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9년 11월 26일 | ISBN 9788932020068

사양 · 167쪽 | 가격 10,000원

분야 장편소설

책소개

오정희 소설 미학의 우뚝한 봉우리
첫번째 장편소설 『새』 개정판 출간

책 소개

올해로 등단 42년차를 맞는 오정희 작가의 첫번째 장편소설 『새』 개정판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1996년 6월에 초판을 발행한 『새』는 그간 16쇄를 증쇄하며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으며, 한국 문체 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오정희 작품에 탄탄한 장편 서사를 더한 작품으로서 확고한 마니아층을 보유해왔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오정희 작가가 10여 년 만에 문장을 가다듬고 수차례의 퇴고를 거쳤으며, 외형도 현대적 감각에 맞도록 판형과 서체를 일신해 새로이 선보이게 되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남매의 짙은 상실감과 방황을 정갈한 언어로 형상화한 장편소설 『새』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열두 살 소녀의 눈을 통해, 세상의 황폐하고 구석진 삶의 현장을 서럽고도 치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가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겪은 일화를 모티프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은 불우한 상처와 그 기억이 한 영혼을 어떻게 병들어가게 하는지를 담박한 문장 속에 잔잔히 녹여내고 있다. 작가는 새로이 덧붙인 「작가의 말」을 통해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과 보호로부터, 존중으로부터 내쳐진 아이들은 문 없는, 단단히 봉인된 방과 같았고, 나는 있지도 않은 문을 찾아 안타깝게 더듬대는 형국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작가는 『새』를 집필하는 내내 철저하게 어린 소녀의 시각을 견지함으로써 이 세상의 선과 악, 행과 불행의 뿌리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새』는 한 어린 남매의 이야기입니다. 농촌에서 꽃을 재배하며 단란하게 살아가던 일가족이 홍수로 삶의 터전을 잃고 먹고살 길을 찾아 대도시로 이주하여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면서 가난과 불화와 가정의 해체라는 악순환의 과정을 착실히 밟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은 참된 본질을 잃어가고 황폐해집니다. 사회가 불안하고 가정이 무너질 때 가장 큰 희생자는 방어 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입니다. 버림받음과 폭력과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부서지는 어린 영혼은 성장하여 우리의 어둡고 고통스러운 미래가 된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리베라투르 상 수상 소감’ 중에서)

 

한국인 최초, 한국 문학작품으로 해외 문학상 수상!
―제13회 독일 ‘리베라투르 상’ 수상

2003년, 오정희 작가는 장편소설 『새』로 제13회 리베라투르 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독일의 기독교 재단이 주는 것으로 독일어로 번역 출간된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여류 작가들 중에서 선정해 시상하는 상으로서 역사와 전통이 깊다. 이 상의 수상은 오정희 작가 개인의 영예뿐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인이 한국어로 씌어진 작품으로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로서 한국문학의 해외진출사에서도 매우 뜻 깊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적인 문체 미학의 대가로 알려진 오정희 작가의 작품이 세계적인 보편성 역시 획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쾌거이기도 할 터. “독일에서는 오히려 침묵되고 있는 문제를 그 어떤 도덕적 단죄나 영웅화하려는 의도 없이 (냉철하게) 묘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제레미 게인스(리베라투르 상 심사위원장)의 수상 이유’는 오정희 문학이 가 닿는 ‘독보적 세계성’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나는 날았던 거야. 떨어지면 죽거든.
나는 그때 벌써 그걸 알았어.”
그 애는 나날이 말라간다.
나뭇가지같이 불거진 가슴팍 뼈는 가늘게 휘어 있다.
그 애는 아마 날기 위해 가벼워지려 하는지도 모른다.
새는 뼛속까지 비어 있기 때문에 날 수 있는 것이다.
그 애가 점점 더 말라서 대나무 피리처럼 소리를 낼 때쯤이면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려나 ‘오정희 없는 한국 문학’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오정희에 사로잡힌 적이 없이 문학을 한다는 것은 가능한가? 한국에서 문학에 대한 치명적인 열정에 붙들린다는 것은 ‘오정희’의 세계에 매혹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정희’라는 이름은 ‘문학’ 그 자체와 동의어이다”(『오정희 깊이읽기, 문학과지성사, 2007, 391쪽)라 평한 바 있으며,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오정희 문학 40년은 한국 문학이 여성적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존재론적 성찰의 새로운 지평을 전복적으로 환기한 40년이고, 한국 소설이 새로운 담론과 문체로 정녕 문학적인 문체의 집을 지을 수 있었던 40년이었다”(『오정희 깊이읽기』, 20쪽)고 평한 바 있다.
한국 문학에서 오정희 작가가 차지하는 위상은 문학사적인 동시에 세계사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가장 높고 너른 봉우리를 장편소설 『새』가 품고 있다. 시종 어린 소녀의 시선을 견지하는 가장 쉬운 언어로 씌어졌음에도, 그가 치열하게 담아내고 있는 철학과 사회적 인식의 폭은 빼어난 문학적 성과를 통해 돌올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의 불화와 폭력, 위선과 가식의 세계에 찌든 어린 남매의 불운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의 쓸쓸한 초상을 넘어 세계적인 불안과 현대화 과정에서 초래된 영혼의 황폐화를 뿌리째 폭로하고 있다.

