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들

마르크스에서 시진핑까지, 세계공산주의들의 삶과 죽음

김학준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3년 5월 6일 | ISBN 9788932024011

사양 양장 · 변형판 165x232 · 852쪽 | 가격 45,000원

책소개

852쪽에 걸쳐 전 세계 혁명가들의 삶을 망라한
김학준의 방대하고 독보적인 책 『혁명가들』 출간!

헝가리, 독일, 중국, 일본, 캄보디아 등
전 세계 주요 공산주의자들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혁명가들의 파란만장한 생애 속으로!

 

지금은 중국, 북한 등 몇몇 국가에서만 명맥을 유지할 뿐이지만, 한때 공산주의는 세계를 양분할 정도로 강성했고,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구질서를 깨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열망이 하늘을 치솟았다. 현대사를 장식한 주요 인물들 중에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자는 없다시피 할 정도다. 레닌, 티토, 고트발트, 호찌민, 수흐바타르, 고무우카 등 수많은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자라 자임하며 ‘공산주의’의 이름을 내걸고 국가를 장악해나갔다. 그 한편에는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체 게바라처럼 혁명을 일궈나가던 과정에서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은 인물들도 있었고, 폴 포트, 스탈린, 차우셰스쿠처럼 국민들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인물들도 있었다. 현재에 이르러 그들에 대한 평가는 반전되는 경우도 많아, 숙청당한 인물이 복권되는 일이 종종 일어났고, 영광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져 무덤이 파헤쳐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들의 삶과 죽음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20세기 혁명의 시대를 이끈 전 세계 공산주의자 열전
공산주의 및 러시아혁명에 관한 굴지의 전문가 김학준이 문학과지성사에서 『혁명가들: 마르크스에서 시진핑까지, 세계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죽음』을 펴냈다. 이 책은 20세기 현대사를 꿰뚫는 주요 공산주의자들의 생애를 집대성한 ‘전 세계 공산주의자 열전’이다. 852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에 걸쳐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부터 현재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자리 잡은 시진핑과 리커창까지 약 200여 년에 이르는 기간을 관통하는 여러 혁명가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낱낱이 추적하고 그들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되짚어본다.
이 책의 저자 김학준은 인천대학교 총장, 동아일보사 회장 등을 거쳐 현재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으로 있으며, 러시아혁명에 관한 국내 최초․최고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러시아 혁명사』를 비롯해 『한국정치론』 『북한의 역사』 등 왕성한 연구 및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전작 『러시아 혁명사』가 러시아혁명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그려냈다면, 이 책은 인물의 삶과 죽음에 초점을 맞춰 유럽에서 아시아 대륙까지 전 세계 공산주의의 역사를 아우른다.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들의 성장과정과 업적, 사상, 평가를 상세히 서술하는 것은 물론, 베리야, 부하린처럼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지만 중요했던 인물들이나 이름은 익히 들었더라도 잘 알지 못했던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들, 그리고 뒷얘기와 사생활까지, 공산주의 역사를 써 내려간 핵심 인물들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혁명가들』은 저자가 각각 1997년과 1998년에 펴낸 『붉은 영웅들의 삶과 이상: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자들의 발자취』와 『동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이상』을 하나의 책으로 통합해 새로 펴낸 개정증보판이다. 방대한 기초자료와 현지 방문이 밑바탕이 되었던 기존의 책들에 이후 새로 발굴된 자료와 해석들을 더해 현 시점에 맞게 다시 펴냈다. 이로써 전 세계 공산주의자의 삶과 죽음을 보다 유기적이고 입체적인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권력을 잡기 위한 치열한 암투, 냉혹한 결단의 순간들, 학살된 수백만 명의 피……
흥미진진한 ‘혁명가들’ 이야기 속으로!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장칭은 왜 저우언라이를 제거하려 했을까? 왜 트로츠키의 무덤은 멕시코에 있을까? 왜 몽골은 시장경제를 도입한 뒤에도 레닌동상을 쉽사리 철거하지 않았을까? 왜 스탈린의 심복들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스탈린을 방치했을까? 『혁명가들』은 등장인물들의 삶의 궤적과 사건들의 연대기적 서술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각 인물들의 행동과 역할을 퍼즐처럼 맞춰주며,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들을 소개함으로써 우리의 궁금증을 채우고 상식을 한없이 넓혀준다.
저자는 1980년대 중반부터 독일,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등을 탐방하며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무덤을 직접 찾아가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대의 명성과 다르게 잡초만 무성한 채 현지인들에게는 잊힌 무덤들을, 혹은 관광지로 거듭난 묘지들을 하나씩 둘러본 저자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이 같은 저자 특유의 생생한 현장 방문 기록과 관찰담은 『혁명가들』 구성의 중요한 축으로, 이 책을 백과사전식 정보 나열이 아니라 현장성이 가미된 입체적인 책으로 거듭나게 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의 압권은 쉽고도 생생한 서술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트로츠키는 그때로부터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인 8월 20일에 암살되고 말았다. 음흉한 암살자는 자신의 논문을 읽어보고 논평해달라는 교묘한 말로 트로츠키의 서재에 단신으로 들어가, 이에 응해 펜을 들고 줄을 쳐나가던 트로츠키에게 결정적 일격을 가한 것이다.”
주조연급 등장인물만 수백 명에 다루는 사건도 수없이 많은 이 책은 지루할 틈 없이 술술 읽힌다. 저자 특유의 간결하고도 힘 있는 필치와 빠른 호흡의 전개를 통해 세계 공산주의의 역사가 압축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왜 지금 공산주의자들의 생애를 읽어야 하는가
저자의 전작 『러시아 혁명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혁명이란 단어가 모든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혁명이 종말을 고한 시대이지만, ‘혁명’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 계층 간 양극화가 깊어지고 자본주의는 한계에 직면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그 탈출구를 자본주의의 수정에서, 나아가 새로운 사회주의에서 찾으려는 흐름이 성장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 우려를 표하며,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는데 특히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가짜 마르크스주의인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는 반드시 배격해야 한다고 제의한다.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가 표방한 공산주의는 공산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살인마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학살하면서 자신들의 범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건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의 마오쩌둥이 1960년대 전개한 문화대혁명 역시 사회주의가 아니라 광란적 파괴행위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북한의 집권세력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음에 몰아넣은 봉건적 독재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한편 저자는 ‘진짜 마르크스주의’에 담긴 인간주의 사상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부정과 불공정과 수탈, 그리고 불평등이 존속하는 현실 사회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잔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따라서 우리는 『혁명가들』의 주인공들이 어떤 선택과 행동을 했으며 그것이 어떠한 결론을 초래했는지 살펴봄으로써,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경계해야 할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생애를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이데올로기를 다시 현실에 불러오거나 누군가에게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 핍박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가 되새겨야 하는 것은 진짜 마르크스주의가 가지고 있는 ‘인간 존중’의 사상, 그것 하나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소련을 중심으로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동독 등 동유럽 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죽음을 조명한다. 2부는 중국을 중심으로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 등 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죽음을 조명한다. 수많은 나라와 인물을 아우르고 역사를 관통하여 서술하는 『혁명가들』은 무엇보다 시야가 넓고 재미있다. 세계 혁명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재미라는 토끼 역시 놓치지 않은 채 핵심에 접근하고 혁명사를 깊이 있게 공부하는 데 이 책은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내린 각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평가, 그리고 역사의 평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 책 속으로

