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과 쓸개

김숨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1년 2월 24일 | ISBN 9788932021669

사양 양장 · · 337쪽 | 가격 11,000원

책소개
  • 2011 문학과지성사 낭독의 밤(2011/04/06, @살롱 드 팩토리)

 

 

“내가 우는 건 울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우는 거예요”

죽음 같은 저수지에서 길어 올린,

쓰디쓴 삶을 향한 깊은 응시…… 김숨의 세번째 소설집 『간과 쓸개』

 

 

풍부한 미학적 가능성을 보여주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 김숨의 세번째 소설집 『간과 쓸개』가 출간되었다.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연이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온 작가 김숨은 첫 소설집 『투견』을 내기까지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있었지만, 2005년에 펴낸 그 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매해 한 권의 책을 꼬박꼬박 출간하고 있다. 특유의 문체와 분위기로 자신만의 색을 견지하며 끊임없이 작품을 쓰고 발표하고 책으로 묶어내는 작가 김숨. 2011년 초입, 그녀의 새 책이 또다시 독자들을 찾는다.

 

『간과 쓸개』는 김숨의 두번째 소설집 『침대』 이후 4년 만에 만나는 소설집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끈다. ‘잔혹’ 혹은 ‘그로테스크’로 표현되었던 전작 단편들에서 서사보다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시적인 소설 쓰기를 보여주었던 작가는 『침대』의 출간 후 『간과 쓸개』를 펴내는 그 사이에, 세 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단편소설에서 보여주었던 김숨만의 장점을 잘 이어가면서도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탄탄하게 이끌어갔던 그 세 편의 장편소설 이후, 전작들과 조금 달라진 면면을 보여주는 작가의 단편소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새 소설집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이질적인 재료들이 충돌하면서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마치 한 편의 콜라주를 보는 듯했던 전작들에서, 작가는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방편이 아닌 현실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들을 실감나게 드러내기 위해 기괴한 환상들을 교차하여 더욱 선명한 이미지를 전달하였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의 그 시선은 현실 세계로 옮겨간다. 죽음과도 같은 삶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필사의 안간힘을 쓰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일상의 이미지로 그려지면서, 환상이 사라진 자리에는 쓸개즙처럼 쓰디쓴 현실의 고통만이 남는 것이다. 여기에 김숨 특유의 차분하고 정제된 문체가 더해져 삶의 어두운 풍경들은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간과 쓸개」의 화자는 간암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다. 그의 큰누님도 담낭관에 생긴 담석으로 병들어 누워 지내고 있어 그는 큰누님의 찾아뵈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그러나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자식들 집을 전전하는 큰누님의 사정과 점점 나빠지는 간암의 검사 및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화자의 상황이 매번 엇갈려 그들의 만남은 계속 유보된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자는 친구에게 골목을 억지로 받게 되고, 죽은 것처럼만 보여 내팽개쳐두었던 그곳에서 버섯이 열린 것을 보자 큰누님을 만나는 것을 더 이상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큰누님과 만나 어렸을 적 큰누님과 함께 보았던 저수지의 검은 물빛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만, 큰누님은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화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눈물만 흘리고 만다. 이 작품은 화자와 큰누님에게 조금씩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를 어릴 적 보았던 저수지의 검은 물빛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수십 마리의 귀뚜라미가 물에 빠져 죽어 있는 틈에 유일하게 살아 꿈틀대는 귀뚜라미의 모습을 보고 “살아 있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구차스럽고 징글징글하기만” 하다고 생각하고, 튀김 반죽을 몸에 뒤집어쓰고서도 안간힘으로 뒤채던 미꾸라지의 모습에서 필사(必死)를 떠올리는 화자는 그런 일상의 이미지들에서 큰누님과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게 되는 것이다.

「모일, 저녁」의 화자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의 집에 오랜만에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녁상을 차리는 어머니와 베란다에서 전어를 굽는 아버지 사이에서 밥상이 다 차려지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화자의 아버지는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꼬박, 백 마리의 뱀장어를 잡는 일을 한다. 아버지는 뱀장어를 잡다가 죽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친구가 잡다 만 뱀장어를 자신이 잡았다고 하기도 한다. 뱀장어를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것이 소원인 아버지는 삼촌도 함께 일을 데리고 나가려고 하지만, 7년 전 부모님의 집으로 들어온 삼촌은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까맣게 탄 머리만 전어 머리만 남겨놓고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고, 어머니는 상을 차리다 말고 걸려온 전화의 송수화기를 든 채 잠이 든다. 화자는 베란다로 나가, 운행을 마치고 전조등을 밝히며 차고지로 돌아오는 버스들을 구경한다.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의 화자는 버스 정류장 간이 매표소에서 평생을 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뒤를 이어 그 간이 매표소로 들어간다. 기껏해야 하루에 한두 번 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홍수가 나서 물에 떠내려갈 지경이 되더라도 결코 매표소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어머니의 두 다리는 홍학의 모가지처럼 가늘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화자를 두고 동생들은 사막여우만큼이나 독하다고 하고,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그 매표소에 반강제로 화자를 집어넣었다. 어느 날 문득, 홍학과 사막여우가 보고 싶어진 매표소 안의 화자는 동생들을 동물원의 사막여우 우리 앞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러나 폐장 시간이 가까워 찾아간 동물원에서 그녀는 결국 동생들을 만나지 못한다.

한편, 거동조차 자유롭지 않아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북쪽 방에서 유폐되듯 갇혀 살아가는 노인의 하루가 그려진「북쪽 방(房)」에서도 공기처럼 부유하는 죽음의 이미지는 떠나지 않는다.

