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행을 쓰고 싶다

박솔뫼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3년 4월 19일 | ISBN 9788932024059

사양 변형판 128x186 · 259쪽 | 가격 12,000원

분야 장편소설

책소개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야기
이름 없이 사라진 것들에 바치는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제의
 

2009년 자음과모음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박솔뫼의 두번째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제목 ‘백 행을 쓰고 싶다’는 일본의 전위예술가 데라야마 슈지의 저서에 수록된 동명의 시에서 가져왔다. 자신의 분야에 문학, 연극, 음악 등 장르를 녹여낸다는 점에서 둘은 일부 닮아 있다. 그러나 데라야마 슈지가 지루한 현실에 저항하는 파격으로 당대 사람들의 삶에 ‘자극’을 주었다면, 박솔뫼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음악이나 연극 혹은 연애편지 같은 이야기로 판단 불능 상태의 남루한 현실을 담담하게 ‘애도’하고 있다. 2012년  웹진문지문학상 4월 ‘이달의 소설’과 2013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에 선정되며 평론가들을 즐거운 고민에 빠뜨렸던 일련의 단편소설에서 드러난 개성은 『백 행을 쓰고 싶다』에서도 여전하다. 다만 “세계가 한낱 무대 위의 부조리극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하”며 독자를 낯설게 만드는 이야기 전개나 “소설의 이름표를 달고 소설 형식을 [……] 찢어놓는” 특이함에 섣불리 겁먹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이 소설이 우리가 충분히 공감 가능한, 대단히 윤리적인 기반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할 말이 없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앉아 있었다. 말들만이 말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백 행을 왜 쓰는가 – 지금, 여기의 현실을 기워 만든 기록
『백 행을 쓰고 싶다』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건 스물한 살 여자인 ‘나’의 목소리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살고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신변이 아니라, 냄새가 배듯 ‘나’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과 주변의 사람들이다.
‘나’가 살고 있는 바닷가 도시 근처에는 인공 섬이 있다. 놀이공원과 쇼핑몰을 세우기 위해 거주지를 폭파시켜 만든 인공 섬에서 쫓겨난 토착민들은, 살 곳도 일자리도 잃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죽고 나서야 이름을 찾을 뿐이다.

다음 날 신문에 이름 없는 사람의 이름이 실린다. 얼굴 없는 사람의 얼굴이 실린다. 없는 존재로 살던 사람이 실리지만 알아채는 사람은 언젠가 다리로 올라가게 될 사람들뿐이었다. (p. 23)

바닷가 도시에는 ‘나’의 연인인 규대도 살고 있다. 규대의 부모는 외국인 매매혼이나 매매춘을 알선하고 규대는 그런 부모의 일을 돕는다. 규대의 형인 원대는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외엔 도무지 할 수 있는 일도, 되는 일도 없다. 형제의 부모는 원대에게 원윙이라는 중국인 여자를 한 명 붙여준다. 원대는 원윙을 학대한다. 원윙에게는 불법체류자인 중국인 남자친구가 있다. 원윙의 남자친구는 온종일 일하고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던 공장에서 잘린다. 바닷가 도시에는 ‘나’의 동창인 윤희도 산다. 윤희는 가난하고 나이 많고 잘하는 거라곤 오래 참는 것밖에 없는 남자와 결혼을 하는데 곧 윤희가 낳은 아기가 죽는다. 그리고 윤희 남편은 참다 참다 자살을 한다…… 도시빈민들의 불행 릴레이는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그들이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모든 것이 불안한 채로 오직 “모든 것이 점점 나빠진다는 것”만 알고 있는 이들은 “이미 할 수 있는 것 위로 선을 긋고 선 위를 생각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 단순히 바라는 일도 못한다. 그나마 ‘기도’할 뿐인데, 기복조차 할 수 없는 기도는 비명과 다르지 않다. 불행이 먹이사슬처럼 얽혀 있는 『백 행을 쓰고 싶다』 속에서 누가 더 나쁜 사람인가, 선/악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상당히 과격한 사건들이 빈번히 등장하는데도 작품 전체에 방관과 무심함이 흐르는 것은 거기에서 비롯된 결과다.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될 때 비명을 지르듯 기도하거나 부적절하게 감정을 터뜨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마저도, 상대를 떠올릴 때 “잘 먹고 잘 입고 잘 웃고 그래서 잘 살게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이 흐물흐물 약해져” “잘 망하고 잘 포기하고 잘 죽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퍽 익숙한 풍경이 아닌가.

