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하는 인간

정소현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2년 9월 28일 | ISBN 9788932023458

사양 양장 · · 304쪽 | 가격 12,000원 (12000원)

수상/추천: 김준성문학상

책소개

“실수였다, 아니다 실수가 아니었다, 아니다 실수였다……”

윤리가 흔들린다
아이는 죄가 없다
가족이라는 미묘하고도 불운한 근원에 대하여

 

가족, 그 미묘하고도 불운한 근원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양장 제본서 전기」가 당선되며 등단한 정소현의 첫번째 소설집 『실수하는 인간』이 출간되었다. 등단작을 포함해 「실수하는 인간」 「너를 닮은 사람」 「폐쇄되는 도시」 「돌아오다」 「지나간 미래」 「이곳에서 얼마나 먼」 「빛나는 상처」까지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젊은 작가답게 작품마다 신선한 면모가 돋보임에도 등단 후 짧지 않은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의 소설을 치밀하게 벼려온 탓에 ‘신인’이나 ‘신예’ 같은 명멸하는 수식은 부족하기만 하다. 2010년 제1회 젊은작가상(「돌아오다」), 2012년 제3회 젊은작가상(「너를 닮은 사람」)에 선정되며 “가족 상실의 경험과 싸우는 여성 개인의 미묘하고 복잡한 심리”(황종연)와 “한 인간 속에 숨어 있는 죄의식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우리 문학에서 흔치 않은” “집중력”(남진우)을 보여준 것은 부단한 정진의 정직한 결과다.
정소현 소설의 집중력은 가족, 좀더 명확히 말해 ‘엄마’에게서 출발한다. 정소현 소설 속의 엄마들은 명백하게 일그러져 있다. 비정상적 부모는 아이를 억압하고 결국 심리적, 물리적으로 아이를 ‘유기’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내상을 입은 아이는 자라서 이상한 어른이 된다. 수월하게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해 흔히 사이코패스라 불리는 악마적 인물, 혹은 체념하며 다른 모든 버려진 것들과 손을 잡는 윤리적 인물이 그 두 양상이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로’ 실수하는가? 무의식은 결코 실수하는 법이 없다. 차라리 실수는 무의식이 유일하게 실수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식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정소현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바로 저런 방식으로 초자아의 명령인 ‘실수하라’를 전혀 실수 없이 실현하는 주체들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정작 실수는 누가 하는가? 소설 속 ‘엄마들’이 한다. 어떤 실수인가? 자식들을 ‘실수하는 인간’으로 ‘호명’하면서, 자신 역시 사회적 규율에 의해 호명당한 채 반성 없이 그것을 자식들에게 재부과함으로써 의식적으로는 실수투성이지만 무의식에 있어서는 결코 실수하지 않는 자들을 양산함으로써, 그들은 실수한다.
_김형중(문학평론가)

‘엄마’는 힘이 세다, 아이는 실수한다
『실수하는 인간』은 여자들의 이야기다.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 할머니, 엄마, 딸로 이어지는 ‘모계’ 등장인물들은 그러나 여성성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오려 하기보다는 모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듯하다. 정소현 소설 속 아버지는 대개 살아 있지 않다. 주로 자살로 생을 마감(「지나간 미래」 「돌아오다」)하고, 행여 살아 있더라도 자식을 방임하는 무책임한 존재에 불과(「양장 제본서 전기」)하다.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엄마’로의 역할 분배는 온데간데없이 ‘나무라고 징벌하는’ 초자아 같은 엄마만 남게 되는 것이다. 정소현의 엄마들은 아이를 질투하며 매질한다. 착취하고 무시하며, 다그치고 유기한다. 엄마라는 힘센 초자아에게 상처 입은 아이도 어떻게든 자란다. 그러나 이들은 자라서 ‘실수하는 인간’이 된다. 의욕을 잃고 무기력한 백수로 살거나 말을 더듬는 건 예삿일이다. 상처는 영영 남는다. 아이는 현실을 사는 게 아니라 “갈기갈기 찢겨 과거들 속에 흩뿌려져 있”(「너를 닮은 사람」)을 뿐이다.

“나는 무능한 것, 칠칠치 못한 것, 나잇값 못하는 것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되었다. [……] 너는 외가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한 것 같으니 참 불쌍하구나. 네 애비가 누군지 모르지만 참 한심한 놈일 게다. 할머니는 내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다.  [……]  나는 그때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할머니의 뜻대로 집에 눌러앉았다.” 
「돌아오다」, p. 159

“엄마가 나를, 저 위 공원에 데리고 올라가 숲 속 벤치에 눕힌 채로 묶어두고, 혼자 내려갔어요. 나무가 무성한 숲이었어요. 나를 묶으면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런다고, 미안해, 미안해 이러면서 막 우는데, 차라리 죽어주고 싶었어요. [……] 나는 말이에요, 키도 커졌고, 힘도 세졌는데, 그냥 어렸을 때 산에 묶여 있던 아이 그대로인 것 같았어요. 무력감은 내 몸보다 더 커져서, 복수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빛나는 상처」, pp. 271~75

 

질서를 파괴하는 자, 질서에 파묻히는 자
좀더 극단적인 반응도 있다. 어떤 아이는 질서를 파괴하는 ‘악마적 인물’이 된다. 학대에 익숙해진 아이는 억압하는 대상이 사라진 후에도 자기부정을 내면화한다. 무력감에서 무감각으로 도피한다. 그들은 윤리적으로 백지 상태다. ‘실수’로 화분을 망가뜨리고 아버지를 죽이고 취객을 위협하다 결국 자기를 의심하게 된 여인숙 주인을 살해하는 과정을 겪으며, 「실수하는 인간」의 주인공 석원은 덜떨어진 사람에서 용의주도한 연쇄 살인마가 되어간다. 과거의 치부를 알고 있는 미술 교사를 급발진 사고로 위장하여 차로 치어버리는 「너를 닮은 사람」의 주인공도 석원과 비슷한 인물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이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짓들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담담하고 건조한 정소현 문체의 특색이기도 하지만 주인공들의 행동 궤적을 따르다가 “무엇이 실수였고 무엇이 고의였는지 알 수 없어”지는 탓이기도 하다. 사람의 감정을 소홀히 대하는 것을 냉혹하다고 평한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냉혹하다.

