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타작

김병익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9년 10월 15일 | ISBN 9788932019987

사양 · 412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기억의 문학, 문학의 기억
진정한 문학 속에 살아 숨 쉬는 도저한 작가 정신을 기리며

한국 문단과 지성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40년을 훌쩍 넘긴 그의 비평 활동 자체가 한국 현대 비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문학평론가 김병익이 새 비평집 『기억의 타작―도저한 작가 정신을 위하여』(2009)를 펴냈다. 직전의 비평집 『그래도 문학이 있어야 할 이유』(2004) 이후 5년에 걸쳐 쓰고 발표한 다양한 취지와 형식의 글들을 한데 모은 이 책에서 저자는, 작가와 작품, 인간과 세계, 삶과 정신을 ‘기억’이란 이름으로 붙들면서 문학과 기억의 내밀한 상존 관계에 대해 거듭 확인하고 있다. 앞서의 저서들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의 활발한 도입이 불러온 인류사의 혁명적 도약 속의 문학평론가로서 새로운 세기를 적극적으로 맞이하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고(『21세기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이후 본격적으로 도래한 21세기의 새로운 한국 문학의 지형을 신구 작가들의 면밀한 작품론을 통해 밝혀냈던 그가, 다시 ‘기억’과 ‘회고’라는 이름으로 문학의 본질, 그 진정성에 천착하게 된 데는 이 책의 1부에 묶인 묵직한 회고의 글들이 역할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의 부제인 ‘도저한 작가 정신을 위하여’가 상기하는 바와 같이, 저자는 지난해에 작고한 우리 소설 문학의 세 거목, 박경리 홍성원 이청준의 문학적 업적을 추모하며 비평적 정리를 도모한 글들을 책의 앞머리에 묶는 한편, 황동규 시인의 등단 50주년, 문학과지성사 창사 30주년 등의 기념을 계기로 한 회고적 성찰의 글들을 나란히 실으면서, 세월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시간을 거듭할수록 오히려 독자들의 마음속에 힘 있게 살아 숨 쉬는 문학의 본질적 정서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활자와 기억의 힘에 주목한다. 그리고 40여 년이 넘게 지속해온 문학적 교유는 물론이요, 인간적 친분을 두터이 쌓아왔던 그들의 작품을 예의 세밀한 눈으로 다시 읽어보는 가운데, 저자 자신 역시 삶의 마감, 생명의 쇠멸 앞에서 무력한 유한자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물리적 생멸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정신이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세계의 전모를 재구성하고 재생하는 그들의 문학이 있기에, 그리고 거듭 읽힐 수 있는 도저한 작가 정신이 그 속에 살아 숨 쉬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여 저자는 이미 앞서 간 문학인의 삶과 작품을 두루 살피면서, “인간은, 기억을 매개로 한 문학을 통하여 부활하며 혹은 문학을 매개로 한 기억으로 상존하여, 영원한 존재로 변화”할 수 있다는 자연스런 결론에 이른다.

1967년 10월, 『사상계』에 「문단의 세대 연대론」을 실으면서 본격적인 비평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그 후 『68문학』 동인을 거쳐 1970년에 다시 김현, 김치수, 김주연 등과 함께 계간지 『문학과지성』 창간, 1975년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설립으로 이어지는 행보 속에, 4․19세대 비평그룹의 핵심 일원으로 한국 문단과 지성계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이가 바로 평론가 김병익이다. 다시 말해 그는 한국 문학사의 지성적 전통을 발견하고 이를 최초로 정리한 비평가이자, 그것이 ‘문학’의 본질과 미학에 연결되는 접점을 정리함으로써 ‘문학’이 문학 외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롭고 품위 있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일찍이 한국 문단사를 최초로 정리하여 지성사의 맥락을 확립한 장본인인 것이다. 특히 기존의 전통적 가치가 갖는 완고한 보수성에 반기를 들고 한글을 무기로 한국 문학을 갱신해나간 새로운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동세대의 정신적 동질성을 밝히고 새로운 감수성의 근원을 구명하는 작업에 주력하였고, 이 고난스러운 비평적 싸움으로 오늘의 한국 문학이 자립적인 자신만의 전통과 향취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직접 책의 편집과 발행에 심혈을 기울여온 문학과지성사가, 지난 35년여 동안 한국 사회의 정신적 물질적 균열을 파헤치고 한국인의 지적 자원을 발굴하는 데 쉼 없는 노력을 경주해왔다는 점, 한국 문학을 풍요롭게 할 새로운 문학인들을 발견하고 조력하는 데 온 정성을 기울여온 점은 재강조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하여, 육신은 차갑게 식었지만 대신 문학이란 이름으로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회고의 글들은 물론이요, 2부의 과학과 예술의 생산적 만남, 새로운 독서 문화의 변화와 그 창의적 발전을 모색하는 글들과 3부의 도스토예프스키 전작과 토마스 만의 주요작품들을 수년에 걸쳐 되짚어 꼼꼼히 읽어낸 글모음들 모두, 저자의 오랜 문단 생활과 출판 경력이 맺은 귀한 알곡들임에 틀림없다. 때로는 가슴 뭉클한 문우지정으로, 때로는 장르 간 경계를 아우르며 도저한 사유슴 뭉을 통해 두루 통찰하는 지식인의 냉철한 시선으로 일관하는 저자의 글들은 진솔한 감동과 더불어 읽는 이에게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다. 어느 하나운 독서 예술이 창조되고 구성되며 서술되고 재현되는 이치를 밝혀내는 데 지극히 자연스러운 글의 모범을 비껴가년에 걸쳐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세상을을 당질해서 기억으로 챙기걸쳐혹은 그 기억을 문자로 형상화하여 작품으로 쟁여두는 일, 그 작품들을 통해 그 작가의 존재를 여미어 기리는 일,” 이는 어쩌면 문학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문학을 통해 삶의 진리와 인간의 가치를 깨우치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의미심장한 과제일 것이다.

