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430

강성은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3년 6월 22일 | ISBN 9788932024165

사양 변형판 128x206 · 84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의식과 무의식, 분리되지 않는 두 개의 시간을 사는 소녀의
진짜 ‘나’를 이해하려는 단지 조금 이상한 여행

 

특유의 초현실적 상상력으로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인 강성의 두번째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이 출간되었다. 두번째 시집에서 시인의 상상력은 아주 깊은 잠 속으로 들어가 시간의 둘레와 겹 그리고 그 사이를 탐색한다. 잠 속에서 꿈꾸는 자아는 의식을 잠정적으로 중지시키고 기억을 넘어서는 근원적인 시간을 탄생시킨다. 무의식에서 생겨난 이 주체는 의식적 주체를 포기하고 다른 ‘자신-시간’을 만나 잠재적이고 근원적인 감각으로 자신을 관찰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된 나를 응시하고 기술한다. 그러나 무의식은 주체 바깥의 영역이 아닌 의식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는 ‘나’의 모든 것이다. 단지 그것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잠재된 나의 사건이다. 이러한 잠자는 주체의 중얼거림과 그 꿈속 이미지들의 서늘하고 아름다운 질감을 가리켜 평론가 이광호는 “이 시집 전체를 잠과 꿈의 매력적인 지도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고 한다.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에서 주체는 매순간 일상과 조금 다른 시간 속에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사내가 나를 토막 내”는 악몽에서 깨어나 “나는 잠시 꿈을 꾼 것뿐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의식을 회복한 뒤에도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불이 켜지지 않는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다. 시인은 이때 “나는 마치 수천 년 동안 불을 켜려고 했던 유령 같다”는 명명으로 자신을 또 다른 차원으로 내보내는데, 끊임없이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가며 혼돈을 끌어안는 이유는 분리할 수 없는 자신의 모든 세계와 마주서기 위함이다. 이것은 자신을 좀더 이해하기 위한 단지 조금 이상한 여행이다.

강성은의 시적 주체는 그 세계를 무어라 부를 수는 없지만, 그 세계는 있으며, 그것을 발생시키는 것이 시적 사건이라고 말해준다. 그 시간을 발생시키는 것은, 인격적 동일자로서의 시인이 아니라, 그 기이한 시간들을 경험하는 다른 삶의 내재된 가능성이다. 그 꿈이 다만 시인의 꿈이 아니라면, 그 익명적인 꿈은 누구의 꿈인가? 시인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단지 조금 이상한 시간이 나를 가로지르고 있다’고 쓸 수 있을 것이다._이광호(문학평론가)

환상의 빛―이토록 쓸쓸한 말 속에 숨은 빛과 그림자
시인은 시집의 문을 ‘환상의 빛’이라는 제목의 시 속 “눈 속에 빛이 가득해서/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라는 구절로 열었다. 이 싯구는 분명하게 확정하고 단언하지 않는 시인의 시들을 꿰주는 하나의 버팀목 같다는 느낌을 준다. ‘환상의 빛’이라는 제목의 시는 강성은의 첫 시집에도 수록되어 있고, 이번 시집에도 연작의 형태가 아닌 개별 시로 세 편이나 등장한다. 이 시들은 강성은의 시적 주체가 경험하는 어떤 기이한 시간들의 경험 혹은 계시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하루는 거대해지고/하루는 입자처럼 작아져 보이지 않는” 사이에서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에 죽은 아버지를 떠올리고는/너무 멀리 와버렸구나” 생각하며 “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린다. “눈 속에 빛이 가득해서/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환상의 빛’을 만나는 순간들은 나의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시간 너머의 층위를 경험하는 순간이며, 그 순간은 종교적 뉘앙스를 갖는 계시의 순간이고, 동시에 시적인 마주침의 시간이다.

차를 세우려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운전하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 면허증도 없는 내가 왜 핸들을 잡고 있는 것일까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 채 곤하게 잠들어 있다 차는 우리를 싣고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달리고 있다 집으로 가고 있다  _「환상의 빛」 부분

본 적 없는 신을 사랑해본 적도 있다
본 적 없는 신을 그리워해본 적도 있다

그저 외할머니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
긴 겨울을 여행하고 싶었을 뿐인데

긴 잠에서 깨어난 내가 눈물을 참는 사이
밤하늘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이 내려오고 있다

저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_「환상의 빛」 부분

몇 세기 전의 사람을 사랑하고
몇 세기 전의 장면을 그리워하며
단 한 번의 여름을 보냈다 보냈을 뿐인데

내게서 일어난 적 없는 일들이
조용히 우거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눈 속에 빛이 가득해서
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 _「환상의 빛」 부분

외계―무의식이 뻗어나간 조금 더 큰 나의 지평
시인은 “달빛이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 “새의 부리를 쓰다듬”으며 “우리는 밤하늘에서 잠든다”. 이것은 어쩌면 현실 속, 의식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이 찾아가는 꿈속, 무의식의 세계는 좀더 넓은 공간을 허락한다. 어떤 날은 평범하고 어떤 날은 돌발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가운데 “내 머리털 사이로 예쁜 독버섯이 자라”났음에도 “나는 죽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기도 하지만, “나는 병들어”간다. 삶과 죽음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떤 날들은 어떤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날에 대한 상상이 현재 속에 잠재된 순간들로 드러나게 함으로써 ‘가능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고 조용한 몸짓으로 큰 세계를 그리고,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참 ‘나’를 찾게 한다. 그러한 탐색의 “언어는 닫힌 날들의 잠재된 가능성을 우주적인 ‘외계’로 개방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날은 내가 읽은 페이지마다 독이 묻어 있고
내 머리털 사이로 예쁜 독버섯이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죽지 않고

어떤 날은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든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어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병들어가고

어떤 날에는 우주로 쏘아올린 시들이 내 잠 속으로
떨어졌다 _「외계로부터의 답신」 부분

죽기 위해 절벽에서 몸을 던지면
다음 생이 시작된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야?
밤이 저 오랜 질문을 던지고
슬그머니 얼굴을 바꾸면
다음 날이 시작된다  _ 「올란도」 부분

세계의 끝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나의 반대편에 큰아버지가 잠들어 있었다
기차가 당도한 곳은 거대한 바다였다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려 환호했다
이곳이 세계의 끝이구나
이곳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구나 _ 「세계 끝으로의 여행」 부분

 

시인의 말

미치광이와 눈먼자들의 노래를 들으며
어딘지 모르는 채로 가고 있다
시인의 산문

쏟아지는 빛 속에서 눈을 감았다

작가 소개

강성은 지음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이 있다.

(이미지 출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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