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유령들

조재룡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1년 3월 31일 | ISBN 9788932021942

사양 신국판 152x225mm · 488쪽 | 가격 20,000원

책소개

 

낯선 타자를 읽어내고 관계 지형을 그려가는

번역이란 이름의 비평 혹은 문학

 

 

프랑스 현대시를 전공한 불문학자이자 번역가이며 문학평론가인 조재룡 교수(고려대 불문과)가 첫 비평집 『번역의 유령들』(문학과지성사, 2011)을 펴냈다. 2002년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2003년 『비평』지에 문학평론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평론활동을 전개해온 저자는 그간 외국문학을 전공한 이가 바라보는 한국문학에 대한 비평적 접근과 한국 현대시에 밀착한 현장비평, 그리고 꾸준한 번역 활동과 함께, <한국번역비평학회>의 일원으로서 한국의 번역문학의 실태와 번역학의 체계적 뿌리내림에 대해 연구해왔다. 『번역의 유령들』은 바로 이러한 저자의 저술과 비평 활동의 첫 성과물로서, 각종 문예지와 학회를 통해 보고될 때마다 활발한 논쟁과 담론을 생성해온 15편의 비평론을 총 5개 부에 나누어 싣고 있다.

 

 

시의 번역 불가능성에 대한 도전

 

책의 들머리에서 저자는, 사회와 문화, 정치와 역사를 비롯한 인간의 정신활동의 총체를 살피고 역사성을 사유하기 위한 것이 문학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잠재태로서의 문학텍스트를 깨우는 구체적인 모색이야말로 바로 ‘번역’의 존재이유고 역할이며, 고착되고 동일시되는 일상의 모든 타성과 습관, 관성에 도전하는 문학 혹은 시 정신을 바로 읽어내는 일이 곧 ‘비평’의 소임이라는 것이다. 속도와 효율을 제일 큰 미덕으로 삼는 이 시대에, 그러한 우리의 행보를 잠시 멈추게 하고 치명적, 정치적, 주관적 실수와 착오를 간파하고 바로 볼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시이고, 그러한 시의 역할을 따라 읽고 해석하는 일이 다름 아닌 번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에게 시와 번역, 시인과 번역가야말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문학)거울 앞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사람인 것은 자명하다. 시인은 번역가이고, 그것도 가장 창조적인 번역가로 설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게 저자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때문에 삶의 형식을 문학과 결부시켜 언어예술로서의 시와 문학, 번역과 비평의 접점을 추적해가는 비평집 『번역의 유령들』은 문학평론가 조재룡의 ‘문학’으로의 입장(入場) 혹은 ‘문학하기’를 앞에 둔 입장(立場)이라 할 것이다.

 

 

세상을 읽어내는 창조적인 힘, 번역의 아포리아

 

재우쳐 보건대, “말할 수 없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문학이, 지배하는, 지배하고자 하는 패러다임의 한 축에 치우치거나 귀속되기는커녕, 그 반대의 것도 아우르며 결과적으로 전체를 돌보고, 미지를 향해 발을 뗀다고 할 때, 문학은 필연적으로 번역적 특성을 지니게 된다.” 조재룡 교수가 다시 번역을 문제 삼는 이유는 바로 이 대목에서다. 하여 현장비평으로서의 현대시를 부지런히 읽어내는(김억과 이상, 이성복과 김혜순에서 권혁웅, 성기완, 이원, 김언, 장석원, 하재연, 김경주, 황병승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적 촉수가 뻗치는 대상은 넓고도 조밀하고 또 깊다) 목소리를 바탕으로 하여 펼치는 그의 비평 속에서 시와 번역은 자연스럽게 한몸으로 자리하며 그 호소력 또한 크다. “시와 문학, 그리고 번역은 자신을 붙들어 매고 있는 제 언어의 감옥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결국 동일한 하나의 동선 위에 놓고 사유해야 할 대상이다.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성취하려고 시도한다는 의미에서만 시는 시가 되는 것이며, 이때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세상에다 옮겨놓거나 그것을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번역도 세상을 읽어내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대개의 문학평론집에서 볼 수 있는 개별 작품 분석과 해설을 앞세우기보다, 각각의 제목이 일러주는바, ‘시의 아포리아, 번역의 아포리아’ ‘번역과 이데올로기’ ‘문학 속의 번역, 번역 속의 문학’ ‘번역과 무의식, 오역의 번역론’ 보들레르와 이상의 가상 대화, 번역자로서의 발터 벤야민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되는 번역시, 한두 해 전부터 촉발되어 문학장의 여전한 논쟁적 화두인 시의 정치성까지, 5개의 큰 범주 아래서 자신의 시론이자 번역론이며 문학론을 때로는 유려한 문장으로, 때로는 크레센도와 프레스토의 단도직입적이면서도 단호한 문장에 역점을 두는 저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타자라 불리는 것, 우리 사회 잉여인간을 헤아리고 다독거리는 방식

