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단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393

유희경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1년 6월 6일 | ISBN 9788932019802

사양 신46판 176x248mm · 156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짐짓, 말하지 못했던 우리의 감정에 대해

“참을 수 없는 감정

말은 그렇게 배우는 것이지”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당신의 설렘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당신의 느낌은 어느 순간 손아귀에 감싸인 채 분명해지는가? 당신 가슴의 요동과 눈자위 현기증은 무엇으로 인해 증폭하는가? 구태의연한 질문 몇 가지로 시작하는 데는 시를 읽고 쓰는 이유가 결국 여기에 담겨 있다 생각해서다. 무수한 시인이 나름의 시를 쓰고, 시집을 묶고, 평자와 독자들이 읽어내는 일의 전모가 그러하다. 여기에는 2000년대 초중반, 탈서정과 탈문법, 전위와 키치와 그로테스크, 자폐와 불화로 주목받기 시작한, 비주류이면서 어느 틈에 주류가 되었던 그 흔한 명명인 ‘미래파’도, 그들의 시적 세례와 전위를 배반으로 모색하며 무리지어진 ‘포스트-미래파’도, 세계와 내면의 황홀한 폐허를 겸손한 서정으로 끌어안는 시인들 모두가 함께한다. 그들 모두 세계와 끊임없이 불화하며 자존감을 지켜내는 시 문학과 함께한다.

그렇게 10년을 지나 오늘에 이른 한국 시는, 여전히 자신의 시작에 몰두하고 하나하나 온전한 세계로 그려가는 데 열심인 새로운 靑年들이 등장했다. 끝없이 새로운 언어를 찾아 실험하고 부딪치고 좌절하고,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변주하고, 세상의 무수한 비밀을 캐물으며, 연대기의 한 페이지를 날것 혹은 문학적 상상력으로 갱신하는 일이 詩라면, 이 시의 다른 이름은 싱싱하고 푸른 靑春, 少年의 눈이다. 다시 한 번, 시 속에서 마음의 동요와 궤적을 좇고 또 시에 투영된 읽는 이 자신의 모습을 목도하는 일은 평범한 일상을 눈부신 빛으로 거듭나게 한다. 그래서 여기,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393번째 선택은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로 당선하며 등단한 유희경의 첫 시집 『오늘 아침 단어』(문학과지성사, 2011)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을 통틀어 첫 1980년대생 시집이다.

소년의 눈물, 청년의 사랑, 그의 연대기

2008년 벽두, 신춘문예 당선으로 첫 선을 보인 시인 유희경은 “지금 손에 쥔 내 손의 온도가 낯설다. 이것은 누구의 것일까. 모든 두근거림의 뿌리를 보고 싶었다”라며 당선소감을 밝혔다. 그렇게 ‘모든 두근거림의 뿌리’를 살펴보고자 했던 시인의 일상은 고백과 묘사, 대화와 앞서간 이의 시선을 두루 관통하며 반복된다. 그 흔한 유머나 집요한 말놀이, 이미지의 극단이나 그로테스크한 상징 대신, 익숙한 언어로 익숙한 감정을 묘사하고 세련하는 일상의 방식으로 먹먹한 슬픔, 그 통증에 대해 말한다.

밤이 되면 누구나 혼자 눕는다 이 익숙한 일을 해내기 위해 아침이면 길고 가는 선이 놓이고 하지만 그렇게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윽고 모든 것이 깜깜해지면

바깥이란 얼마나 흐릿한 것인가 오늘,처럼 쓰기 쉬운 단어가 또 있는가 누군가의 냄새, 누군가의 감촉, 누군가가 놓고 내린 체온 이 우스운 일들을 얼마나 반복해 뒤집어야 하는지 _「오늘의 바깥」 부분

 그리고 자주, 마치 생각이 덩어리진 형태로, 눈물이 그렁그렁 눈에 그리고 귀에 매달린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이반은 귀를 발견했다 늦은 밤 놀이터 구석진 벤치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자기 울음소리를 끝없이 듣고 있었다 

