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나나

박형서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0년 5월 13일 | ISBN 9788932020587

사양 · 406쪽 | 가격 11,500원

분야 장편소설

수상/추천: 대산문학상

책소개

“우리 중에서 매춘부로 살아보지 않은 자는 한 명도 없는 것이다.”

낯선 거리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익숙한 세계

박형서 첫 장편소설

 

2003년, 첫 소설집에서 기괴하고 극단적이면서 멜랑콜리한 작품 세계를 펼쳐 보였던 작가 박형서. 당시 한 일간지에서는 ‘‘엽기의 행간에 흐르는 처연한 슬픔의 감성이 돋보인다”는 말로 그의 첫 책을 평했다. 그리고 3년 후 펴낸 두번째 소설집에는 “개콘보다 더 웃기는 소설”이 등장했다. 기괴하고 극단적인 상상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처연한 멜랑콜리의 자리에 유쾌한 유머를 실은 그 소설집은, 박형서만의 색을 확고히 다지며 그를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로 인정하게 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평단은 물론 독자들은 그의 장편을 더욱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박형서의 첫 장편소설 『새벽의 나나』는 『문학과사회』 2009년 봄호를 시작으로(85호) 그해 겨울호(88호)까지 총 4회에 걸쳐 연재된 작품이다. 첫회를 제외한 3회 연재분이 적지 않은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설정과 생생한 캐릭터, 흡입력 있는 문체로 연재 당시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3부를 끝으로 결말을 보여주지 못한 채 연재를 마감하며, 아쉬움과 더불어 기대와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켰던 작품이기에, 4부의 결말과 함께 찾아온 이번 단행본이 더없이 반갑다.

작가가 이 소설을 구상한 것은 2005년이다. 동남아를 여행하던 중에 떠오른 이야기라고 한다. 작품의 무대는 태국이다. 태국에서도 나나 역을 중심으로 뻗어 있는 매춘의 거리 소이 식스틴. 애초에는 지아에서 플로이를 거쳐 라노로 이어지는 어느 타락한 거리의 연대기였으나, 머릿속에 구상한 내용을 종이에 옮기다 보니 그 이야기가 예상보다 방대하여 가운데 부분인 플로이 이야기만이 최종적으로 남아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인 생생한 캐릭터는 깊이 있는 취재 덕일 것이다. 2007년, 마카오와 홍콩 사이에 있는 중국 주하이의 어느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던 작가는 한 달에 한 번씩 방콕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서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의 음식을 먹으며 현지인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때의 경험이 종이 위에서 다시금 살아난 것이다. 계약된 강의가 끝난 2008년 여름, 태국에 제대로 멍석을 깐 박형서는 일곱 달 동안 본격적으로 구상해놓은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9년 초. 정리된 원고를 바탕으로 연재가 시작되었다.

『새벽의 나나』는 최종 목적지를 아프리카로 정하고 여행길에 오른 레오가 태국을 경유하던 중 그곳에서 만난 플로이에게 끌려 결국 아프리카 땅을 밟지 못한 채 그 거리의 이방인으로 지내는 이야기다. 그러나 최고의 매춘부 플로이와 어리숙한 한국 남자 레오의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의 곁을 맴돌고, 누적된 상처를 응시하며 헤어진다. 그들의 관계에 기대를 걸었던 독자들은, 특히 플로이라는 아름다운 캐릭터에 마음을 뺏긴 독자들은 이러한 전개에 애가 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어디 그러한가. 삶은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고, 우리 인생에는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게 없는 것이 사실이다. 기승전결의 단선적인 서사는 특히 소설에 있어 매력적이긴 하지만 작가는 우리의 삶은 더욱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첫 장편을 조금 더 솔직하게 쓰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우리는 여기서 확인할 수가 있다. 이 작품을 이루는 저 무수한 시간적 겹침과 회귀와 초월은 작가의 그런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레오와 플로이의 관계는 이 작품의 줄거리가 아니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수많은 여담들을 수용하기 위한 일종의 틀이다. 작가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그들의 연애사가 아니라 제시된 온갖 여담, 구체화된 모든 주변 사건들 자체인 듯하다. 레오와 플로이의 사랑타령, 그것도 실패한 사랑타령에 관한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이 작품은 훨씬 더 넓고 깊다.

이 작품은 우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짚어보게 한다. 박형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말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타인을 뚫어져라 노려보지 않는다. 대신 인물이 지닌 관계를 추적함으로써, 혹은 인물들이 서로 섬세하게 얽힘으로써 타인을 납득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이 유독 많은 까닭은 그 때문일 것이다. 소이 식스틴의 거리에는 중심적인 인물 외에도 많은 다양한 인물들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읽는 동안 사소한 인물들조차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관계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여행지에서 생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이다. 우리는 언제나 어딘가로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고, 그때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며, 매 순간이 돌아갈 수 없는 여행과 같다는 것을 박형서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준다.

너무나 비루한, 그래서 아름다운 매춘부들의 거리는 세속 그 자체이다. 그 거리에 한 번도 발은 디딘 적 없는 독자일지라도 이국의 낯선 풍경들 속에서 우리 이웃, 혹은 자신의 한 단면을 만나게 될 것이다. 주인공 레오의 발걸음을 쫓아 자꾸만 그 거리로 향하는 마음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레오가 보는 전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인물들의 관계를 구성하는 모티프로서의 역할을 하며, 동시에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 중에서 매춘부로 살아보지 않은 자는 한 명도 없는 것이다”라는 레오의 깨달음은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울릴 것이다.