저기가 여기일 때도 대체 어디가 어디인지 몰랐다.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바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어났으면 하는 일도 없었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도 없었으며. (p. 169)

왠지 모두의 잘못인 것 같았다. 이유 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바라던 내일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이런 내일이 오고야 만다. (p. 172)
 

 

백 행은 무엇인가 – 머릿속 ‘막’의 극장
박솔뫼에게 백 행은 비명이자 기도다. 예민한 눈으로 현실을 마주하고 나면 비명을 지르듯 기도를 하듯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백 행은 “연애편지와 시, 낙서를 합한 어떤 것”이며 “정말로 황당해서 황망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동시에 아름답고 균형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황당’과 ‘황망’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박솔뫼 특유의 형식일 텐데, “누구도 쫓아내지 않는 곳이 있어? 있다면 이사 가고 싶습니다. 매일매일 이사 가고 싶다”라는 문장에서 드러나듯 사적인 어조의 화자가 갑자기 공적인 어조로 돌변하거나 스스로에게 뭔가를 물으며 어떤 검열 없이 생각을 쏟아붓는다. 언뜻 덜 다듬어진 듯 보이는 이런 문장들은 소설 속 문장으로서는 ‘황망’하고 ‘황당’하나, 기억을 거슬러 떠올리는 화자의 머릿속 영역을 엿본다 치면 꽤 자연스럽다. 문장뿐만 아니라 비틀스의 노래가사 일부분을 그대로 뚝 떼어 붙이고 아예 시 한 편을 그대로 인용하며 소설 속에서 소설을 창작하는 식으로 외부의 것들을 끌어들이고는, 그것이 이질적이지 않게 ‘막(마구)’ 파고들어와 소설이라는 장르적 ‘막(膜)’을 찢어버리며 한 편의 부조리극의 ‘막(幕)’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를 보았고 나는 한 걸음 뒤에 서서 사람들의 등을 보았다. 문득 백 행이 떠올랐다. 그것은 이미 펼쳐져버린 미래 같은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였으므로. 우리가 바라는 어떤 것들이었으므로. 그리고 나는 백 행을 쓰기 시작했다. 잠을 자다 꿈을 꾸다 백 행을 썼다. 잠 속에서 꿈속에서 백 행을 썼다. 그러므로 그것을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백 행이 있는 곳에는 규대의 백 행이 있을 것이다. 쌓이고 부서지고 조각나며 이어진 시간이 있을 것이고 ‘싶다’라고 말하며 벌어지는 입 모양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백 행을 썼다. (p. 190)

백 행이 무엇인지 규정할 수 없지만 그래서 백 행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연애편지이자 낙서, 시이며 비명이자 기도인 백 행에 일상적 고통의 기록이라는 의미 하나를 더 얹고자 한다. 자아의 미숙함을 딛고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치와 세계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을 성장소설이라 한다면, 『백 행을 쓰고 싶다』는 고유한 존재 가치나 세계의 의미 따윈 없음을 감정의 요동 없이 깨닫게 되는 일종의 비(非)성장 수난기다. ‘제물’(대니얼, 규대)을 바쳐도 통과 가능한 의례가 아니라 영원히 겪게 될 지난한 고통임을 알면서도, 아무리 ‘싶어’하며 바라봤자 결국 별수 없겠지만, ‘쓰고 싶다’와 ‘그만하고 싶다’ 사이에서, 박솔뫼는 제의를 치르듯 길디긴 백 행을 쓴다.

박솔뫼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어쩌면 그녀의 글쓰기 자체가 (영원한) 갈림길로 이뤄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동시대인과 ‘차’시대인 사이에, ‘문학’과 ‘세계의 산문’ 사이에, 소설과 ‘대화’ 사이에 서 있다. 얼핏 그녀의 걸음걸이는 단호해 보이지만, 그녀의 온몸의 세포는 무한한 진동을 참고 있다. ‘백 행을 쓰고 싶다’는 언명―선언 혹은 비명이라 해야 할까?―은 바로 이 고통에서 도래한 것이다. _조효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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