이반은 수염을 깎았다 어머니는 너른 억새 숲이 되었고 이반은 그 발밑에서 늪이 되었다 그것 말고는 부석거리는 어머니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귀에는 낡고 흔한 울음이, 알 수 없는 애를 쓰며 매달려 있었다 _「소년 이반」 부분

 

검은 건반이 내 손가락을 누른다

발가벗은 음들이 내 귀를 당긴다

듣는 감각 쏟아진다

통증이 나를 아파한다

들어가 나오지 않는 추억이여

이런 일을 참을 수 있겠는가

나는 내 부끄러움에 찬성하지 않는다 _「불행한 반응」 부분

“비극에는 용기가 필요하다”(「한편」)고 적는 시적 화자는 자신이 보고 듣는, 혹은 자신에게 매달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놓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일에는 용기나 모종의 결의가 필요한 법인데, “나는 내 짐승의 일부/이 그림자를 밟고 서서”(「빛나는 시간」) “나는 나로부터 날카”(「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로워진 시적 화자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없어진 나날보다/있었던 나날이 더 슬프다”(「텅 빈 액자」)로 짐작되는 아버지의 부재, 소년의 통증, 회한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는 중에 소년이 눈물 속에서 바라본 세상을 “은빛인 은빛이어야 하는”으로 점찍을 때, 슬픔에 소진되고야 마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어쩌면 인간의 고유한 감정으로 기록될 ‘상실감’을 적극적으로 바라보고 곱씹어보고 종국에는 감싸 안는 성장의 기록에 우리는 한 뼘 더 다가서게 된다. 울고 싶지만 웬일인지 눈물조차 맘처럼 되지 않을 때, “스스로 한 방울이 되어”(「그만 아는 이야기」)갈 수밖에 없는 내력에 대해 말이다. 물론, 소년의 성장에는 무거운 상실의 슬픔 한편에 애틋한 설렘, 사랑도 함께한다.

우리는 빗방울만큼 떨어져 있다 오른뺨에 왼손을 대고 싶어져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둘이 앉아 있는 사정이 창문에 어려 있다 떠올라 가라앉지 않는, 生前의 감정 이런 일은 헐거운 장갑 같아서 나는 사랑하고 당신은 말이 없다

[……] 

불가능한 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뒤를 돌아볼 때까지 그 뒤를 뒤에서 볼 때까지 _「내일, 내일」 부분

나의 마음을 강요하지 않고 당신의 침묵조차 기꺼이 수용하는 이 사랑은, “네가 심은 작약이 어둠을 끌고 발아래서 머리 쪽으로 다시 코로 숨으로 번지며 입에서 피어나고, 둥근 것들은 왜 그리 환한지 그게 아니면 지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심었다던 작약」) 이렇게 상상만으로 나의 온몸을 지배하는 사랑은, “숨이 타오름이 재가 된 질식이 딱딱하게 그저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그건 너가 아니고 기실, 나는 네 눈 뒤에 서 있어서 도저히 보이질 않는 너라는 미로를 폭우 쏟아져 내리는 오후처럼 이를 깨물고 하얗게 질릴 때까지 꽉 물고 어떻게든”(「너가 오면」) 그 불가능성을 재확인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다.

‘지금은 그저 假定의 시간’

            그때 너는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사막,이라고 적을 수밖에 없는 깊은 밤의 처지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거리의 대부분이 자취를 감췄을 때도 너는 걷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어떤 영혼도 버틸 수 없는 사람은 대개 그러하다 그날 밤은 떠올리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세상이 검게 변하는 순간에 아무것도 없고 너만 있고 멀리 오후의 개가 짖는 소리 정말 이제 사람들은 창문의 한 귀퉁이를 발견할 것이다 언제 묻었는지 모를 붉고 선연한 자국이 사람의 모습 같아서 그들은 한동안 소곤댈 것이다 누군가는 시간과 함께 몰래 기록해둘 그 소문 속 이야기를―「낱장의 시간들」 부분

 얼핏 죽음을 편애하는 시적 화자는 “밤의 입장에서 죽음의 고독을 탐색”한다. 그리고 가정된 미래 속의 죽음과 그에 대한 사유는, 유희경의 시에서 “‘너’의 산책, 즉 미래로 무한히 열린 ‘나’의 죽음을 시 쓰기의 경험”으로 확장해간다(조연정). 짐작건대, 시 쓰기의 고뇌는, 백지에 검은 글자를 박아 넣는, 찰나에 각인된 장면과 기억을 머릿속과 가슴속을 오가는 담금질로 뱉어놓아야만 그나마 “버려진 종이” 신세를 면할 수 있기에, 죽음만큼이나 무겁고 무력하며, 새까만 한밤처럼 아득하고 거대한 고독일 수밖에 없을 터.