오정희 작가는 1978년 강원도 춘천으로 이주한 이래 줄곧 그곳에서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리고 30년 만인 지난 2008년 겨울, 춘천 인근에 단정한 가옥 두 채를 짓고 그 안에 집필을 위한 서재를 따로 마련했다. 그곳에서, 등단 이후 40여 년의 문학적 성과를 넘어, 이제 그가 더 나아가 다다를 또 다른 문학 세계를 애독자들과 함께 고대해본다.

작품 줄거리

『새』는 한 어린 남매의 이야기이다. 가정불화로 엄마가 집을 나가자 아버지는 나(우미)와 남동생 우일이를 외할머니 집에 맡기고 먼 곳으로 일을 찾아 떠난다. 그러나 외할머니가 풍을 맞고 쓰러지자 외삼촌의 집을 거쳐 큰집으로 떠넘겨진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다.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아버지가 불쑥 찾아와 우리를 낯선 동네로 데려가고, 이어 낯선 여자를 데려다놓고는 다시 일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난다. 그 집에는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다. 새장에 새를 키우는 화물트럭 운전사 이씨, 공장집 문씨 아저씨 부부, 안집 할머니와 몸을 못 쓰고 누워 있는 그녀의 딸 연숙 아줌마 부부, 그리고 얼굴을 보기 힘든 외판원 정씨 아저씨 등등…… 다닥다닥 붙은 각자의 방에서 사람들은 숨죽인 채 서로를 경계하며 살아간다.
집들이가 있던 날, ‘그 여자’는 사내들 앞에서 꼬리를 쳤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나는 불안한 기다림 뒤의 안도감을 느낀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집에 있었고, 그 사이 나와 우일이는 5학년과 3학년이 되어 새 학교에 전학을 갔다. 그러나 아버지가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그 여자’가 집을 나가고, 이제 나와 우일이는 단둘이 산다. 그리고 자물쇠로 걸어 잠근 방에서 우리는 옆방의 새소리며 소리 죽인 흐느낌과 중얼거림을 듣는다.
반 아이들이 돌려가며 키우는 ‘곰순이’의 배를 가르고 꿰맨 사건 이후, 내게는 상담어머니가 생긴다. 철길 건너 고층 아파트에 사는 그녀는 내 일기도 봐주고 팥빙수도 사준다. 그 사이 어디서든 뛰어내리기를 좋아하는 우일이는 발목을 삐어 장님 침쟁이인 장 선생에게 치료를 받는다. 우일이는 자꾸 뛰어내리는 연습을 하면 언젠가 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일이는 장 선생이 키우는 개에게 발을 물리게 되고, 주위 어른들의 충동질로 그 개를 잡아먹게 된다.
우일이는 만화방엘 다니고, 하루종일 텔레비전을 보고, 학교도 가지 않는 채 창고에 사는 언니 오빠들과 어울려 다니며 담배를 피우고 문신을 한다. 겁 없는 남자가 될 거라고 한다. 그 사이 점점 멀리 배회하던 연숙 아줌마의 남편은 결국 돌아오지 않고, 공장집 문씨 아저씨네는 여자끼리 사는 부부임이, 교통사고를 당했던 정씨 아저씨는 살인을 저지르고 피해 다니던 인물임이 밝혀진다. 그리고 상담어머니의 집을 불쑥 찾아갔던 나는 그들의 불편한 시선과 수군거림을 듣는다.
우일이는 아침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는다. 밥도 먹지 않는 우일이는 혼자서 중얼거리고, 점점 말라만 가는 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이어,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기 위해 서울에 갔던 일이며, 삼층에서 자기를 내던졌던 일들을 떠들어댄다. 그해 꽃을 재배하며 살던 우리 가족은 우박과 홍수로 집과 꽃밭을 떠내려보내고 도시로 나왔었다. 우일이를 낳았을 때 아버지는 빈털터리였다.
우일이의 몸은 점점 물컹하고 조그매지고, 날기 위해서인지 뱃속의 것들까지 모조리 비운다. 그리고 발가벗겨진 우일이는 아버지가 엄마를 때렸었다고 떠들어댄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이불을 덮어씌운 뒤, 나는 이씨 아저씨의 새장을 들고 밤길을 나선다. 누군가 나를 가로막고 자신이 상담어머니라고 말한다.

