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 지음 | 이건수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1년 9월 29일 | ISBN 9788932022352

사양 · 148쪽 | 가격 7,000원

책소개

방탕과 열정으로 삶을 산화한 시인 보들레르,
시인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산문의 진수가 펼쳐진다!

 “사랑은 모순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체계
 누구에게는 진정제 역할을 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흥분제다.”

시집 『악의 꽃』 한 권으로 현대 시인의 대명사가 된 보들레르(1821~1867). 그를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운문이라는 정치(精緻)한 화장을 지워버린 그의 민낯을 살펴봐야 한다. 청년기에 『라 팡파를로』라는 소설을 출간했으며, 생애의 대부분을 문학비평과 미술평론 분야에서 활약한 보들레르의 산문은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에 이르러 정점을 이루었다.
‘천재 시인’이자 ‘저주받은 시인’ 보들레르의 시(詩)가 아닌 산문을 모은 『보들레르의 수첩』(문지스펙트럼3-006)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그의 산문들 중에서 초창기를 대표하는 단편 3편(문학비평에 해당하는 「문학청년들에게 주는 충고」, 에세이 「사랑에 대해 위안을 주는 경구들」과 「장난감의 모랄」)과 보들레르 말년 미술평론의 백미로 꼽히는 「현대적 삶의 화가」를 모았다. 여기에 고단한 삶 속에서도 보들레르에게 인생역전의 꿈을 안겨주던 연극 「술주정꾼」의 초안을 담은 편지글과, 일상의 궤적을 적은 수첩을 덧붙여 한 권의 산문 선집을 꾸몄다.
이 책을 집어 드는 독자들은 천재적이나 불운했던, 재능은 뛰어나나 훌륭한 사회인은 되지 못했던 한 저주받은 시인의 사적인 모습이나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물론 작가의 사생활과 생활 태도도 많이 엿볼 수 있다. 보들레르의 방탕함과 낭비벽이 드러나기도 하고 젊은 보들레르의 오만함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한 시인의 미(美)와 예술에 대한 세심하고, 폭 넓은 사고다. 장난감, 화장 등 소소한 부분에까지 이르는 그의 세심한 고찰과 기발함은 그가 왜 천재인지를 보여준다.
불멸의 시집 『악의 꽃』이 출간된 지 150여 년 만에 들춰 보는 천재 시인의 민낯, 인간 보들레르의 문학과 일상, 그의 시대와 생활상이 이제 우리 앞에 은밀한 속내를 드러낸다.