 

시인 이성복이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혹은 병든 것을 알지 못하는 병든 사회라 했듯이, 저자는 차이가 만들어내는 이타성, 타자의 존재양식을 캐물을 수 없고, 자기동일성의 견고한 성곽이 조금의 부정도 허용되지 않는 사회가 바로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임을 놓치지 않는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 무능력한 사람들,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회적 유용성이 제거된 사람들, 쉽사리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 뒤처진 사람들과 같이, 우리가 ‘잉여적’이라고 부르며 그렇게 치부해온 인간들을 비추는 일은 다름 아닌 시인의 몫이다. 시와 예술은 ‘우리가 못 보는 것’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 ‘애써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바로 그 행위에 적극적이고도 주관적으로 관여한다는 사실을 번역의 관점에서 다시금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저자는 지금, 문학으로의 반성과 문학의 존재이유라는 그 사소하지만 존귀한 진실을 우리 앞에 불러내고 있다.

 

 

보편과 합리의 논리, 미적 근대성과 문학성을 거리 재는 축으로서의 번역

 

한편, 한국문학사 안에서 ‘번역’에 대한 관심이 극히 형식적인 선에 그쳐왔고, 비평학회나 외국문학연구회 역시 한국문학을 읽어내고 해석해내기보다 외국문학의 국내 번역의 질과 관련한 반성과 모색에만 급급해왔던 그간의 우리 현실을 비추어볼 때, 이 책은 한국 내에서 번역문학연구가 어떤 방향성을 지녀야 하는지, 또 번역학과 번역이론이 문학 혹은 문학비평과 어떤 식으로 교호하고 매개하며 전개되고 성립되어 나갈 수 있는지, 바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계기 또한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의 문학평론가인 장 벨맹-노엘의 『충격과 교감』(문학과지성사, 2010)이 외국의 문학평론가의 한국소설 읽기를 통해 독서 행위 본연의 의미와 한국문학 텍스트의 다성성, 다형적인 해석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새롭게 일깨웠다면, 조재룡 교수의 『번역의 유령들』은 번역문학이란 말은 오래도록 횡행했으되 정작 번역의 정체성, 번역 자체에 대한 성찰적 모색이라 할 ‘번역학’ 연구가 척박한 우리 문학 토양에서 의미 있는 한 보고서가 될 것이라 믿는다.

 

 

[책머리에] 에서

 

문학은 하나이며, 그 방법과 체계, 언어와 역사, 작동방식과 유통구조, 독자의 인식과 사회적 파장이 서로 다를 뿐이라고 믿어왔고, 지금도 그렇다고 믿는다. 불문학이나 독문학, 러시아문학이나 영문학과 한국문학은 항상 연대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근대문학의 시작이 번역, 즉 외국 문학과의 교류와 결속을 통해 착수되었다는 점은 따라서 내겐 의미심장하다. 굳이 분류하여 그 자리를 매기자면 비평을 전공한 불문학 연구자에 가까울 나에게, 최남선이나 김억의 ‘번역’이 하나의 사건이었던 것은 번역이 물고 들어온 외부의 문학작품들과 근대적 지식들이 이 땅에서 날카로운 비평용어들과 새로운 문학 장르를 실험해나갈,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런 언어를 만들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국문학이, 아니 그것의 번역이 한국문학을 풍부하게 하는 데 일조한, 한국문학의 내적 구조와 그 기능, 그 특수성을 살피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역사적으로 비교적 자명한 사실을 여기서 반복하며 열거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국 번역이 또다시 문제가 된다. 지배에 맞서는 방식으로서의 번역, 타자를 결부시키는 동력으로서의 번역, 근대의 실험으로서의 번역이 결국에는 문제인 것이다. 번역은 문학 간에 상호적 의존성을 확인하고 교류를 통해 그 필연성이 지각될 때에만 드러나는 “주체들의 질서 정연한 집합”을 말하고, “시간성”과 “운동”에, “경계”와 “분할”, “주변부의 투쟁”과 “불평등한 분배”(파스칼 카사노바)에 주목하게 만드는 유일한 출구는 아닐까? 이때 번역은 비로소 한 문화의 고유성이나 특수성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논리, 합리적인 논리, 미적 근대성과 문학성에 대한 논의를 견인하는 주요 축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아(我)와 타(他)를 구분하는 행위 자체를 무화시키면서, 포괄적으로 ‘관계’를 고민하게 만든다.