작품 속으로

그 뒤로 우리는 외삼촌의 집으로 옮겨갔다. 외숙모는 잠을 자지 못해 병이 났다. 우리가 외숙모의 잠을 쫓았다. 외숙모는 아침마다 토끼처럼 새빨개진 눈을 하고 미치겠어, 미치겠어,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우일이가 이불에 오줌을 쌌을 때에도, 내가 달력에서 예쁜 여자 배우들의 얼굴을 모조리 오려내었을 때에도 외숙모는 하루 종일 미쳤었다. 냄비도 프라이팬도 밥상 위의 그릇들도, 마룻장과 방문짝들도 미치겠어, 미치겠어, 큰 소리로 꽝꽝거렸고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외숙모의 조그만 딸도 덩달아 미치겠어, 미치겠어, 혀 짧은 소리로 제 엄마의 말을 흉내 내었다.
외숙모가 매일매일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외삼촌의 집을 떠나 큰집으로 살러 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고 여름, 가을이 지났다. 다시 겨울이 오고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왔다. 눈과 비와 바람과 햇빛이 엄마의 얼굴을 지웠다. 우묵한 눈자위와 불룩한 코의 자취도 스러지고 나지막한 한숨과 중얼거림, 머리숱이 좋아 아홉 가지 흉을 가릴 거라면서 내 머리에 한없이 빗질하던 손길도 차츰 사라졌다. 엄마의 얼굴은 뿌옇게 흐린 껍질 속으로 안타깝게 숨어버리고 삭지 않은 피멍으로 언제나 꽃이 핀 듯 울긋불긋하던 무늬, 엄마의 얼굴에 그려지던 그림만 남았다. 문득 훅 스쳐가는 친숙한 냄새, 희미하게 떨리는 가녀린 부름을 들은 것 같아 뒤돌아보면 햇빛, 바람, 엷어진 그림자 같은 것이 있었다. 누가 엄마의 얼굴에 그림을 그렸나? 슬픔의 그림을 그렸나? (9~10쪽)

우리가 사는 방은 네모나고 밥상은 둥글다. 햇빛은 따뜻하고 얼음은 차갑다. 나는 크고 우일이는 작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단단하거나 물렁물렁하거나 희거나 검거나 빨갛거나 노랗거나…… 낮은 밝고 밤은 어둡다. 그러나 해가 지고 밤이 되기까지의 불분명하고 모호한 어스름,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우며 밀려와 가슴을 꽉 막히게, 안타깝게 하는 그 무엇에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처럼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그 사이를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 여자는 주먹만 한 감자의, 군데군데 옹이지어 파인 곳을 칼로 도려내며 이게 감자의 눈이라고, 무서운 독이 들어 있다고 말했었다. 감자도 눈이 있나? 독이 든 눈으로 무엇을 보나?

