이는 힘이 서러워 의식을 지워버려야 했던 절망의 체험들
부둣가 사람들의 육성과 비릿한 갯내 녹아든 삶의 기록

또 하나의 곡절을 시로 승화시키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시어에 삶의 신산스런 목소리와 날것의 냄새를 덧입히는 시인 성윤석이 어시장 ‘일용잡부’가 되어 돌아왔다. 이 시집에는 시인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부둣가를 누비며 틈틈이 쓴 시 74편이 수록되어 있다. 극장을 드나들던 소년(『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문학과지성사, 1996)은 묘지 관리인(『공중 묘지』, 민음사, 2007)을 거쳐 지금은 남쪽의 한 바닷가 도시(마산)에 정착해 있다. 스스로를 ‘잡부’라 칭하는 시인은 어시장에서 냉동 생선상자를 배달하거나 냉동생선을 손질하는 일을 하고 있다. 시인은 그렇게 한동안 시를 잊고 지내다가 그곳의 상인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던 중 모처럼 시심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시집에는 멍게를 비롯해 문어, 상어, 해월(海月, 해파리), 사람이 된 생선(임연수), 빨간고기(적어), 호루래기(오징어의 새끼) 등 많은 수산생물들이 주요한 시재로 등장하는가 하면 요구, 통발, 유자망, 딸딸이 등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어로 도구들도 자주 보인다. 문학평론가 오형엽은 이를 두고 성윤석이 자연 생태의 한 극단을 통해 현재와 과거의 체험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결국 성윤석 시의 비밀은 ‘체험의 강도’와 ‘실험의 밀도’가 강력하고 집요한 ‘기억’의 힘에 의해 합체되면서 두 몸이 아니라 한몸을 이루는 데 있을 것이다.
―오형엽 해설, 「체험의 강도와 실험의 밀도」 부분


어시장 ‘일용잡부’가 채록한 서러운 물고기들의 어보(魚譜)
이번 시집에서의 성윤석은 약 200년 전 진해(마산 진동의 옛 지명)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당정 김려가 우리나라 최초의 어족 도감 격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쓰던 모습과 닮았다. 시인은 스스로를 부둣가에 유폐하고 수면 위로 끌려나와 퍼덕이는 생선처럼 불가능한 것을 갈구하지만,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그 서러운 힘은 삶의 비릿함만 더할 뿐이다. 희망은 너무 멀리 있고 슬픔만이 번민의 몫으로 돌아오는 상실감에도 불구하고 가 닿지 못할 빛은 감당하기 어려운 밝기로 시인을 향하고 있다. 달이 너무 환해 무서운 월명기(月明期)에 심연으로 깊이 숨어드는 바다짐승들처럼 시인은 세계의 명징함을 피해 끊임없이 침잠하는 중이다. 그렇게 시인은 오늘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괴로워 의도적으로 의식을 지워내고 있다. 독자는 침잠의 그 어느 지점에서 시인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던 격렬한 투쟁이 일순 정지하고 시의 미학이 절정으로 치닫는 것을 보게 된다.

멍게는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버린다. 어물전에선
머리 따윈 필요 없어. 중도매인 박 씨는 견습인 내 안경을 가리키고
나는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버리는 멍게의 입수공과 출수공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지난 일이여. 나를 가만두지 말길. 거대한 입들이여.
허나 지금은 조용하길. 일몰인 지금은
좌판에 앉아 멍게를 파는 여자가 고무장갑을 벗고 저녁노을을
손바닥에 가만히 받아보는 시간
―「멍게」 전문


 

쓸쓸한 물살을 함께 넘는 동류의식
시인은 이 시집에 실린 시 모두가 그날그날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부둣가 사람들의 일상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집을 읽다 보면 사연 있는 인물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어깨에 용 문신을 한 짐꾼은 아내가 죽은 날 자꾸 엉뚱한 가게에 생선 궤짝을 부려놓고(「바다 악장」), 선창의 다른 사내는 매일같이 “한 번 만나고 안 만나주는 여자를 찾아”간다(「저 서평」). 그런가 하면 세상에 미안한 일이 많아서 원양선을 타러 가버린 사람도 있다. 그런데 시인은 되려 그에게 미안해한다. 같이 가겠다고 해놓고 안 갔기 때문이다. 서로의 곡진한 삶을 진솔하게 공유하는 공동체적인 세계에서 시인은 그렇게 끊임없이 공감하고 아파한다. 작은 해안도시의 한 어시장에서 유토피아가 엿보이는 것은 이 끈끈한 동류의식 때문일 것이다.

