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부엉이

원제 Die blinde Eule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 배수아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3년 5월 28일 | ISBN 9788932024080

사양 양장 · 변형판 125x196 · 188쪽 | 가격 12,000원

분야 외국소설

책소개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염세주의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는
이란의 카프카, 사데크 헤다야트
암흑의 시대에 태어난 위대한 금서(禁書)를 만난다!

 

인간 존재의 불안과 부조리를 파헤친 사데크 헤다야트의 대표작 『눈먼 부엉이』가 소설가 배수아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사데크 헤다야트(1903~1951)는 테헤란 명문가 출신으로, 파리에서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이란의 전통에 서구의 문학 기법을 결합하여 발전시킨 현대 페르시아 문학의 대표 작가이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눈먼 부엉이』는 한 가난한 예술가가 자신의 영감의 원천이자 동시에 절망의 원천이 되는 한 여인의 시체를 암매장한 뒤 술과 아편의 힘을 빌려 생생하고 무시무시한 신기루의 세계로 빠져드는 초현실주의 소설로, 억압의 시대와,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질적 부조리와 화해하지 못한 작가의 고통과 고독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내면 풍경을 그린 이 소설은 뛰어난 상징성과 눈부신 묘사, 예리한 통찰로 문학사에 남을 작품이 되었다. 잔혹성과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정작 이란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었으나 대중들 사이에서는 잊힌 적이 없는 이 책은, 새롭고 신비한 페르시아 문학을 선보이는 수준을 넘어 세계문학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받는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

주인공 ‘나’는 필통에 그림을 그리는 무명의 화가이다. 어느 날 나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삼촌이 찾아온다. 삼촌에게 술을 대접하려고 창고로 간 나는 벽 틈새로 하나의 광경을 목격한다. 검은 옷을 입은 한 소녀가 강가의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앉은 노인에게 메꽃을 건네는 광경이다. 잊히지 않는 소녀의 모습은 나의 영혼을 깊은 전율로 뒤흔들어 놓고, 나는 오랫동안 그 소녀를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라면서 방황한다.
헛되이 소녀를 찾아 헤매던 내 눈앞에 갑자기 소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나의 집 앞에서. 소녀는 몽유병자처럼 내 집으로 들어가고, 그리고 곧 내 침대에서 그대로 죽어버린다. 나는 소녀의 시체를 절단해 가방에 넣고 먼 황무지로 가져다 묻는다. 소녀의 죽음 이후 삶의 깊숙한 무의미 속으로 추락해버린 나는 아편과 술의 도움을 빌려 기나긴 일생의 환각 속으로 몰입한다.
환각의 생에서 나는 쌍둥이인 남자의 아들로 태어난다. 나의 아버지 혹은 삼촌은 나의 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한 ‘코브라의 심판’에서 죽었다. 살아남은 나의 아버지 혹은 삼촌은 어머니와 함께 떠났다. 나는 코브라독주를 집안의 유물로 물려받았다. 언제든지 원할 때 그 술을 들이켜면 영원한 안식을 찾을 수 있다. 고모의 손에 성장한 나는 누이처럼 함께 자라난 고모의 딸과 결혼한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는 매일 밤 낯선 남자들, 애인들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동침하지만 나와는 단 한 번도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 질투와 고통, 사랑받지 못하는 외로움과 슬픔으로 나는 병에 걸린다. 무서운 고독에 시달리는 병이다. 나는 일생 동안 아프다. 병중에 나는 마침내 아내의 침실로 들어서고, 그녀와 잠자리를 하면서, 칼로 그녀를 찌른다.