 結晶되지 않은 決定”-낯익은 낯선 감정의 이야기

유희경의 첫 시집 『오늘 아침 단어』에 실린 63편의 시들은 낯익은 그러면서 낯선 감정의 무늬와 열기로 가득하다. 무겁게 내려앉는 통증의 이야기에서 어룽대는 은빛의 눈물과 새벽이슬 속에 피어난 수줍은 꽃의 미소를 ‘숨김없이 남김없이’ 오롯하게 그려내 줄 아는 따뜻한 한 시인이 탄생했다. 그가 ‘슬프고 먹먹하고 설레고 안타깝고 외롭고 결연한 밤’을 내내 걷고 또 걸어, “신비 혹은 공포 그러니 어둑하고 고요한 아침 노래하는 새들의 노래 파고들어 팽창하는 음악 그 음악의 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당신이 눈이 떴을 때 창문에 닿아 있는 햇살 평평한 정신 그리고 […] 기억하고 있겠지만 結晶되지 않은 決定 동전처럼 아무렇게나 보이지 않는 뒤 가려진 앞”(뒤표지 시인의 산문)을 하나 빠짐없이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 연대기의 한 장을 찢어내”며 “그가 꾼 꿈을 들춰”(「어떤 연대기」)본다. 그러면 어느 새 “봄이었고 여름이었던/ 분명한 한때,/ 누구에게나 있었던, 한 번쯤은/ 모든 것이 내 것이었던/ 그때”(「손의 전부」)의 우리 자신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시의 본질은, 순간의 느낌을 화인처럼 붙들고 사는 시인의 차가운 눈과 더운 가슴에 있을지도 모른다. 일찍이 시인 이성복은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느낌」,『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1990)고 했다. 일상의 순간을, ‘공중의 시간’을 영원의 기억으로 안을 수도 있는 그 마술과도 같은 느낌, 시는 바로 그렇게 우리에게 온다.

유희경의 시들은 “미래의 시간이든 과거의 시간이든, 자신이 부재한 풍경으로부터 ‘生前의 감정’을 추출”하고 있다. “내가 없는 시간” 속의 감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전부 나였다”라는 말로밖에 달리 형용할 길이 없는 감정으로부터, 그는 가까스로 한 단어 한 단어 길어 올리고 있다. 시작되지 않은 과거와 끝나지 않은 미래라는 황야의 시간을 떠돌며 그가 매일 아침 생각해보는 한 단어, 그것은 어쩌면 ‘시’일지도 모른다(조연정, 해설 「최초의 감정」에서).

       오랫동안 잠겨 있던 문을 열며 들어가다 멈춰 선 자세로 서서히 사라지는 한때를 생각한다 아껴가며 슬펐던 개인의 역사란 휴지에 묻은 울음소리 같은 것

       주변에는 늘 비가 내렸고 장엄한 풍경을 위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길 바랐다 그런 밤에는 꼭 누군가 등 뒤에 서 있는 기분 그렇게 사람은 누구나 등을 키우고

       지금, 서툰 감정을 경청하며 문을 닫아주려 하는 사람이 있다 조금씩 녹아내린다 달무리 지고 구름이 모인다 ―「나는 당신보다 아름답다」 부분

그리고, 오늘 아침, 당신의 손에 시집 한 권이 도착했다.