어물전 간판을 어부가 된 고양이,라 써놓은 가게가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그 근처로 배달 다닐 때마다 이 세상을 후려쳐 파출소 간 게 미안해서, 더 이상 술 얻어먹기 미안해서, 헤어진 여자 곁에 사는 게 미안해서, 반월동 마산 바다 반달 하나를 팔뚝에 문신하고 원양선 타러 간 사내가 생각났다. 나도 그 사내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다. 같이 간다고 해놓고 안 갔다.

―「어부가 된 고양이」 전문


 

선각자를 찾아 떠나는 오토바이
성윤석은 아직 미처 깨닫지 못한 구도자이자 이미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전하는 메신저이길 자처하고 있다. 수록작 「성과 속」의 부제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뜻의 여시아문(如是我聞)임이 그 사실을 방증한다. 석가모니의 수제자 아난다는 스승의 말을 전할 때 반드시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고 먼저 말했다. 그러므로 시 안에서 “맨날 고함이고 싸우는 것 같제, 아이다 서로 좋아서 그러는 기다”라고 말하는 ‘장모님’은 번뇌에 눈이 가려 앞을 못 보는 우리에게 손 내미는 선각자의 현신이다. 그리고 시인은 계속해서 그들을 만나야 한다. 그가 다시 배달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나 바다에 다다르면,
천막 포차 꺼진 백열구에 내 달을 넣어
밤바다 물결을 타고 넘고 싶었다네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헤드셋을 건 채
바다로 질주한 생도 있었다지 아마
나 어두워진 채, 떠나온 달방을 보고 있다네
밤바다 물결 밤바다 물결
―「달방」 부분


■ 시인의 말
고단하지만, 다시 홀로 언덕에서 우아해질
목련을 기다린다.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 시인의 산문
시모토아 엑시구아Cymothoa Exigua라는 기생충이 있다. 생선의 혀에 기생한다. 암놈은 주로 생선 혀의 윗부분에 붙어 있고 수놈은 아래에 있다. 이 기생충은 처음에 생선의 혀에 달라붙어 혈류를 차단한 뒤 혀를 갉아 먹다가, 생선의 혀인 척 그 혀를 대신하다가 결국에는 혀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생선의 의지대로 움직인다고 한다. 물론 이 기생충이 어디서 왔는지 생선은 알 리가 없다. 시도 그런 것 아닐까. 이 세상은 알 리가 없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손바닥을 내보였으나 / 고등어 / 유월 / 멍게 / 바다 악장 / 바다 포차 / 상어 / 책의 장례식 / 저 서평 / 해삼 / 달방 / 장어 / 해파리 / 오징어 / 文魚

2부
바다로 출근 / 아아 이런 / 아귀의 간 / 고래는커녕, / 목련 / 적어 / 선창 / 임연수 / 상어 2 / 공원 / 장어 2 / 고등어 2 / 고요 / 바다 밑 부러진 기타 / 시장과 개 / 밤의 산책

3부
비 / 서서 하는 모든 일들 / 해무 / 바람의 문장 / 길고양이처럼 / 설탕 / 가을 / 사람 / 체념 / 명태 / 작업가자미 / 갈치 / 멸치 / 바다에서 연습하기 / 아귀 / 우해에서 『우해이어보』를 읽다 / 바다傳

4부
비 2 / 봄눈 / 편지 / 내 편지엔 도달할 주소가 없어요 / 요구 / 시간들 / 중독 / 게 / 어부가 된 고양이 / 산복도로들 / 바다傳 2 / 사소한 일기 / 성과 속 / 당신의 입구 / 알면 뭐하겠니 / 도마 소리 / 꽃과 생선

5부
혀 / 퍼스트 펭귄 / 사랑 / 고통 / 딸딸이라 불리우는 이것 / 저녁 / 닻을 내린 배 / 숙박 / 죽음

해설 | 체험의 강도와 실험의 밀도・오형엽

작가 소개

성윤석 지음

시인 성윤석은 1990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공중 묘지』 『멍게』 『밤의 화학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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