 

 

작가의 말

 

동남아를 여행하던 중에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그럭저럭 소설이 될 것 같아 『지아』라는 멋들어진 제목을 붙여놓았다. 그녀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머릿속에 떠돌던 장면들이 차츰 연결되어 종이에 내려앉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꿈꾸던 소설이 지아가 아니라 그녀가 머물렀던 어느 거리의 이야기며, 분량도 예상보다 훨씬 방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내게는 돈과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며칠 궁리를 한 끝에 앞뒤로 탁탁 잘라, 지아가 떠난 직후부터 라노의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만 남겨두었다. 그들 삼대에 걸친 소이 식스틴의 주옥같은 연대기는 이담에 누군가, 돈도 많고 시간도 많은 분께서 써주실 것이다. 얍삽하게 벌써 쓰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중국 광둥의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매달 한두 차례 방콕으로 날아갔다.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의 음식을 먹었다. 입을 가만히 두지 않는 현지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재차 길어졌다. 등장인물 또한 점점 늘어났다. 자료는 벌써 충분했지만, 어쩐지 멈출 수가 없었다. 돈과 시간과 머리숱이 빠르게 줄어들어 갔다. 확신이 부족한 소설가들만 공격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양이었다. 우연찮게 ‘선택’에 대한 모종의 깨달음을 얻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이 책을 탈고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원히 소이 식스틴에 자빠져 있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칼을 빼 휘둘렀다. 까이와 빠빠의 비중을 줄이고 우웨와 유하의 사연을 삽화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욘의 여동생도, 아팡의 외삼촌도 살살 타일러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골든트라이앵글의 마약왕 쿤사와 관련해 모아 놓은 신문 기사들은 염소에게 먹이로 드렸다. 아마 우연이겠지만, 그날 저녁 뉴스에서 쿤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월 말의 일이었다.

이듬해 여름이 되어 강의 계약이 끝나자 곧바로 태국에 가 숙소를 잡았다. 멍석을 펴고 열나게 써댔다. 일곱 달에 걸친 그 기간은, 내가 뭔가에 집중하여 매일 규칙적으로 작업을 한 인생의 첫 번째 사례에 해당한다.

귀국한 건 2009년 초였다. 삼 년 가까이 비워뒀던 아파트엔 먼지가 건초처럼 쌓여 있었다. 그 폭신한 방석에 올라 초고를 수정했다. 발로 썼거나 악마가 낙서해놓은 부분을 지웠다. 그러다 지치면 열대에 부려놓은 추억과 누락된 사연들이 떠올라 멍하니 침을 흘렸다. 이 책은 많은 타액 속에서 피어났다.

하지만 이 책은 타액이 아니라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의 인생은 그간 살아오며 내린 결정과 더불어 우리가 내리지 않았던, 혹은 내릴 수 없었던 결정들에도 넉살좋게 빚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선택에서 소외된 적이 없었고, 흘러간 모든 시간들은 우리 스스로가 의도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사춘기 때 집중적으로 저지른 무수한 착오와 실수들을 통해 배웠다. 개중 어떤 건 꽤 심각해서, 아직까지 사지 멀쩡히 살아 있는 게 기적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우리가 떠날 때의 우리가 아니듯, 돌아온 곳도 떠날 때의 그 곳이 아니다. 우리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여행을 매순간 치러내며 살고 있다. 그 무정한 비가역성에 주목했다.

이 책은 또한 세속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도덕군자나 범죄자가 아니라 이웃에 관한 이야기다. 편집자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의 수가 이리 많은 건, 일단 인연이 얽혀버린 내 거지같은 친구들을 무대에서 완전히 철회하는 게 쉽지 않았던 까닭이다. 누구든 자르려 마음만 먹으면 그날 밤 꿈에 나타나 개판을 쳤다.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범신론자들의 나침반인 우연과 조화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이 자유롭다는 생각의 일부에는 모든 것이 다스려진다는 생각의 일부가 매달려 있다. 둘은 그런 식으로 이어져 있다. 우연과 조화가 시공을 초월해 소통할 때, 거기에서는 콴이 제 인생의 반에 걸쳐 들었던 천둥 같은 총소리가 난다. 탕!

비슷한 이유에서 이 책은 부분과 전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아주 제한된 어떤 지역에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들여다본 그 좁은 곳에 우리의 장엄한 은하가 통째로 담겨 있었다. 그로 인해 내가 느낀 현기증을 당신은 이 책 어디쯤에선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반드시 넣었어야 할 문장 하나를 빼먹었다는 더러운 꿈에 시달렸다. 그래서 위태롭기 짝이 없는 구조물이며, 언젠간 와르르 무너지고 말리라는 예감에 불안해했다. 그 악몽이 현실이 되었는지 어쩐지 나는 모르겠다. 알아도 이젠 어쩔 도리가 없다. 1994년부터 2009년 사이의 수쿰빗 소이 식스틴에 관하여 내 기력은 이미 소진되었다. 책에 미처 쓰지 못한 말이 있다면, 혹은 실수로 남겨진 부분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독자의 지혜를 바란다.

당신의 영혼은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혼돈의 형태였다. 당신이 이 책을 구입하기 위해 지불한 돈은, 그 혼돈에 일련의 질서를 부여한 내 노동의 대가다.

2010년 5월

박형서

목차

제1부 나나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제2부 일종의 아프리카

제3부 이방인들

제4부 소이 식스틴의 입장에서

작가 소개

박형서 지음

197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자정의 픽션』 『핸드메이드 픽션』, 장편소설 『새벽의 나나』가 있다. 대산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3년 8월 12일 | 최종 업데이트 2013년 8월 12일

ISBN 978-89-320-2464-4 | 가격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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