정신의 귀족성을 추구하는 댄디, 샤를 보들레르

「문학청년들에게 주는 충고」에서는 25세 보들레르의 재기발랄함이 넘친다. 신예 미술평론가로 막 활동하기 시작할 무렵의 보들레르가 마치 연륜 높은 문단 선배라도 된 양, 등단 초기에 겪게 될 갖가지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는 이 ‘처세술 교범’은 냉정할 정도로 객관적인 ‘충고’ 형식을 취하지만, 실은 방탕한 자기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쓴 글이다.
무절제한 낭비벽으로 유산에 대한 권리를 빼앗기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시절의 보들레르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자립이기에 일단 어떤 가격에라도 작품을 팔라고 권한다. 또 작품을 많이, 빨리 쓰기 위해 목욕할 때나 애인을 만날 때에도 늘 주제를 끌고 다니라고 충고하며, 특히 시간과 재능의 낭비인 삭제를 엄금한다. 한편 사후에나 인정받게 될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듯, 소질이 있는 사람은 시를 버리지 말라고 당부하는데, 시는 나중에 가서야 엄청난 이자소득을 가져다주는 일종의 장기예금이라는 것이다.
결국 보들레르는 성실한 기능공처럼 매일매일 집필하는 것이 영감에 도움이 된다고 역설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사에 남을 그의 시집 『악의 꽃』은 무질서한 방탕 속에 만개할 것이었다. “성공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성공들이 서서히 결집해 드러난 결과이다. 따라서 불운이란 없다!”라는 자기암시적인 외침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결국 시인은 ‘저주받은 시인’이란 수식어를 남겼다.
「사랑에 대해 위안을 주는 경구들」은 보들레르가 25세 때 작품으로 스스로를 사랑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다. 청년 보들레르는 스탕달의 『연애론』을 본뜬 책 『애인에 관한 문답법』을 쓰고자 하는데, 이 글은 그 초안이었던 셈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이런 집필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사랑은 모순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체계라[……] 누구에게는 진정제 역할을 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흥분제인 셈이다” “뚱뚱한 여인이 때로 매력적인 난봉의 대상이 된다면, 마른 여인이란 어두운 관능의 깊은 우물이다” “경멸과 사랑은 오십보백보” “전쟁과 유희는 사랑의 경우 전략으로만 허용되어야 한다” 등의 경구들은 따로 떼어놓고 보더라도 재치와 유머로 보석처럼 빛난다.
「장난감의 모랄」은 도덕이나 윤리를 지칭하는 무겁고 철학적인 단어 ‘모랄’과 아이들의 놀잇감에 불과한 ‘장난감’이 결합된 부조화로 단번에 눈길을 끈다. 이 글을 보고 우리는 장난감을 소재로 인간 본성과 사회적 관계까지 관통하는 보들레르의 통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보들레르에 따르면 장난감 놀이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만족시키는 아이들만의 재능은 유년기의 예술적 개념 형성의 한 면을 보여준다. 장난감이란 어린아이의 예술에 대한 최초의 입문인 셈이며,  예술의 첫번째 실현인 것이다. 보들레르에 따르면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주지 않으려는 부모나, 장난감이 고장 날까 애지중지하는 부모는 모두 “시간을 시적(詩的)으로 보내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안쓰러운 사람들이다.
또한 쥐가 든 상자를 휘두르는 거리의 더러운 아이와 자신의 멋진 장난감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쥐에만 관심을 가지는 부잣집 아이의 대면 장면에서는 평등, 박애주의 등을 주장하나 빈부격차를 영속시키는 사회를 신랄하게 비꼬며, 웃음이라는 생리적 평등이란 결국 정신적 동일성의 육체적 표지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한다. 또한 쥐를 가지고 노는 가난한 아이는 다름 아닌 놀이를 하는 예술가이므로, 고도의 상상력과 시인의 본능으로 시꺼멓고 추한 것에서조차 아름다움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시인의 원형(原形)이라고 한다. “천재란 의도적으로 되찾은 어린 시절”이라는 시인의 말에 공감한다면, 장난감은 나름의 미학을 지닌 예술품으로서 수용될 수 있겠다.
「현대적 삶의 화가」는 일간지에 연재한 미술평으로 독창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주목받지 못하던 풍속화가 콩스탕탱 기를 다루고 있지만, 실은 ‘현대성’과 ‘상상력’으로 요약할 수 있는 보들레르 자신의 시학을 일목요연하게 담아낸다. 총 13장 중에서 논지의 핵심을 이루는 제4장 「현대성」, 제9장 「댄디」, 제11장 「화장 예찬」을 발췌했다.
보들레르는 예술에 있어 영원하고 불변하는 반쪽에 상대적인, 유행처럼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나머지 절반을 「현대성」이라 정의하며, “미(美)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요소와 상황적이고 상대적인 요소로 구성되는데, 후자의 예가 그 시대의 풍속을 열정적으로 보여주는 유행이다. 따라서 모든 의상은 당대(當代)의 모럴이고 미학이다”라고 일갈한다. 예술에 있어서 일시성의 요소를 ‘현대성’으로 최초로 정의한 보들레르는 걸작을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상황적인 요소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댄디」, 세련된 의복과 우아한 태도를 지닌 멋쟁이를 가리키는 영어 댄디(dandy)에서 비롯한 이 개념은 후일 프랑스에서는 대중의 속물주의 취향에 반(反)하는 정신적 귀족주의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반대와 저항’ 정신의 반영인 보들레르의 댄디즘은 당시 득세한 시민계급과 밀물처럼 모든 것을 일시에 평준화해버리는 민주주의에 처연히 대항하는 반(反)속물주의와 반(反)대중주의의 표현이기에, 댄디는 고고하고 독창적이어야 한다. 보들레르는 비록 인생의 대부분 시간 동안 물질적으로 부유한 댄디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정신의 귀족성을 추구하는 댄디이자 그 옹호자였다.
「화장예찬」에서 시인은 화장을 주제로 여성관과 인공미에 대해 논한다. 성악설주의자 보들레르에게 있어 자연은 이기적이고 사악한 인간 본성을 의미하기에 보들레르는 초(超)자연적 인공미를 추구하는 화장술을 극찬한다. 19세기 중엽 세계적인 대도시로 성장 일로에 있던 파리. 도회지의 온갖 추함을 감추고 있는 건물의 화려한 정면처럼, 여성은 한껏 꾸며져야 한다는 것이 ‘화장 예찬’의 요지다. 곳곳에서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극단적인 여성혐오와 반여성주의와는 모순적이게도 보들레르는 고혹적인 ‘여성적 세계’에 깊이 경도(傾倒)되어 있었다.
「보들레르의 백일몽(白日夢)이었던 연극」은 인기배우 이폴리트 티스랑에게 보낸 편지다. 당시에는 한 편의 멜로드라마로 부와 명성을 추구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고 보들레르 역시 평생 연극에 대해 욕심이 있었을 뿐 아니라, 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극도의 궁핍함으로 이 연극만이 자신의 삶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꼼꼼하게 계획하기는 즐겼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는 데 게을렀던 보들레르는 단 한 편의 희곡도 남기지 못했고, 이 작품 역시 완성되지 못했다.
빚을 갚으려고 돈이 되는 희곡을 여러 차례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한 보들레르. 그의 「술주정꾼」은 시정(市井)의 통속적 감성에 부응하느라 전혀 연극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음주ㆍ방탕ㆍ질투ㆍ사랑의 악마적 측면ㆍ신성모독ㆍ범죄 등 너무도 보들레르적인 특성을 잘 보여준다.
보들레르는 극도로 피폐해진 건강과 재정적으로 곤궁하기 이를 데 없었던 말년의 일상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한 권의 수첩(「천재의 잡기장, 보들레르 수첩」)을 남겼다. 이 속에는 돈거래 명세와 당장 필요한 주소들, 만날 사람들과 써야 할 편지들, 진행 중인 작업 목록 그리고 불쑥 떠오르는 단상들이 두서없이 적혀 있다. 또한 매일매일 써야 할 글의 분량을 계산해놓기도 했는데, 비록 이 계획이 지켜졌는지는 모르나 모든 것을 명쾌히 파악하고자 했던 보들레르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놀라운 것은 그의 부채 명세를 들여다보면 모자, 구두, 넥타이 등 멋내기는 물론, 서적을 고급스럽게 제본한다거나 화려한 액자와 그 안에 들어갈 판화를 구입하는 등 사치하는 데 상당한 돈을 지불했다는 점이다. 또한 방탕한 생활을 여실히 보여주듯 매춘부들 리스트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기도 하다. 아무런 문학적 꾸밈 없이 시인의 민낯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수첩은 육체적 호기심과 충동적 욕망에 사로잡힌 시인의 솔직함을 보여준다.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기발한 천재, 모랄리스트이자 로맨티스트였던 보들레르. 열정적인 그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산문들을 보들레르 전문가 이건수 교수의 친절하고 풍부한 해설과 함께 생동감 있는 번역으로 만날 수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매우 유명하지만 단순히 ‘불운한 천재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보들레르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창녀들을 사랑했던 댄디냐, 아니면 여성의 분위기가 발산하는 그 정신세계를 알아본 모랄리스트냐,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 본문 속으로

