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4년 3월 20일 | ISBN 9788932026121

사양 · 420쪽 | 가격 13,000원

분야 장편소설

책소개

제 귀는 아주 깊은 우물입니다
당신의 비밀을 말해주세요

“여기가 구동치 사무실이 맞습니까?
이건 위험한 일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비밀을 묻어버리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다들 저를 믿죠.
알겠습니다. 구 탐정님을 믿겠습니다. 계약합시다.”

계보나 원천이 없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자극해온 소설가 김중혁이 세 권의 소설집과 세 권의 산문집에 이어 세번째 장편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를 선보인다. 등단 15년의 구력과 김유정 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효석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 그리고 인기 팟캐스트에서 들려주는 재치 있는 입담 등 다양한 재능에서 비롯된 그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많지만 김중혁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김중혁 스스로가 그러한 화려한 수식어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다만 즐기는 사람으로서 즐겁게 소설을 쓰며 우리에게 즐거운 소설을 가져다준다. 이번 소설은 ‘딜리터deleter’ 혹은 ‘딜리팅’에 대한 이야기로 자신의 비밀을 탐정에게 의뢰해 세상에서 지워지게 하는 역시나 독특하고 재밌는 소재이다. 깊게 땅을 판 다음 음식물 쓰레기와 동물의 시체와 곰팡이와 사람의 땀과 녹슨 기계를 한데 묻고 50년 동안 숙성시키면 날 법한 냄새가 나는 비밀이 가득한 악어빌딩 4층에 자리한 구동치 탐정 사무실의 한적한 오후. 1920년대에 녹음된 이탈리어 테너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당신은 그토록 무미건조한 월요일에 나를 찾아왔군요.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는 사람이여,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넙니다. 우리의 사랑만이 덧없는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고 길어요(p. 11).” 이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람의 발자취를, 흔적을 지워주는 탐정 구동치와 계약한 사람은 죽은 뒤에 기억되고 싶은 부분만 남기고 떠날 수 있다. 힘 있는 재력가와 그의 추악한 비밀을 차지한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거래. 그리고 그들로부터 비밀을 지워달라는 딜리팅 요청을 받은 구동치 탐정의 수사가 맞물려 있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p. 328).” 인간 누구나의 마음속에 숨겨진 이기적인 욕망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재미가 더해진 이 이야기는 작가 김중혁에게 또 한 번의 새로운 수식어를 선사할 것이며,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독서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김중혁만이 상상할 수 있고, 김중혁보다 더 잘 쓸 수는 없는 이야기
― 김중혁 소설의 소재와 주제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을 꺼내 보면서 그 사람들의 삶과 함께했다.
고민을 함께했고, 비밀을 공유했다.”