시집 해설

우리는 『오늘 아침 단어』로부터 ‘불행한 서정’의 행복한 귀환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소년의 눈물과 청년의 사랑에서 배어나오는 슬픔, 고독, 자책, 안타까움, 벅참, 절망 등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게 되리라 예상했고, 더불어 시 읽기의 다른 보람마저 느낄 수 있게 되리라 믿었다. 그런데,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와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직 “서툰 감정”(「나는 당신보다 아름답다」)뿐인 듯하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탄생과 아직 완료되지 않은 죽음을 넘나들며 “生前의 감정”을 펼쳐 보이는 그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최초의 감정이라는 말로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무수한 정념들과 마주한 것이다. 결국 『오늘 아침 단어』는 우리를 공감의 달인이 아닌 서툰 초심자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유희경의 첫 시집은 우리에게 시 읽기의 보람을 알려주는 벅찬 시집이 되는 것이다. _ 조연정, 해설 「최초의 감정」에서

본문 속으로

1.

이 시는 정박한 시간에 대한 것이다

미열에 들떠 휴지로 창문을 닦았을 때

계절은 너무 자주 시작되었다

공중을 조립하기 위해 덩치가 큰 사내들은

도시를 떠났다 곧 그들이 떨어뜨린

공중의 부속이 땅을 흔들 것이다

거실의 시계는 멈추고 나는 침대에 누워

초라한 병에 시달리는 가족사를 생각한다

죽일 년놈들이 되어 잠든 우리

2.

가끔, 弱視의 꿈을 꾼다

죽은 아버지 음성, 심장의 크기를 키운다

아무도 없이 소리만 들리는 풍경 느닷없이

늙어버린 길은 힘없이 팔을 떨구고

천천히, 숨을 끊는다 그러니 나는

식욕보다 나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혼자서 지어두었던 아들의 이름은 이미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 아버지

내게 말 걸지 마세요 

3.

검은 눈빛을 가진 나의 아들이

빛을 주워 담기 위하여 古宮의 뜰로

간다 오, 언제나 태양은 가득하다

그러나, 나는 그늘이 좋았으므로

강낭콩 싹 한 번 틔어보지 못한 끈기로

늘 그늘을 키운다 이름 없는 나무들은

죽기 직전에 숲을 만든다지 그러므로

나무는 못된 무덤 나는

네가 나무 악기로 태어나기를 바랐다

너의 아비는 유명하지 않은 악보

엄마란 음악을 듣는 사람

고모는 조금만 슬퍼도 우는 아이였다

그러니 아들아, 어깨란 닮아지는 것이 아니라

훔치는 것이다 기억해두어라 세상은

어떤 각오로 태어나야 하는 것인지

4.

공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공을 사랑하고

우리는 그들을 추억한다 누구나 잃어버린

공터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법 늑대 같은 순간이

폭발한다 깔깔대며 달아나는 공을 찾아 사라지는

아이들 내게 맞는 어깨란 없다 뼈라는 이 오래된

遺傳 먼 미래의 유골이 분말이 되어

쏟아진다 빈 몸을 털어 내일을 장만해야 한다

나는 검은 봉투 같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공중의 시간」 전문

아내는 반 홉 소주에 취했다 남편은 내내 토하는 아내를 업고 대문을 나서다 뒤를 돌아보았다 일없이 얌전히 놓인 세간의 고요

아내가 왜 울었는지 남편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남편은 미끄러지는 아내를 추스르며 빈 병이 되었다

아내는 몰래 깨어 제 무게를 참고 있었다 이 온도가 남편의 것인지 밤의 것인지 모르겠어 이렇게 깜깜한 밤이 또 있을까 눈을 깜빡이다가 도로 잠들고

별이 떠 있었다 유월 바람이 불었다 지난 시간들, 구름이 되어 흘러갔다 가로등이 깜빡이고 누가 노래를 불렀다 그들을 뺀 나머지 것들이 조금 움직여 개가 짖었다 

그때 그게 전부 나였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건 남편과 아내뿐이었다 마음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면목동」 전문

고이면 좋겠어

잠든 도시의 가슴팍에

의심이란 거지 우리가

찾아볼 수 없는 흔적

 

이렇게 끝내주는 소리는

천년 전의 것

용서하라 모든 이빨을

비가 내일을 잡아 뜯고

눈썹을 파르르 떨어

써놓은 문자를 내놓는다

쏟아져 내리는, 입말

놀라는 눈과 감기는 물

 

비가 내리는 만큼

입을 다문 사람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날씨 앞에서는

누구나 넓고 너무 투명하다

 

떠오른다 침묵하지 않는,

하고 싶은 말 지우고,

젖어간다 모서리부터 ―「우산의 반대말」 전문

 

시인의 말

수십 개 단어와 한 사람을 동시에 떠올리는 일

나는 아직도 이런 일을 생각한다.

