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한 집

정찬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3년 2월 4일 | ISBN 9788932023397

사양 양장 · 변형판 140x210 · 276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혼돈을 일으키는 질서와 위반을 기다리는 규범
비극과 허무의 세계에서 길을 찾는 존재들

 

현실과 몽상, 의지와 운명이 마찰하며 진실의 불꽃을 일으키다
세계의 불온한 질서들을 엄숙하고도 진지하게 추궁하는 소설가 정찬이 새 소설집 『정결한 집』(문학과지성사, 2013)을 출간했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세계의 이해할 수 없는 섭리들을 파헤치며 미지의 희망에 한발 더 다가선다. 그의 질문은 지금-여기의 현실을 겨누다가 역사와 신화, 판타지로 뻗어나간다. 이를테면 본인의 결핍을 메우려 자식에게 초인적 역할을 기대하는 어머니와 순응 동기를 상실한 아들(「정결한 집」)이나 일제의 난징학살(「오래된 몽상」)과 같은 ‘현상’을 작가의 의식 깊숙한 곳에서 재구성한 ‘내막’으로 채워 문제의 처음과 지금을 다시 묻고, 재개발(「세이렌의 노래」)이나 부당해고(「흔들의자」)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신화-종교와 병치시켜 부조리의 원류를 추적해나가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현실과 몽상이 만나고 의지와 운명이 엇갈린다. 부싯돌의 불꽃처럼 진실은 그 엇갈림의 찰나에서 빛나고, 여덟 편의 수록작은 진실 이전의 거대한 마찰과 저항을 조밀한 필치로 포착해내고 있다.

 

충격적인 사건을 되살려 공동의 운명을 환기하다
정찬은 시대의 화두 앞에서 에두르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그의 소설은 돌직구다. 가정불화와 과도한 학벌 경쟁이 희대의 패륜을 낳았고(「정결한 집」) 개발과 발전의 미명 아래에서 사람들이 불타 죽었다(「세이렌의 노래」). 백척간두에 올라 생존권을 호소하는 노동자(「흔들의자」)와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는 청년의 목소리도 들린다(「녹슨 자전거」). 그런가 하면 자식의 결혼을 앞두고 빈부의 격차가 곧 신분적 질서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는 어느새 구경꾼이 돼 있고(「모과 냄새」) 자본의 논리가 이 시대 신전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규범을 행사하고 있다(「오래된 몽상」).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일이 분명 충격적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자극을 주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인간은 운명이 자신에게 다가와 덮치지 않으면 그 형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음유시인의 갈대 펜」). 그러므로 처음의 당혹감은 급속도로 반감된다. 아마 어떤 침팬지가 학술원으로부터 글을 청탁받을 만큼 인간 지능의 평균을 뛰어넘는다 해도(「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오래지 않아 익숙해질 것이다. 이 책은 ‘당시’의 충격을 되살리고 공유함으로써 이 지난한 운명을 우리가 함께 짊어지고 있음을 환기한다.

 

‘인간’이라는 운명, 그 안에서 찾는 진정한 자유
운명의 절대적이고도 거대한 궤도 위에서 한없이 하찮아지는 인간의 모습이 이 책 곳곳에서 보인다. 그런데 이 하찮은 인간들이 운명의 궤도로부터 이탈을 감행한다. 틀에 갇힌 자가 자유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틀 안을 무한대의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 평의 공간에서 우주를 상상”(「학술원에 드리는 보고」)하면 된다. ‘갇힌 쥐’가 되느냐 무한한 자유를 누리느냐는 각성에 달린 일이다.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거기까지 개입할 수는 없다.

어쩌면 오디세우스를 20년 동안 유랑하게 만든 것은 유랑이 불가능해져버린 나의 육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유시인의 갈대 펜」, p. 224) 

바위를 산 위로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는 형벌의 형태에 대한 각성을 통해 자유를 얻고, 심지어 형벌을 준 신을 조롱할 수 있다. 그것은 신-운명에 대한 최대치의 반항이기 때문에 영웅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망가진 육신에 갇혀버린 음유시인이 오디세우스를 창조해 더 큰 자유를 얻는 장면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질 필요가 있다. 진짜 영웅은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음유시인이기 때문이다. 여기, 운명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를 찾는 시시포스들이 있다. 이들이 각성하는 과정은 아름다우면서도 참혹하고, 장엄하면서도 슬프고, 비루하면서도 경이롭다.

 

본문 중에서

공업용 본드를 사서 안방 문틈을 바른 것은 일곱 달 전이었다.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 때문이었다. 본드를 바른 후에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동안 어머니를 찾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지만, 어머니가 연락을 하지 않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소년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정결한 집」, p. 32)

그들은 해고자를 ‘죽은 자’라고 불렀다. 비해고자는 ‘산 자’였다. 산 자와 죽은 자 들의 경계는 불분명했다. 모두 비슷한 사람들인데, 어떤 이는 산 자가 되었고 어떤 이는 죽은 자가 되었다. 산 자와 죽은 자 들이 뒤섞여 함께 밥을 먹고, 토론하며, 농성했다. 그들은 산 자도 아니고 죽은 자도 아니었다. 산 자와 죽은 자 들 사이를 유령처럼 떠도는 존재들이었다. (「흔들의자」, p. 52)

그는 빙긋 웃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지만, 덧없는 세숼 속에서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세월의 갈피에 간혹 흰빛처럼 끼어 있는 기억들이 사라진 삶을 잠깐이나마 되살려놓곤 했다. 그런 눈부신 기억이 없었다면 지나온 삶은 시간의 얼룩에 불과했을 것이다. (「모과 냄새」, p. 91)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혼란스러웠고, 괴로웠고, 두려웠다. 내가 이 세상 바깥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을 회피한다면 나를 나이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어떤 것을 부정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녹슨 자전거」, p. 98)

신념을 위해 아버지를 죽인 문화혁명의 폭력과, 물질을 위해 아버지를 죽이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폭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참혹한가. (「오래된 몽상」, p. 152)

하늘의 문에 닿으려고 지은 것 같았던 엄청난 높이의 건물들이 신전이라면, 150층 건물 등 고층들이 들어서는 용산4지구는 신전 지구일 가능성이 크다. 신전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신성을 훼손할 수 있는 자가 신전에 들어온다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도시의 권력자들은 도시가 섬기는 신의 전사들이다. (「세이렌의 노래」, p. 175)

글을 쓴다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것과 아주 다른 노동이라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 글 쓰는 행위는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지 못합니다. 쓰는 자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갉아먹기만 할 뿐입니다. 두 편의 서사시를 쓰는 동안 내 육신은 바퀴가 부러진 수레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음유시인의 갈대 펜」, p. 224)

알면 알수록 오히려 더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 인간임을 언젠가부터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 한 평의 공간에서는 우주를 상상하면서 우주 속에서는 갇힌 쥐처럼 절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p. 255)

목차

정결한 집
흔들의자
모과 냄새
녹슨 자전거
오래된 몽상
세이렌의 노래
음유시인의 갈대 펜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해설 |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몽상_김대산

작가 소개

정찬 지음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중편소설 「말의 탑」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기억의 강』 『완전한 영혼』 『아늑한 길』 『베니스에서 죽다』 『희고 둥근 달』 『두 생애』 『정결한 집』,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 『황금사다리』 『로뎀나무 아래서』 『그림자 영혼』 『광야』 『빌라도의 예수』 『유랑자』 『길, 저쪽』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요산김정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관련 보도
독자 리뷰(1)

독자 리뷰 남기기

9 +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