26세 청년 마르크스와 24세 청년 엥겔스가 만났을 때, 엥겔스의 표현으로, 두 사람은 모든 이론 분야에서 금세 완전한 합의를 볼 수 있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높이 평가했다. 엥겔스는 뒷날 마르크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는 우리들 모두보다 더 높이 섰고 더 멀리 봤고 상황파악을 더 넓고 더 빨리 했다. 마르크스는 천재였다. 우리 나머지 사람들은 기껏해야 재주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1부 01장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들」, 39쪽)

원래 베른슈타인은 베를린의 가난한 유대인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에 빠져 사회민주주의자가 됐던 혁명지망생이었다. [……] 그러나 그는 영국에서 20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면서 영국형의 점진적 개혁주의운동이 거둔 성과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망명생활에서 풀려 귀국한 뒤에는 자신에 대한 매도가 쏟아질 것을 각오하고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혁명론을 비판함과 아울러, 의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을 통한 평화적 개혁노선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지적돼야 할 것은 베른슈타인이 자본주의체제의 자기변화능력을 중시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베른슈타인의 이론에 대해 독일사회민주당원들 가운데 대부분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만큼 수정주의의 분위기는 익어왔던 것이며, 그렇기에 당의 대표적 이론가이며 『노이에 차이트』의 편집장인 카우츠키가 게재를 허용했던 것이다. 이 무렵에 카우츠키는 그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더 의회민주주의적이면서 점진적인 개혁주의로 기울고 있었다. (1부 03장 「독일제국의 공산혁명가들」, 91~92쪽)