 2011년 6월

유희경

시인 산문

신비 혹은 공포 그러니 어둑하고 고요한 아침 노래하는 새들의 노래 파고들어 팽창하는 음악 그 음악의 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당신이 눈을 떴을 때 창문에 닿아 있는 햇살 평평한 정신 그리고

세수 인간의 거울 단어 강약 강박 박동 손끝 책상 흔적 머리카락 안경 라우션버그적 당신

리시버 시곗줄 그건 아니고.

리투아니아 얼음송곳의 땅 늙은 남자의 입내 늘어붙은 근육 몸을 밀고 지나가는 사람의 속성

빈 공간 기억력 차가워진 겉 따뜻해진 속 누구든 오라

그러니 누구든 오라

가방 멀미 아침 식탁 단수 여권 찢어진 한 장 스물한 장째 누군가의 사진 낯선 얼굴

기억하고 있겠지만 結晶되지 않은 決定 동전처럼 아무렇게나 보이지 않는 뒤 가려진 앞

목차

꿈속에서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K

한편

소년 이반

어떤 연대기

당신의 자리

心情

내일, 내일

낱장의 시간들

금요일

버린 말

우산의 고향

들립니까

심었다던 작약

궤적

지워지는 地圖

이웃 사람

오늘의 바깥

너가 오면

화가의 방

 

코트 속 아버지

오늘은

11월 4일

그만 아는 이야기

폭설

어쩔 수 없는 일

손의 전부

속으로 내리는

나는 당신보다 아름답다

벌거벗은 두 사람의 대화

우산의 과정

비밀의 풍경

아이들은 춤추고

다시, 지워지는 地圖

악수

이 씨의 낡은 장화

나와 당신의 이야기

같은 사람

검은 고요

그해 겨울

 

빛나는 시간

해줄 말

어떤 장면

소년

불행한 반응

닿지 않은 이야기

우산의 반대말

B

염소의 숲

보내지 못한 개봉 엽서

서른

텅 빈 액자

옛날 사람

공중의 시간

부드러운 그늘

그때 우리는

맑은 날

나이 어린 조각들

면목동

 

해설| 최초의 감정(조연정)

 

작가 소개

유희경 지음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오늘 아침 단어』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이 있다. ‘작란’ 동인이다.

"유희경"의 다른 책들

독자 리뷰(1)

독자 리뷰 남기기

7 + 6 =

  1. bohemia5
    2011.06.15 오후 8:18

    시인에게, 독자 마음대로 읽기를 허락해 준다면 어느 날 이런 서툰 감상도 용서가 될까요

    남루한 일상을 신화로 들어 올리는 마법의 시어들

    오늘 아침 단어, ‘결국 내게는 창백한 것들이 사랑이다’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동적이면서 사색적인 순간의 연출로 그는 이미 우리를 경악시켰다. 티셔츠에 머리를 들이미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그 보잘것없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행위에서 번뜩이는 사유의 시공간을 포착했던 그였다. 그때 우리는 예리하면서도 극적인 장치까지 구사할 줄 아는 새로운 시인의 탄생에 환호했었다.