자주 꽃 핀 건 자주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아이들이 고무줄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우일이가 흥얼거렸다. 그만두지 못해? 우일이를 후려치며 나는 소리 질렀다.
우리는 모두 매일매일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중이지. 너는 지금의 내가 되기 전의 나야. 아니면 내가 되어가는 중인 너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보는 게 무서워 견딜 수 없어.
감자 눈을 파내면서 그 여자가 내게 해준 말이었다. (72~73쪽)

방문 열리는 소리에 설핏 눈이 떠졌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아버지의 손에 황금빛 머리타래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등뒤로 슬몃 감추었으나 나는 다 보아버렸다. 달이 밝은가? 희끄무레 떠 보이는 방 안의 어둠 속에서도 밝고 환하고 풍성하게 빛나는 황금빛을 보는 순간 나는 눈을 꽉 감았다. 무서울 땐 언제나…… 눈을 감으면 그 깜깜함이 무서움을 가려주었다. 문을 등지고 우뚝 서서 잠든 우리를 내려다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어둠 저편으로 숨었다.
아비가 온 줄도 모르고 얘들이 정신없이 곯아떨어졌구나.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 기차 타고 왔나?
우일이가 잠결에 웅얼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내 옆에 무겁게 몸을 뉘었다.
더운데 웬 옷을 이렇게 겹겹이 껴입고 자니. 내가 벗겨주마.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손이 내 티셔츠를 가슴팍까지 걷어올렸다. 술 냄새가 몹시 났다. 뜨거운 손이 가슴을 더듬었다. 이제 처녀가 다 되었구나.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젖몽우리가 도도록이 솟기 시작하는 가슴이 아얏 소리를 지르게 아팠지만 나는 비명을 참으며 눈을 꼭 감은 채 슬그머니 돌아누웠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는 손을 거두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도 불쌍하지만 나도 어지간히 불행하고 외롭고 기박한 인간이다. 잠시 후에 손이 또 건너왔다. 뜨겁고 조바심치는 손길이 또다시 젖가슴을 주무르고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꿈이었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버지는 없었다. 방의 윗목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꽃잎이 황금색으로 활짝 핀 해바라기 한 송이를 보았다. (119~20쪽)

우일이는 아마 날기 위해 뱃속의 것을 모조리 비운 모양이었다. 나는 우일이의 몸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손등에 희끗한 얼룩처럼 남아 있는 개에 물린 상처도, 조그만 잠지도 보았다. 온몸으로 푸른 무늬가 넓게 퍼지고 있었다. 팔뚝의 작은 문신에도 푸른 물이 들어 있었다. 침을 맞은 자리도 점점이 파랗게 변했다. 숱 많은 머리털 속, 멍든 듯 부풀어오른 한가운데 조그만 상처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애의 영혼이, 생명이 빠져나간 자리일까.
나는 이제 알았다. 우주소년 토토가 빛의 아이라는 표지, 둥그런 해무리는 이곳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발가벗겨진 우일이는 계속 떠들어대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때렸어. 매일매일 누가 잠든 엄마의 얼굴에 그림을 그렸어.
아버지는 단단하고 둥근 주먹으로 엄마를 때렸다. 가죽장갑을 끼고 감아쥔 오른손 주먹으로 탄력 있게 치면서 방 안으로 들어서면 엄마는 제발 그러지 말아요, 때리지 말아요, 소리를 지르며 방구석으로 달아났다. 엄마의 비명을 들으면서도 우리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방 한구석에서 숨죽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천천히 오랫동안 엄마를 때렸다. 그러면 엄마의 얼굴에는 붉고 푸른 무늬가 생겼다.
아버지가 왜 그랬을까, 누나?
그치라고, 입을 다물지 않으면 때려주겠다고 아무리 으름장을 놓아도 우일이는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알아들을 수 없게끔 커다랗게 왕왕 울려대는 우일이의 말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씌우고 방을 나왔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이씨 아저씨의 방문은 닫힌 채 조용한데 처마 밑에 새장이 걸려 있었다. 아저씨는 어두워지면 새장을 방 안에 들여놓아야 한다는 것을 깜박 잊었나 보았다. (157~58쪽)