 

[본문에서]

모국어의 잠재적 가능성을 일깨우는 유령이 바로 번역이다. 그리하여 정확한 제 자리를 타국어에 돌려주는 유령도 바로 번역이다. 번역은 타자의 가치라는, 실로 헤아리기 어려운 것을 꼼꼼히 따져보라는 권고에 가깝기에 필연적으로 이타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타성이라는, 이 모험적 성격의 개념이 우리의 사고 깊숙이 내려앉아 어느 틈엔가 의식에서 출몰하는 무의식적 형식이 되어가는 것도 바로 번역을 통해서이다. 비가시적인 것(의식이나 이데올로기)의 가시적 출현이자 끊임없이 되돌아온다는 의미에서 번역은 ‘망령’이며, 덤으로 더해진 사고를 빌미로 인식의 영역을 열어젖힌다는 점에서 ‘정령’이자, 타자의 목소리에 제것으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보태져 발동하는 상상력을 동반한다는 면에서 ‘환영’이기도 하다.-「번역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125~126)

 

 

 

 

 

 

 

 

 

 

 

 

 

 

 

 

 

 

 

 

 

목차

제1부 시의 아포리아, 번역의 아포리아

시의 아포리아, 번역의 아포리아

나는 번역한다, 고로 존재한다—도플갱어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사유의 힘, 시의 힘—시, 번역, 리듬

 

제2부 번역과 이데올로기

번역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번역과 이데올로기

 

제3부 문학 속의 번역, 번역 속의 문학

여백(餘白)의 시학—조세희와 번역

문학 속의 번역, 번역 속의 문학—번역가를 찾아서 (1)

문학 속의 번역, 번역 속의 문학—번역가를 찾아서 (2)

‘문(文)’-‘언(言)’-‘록’(錄)-‘명(詺)’—번역이 타자를 불러내고 헤아리고 다독거리는 방식

 

제4부 번역, 그 무의식의 세계

번역의 ‘메타디에게시스’와 그 무의식—번역의 ‘곁텍스트’에 관하여

프락시스와 테오리아의 변증법—김현과 번역 (1)

‘오역’의 번역론을 위하여—김현과 번역 (2)

 

제5부 시, 정치성, 번역의 눈으로

보들레르와 이상(李箱), 그리고 번역자 발터 벤야민—파리와 경성, 그리고 번역시

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상상세계

정치적 사유와 그 행위로서의 시—왜, 시, 그리고 비평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인가?

 

 

 

작가 소개

조재룡 지음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2002년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와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고려대학교 번역과레토릭연구소의 전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고려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년『비평』지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문학평론가로도 활동 중이며, 시학과 번역학, 프랑스와 한국 문학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평론을 집필하였다. 지은 책으로는『앙리 메쇼닉과 현대비평 : 시학, 번역, 주체』『번역의 유령들』『시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번역하는 문장들』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앙리 메쇼닉의 『시학을 위하여 1』, 제라르 데송의 『시학 입문』, 루시 부라사의『앙리 메쇼닉, 리듬의 시학을 위하여』, 알랭 바디우의『사랑예찬』, 조르주 페렉의『잠자는 남자』, 장 주네의 『사형을 언도받은 자/외줄타기 곡예사』등이 있다. 2015년 시와사상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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