어느 포털사이트에 ‘오늘의 사진’으로 선정되기도 한, 한여름 오후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골목길에 나와 앉아 있는 한적하고 평범하며 무탈한 풍경의 악어동네, 그 동네에서도 골목과 산길이 만나는 삼거리 모서리에 자리한 악어빌딩. 그곳에서 셜록도 코난도 아닌 탐정 구동치는 사람의 발자취와 흔적을 지우는 일을 한다. 이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그 자리에 남을 하드디스크며 일기장, 부치지 못한 편지 같은 것을 ‘딜리팅’해주는 게 이 탐정의 업무이다. 이러한 독특한 소재와 설정은 김중혁 소설의 특장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소설에서 소재와 주제란 어떤 것일까. 소재는 소품이고 주제는 의식인가. 김중혁은 소재가 곧 주제임을 증명하는 소설가이다. 사진작가, 측량원, 타이피스트, 공연 기획자…… 무엇이어도 상관없는 게 아니라 꼭 그것이어만 하는 “실물”을 다루는 작가의 이 구체적 상상은 보통의 사람이 아닌 특별한 개인 한 사람에 대한 통찰이고 깊은 관심이며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중혁의 이러한 상상은 우리 일상과 밀착되어 있고 어떤 낯선 직업과 외모와 배경을 가졌다고 해도 허황되거나 장난스럽지가 않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 구동치 역시 냉정하고 냉철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 가까이에 살고 있는 듯한 친근한 인물로 다가오는 것도 그 이유이다.
이러한 밀착은 탐정의 삶을 마치 어느 소설가(혹은 작가 김중혁)의 삶과 닮아 있다고 느끼게 하는데 이것은 다만 이 소설에 실제로 자신의 습작을 없애기 위해 딜리팅을 요청하는 소설가와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하는 것을 소설 속에서 이뤄내는 형사가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구동치는 이 세상은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모르는 세계로 나뉘어 있어서 누군가가 없어지기 바라는 물건을 옮겨 놓는 것만으로 딜리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비밀은 구동치 자신만이 알고 함께하며 공유한다. 농담인 듯 부려놓는 재미있는 소재가 어제나 공감과 위로의 순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김중혁의 소설은 보아넘기기보다는 하나의 경험을 나누는 일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재는 김중혁만이 상상할 수 있고, 김중혁보다 더 잘 쓸 수는 없는 이야기이다.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유쾌하고 쿨한 시선, 그 속에 따뜻함과 존엄이 있다
―그것이 김중혁이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걸어 나가는 사람들이다.”

 

타인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탐정 구동치의 삶을 억누르게 되자 구동치는 점점 자신의 일이 버겁게 느껴진다. 그런 구동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그가 사랑하는 악어동네이다. 구동치는 악취가 나는 악어빌딩도, 다닥다닥 붙은 집들도, 길과 길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골목도 좋아한다. 골목 속에 들어가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가파른 골목과 산길로 연결되어 악어가죽의 무늬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살며 새벽이 되면 몰려나와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골목을 걸어 내려와서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레밍쥐들 같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같지만 이러한 일상의 숭고와 대면하며 구동치는 그 사람들 하나하나를 존경했다. 김중혁은 서늘하고 음습하며 냄새나는 기운을 묘사하며 우리를 악어동네로 인도하지만 막상 그 동네에 들어가 보면 구동치와 같이 친근하고 편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독특하고 개별적인 사람 누구라도 하루라는 일상의 숭고와 대면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 자신이 충분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누구보다 이런 일상을 사는 사람을 위로하고 싶었고 웃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구동치가 김인천 형사가 쓴 소설 「역지사지 살인사건」을 읽은 뒤 평가하는 장면은 인상적인데,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소설을 관통하는 뜨거운 심장이 느껴졌다”가 그것이다. 작가는 그런 소설을 꿈꾸지 않았을까. 어떤 관념에 이르기보다는 사람들 속에 숨은 슬픔의 틈을 이해하는 작가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따뜻하게 느껴진다.


본문 중에서
이영민은 사소한 디테일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구동치는 생각했다. 구동치 역시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가 고려하는 디테일에는 늘 이유가 있어야 했다. 디테일은 단서이거나 은유이거나 상징이어야 했다. 이영민의 이야기 속에 있는 디테일은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이야기를 지루하게 만들 목적이라면 의미 있는 디테일이겠지만…… 구동치는 팔짱을 끼었다. 생략해도 될 만한 이야기가 많았다.
p. 17

구동치는 이영민의 눈을 보았다. 깊은 곳에 불안이 있었다. 그 불안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구동치는 상관하지 않았다. 눈 속의 불안은 아직 껍질을 깨고 나오기 전의 새와 같다. 불안은 자라서 공포가 되기도 하고, 폭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구동치는 사람들의 불안을 사랑했다. 불안하지 않으면 아무도 탐정을 찾지 않을 것이다. 구동치는 사람들의 불안에 먹이를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p. 52