오정희 자전 에세이 「내 소설 속의 아이들」 중에서

1990년 여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자원봉사자 교육 프로그램으로 나는 그 애를 처음 만났다. 세칭 불우 아동인 그 애를 돕는 상담어머니로서였다.
초등학교 5학년, 열두 살배기 그 애의 손톱에는 빨간 매니큐어 칠이 반쯤 벗겨져 있었고 귓불에 반짝이 스티커 귀걸이를 붙이고 있었다. 어머니가 가출한 뒤 노점상을 하는 아버지는 재혼하면서 전처소생의 남매에게 단칸셋방을 얻어주었다고 했다.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그 애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돌아와 상담 일지를 쓰면서 나는 종종 몇십 년 저편, 낡은 트렁크와 함께 심해로 묻혀버린 빨간 책의 소녀, 홀로 그림자춤을 추던 ‘마리’를, 어둡고 혼란스럽고 외로웠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곤 하였다.
여러 달이 지났어도 그 아이는 내게 풀 수 없는 암호였고 완강한 봉인이었다. 그 애는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원인 모를 열에 시달리기도 했다.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맞다면 원인 모를 고열과 두통은 자신의 작은 삶, 자신을 가두고 있는 혼돈과 절망에 대한 나름대로의 필사적 저항의 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무단 결석이 잦은 그 애를 집으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한낮인데도 볕이 잘 들지 않아 어둠침침한 방 안에서 동생과 함께 벽에 멍하니 기대 앉아 있던 그 애는 진정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줌마는 누군데요?” 발육이 몹시 부진해 영원히 자랄 것 같지 않은 그 애의 동생도 누나를 흉내 내어 내게 말했다. “아줌마는 누군데요?”
처음 만나던 때로부터 거의 일 년이 되어갈 즈음, 그 애 남매는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우리들의 관계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시 일 년쯤 지났을 때 나는 우연히 길에서 그 애를 보았다. 키가 조금 더 자랐지만 어딘가 애어른처럼 음울한 낯으로 길가 담장에 드리우는 자신의 긴 그림자를 보며 느릿느릿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손을 덥석 잡으며 반가워하는 내게 낯설고 의아한 눈길을 보내며 그 애가 말했다. “아줌마는 누구예요?”

『새』에 대한 해외의 평가들

『새』는 소설 전체를 열 살에서 열두 살까지의 한 소녀의 관점에서 서술하려는 야심찬 시도이다. 오정희가 이 계획을 매우 철저히 실행한 것에 대해 심사위원단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작가는 아주 능숙하게 그 어떤 격정도 없이 냉정하다 할 정도로 (주인공) 우미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홀로 남겨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서술 태도는 오정희가 독일에서는 오히려 침묵되고 있는 문제를 그 어떤 도덕적 단죄나 영웅화하려는 의도 없이 (냉철하게) 묘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제레미 게인스(리베라투르 상 심사위원장)의 ‘리베라투르 상 수상 이유’ 중에서

임박한 인간 영혼의 황폐화를 아이의 시선을 통해 더욱 날카롭게 그리고 있음. 클라우디아 크라마첵(독일의 문학비평가)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사회 비판적 소설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이나 방치는 특별히 한국적인 상황만은 아니다. ‘잔트암메어(Sandammeer)’(인터넷 서평 사이트)

현대화와 그에 따른 변동으로 인해 그 근본 토대가 뒤흔들려버린 세계에 대한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묘사. 『란드보테(Der Landbote)』(스위스 신문)