    ‘면도를 하다가 그저께 벤 자리를 또 베였고 / 아무리 닦아도 몸에선 털이 자란다’

    우리의 짐승됨과 비루한 일상이 날카로운 그의 시어에 베어 이렇게 낱낱이 까발려져 ‘너덜너덜해’졌을 때도 우리는 그 아픔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김기림의 ‘나비’에게 바다의 수심을 일러준 이가 없었듯 아직까지 우리에게 그것을 일러준 시인이 없었기에.
    그러나 곧 우리는 ‘아버지를 한 벌의 수저와 묻’으며 ‘당신의 무덤을 토닥이는’, 천진한 소년에게서 이제는 성숙해진 청년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아버지 무덤가 ‘먼지들의 하얀 뒤꿈치가 사각거’리는 이미지와 소리에서 고질고질한 일상이 그의 시어로 사뿐히 들리어져 하나의 신화가 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설거지는 자신의 뒷모습을 다스리는 거룩한 과업으로, 아버지의 부재는 슬픔이 아닌 당당한 훈장으로 가서 가슴에 달린 느낌이었다.

    시인이 휘저어 놓은 가슴을 부여안고 우리는 그의 다른 시를 만나고픈 욕망을 오랫동안 다독거려야했다. 마침내 2011년 초 여름날, 그는 ‘오늘 아침 단어’라는 갓 세수한 말쑥한 이름의 시집을 아침뉴스처럼 내밀며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당차게 말을 건넨다.

    ‘빈 몸을 털어 내일을 장만해야 한다/ 나는 검은 봉투 같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공중의 시간)

    ‘깜깜한 고요 속 /하얗고 불확실한 자국으로
    송곳니를 드러내는 북서쪽 /검은 대륙 행군일지의 밤
    ………….
    첫날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들을 세어본
    은회색 지도가 펼쳐진다 /그 위로 몰아닥칠 것이다
    나는 곧, 첫눈처럼
    (북서풍의 노래)

    ‘내일을 장만’하기 위해 ‘빈 몸을 털어’야 한다는 그는 아직은 ‘검은 봉투 같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며 앞날을 암담해 하는 청춘이지만 뜻밖에도 ‘그 위로 몰아닥칠 것이다 / 나는 곧, 첫눈처럼.’ 하고 힘찬 소리로 외치기도 한다.

    그의 시에 자주 나타나는 ‘아버지’ 또한 짚어보아야 할 대목이다. ‘티셔츠’에서 ‘아버지를 한 벌의 수저와 묻었’던 그는 ‘공중의 시간’에서 또다시 아비를 반추한다.

    ‘거실의 시계는 멈추고 나는 침대에 누워 /초라한 병에 시달리는 가족사를 생각 한다
    죽일 년놈들이 되어 잠든 우리 /
    …….
    가끔, 弱視의 꿈을 꾼다 / 죽은 아버지 음성, 심장의 크기를 키운다
    …………..
    혼자서 지어두었던 아들의 이름은 이미 /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 아버지/
    내게 말 걸지 마세요’
    (공중의 시간)

    이 시에는 ‘아버지’라는 말이 세 번 ‘아들’이 두 번, ‘가족’, ‘고모’ 라는 말이 각 한 번씩 나온다. ‘초라한 병에 시달리는 가족사’와 듣는 아들의 ‘심장의 크기를 키’우는 ‘아버지의 음성’은 아버지와 가족이라는 화두가 시인의 머릿속에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에 대한 열정은 역설적으로 차갑게 드러나고 있다. 그의 가슴은 몹시도 민감해서
    ‘사라져버려 더는 내 것이지 않은 온도’ 라고 쓴 적이 있었다’ 며 (내 손이 죽어갈 때)
    그래서 ‘결국 내게는 창백한 것들이 사랑이다’ 라고 아프게 고백한다. 이토록 가없는 지순한 사랑은 또한
    ‘바람이었다가 물 흐르는 소리처럼/ 어루만지고 이따금 꽉 쥐었던,
    일 초의 적막’ 이었다. 이렇게 여린 감성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을지 가늠이 되고도 남는다. 그래서 그는 ‘깔깔대며 달아나는 공을 찾아 사라지는 아이들’처럼
    ‘누구나 잃어버린 공터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법'(공중의 시간)
    이라며 애써 자신을, 그리고 우리들을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산문에 낯설게 등장하는 ‘라우센버그적’이라는 말에도 눈길이 간다. 화가가 일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오브제를 가져다 새로운 예술을 만들었듯이 시인도 역시 평범한 것에서 미학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고 하면 어떨까. 그리하여 그의 시는 남루한 일상의 신화 만들기로 이어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