눈이 내리면 모든 눈송이들을 잡아채서 녹여버리고, 날씨가 흐려지기라도 하면 대형 강풍기로 먹구름을 모두 몰아낼 기세였다. 구동치는 그런 모습이 싫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런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되고 정확하게 통제되는 세상, 물건들은 있어야 할 곳에 있고 꼭 있어야 할 사람들만 있는 세상. 구동치는 그런 세상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완벽한 세상이라면 구동치가 해야 할 일은 없어지고 말 것이었다.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 조각들이 마치 노블 클럽의 조작에 의해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녹색 코트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p. 69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 우리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확장해나가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를 줄여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모르는 세계는 늘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게 마련이다. 구동치는 굳이 물건을 없애는 것보다는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구동치는 두 개의 세계 모두에서 물건을 없애는 것을 풀 딜리팅full deleting이라 불렀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내가 모르는 세계로 물건을 옮기는 것을 하프 딜리팅half deleting이라 불렀다. 물건을 그저 옮기는 것만으로 딜리팅이 가능한 것이다.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풀 딜리팅이든 하프 딜리팅이든 문제 될 게 없었다.
p. 85
그들은 잠에서 깨어난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골목을 걸어 내려와서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레밍쥐들처럼 커다란 도로로 걸어간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걸어 나가는 사람들이다. 구동치의 환영 속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소리만 남고 모두 사라졌다. 구동치는 살기 위해서 절벽으로 걸어가는 그 사람들을 존경했다.
p. 109

배동훈의 태블릿 피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동훈의 태블릿 피시를 없애지 않는다고 해서 구동치가 곤란해질 일은 없었다. 책임을 물을 사람은 이미 없다. 배동훈과의 계약서에는 보증인도 없다. 태블릿 피시에 뭐가 들어 있는지도 구동치가 알 바 아니다. 태블릿 피시 속에 들어 있던 정보가 세상으로 빠져나와서 큰일이 생긴다 해도 구동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할 만큼 했고, 할 만큼 했으면 그걸로 됐다. 됐다. 전부 됐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구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질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태블릿 피시를 찾아서 그걸 부숴버려야 했다. 그래야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었다.
p. 259

비밀의 가격은 과연 얼마인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정도의 가격을 불렀다. 전략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건 딜리터로서의 윤리라고 할 수도 있었다. 비밀이 몹시 중요한 사람은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지키려고 든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밀의 등급을 낮추고, 비밀을 포기한다. 비밀의 의미를 정확히 알려주는 일, 비밀의 가격을 정확히 책정하도록 도와주는 일, 그것이 바로 딜리터의 역할이었다. 구동치가 상담비를 받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물론 백기현에게는 조금 더 비싼 가격을 부르긴 했다. 포기가 쉽도록 도와준 것이다.
pp. 236~37

가끔 김인천의 책상 맨 아래 칸 서랍을 볼 때마다 기묘한 생각이 들곤 했다. 그 속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아는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현실에서는 잡히지 않았던 범인이 죽도록 두들겨 맞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던 이야기,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가 그 속에 들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묘하게 흥분됐다. 딜리팅해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게 된 건 김인천의 탓일지도 모른다고, 구동치는 생각했다. 비밀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묘한 흥분을 주는지 그때 처음 알게 됐다.
p. 290

그의 계획을 들으며 구동치는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 구동치는 이영민의 계획이 안쓰러우면서도 무서웠다.
p. 328

구동치는 딜리팅을 시작하던 초기, 자신이라면 뭘 없애고 싶을지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비밀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구동치의 유일한 비밀은 자신의 비밀을 없애려는 사람들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숨길 게 없었다. 비밀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구동치는 비밀을 없애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죽음 이후의 삶은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딜리팅은 타인의 힘을 빌려 그 삶을 조금 바꿔보려는 것이었다.
pp. 344~45


 

작가의 말

썼는데,
누군가
지웠다.

목차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작가의 말

작가 소개

김중혁 지음

1971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2000년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중편 「펭귄뉴스」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으로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1F/B1』과 장편소설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 산문집 『뭐라도 되겠지』 『대책 없이 해피엔딩』(공저) 『모든 게 노래』 등을 펴냈다.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효석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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