낯선가? 나아가 극히 이국적인가? 이런 수식어가 아시아 문학에 붙여지긴 하지만 이 경우 전혀 그렇지 않다. 오정희가 묘사하는 현상들은 서구나 아시아의 대도시 어디서건, 대가족 제도가 가져다주던 결속력을 잃어버리고, 사회적 네트워크가 선의의 피해를 막아줄 수 없는 사회에서는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다. 그 때문에 1947년에 태어난 한국의 뛰어난 작가인 오정희의 소설은 설득력 있는 보편성을 특징으로 지닌다. 『타게스 슈피겔(Der Tagesspiegel)』(독일 신문)

이 소설에는 문학적 과장이나 극적 제스처와 같은 과도함이 거의 없고 사건을 의식적으로 가볍게 서술하거나 주석을 달아 참견하지도 않는다. 문학에서의 일종의 바우하우스 양식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일체의 장식이 없는 명징함과 군더더기 없음이 인상적이다. 또한 인간, 특히 어린 아이의 존재(삶)가 어떤 메커니즘과 기능 속에 움직이는지 잘 알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마이어-고자우(오스트리아의 문학비평가), 월간지 『문학(Literaturen)』

서술기법이 특히 성공한 예인 이 작품을 통해 가장 재능 있고 설득력 있는 한국 여성 작가들 중의 한 사람을 알게 되는 기회를 『새』가 제공하고 있다. 『분트(Der Bund)』(스위스 신문)

극적인 이야기를 잘못된 격정이나 도덕적 색채 없이 서술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독자의 폐부를 찌르고 있다. 아니타 자파리, 『엠마(EMMA)』(독일 여성지)

작가의 말

『새』 개정판을 내면서

1996년도에 초판본을 내고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 소설을 쓸 당시의 마음이나 한 문장 한 문장 이어가던 기억은 만져질 듯 생생한데 그 사이 엄청난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개정판 교정지를 보면서 지금이라면 좀 다르게 쓸 것 같은 부분들도 짚어졌다. 그것은 그 세월 동안 알게 모르게 진행되어온, 인생과 문학에 대한 내 사유와 시각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불우한 환경에 처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경험이 동기가 되어 씌어졌다. 소설에서처럼 부모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유기된 어린 남매를 정기적으로 만나는 일이 내게 주어졌지만 일 년 남짓 계속된 나름대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담한 실패감만 남았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가녀리고 어린 영혼을 잠식해 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고,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린 허위의식이나 세상의 불친절과 거절로 차갑고 기형적으로 단련되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는 데 따른 부끄러움을 맛보기도 하였다.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과 보호로부터, 존중으로부터 내쳐진 아이들은 문 없는, 단단히 봉인된 방과 같았고, 나는 있지도 않은 문을 찾아 안타깝게 더듬대는 형국이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때의 참담함이나 부끄러움은 많이 엷어졌으나 나 자신이 또다시 그 아이들을 어딘가에 무책임하게 버려둔 듯한 부채감은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내게 이 소설의 뒤를 이어 써야 한다고 부추기곤 하였다.
작가로서 책을 내면서 자신이 쓴 소설에 또 무슨 말을 덧붙이겠는가. 모든 작가의 말들은 이미 소설 속에 다 들어 있을 터, 말미의 이 작은 지면이 나의 궁색한 변명과 췌언을 너그러이 허용하겠다는 출판사와 독자들의 배려로 여겨져 새삼 감사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지고 사라지기 십상이었을 이 책에 오래도록 애정을 보여주시는 문학과지성사에 마음으로부터 고마움을 전한다.

 

2009년 가을, 춘천에서
오정희
작가 소개

오정희 지음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0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1979년 「저녁의 게임」으로 이상문학상을, 1982년 「동경(銅鏡)」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동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독일어로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새』로 독일 리베라투르 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해외에서 한국인이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로서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사에서 매우 뜻 깊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저서로 소설집 『불의 강』 『유년의 뜰』 『바람의 넋』 『불꽃놀이』, 짧은소설집 『돼지꿈』 『가을 여자』, 장편소설 『새』, 동화집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를 비롯해 『내 마음의 무늬』 등 다수의 수필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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