 

This Book Will End Your Life

죽음의 현존은 모든 종류의 미신적 믿음을 물리쳐버린다. 우리 모두는 죽음의 아이들이다.
죽음이야말로 삶이 던지는 달콤한 유혹의 속임수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죽음은 삶의 심연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자신의 품에 거두어주는 존재이다. _134쪽

『눈먼 부엉이』의 영문판에는 이란 출신 미국 작가 포로치스타 하크푸르Porochista Khakpour가 쓴 서문이 실려 있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에 심취한 하크푸르는 아버지에게 『눈먼 부엉이』를 사달라고 했으나 아버지는 ‘이 책은 모든 이란인들은 읽을 정도로 위대한 문학작품이지만 이란에서는 출판이 금지된 책’이라며 사주지 않았다고 한다. 딸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야 아버지는 ‘영어로 읽으면 아마 그렇게까지 우울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읽고 나서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라고 당부하며 책을 주었다고 한다. 하크푸르도 이 책을 읽기까지 몇 년을 망설였고, 읽은 후에는 며칠 동안 음식도 먹지 못하고 열에 들떴다고 한다.
카프카, 에드거 앨런 포와 비견되는 사데크 헤다야트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이란에서는 판매 금지’라는 문구가 실린 채 1937년 인도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이란에서는 1941년에야 잡지 『이란』에 연재할 수 있었으나 차후에 다시 출간과 검열이 반복됐으며, 출간 후 8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이란에서 이 책은 여전히 금서(禁書)이다. 이 책이 오늘날까지 금서인 이유는, 이란이 격변의 현대사를 거치며 종교적 신념과 서방에 대한 적개심을 기준으로 만든 문화 검열의 결과이지만, 이 책에 대한 시민들의 경외심은 정치적인 차원뿐 아니라 작가 하크푸르의 아버지의 우려와도 맞닿아 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했고 작가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프랑스계 학교에서 교육받으며 어려서부터 서구 문화를 접한 헤다야트는 20대에 유럽에 머물면서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탐독했다. 그는 「죽음」이라는 제목의 글을 베를린의 이란계 신문에 발표할 만큼 릴케의 ‘죽음에 대한 찬미’에 경도되어 있었고, 실제로 1927년에 파리에서 첫번째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이란의 입헌혁명(1906년)과 리자 샤 팔레비의 쿠데타(1921년) 등이 일어난 이란의 변혁기에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낸 헤다야트는,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보다 더 높은 존재를 찬미한” 릴케처럼 불안정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괴로움 속에서 살아낸 인물이었다. 왕정과 독재에 반대한 헤다야트는 젊은 시절 이러한 뜻을 함께한 예술인들의 모임 ‘라바(사인조)’를 만들고 활동했으나 정치적으로 탄압받았고, 억압적 현실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좌절감으로 염세주의에 빠져 이 책의 주인공 ‘나’와 같이 술과 아편에 의지하기도 했다.

 

암울한 현실과 인간 존재의 부조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자유인
사데크 헤다야트

이 세상은 나에게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었다. _132쪽

『눈먼 부엉이』는 억압의 시대와,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질적 부조리와 화해하지 못한 작가의 고통과 고독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으로, 비유와 은유, 상징의 옷을 입은 작가의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학을 전공한다는 조건으로 국가의 장학금을 받고 벨기에로 갔으나, 예술에만 관심이 있었던 헤다야트. 그러나 고국의 문단에서 철저히 무시당하고 조롱받았던 헤다야트의 처지는 현실에서는 소녀를, 환상 속에서는 창녀(부인)의 사랑을 얻을 수 없는, 자멸과 파괴 외에는 열망을 끝내 이룰 수 없는 『눈먼 부엉이』의 필통 화가와 같다.
헤다야트는 전통적 특성에 서구적 기법을 더하여 페르시아 문학을 새로이 발전시킬 꿈을 갖고 있었지만, 그리고 『눈먼 부엉이』를 통해 이미 성과를 이루어냈지만, 시대는 그의 꿈에 부응하기에 많이 낙후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서구의 영향을 받은 그의 예술관은 그를 점점 정치적 현실과 불화하는 존재, 그리하여 작가로서 철저히 고립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몰아갔다. 문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좌절하고 의욕을 상실한 헤다야트는 늘 다른 세계로 가기를 원했다. 1950년, 친구에게 테헤란에서는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가짜 진단서를 받은 덕분에 이란을 떠날 수 있었던 헤다야트는, 1951년 4월, 스위스에서 체류 비자 연장을 거부당한 이후 파리에서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했다. 그는 유서도 남기지 않았고, 죽기 직전, 쓰고 있던 원고를 자기 손으로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고 한다.
부엉이는 어둠 속에서 사물을 볼 수 있는 동물이다.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부엉이가 어둠조차 볼 수 없게 되었을 때의 비극이 작가의 처지를 말하는 듯하다. 헤다야트의 작품은 당시의 시대상에 의해 정치적 문제로 많이 해석되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다루는 이런 삶의 어두운 면들은 단순히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부조리를 존재 자체의 본질적 요소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고통의 책, 영감의 책-예술가가 권한, 예술가에게 권할 책