나치와의 전쟁 시기에 흐루쇼프는 육군중장의 계급을 단 채 여러 전선에서 정치위원으로 활약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공화국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직을 지닌 채 우크라이나공화국 총리를 겸했다. 전후 시기인 1946~47년에 흐루쇼프는 잠시 몰락하는 것 같았으나 1948년에 제자리를 찾았다. 1949년에 그는 다시 모스크바 시 및 지역 당 제1비서로 영전됐다. 말렌코프와 베리야의 연합세력, 특히 베리야를 견제하려는 스탈린전략의 결과였다. 우리가 앞 장에서 살폈듯, 흐루쇼프는 스탈린의 뜻에 충실하게 움직였다. 그러했기에 1953년의 스탈린사망은 흐루쇼프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살폈듯, 흐루쇼프는 우선 베리야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어 경쟁자 말렌코프를 제치고 그해 9월에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직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만 59세였다. (1부 08장 「같은 곳에 잠든 두 정적」, 234쪽)

헝가리의 최고권력자로 30년 이상 군림한 카다르에게도 종말이 왔다. 중부 및 동부 유럽의 공산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자유화의 물결이 닥친 헝가리에서 1988년 5월에 퇴진을 강요당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당의장이라는 한직 하나만 지닌 채 사실상 정치적 은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듬해 자유화의 파도가 더욱 높아지면서 카다르는 당의장직마저 내놓게 됐다. 같은 해 6월 16일에 너지의 추모식과 재매장이 이뤄졌을 때 그는 너무나 상심했다. “너지의 비극은 내 개인의 비극이기도 했다”라고 대답하는 것밖에 더할 말이 없었다. 상심이 컸던 탓인지 그때로부터 3주가 지난 1989년 7월 6일에 카다르는 77세의 노령으로 부다페스트에서 자연사했다. (1부 13장 「노선을 두고 엇갈렸던 헝가리의 공산주의자들」, 351쪽)

(쑹자수의) 3남 3녀 가운데 세상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은 이는 세 딸 아이링, 칭링, 메이링이다. 아이링은 뒷날 미국 예일대학교 경제학석사로 중국 최고·최대의 전당포연쇄망을 소유해 중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고리대금업자라는 말을 들었던 쿵샹시의 아내가 되고, 칭링은 뒷날 쑨원의 아내가 되며 쑨원이 죽은 뒤에는 중국공산당을 따라가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이 되었다. 메이링은 장제스의 아내가 된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아이링은 돈을 사랑했고, 칭링은 조국을 사랑했으며, 메이링은 권력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2부 01장, 「중국공산당의 성장에 디딤돌을 놓은 민족주의자들」, 405쪽)

수백만의 홍위병들이 곳곳에서 난동을 벌이는 가운데 이른바 혁명적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국가와 당의 간부들은 물론 지식인들과 예술가들 가운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사상검증의 광풍’ 속에 구타나 투옥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거나 자살했다. [……] 이렇게 기존의 질서와 권위를 철저히 파괴하면서, 마오는 자신에 대한 개인숭배를 종교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관공서와 학교마다 그의 사진이 내걸렸으며, 당원들은 물론 일반 청소년들은 마오의 ‘어록’을 담은 ‘작은 붉은 책’을 언제나 들고 다니며 마오를 찬양했다.
마오쩌둥의 부단혁명론은 같은 시기에 서유럽의 과격한 반체제적 학생운동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 그들은 마르크스Marx, 마오Mao, 마르쿠제Marcuse의 ‘3M’을 부르짖으며 가두에 나서 자본주의타도를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화대혁명은 결과적으로 중국을 20년, 아니 30년이나 후퇴시킨 큰 실패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2부 03장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주역」, 478쪽)

호찌민은 대체로 베트남국민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한다. 베트남을 애인으로 삼아 결혼도 거부한 채 평생 독신으로 지낸 그의 애국심, 프랑스와 일본 및 미국 등 세 강대국에 차례로 맞서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성취한 민족주의적 지도력,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균형 있게 운신함으로써 국가의 이익과 위신을 지킨 외교력, 이루 말할 수 없이 검소했던 생활, 죽어서도 남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청렴결백한 삶 등이 사랑과 존경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에 대한 반론이 없잖다. [……] 호찌민은 필명을 사용해 스스로를 칭찬하는 두 권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부이틴은 또 호찌민의 지도력에 한계가 있었다고 썼다. 특히 1950년대 중반의 농업개혁 시기에 베트남사람들은 그 방법을 둘러싸고 분열됐는데 호찌민은 통합의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아 호찌민이 오늘날까지도 베트남국민들로부터 국부로 존경을 받고 있음은 사실이고, 그가 통일을 위한 베트남민족의 정신적 지주로 작용했음도 사실이다. [……]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은 그의 이름을 따서 호찌민으로 불리고 있다. (2부 11장 「베트남의 독립영웅」, 723~24쪽)