[책머리에]

다른 예술도 그렇겠지만 특히 문학은, 인간과 세상을, 삶과 정신을, 그래서 이 세계 전모를 재구성하고 재생함으로써 이후의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기억해두기를 요구하고 그 실존을 환기하며 그 인격을 추념토록 하는 것이고, 기억은 문학을 통해 인간의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회상되고 재현하며 환기하고 추모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영원의 것으로 연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작가는 그 기억을 살아 있는 존재로 환원하며 인간과 세계의 모든 것을 현존의 생생함으로 살려내려 하고 있고 작품은 그것이 다루고 있는 세계를 되살리면서 한 순간의 것들을 시간을 뛰어넘어 영구한 존재상으로 현상시켜주는 한편 그 자신을 창조한 작가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찾아내줄 것을 기억의 명의로 주문한다.

추념, 추상, 추모 그리고 회상과 회억, 돌아보기와 다시 보기, 거기에 기념 등등, 기억과 한동네의 어휘들이 이때 내게 잇달아 튀어나오며 이것들이 죽음의 연습이며 대항이고 시간을 벗어나며 사망을 뛰어넘어 영원히 살아 있음, 영구히 존재해 있음을 위해 문학과 예술이 창조되고 구성되며 서술되고 재현되는 것이 아닐까, 묘사와 문체, 서술과 소재, 기법과 주제 등 모든 장치와 방법들은 그 기억을 진하게, 생생하게,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동원된 인간적 노력이 아닐까, 머릿속에 남은 것들을 현존 속으로 되살려내기 위한 고통스런 방안이며 탐욕스런 아우성이 아닐까 등등의 갖가지 생각이 함께 퍼뜩 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기억을 매개로 한 문학을 통하여 부활되며 혹은 문학을 매개로 한 기억으로 상존하여, 영원한 존재로 변화하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과 기억과의 이 전폭적이면서 내밀한 관계가 근래의 내게 끈질기게 달라붙고 있는 것을 깨달으면서 앞으로의 내 생각에 꾸준히 다듬어볼 주제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험한 세상, 그리움으로 돌아가기 ―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
소외를 벗어나기 위하여 ― 송영의 『새벽의 만찬』
말해질 수 없는 삶을 말하기 ―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시간 뒤에 숨은 ‘홀로움’으로, 그 내면의 여정 ― 황동규 시의 50년을 따라, 가다
도저한 삶, 자존의 문학 ― 박경리 선생을 위한 단상
다시 보기: 홍성원과 그의 문학
이청준 다시 만나기 ― 해한의 글쓰기, 화해로 가는 삶
한 문학 시대의 마감 ― 세 분 작가들이 남겨준 모습
자유와 개성 ― ‘문학과지성’의 비평적 지향
자유와 성찰 ― ‘문학과지성’의 지적 지향

제2부
자연과의 화해, 그 네 모습
오웰의 말손바닥 안에서 헤매기
검은 잎, 기형도, 그리고 김현
고희의 처녀 시집 ― 민병문 형의 『서리풀 공원』 발간을 축하하며
대학로 100, 그 신선한 자유의 유산
디카와 그 불만
예술과 과학, 그 만남의 세 모습
역사소설의 현재성
독서 문화의 변화와 창의적 읽기
한국 도서의 한자 표기와 조판 체제에 대하여

제3부
도스토예프스키 읽기
토마스 만 읽기

작가 소개

김병익 지음

193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성장했고,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문화부에서 기자 생활(1965~1975)을 했고, 한국기자협회장(1975)을 역임했으며, 계간 『문학과지성』 동인으로 참여했다. 문학과지성사를 창사(1975)하여 대표로 재직해오다 2000년에 퇴임한 후, 인하대 국문과 초빙교수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초대위원장(2005~2007)을 지냈다. 현재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으로 있다.

저서로는 『상황과 상상력』 『전망을 위한 성찰』 『열림과 일굼』 『숨은 진실과 문학』 『새로운 글쓰기와 문학의 진정성』 『21세기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래도 문학이 있어야 할 이유』 『기억의 타작』등의 비평집과, 『한국문단사』 『지식인됨의 괴로움』 『페루에는 페루 사람들이 산다』 『게으른 산책자의 변명』 등의 산문집, 그리고 『현대 프랑스 지성사』 『마르크시즘과 모더니즘』 등의 역서가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문화상, 팔봉비평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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