이런 세상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미련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다니, 신은 허풍쟁이, 사기꾼이란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만약에 내가 다시 태어나 삶을 한 번 더 통과하는 일을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내 지각과 감각이 훨씬 더 무디고 둔감해져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래야만 힘들이지 않고 호흡할 수 있을 테니까. _132~133쪽

나는 거울 앞에 선 채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너의 고통이 깊고도 깊구나. 그래서 눈빛 깊숙한 곳에 스며들어버렸어. 네가 울면, 바로 그 고통의 심연에서 눈물이 솟아나겠지. 그 심연이 없다면, 넌 아예 눈물도 없는 채로 울게 되겠지.” _140~141쪽

야만의 시대에 상처 입은, 시대를 앞서간 한 섬세한 예술가의 고통이 담긴 책 『눈먼 부엉이』는, 역시 2000년대 한국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소설가이자 번역가 배수아의 소개로 출간되었다. 배수아는 독자로서 독일어판 『눈먼 부엉이』를 접한 뒤 빠져들어 이 작품의 출간을 제안하고 직접 번역했다. 그리고 이 책 『눈먼 부엉이』는 배수아의 신간 장편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의 공간적 배경인 오디오 극장 마지막 공연작으로도 등장하고, 또한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당선작 「눈먼 부엉이」에도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이 소식을 들은 옮긴이 배수아는 약 8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한국에서 묻혀 있던 이 작품이, 갑자기 비슷한 시기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소개되는 우연에 대해 스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이 책이 왜 여러 작가에게서 언급되는지, 자연스레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눈먼 부엉이』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독자에게 무한 확장의 여지를 주는 기회의 작품이며, 곳곳에서 반복되는 인물과 주변에 대한 동일한 묘사는 시 ‧ 공간과 사건의 전개를 의식적으로 혼란시켜 환상의 세계로 빠뜨리는 동시에, 작품 전체를 유기적으로 묶는 치밀한 구성을 보여준다. 또한 명문을 따로 뽑아내기 어려울 만큼 버릴 것 없는 문장들로 가득 찬 이 책은 아름다움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예술가에게는 새 세계를 열어주는 영감의 책이 될 것이고, 문학인을 꿈꾸는 독자들에게는 훌륭한 교본이 돼줄 것이며,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오래오래 곱씹으며 음미할 수 있는 푸짐한 선물이 될 것이다.
■ 본문 속으로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다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타인들은 결코 그런 고통을 믿지 못하고 정신 나간 이야기로 치부할 뿐이다. 만약 누군가 그 고통에 대해서 묘사하거나 언급이라도 하게 되면, 사람들은 남들의 태도를 따라서, 혹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의심 섞인 경멸의 웃음을 지으며 무시해버리려고 한다. 아직 인간은 그런 고통을 치유할 만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술을 마시고 망각해버리는 것, 혹은 아편이나 약물에 취해 인공적인 잠에 빠져드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효과가 오래가지 못한다. 고통은 잦아드는 것이 아니라 잠시 후 더욱 격렬한 형태로 되돌아오고 만다. _7~8쪽