나는 한 작가에 대한 평판에 있어 일거에 예기치 못했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여기지 않는다. 차라리 성공이란 이전에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나쳤던 작가의 갖가지 역량이 산술적 비율에 의해 드러난 결과이다. 즉 수많은 작은 성공들이 서서히 결집된 것이기에, 이 안에서 우연성 같은 것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운이 없어”라고 말하는 이들은 아직까지 충분한 성공을 축적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이런 성공의 속성을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10쪽)

자유와 운명은 서로 상반되는 요소들 같아 보이지만, 이는 오직 유일한 인간의 의지를 가까이서 본 것과 멀리서 본 것의 차이일 뿐이다. (11쪽)

만약 독자 여러분이 진실된 사람이 아니라면, 적어도 진실된 동물이라도 돼야 하지 않겠는가? (24쪽)

[놀이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만족시키는 이러한 재능은 예술적 개념 형성에서 유년기의 정신적 특성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장난감이란 어린아이의 예술에 대한 최초의 입문인 셈이며, 아니 차라리 아이에게 있어 예술의 첫번째 실현이라 해야겠다.  (44쪽)

순수 예술, 논리학, 일반 방법론이 아닌 다른 것을 고대에서 찾아 연구하는 자는 불행하라! 과거에 너무 침잠하여 그는 현재의 기억을 잃는다. 그는 상황에 의해 제공된 가치와 특권들을 포기하게 되는데, 거의 모든 독창성이란 시간이 인간의 오감(五感)에 찍어주는 낙인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57쪽)

그러니까 유행이란 인간의 머릿속에 자연적인 생활이 모아놓은 상스럽고 세속적이며 추잡한 모든 것을 넘어서는 이상에 대한 취향의 증후, 자연의 숭고한 변형, 또는 차라리 자연을 개혁하려는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시도로 여겨져야 한다. 나는 모든 유행은 매력적이라는 점(말하자면 상대적으로 더 매력이 있다는 것), 각각의 유행이란 많든 적든 행복에 겨운 미를 향한 새로운 노력이자, 어떤 이상에의 점진적 접근이라는 점(이를 통해 욕망은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 정신에 쉼 없이 쾌감을 준다) 등을, 그 근거를 대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지적했었다.  (67~68쪽)

즉시 기도할 것/몸치장하기 전에/그리고 즉시 일할 것/몸치장하기 전에(100쪽)

작가 소개

샤를 보들레르 지음

182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의 명문 리세 루이 르그랑에서 퇴학당한 후 네르발, 발자크, 고티에 등의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미술비평가로 활동했다. 특이한 작품 세계를 담은 시편들을 발표하면서 꾸준히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번역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인한 신경 발작을 일으킨 후, 반신불수와 실어증으로 폐인이 되어 1867년 4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남긴 작품으로는 현대시의 이정표가 된 『악의 꽃』, 장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도취 미학의 에세이 『인공낙원』과 그 외 미술과 문학에 관한 독창적인 평론집 등이 있다.

"샤를 보들레르"의 다른 책들

이건수 옮김

연세대학교 불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프랑스 현대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퐁주, 샤르, 르베르디, 생존 페르스, 상드라르, 데스노스, 아폴리네르 등 20세기 프랑스 시인들과 보들레르에 대한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으며, 현재 충남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저주받은 천재시인 보들레르』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기유빅 시선 『가죽이 벗겨진 소』, 본느프와 시집 『두브의 집과 길에 대하여』, 보들레르의 『벌거벗은 내 마음』과 『라 팡파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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