「흑문조」에서 부모님에게 빚까지 져가며 마련한 집은 귀뚜라미 천지에 보일러까지 말썽이다. 게다가 수리공은 바닥을 파놓기만 할 뿐 문제를 찾아내지 못하고, 간암으로 두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긴 옆집 남자는 계단을 허물자는 말만 반복한다. 누군가에게 흑문조가 어울릴 것 같은 집이라는 말을 들은 화자는 흑문조를 사기 위해 새를 파는 상점에 가지만, 자신의 집 위태로운 계단을 닮은 다리로 횃대 위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그 새를 쉽게 사기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가격만 묻고 나와버린다. 그러는 사이, 그 상점의 흑문조를 다시 찾았을 때는 흑문조의 왼다리가 사라지고 없었고, 가격을 깎아준다는 주인의 권유에도 사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계단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다.

상갓집에 가는 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교통체증으로 도로에 갇혀버린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룸미러」, 어느 날 남편이 데려온, 3천 년 전의 미라와의 특별한 동거 이야기를 담은 「육(肉의) 시간」,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말하는 남편과 아들의 수술비 때문에 전세값을 올리려는 집주인, 그리고 모든 게 수상하기만 한 옆집 여자 사이에서 소통의 창구를 찾지 못하는 화자의 모습을 그린 「내 비밀스런 이웃들」, 대형 마트로 인해 손님이 거의 끊긴 럭키슈퍼에서 이미 유통기한이 훨씬 지나버린 아버지와 살아가는 한 소녀의 가족 이야기 「럭키슈퍼」까지,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마치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듯한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의 이미지는 김숨의 건조한 문장 안에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고, 그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필사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번 소설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김숨의 관심은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는 물질적 조건들과 장구한 시간 속에서 왜곡되어온 욕망의 표상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다. 두 방향으로 작동하는 이 시선들 가운데 하나는 주로 불가항력적인 질병이나 가난에 사로잡혀 있는 화자들을 통해 삶의 물질적 조건들을 투명한 언어적 풍경으로 조탁해낸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아프게 감지되는 타인들의 무관심과 인간의 삶에 얽혀든 뭇생명들의 뒤틀린 존재방식이다. 또 하나의 시선은 통념에 가려져 있는 존재들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리는 쪽으로 작동한다. 이것은 주로 젊은 여성 화자들의 의식을 통해 일상적 통념들을 낯설게 재구성하거나 일상 자체를 아예 다른 존재들로 치환한다. 이 낯선 현상들은 해체재구성된 통념의 실체이거나, 라캉의 말처럼, 촘촘한 상징계의 그물망을 뚫고 언뜻언듯 제 모습을 내비치는 실재계의 풍경들이다. 이 두 가지 풍경들은 존재의 회복을 통해 우리의 무감각과 통념을 치유하려는 작가의식과 내밀하게 맞닿아 있다. 김숨이 빚어낸 이 심화된 풍경들은 존재론적인 바탕이 튼실한 만큼 그 미학적 가능성 또한 풍부해 보인다. -황광수(문학평론가)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김숨은 가만히 있을 것이다. 가만히 가만히 속의 모래들도 이쪽으로 저쪽으로 옮겨 다닐 것이다. 그는 아무래도 광물성이다. 외계를 내계로 끌어들이는 광물. 외계를 압축해 내계에 기록한다.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느 순간 그것들이 제 스스로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있다. 밤나무 숲을 지나 펼쳐진 저수지 앞에 앉아 검은 물빛을 응시하고 있는 인물이 보인다. 김숨이다. 김숨은 끊임없이 이야기들을 건져 올릴 것이다. -하성란(소설가)

 

 

● 작가의 말


영하의 겨울입니다. 문득 창밖을 바라봅니다. 지붕과 창문, 하늘이 보입니다. 저를 멀리서 지켜보는 또 다른 제가 창 밖 저 어딘가에 있는 것만 같습니다. 창 안의 저는 좀 외로워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올해 첫날 누군가 저의 집 창문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누굴까, 누굴까…… 제 손보다 작은 참새가 부리로 거실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참새의 방문이 아주 커다란 선물처럼 느껴져 오후 내내 행복했습니다. 저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집에서 보냅니다. 오후에 잠시 집 밖 천을 찾아가 산책을 하고 장을 보기도 합니다. 천에는 오리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저는 오리가 좋습니다. 오리를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오고 행복합니다. 오리들에게 몰래 말을 걸기도 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오래된 음악을 듣는 사이 저녁이 찾아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제 옆을 지켜주는 저의 개들, 포그와 포아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입니다. 부디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내 옆에 있으렴. 조금 있으면 저의 소중한 가족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불을 밝히고 저녁을 해야겠습니다. 오늘 저녁은 감자와 굴을 넣고 칼국수를 끓여야겠습니다.

고요한 제 집에서 정성껏 끓여낸 칼국수를 내놓는 마음으로, 이번 소설집을 내놓고 싶습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제 소설집을 위해 애써주신 하성란 선생님, 황광수 선생님께 특별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목차

간과 쓸개

모일, 저녁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

북쪽 방(房)

흑문조

룸미러

육(肉)의 시간

내 비밀스런 이웃들

럭키슈퍼

발문/광물성의 기록․하성란

작가의 말

 

작가 소개

김숨 지음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간과 쓸개』 『국수』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장편소설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듣기 시간』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김현문학패, 요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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