그 소녀는, 아니 그 천사는, 내 영감의 유일한 원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깨달음의 원천이었다. 그녀는 몹시도 섬세한 존재여서 인간이 감히 그 몸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내 마음속에 경배의 감정이 솟아나게 만들었다. 만약 어떤 다른 낯선 사람, 어떤 평범한 인간의 눈길이 닿는다면 그녀는 그대로 시들어버리고 말라갈 것이다. 나는 단 한 순간도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_24쪽

그녀는 내 인생 전체를 독살했다. […] 이제 나는 불행과 가난의 냄새만이 진동하는 이 무덤 같은 방에서, 나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으며 벽의 아주 조그만 틈새까지도 전부 장악하고 있는 이 방의 무거운 어둠 속에서, 시체와 함께 차갑고 어두운, 끝없는 밤을 보내야만 했다.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까지, 이 방에서 죽은 그녀와 함께 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_34~35쪽

마지막으로 나는 한 번 더 가방 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사람의 모습은 흔적도 없었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가방을 열었다. 검은색 옷자락 한 귀퉁이를 들어 올리자 반쯤 굳어 있는 피와 우글거리는 구더기 떼 사이로 커다란 검은 눈동자 두 개가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 깊숙한 곳에 내 삶이 가라앉아 있었다. _48~49쪽

하지만 그녀는, 이 세상의 어떤 짐승보다, 어떤 뱀이나 괴물보다 나를 더 싫어했다. 나는 단 하룻밤만 그녀와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되고 서로의 육신 속으로 파고들어가 함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은 내가 가장 이루고 싶은 생의 소망이기도 했다. _85쪽

나는 아내를 ‘창녀’라고 불렀다. 그보다 더 적절한 다른 명칭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단순히 ‘아내’라고 지칭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우리 사이에는 부부간의 관계라고 할 만한 것이 전무했기 때문에 만약 내가 그녀를 ‘아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될 것이다. 결혼한 첫날부터 나는 그녀를 창녀라고 불렀다. 창녀라는 호칭은 짜릿한 자극을 동반했다. _95쪽

이 세계는 텅 빈 슬픔의 집이었다. 나는 맨발로 슬픔의 집의 모든 방을 하나하나 돌아다니는 사람처럼 가슴속에 불안과 근심이 가득했다. 가장 마지막 남은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 눈앞에는 그 창녀가 서 있을 것이고, 내 등 뒤에서 문이 저절로 닫힐 것이다.  _99쪽

나는 삶이 죽음과 하나 되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일그러진 형상들이 떠오르면서, 소멸해버린 욕망이, 망각한 정욕과 함께 다시 살아나 해소를 갈망하며 아우성치는 곳. 이 순간 나는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세상에서 떨어져 나왔고, 영원한 시간 속으로 들어가 완전한 무(無)로 화해버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나는 몇 번이나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죽음, 죽음이여…… 너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자 마음이 한결 진정되었고 내 눈이 감겼다. _106쪽

‘누구나 자신의 별을 하나씩 갖고 있다는 말이 맞다면, 내 별은 분명 아주 멀고, 아주 어둡고, 아주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을 테지. 아니 어쩌면 내 별은 아예 없을지도 몰라.’ _121쪽

죽음 이후에 그 어떤 희망도 갖지 않음, 이것이야말로 내 최대의 위안이 되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고, 절대로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일생 동안 내가 살아온 이 세상에 단 한 순간도 익숙해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또 다른 세상에서 적응해나갈 수가 있겠는가? 이 세상은 나에게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었다. _132쪽

그렇지만 내 목구멍, 사실상 나 자신과 다름이 없는 내 내면의 목소리는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다. 내 존재는 오직 부조리에 대한, 두 인간이 고독하기 때문에 무조건 동침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강제적 힘에 대한 일종의 증거에 불과하다고. 그런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함은 모든 인간 안에 존재하며, 슬픔과 함께 인간을 결국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뿐이다. 오로지 죽음만이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_133~134쪽