일본공산당은 1932년의 검거로 완전히 해체돼 지하로 들어갔고, 전위조직들도 모두 와해됐다. 그리하여 1933년부터 일본에서의 공산주의운동은 몇몇 작은 그룹들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그러나 그 그룹들이 통일됐던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그들은 늘 서로 충돌했고 그나마도 모두 경찰에 검거됐다. 이로써 베크먼 교수와 오쿠보 교수의 공저 『일본공산당, 1922~1945』가 지적했듯, 일본공산당은 1932년부터 1945년까지 ‘후퇴의 세월’을 경험했던 것이다. (2부 14장 「후퇴의 시기와 합법화시대의 일본공산주의자들」, 779쪽)

목차

 

개정증보에 붙여

 

1부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죽음

01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02 최초의 사회주의국가 건설자: 블라디미르 레닌

03 독일제국의 공산혁명가들: 리프크네히트 부자, 로자 룩셈부르크, 카를 카우츠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04 볼셰비키혁명의 설계자: 레온 트로츠키

05 볼셰비키 최고의 경제이론가: 니콜라이 부하린

06 소련을 허위와 폭력의 공간으로 만든 포악한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

07 국가폭력을 주도한 고문기술의 천재: 라브렌티 베리야

08 같은 곳에 잠든 두 정적: 니키타 흐루쇼프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09 소련의 쇠락을 관리한 노인통치자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유리 안드로포프, 콘스탄틴 체르넨코

10 소련의 해체를 주도한 개혁가: 미하일 고르바초프

11 비동맹의 중심 유고슬라비아와 고립된 약소국 알바니아의 공산주의자들: 요시프 티토와 엔베르 호자

12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자들: 클레멘트 고트발트, 루드비크 스보보다, 알렉산드르 둡체크, 구스타프 후사크

13 노선을 두고 엇갈렸던 헝가리의 공산주의자들: 쿤 벨러, 너지 임레, 카다르 야노시, 루카치 죄르지

14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동독의 공산주의자들: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그리고르 디미트로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발터 울브리히트, 에리히 호네커

 

2부 동아시아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죽음

01 중국공산당의 성장에 디딤돌을 놓은 민족주의자들: 쑨원과 쑹칭링

02 중국공산주의운동의 창시자들: 천두슈와 리다자오

03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주역: 마오쩌둥

04 중화인민공화국 초기의 실권자: 류사오치와 저우언라이

05 개혁과 개방을 통한 중국현대화의 총설계자: 덩샤오핑

06 덩샤오핑 이후 현대중국정치의 견인차들: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리커창

07 문화대혁명기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뉜 여걸들: 장칭, 덩잉차오, 왕광메이

08 중국공산당을 세계에 알린 서방언론인들: 에드거 스노, 님 웨일스, 안나 루이스 스트롱, 아그네스 스메들리

09 ‘공산주의스파이’라는 음해를 받았던 중국전문가: 오언 래티모어

10 ‘황금 요람’에 잠든 몽골의 공산주의자들: 수흐바타르, 초이발산, 체덴발

11 베트남의 독립영웅: 호찌민

12 캄보디아를 킬링필드로 만든 크메르 루주: 폴 포트, 키우 삼판, 누온 체아

13 일본공산주의운동의 선구자들: 가타야마 센, 고토쿠 슈스이, 사카이 도시히코, 야마카와 히토시, 가와카미 하지메, 후쿠모토 가즈오

14 후퇴의 시기와 합법화시대의 일본공산주의자들: 사노 후미오, 도쿠다 규이치, 미야모토 겐지, 노사카 산조, 후와 데쓰조

 

맺는 생각들

참고문헌 | 찾아보기

작가 소개

김학준 지음

김학준은 인천 출신으로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뒤 서울대 교수, 국회의원,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 및 단국대 이사장, 동아일보 편집논설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버클리대, 동경대, 뮌헨대, 비엔나대, 런던대, 우드로윌슨국제연구소 등에서 연구했다. 대표작 『한국 정치론』으로 1983년 한국정치학회학술상을 받았다. 현재 인천대학교 총장으로 일하면서, 비상근무보수직으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한국정치학회장, 한국국가기록연구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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