석원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았는지 기억해보려 했지만 무엇이 실수였고 무엇이 고의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확한 것은 태어난 것이 실수라는 것이다. 
「실수하는 인간」, p. 71

한편, 아이는 다른 버려진 것들과 연대하는 ‘윤리적 인물’이 되기도 한다. 버려진 아이는 어딘가에 자신의 진짜 부모가 따로 있을 것이라거나 실은 나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는 희망을 품으며 근원을 묻는다. 수록 작품들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주인공은 모두 어딘가로 ‘돌아가고’ 있다. 그중 「폐쇄되는 도시」 「돌아오다」 「빛나는 상처」의 주인공들은 돌아간 시공간에서 내내 붙들어왔던 희망이 기대와 어긋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를 부정하고 도피하기보다, 그 공간에서 마주친 함께 버려진 이들을 보듬는다.
「폐쇄되는 도시」의 주인공 삼이 폐쇄 직전의 도시에서 마지막으로 구출(?)한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린아이인지 노인인지 좀처럼 분간이 되지 않”고 “눈을 깜빡일 때마다” 점점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할머니는 ‘버려진 존재들’을 상징한다. 삼은 두렵고 무섭지만 그 존재(들)와 함께 걸어간다. 문체 특성상 어떤 감정의 빛깔이 노출되진 않지만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고통을 공유하며 미세하게 변화한다.

아직도 따라오고 있어요? 조금 더 먼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텅 빈 도시의 거리에 셋의 발걸음 소리만 타닥타닥 울려 퍼졌다. 그들은 자신을 따라오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두려웠지만, 그 존재가 따라올 수 있도록 조금씩 걷는 속도를 늦추었다. 길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아직 도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모두 연행하겠다는 경고 방송이 울리고 있었다. 도시가 폐쇄되기 하루 전이었다.
「폐쇄되는 도시」, p. 146

울지 마, 모두 지나간 일이잖아. [……] 나는 내가 아니지만 타인도 아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도 쓰다듬어준 적 없는 내 머리를 생각하며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매만져주었다.
「돌아오다」, p. 166

 

환상이라는 기법―믿고 싶은 것, 믿을 수밖에 없는 것
상처가 단단해지고 그것이 상처임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아이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감내해내다 정상과 비정상을 혼동하고 일상과 비일상을 가로지른다. 환상은 정소현의 소설 곳곳에 무심하게 숨어 있다. 「양장 제본서 전기」에서 짧은 일생 내내 주인공을 괴롭혀왔던 초자아적 엄마는 ‘집’에 스며들어버린다. 화분과 시체를 혼동(「실수하는 인간」)하고 오래전에 죽은 엄마를 만난다(「돌아오다」). 남편과 아들이 죽고 홀로 남은 치매 노인(「오래된 미래」)이나 과거가 두려운 화가(「너를 닮은 사람」)는 애써 정신을 놓고 진실을 외면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소현은 버려진 것들을 주워 보듬는, 따스한 새엄마 같은 작가다. “이름조차 안 남기고 완전히 사라지는 사람들도 허다한”(「양장 제본서 전기」) 버려지고 잊혀가는 것들의 세계에서, 정소현은 “기록을 시작한다. 어차피 모든 것은 사라지고 잊혀질 테지만 기억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지금 이 시간을 기록한다”(「빛나는 상처」).
 

작가의 말
이제 한 시절의 문을 닫는다.
그 시절 들려오던 음악과 공기의 흐름, 골목들의 고마움, 좌절의 기특함과 지리멸렬했던 증오, 그리고 조용한 생활. 그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는데, 난 그것들이 한때 거기 있었노라고 기록하느라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 시절을 통과하는 동안 나는 조금은 단단하고 담담한 사람이 되었고, 시간이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조용히 쌓인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이 소멸을 향해 질주한다는 사실이 더는 두렵지 않다. 슬프지도 아쉽지도 않다.
그러므로 이제 용감하게 문을 닫고, 간다.
문 앞의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르겠지만 엄살 부리지 않고 긴 호흡으로 걸어가겠다.

평온한 마음으로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재홍 덕택이다. 오랜 세월 한결같은 그가 없었다면 만성적인 불안을 떨쳐내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집이 묶이는 동안 얻은 두 딸, 은유와 은교. 이 작은 아이들의 체온과 살 냄새가 마음을 놓이게 한다. 다정한 것들이 모두 내 곁에 있어줘 안심이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느긋한 믿음과 물심양면의 도움이 없었다면 소설집은 영영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두 분의 깊은 사랑과 희생에 늘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이미지로만 존재했던 책을 세상으로 끌어내준 문학과지성사, 민희 씨와 디자인 팀 두 분, 해설을 써준 김형중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외할머니께 이 책을 바친다.

작가 소개

정소현 지음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양장 제본서 전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0년 제1회 젊은작가상과 2012년 제3회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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