이 순간 나는 한 마리 부엉이와 같았다. 하지만 내 울음은 목구멍에 걸려버렸고,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울음을 피로 토해냈다. 어쩌면 부엉이들도 어떤 병에 걸려 있으리라. 그래서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겠지. 벽에 비친 내 그림자는 한 마리 부엉이와 같았다. 지금 내가 쓰는 이 글을 읽기 위해서, 앞으로 몸을 깊숙이 구부린 부엉이. 당연히 그는 전부 다 이해할 것이다. 단지 그만이 유일하게 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니까. 나는 곁눈질로 내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가 두려워 몸을 떨었다. _166쪽

작가 소개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사데크 헤다야트Ṣādeq Hedāyat(1903~1951)는 테헤란의 존경받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테헤란의 프랑스계 학교 생루이 학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일찍부터 유럽의 문화를 접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25년 국가 장학금을 받고 벨기에서 공학을 공부했으나 예술에만 관심이 있던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여행으로 시간을 보냈다. 1927년에는 프랑스 마른 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기도했으나 구조됐다.
1930년 학업을 마치지 못한 채 이란으로 돌아온 헤다야트는 생계를 위해 은행에서 일하며 단편집 『생매장』을 출간하고 희곡 「사산 가(家)의 어린 딸」을 발표하는 등 작품 활동을 했다. 열성적인 고전학자이자 번역가이기도 했던 그는 여러 고전과 외국문학을 번역했는데, 1943년에는 이란 최초로 카프카의 『변신』을 번역 ‧ 소개했다.
헤다야트는 진보적인 예술가들의 모임 ‘라바(사인조)’를 결성했지만 정부의 탄압을 받았고, 이란의 정치적 현실과 자신의 상황에 실망하여 인도로 떠났다. 1937년에 인도에서 대표작  『눈먼 부엉이』를 복사본 형태로 출간했으나 정작 이란에서는 1941년에야 일간지 『이란』에 연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재출간과 검열을 반복하다가, 2006년 이란 정부의 대축출의 일환으로 출판권을 몰수당했다.
1940년대에는 철학적인 문제보다 시대의 진실을 폭로하는 쪽으로 작품의 방향이 바뀌었으나 그럴수록 점점 더 절망에 빠져 마약과 알코올에 의지했다. 정치적 문제로 철저히 고립되고 박해 받은 헤다야트는 1950년에 파리로 갔으나 1951년 4월,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하지 아카』 『눈먼 부엉이』, 단편집 『생매장』 『세 방울의 피』 『떠돌이 개』 등이 있다.

배수아 옮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소설과사상』으로 등단했으며, 지은 책으로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 인형』 『홀』과 중편소설 『철수』,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 『부주의한 사랑』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에세이스트의 책상』 『독학자』 『당나귀들』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나의 첫 번째 티셔츠』 『불안의 꽃』 등이 있다. 2003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2004년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월요일 독서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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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리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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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1 =

  1. eyaya
    2013.06.06 오후 5:27

    이 번역서의 원문도서가 독어판인가요?
    저자가 이란 사람인데 원저서는 이란어 아닌가요? 혹시 이란어–>독어판–>한국어 이렇게 중역된 건가요? 다른 출판사에서도 같은 책이 나왔던데, 그건 영문판을 번역했더군요. 어떻게 된건지 출판된 도서 어디를 봐도 정확한 설명이 없군요.

    1. 문학과지성사
      2013.06.10 오후 2:15

      안녕하세요. 문학과지성사 도서에 대한 관심 감사드립니다. 본 도서는 독어판을 소설가 배수아가 번역한 작품입니다. 이란어 직역본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중역본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번역하신 작가님의 남다른 문장력은 분명,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2. 생강
    2013.05.26 오후 3:35

    아직 서점에 없던데 언제 출간되나요?

    1. 문학과지성사
      2013.05.28 오전 10:10

      릴리스에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서점에서도 구입 가능합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