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 브리스트

대산세계문학총서 083

원제 Effi Briest

테오도르 폰타네 지음, 김영주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9년 9월 21일 | ISBN 9788932019949

사양 신국판 152x225mm · 430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도대체 누가 이 여성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19세기 독일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 테오도르 폰타네의 걸작

도서관의 책을 여섯 권으로 줄여야 한다면, 『에피 브리스트』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_토마스 만

19세기 독일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 테오도르 폰타네의 대표작 『에피 브리스트』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의 83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에피 브리스트』는 작가가 작고하기 직전에 완성한 만년의 대작 『슈테힐린 호수』와 함께 폰타네 소설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손꼽히며, 흔히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함께 19세기에 여성의 관점으로 쓰인 결혼 이야기 3부작 중 한 작품으로 거론된다.

주인공 에피 브리스트는 북부 독일의 한 귀족 집안의 무남독녀로 발랄하고 귀여운 17세의 소녀다. 소설은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구애하다 실패한 적도 있던 21세 연상의 남자 인스테텐 남작과 조건에 맞춰 결혼을 한 후 다른 남자와 우연히 불륜을 저지르며 겪게 되는 비극적인 운명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1880년대 프로이센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폰타네는 주인공 에피가 결혼, 간통, 결투, 이혼을 겪으며 파멸될 때까지의 과정을 담담한 문체로 묘사하여, 인습에 사로잡혀 인간성을 잃어버린 당대 프로이센 귀족 사회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은 여성의 운명을 주제로 하여 당대의 사회 현실을 비판한 가장 성공적인 사회소설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단순히 사회 비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 폰타네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집필한 소설이지만, 17세 소녀의 심리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는 『에피 브리스트』는 당대 큰 인기를 누리며 전 세계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죄르지 루카치는 에피를 가리켜 “폰타네가 형상화한 인물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평했으며, 사뮈엘 베케트는 자신의 희곡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에서 『에피 브리스트』를 하루에 한 장씩 읽으며 마음 아파하는 노인 크라프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이 소설이 유럽 심리소설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것은 예순이 다 되어서야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 폰타네의 성숙한 인생 체험, 겸허함, 인생의 지혜, 인간사와 세상사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이해심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이 소설은 독일 학생들의 필독서로 지정되어, 독일의 각급 학교에서 활발히 토론되고 있다. 또한 2009년 봄 최근 독일에서 주목받는 여성 영화감독 헤르민 훈트게르부르스에 의해서 영화화되는 등 모두 다섯 번에 걸쳐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중 뉴저먼시네마의 거장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에 의해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1974)가 유명하다.

작품의 줄거리

주인공 에피는 대대로 내려오는 호엔 크레멘 귀족 집안의 무남독녀로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행복하고 평화롭게 구김살 없이 자라난 생기발랄한 17세의 소녀다. 꾸밈없는 생명력과, 순진무구한 자연성을 지닌 에피는 썰매타기와 그네타기를 즐기며, 모험과 스릴을 좋아하고, 시적이고 환상적인 본성으로 삶의 기쁨과 자유를 누린다.

에피에게 케씬의 관구장 인스테텐 남작이 청혼을 하면서 사건의 발단이 이루어진다. 인스테텐은 에피보다 21세나 연상인 귀족 관리로서 사회적 지위, 촉망되는 장래 등이 결혼 결정의 요소로 작용하였고, 상호간의 자연스러운 사랑이나 이끌림 같은 것은 별로 고려되지 않아서 비극적 결말의 씨앗을 이미 내포하고 있는 관습적 결혼 결정이었다.

결혼 후, 신랑 인스테텐과 함께 케씬에서의 삶을 시작한 에피에게 결혼생활은 공허함과 적막함으로 점철된다. 에피가 부담해야 할 새로운 사회적 구속은 곧 에피를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관구장 부인이란 사회적인 부담은 그녀의 순진하고 자연스러운 천성에 부합되지 않았던 것이다.

에피는 우선 옹졸하고 편협하며 위선적인 케씬 시골 귀족들과의 의례적인 사교를 감당해야 했고, 공무로 자주 출장을 하며 사회적 출세와 명예에 사로잡힌 인스테텐과의 지루한 결혼생활은 에피에게 정서적․정신적․심리적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에피의 결혼생활에서 절대적으로 결핍된 부분은 결혼생활의 핵심 요소가 되어야 할 ‘사랑, 활기, 섬세한 관심’이었다.

에피는 중국 남자 유령에 대한 공포를 겪으면서 점차 그녀의 결혼이 그녀의 본질과는 다른 생활임을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인스테텐이 출장가고 혼자 자야 하는 밤이면 케씬 집에 출몰한다고 믿는 유령의 존재는 에피를 괴롭혔고, 특히 그 유령에 대한 인스테텐의 태도가 애매하여 남편에 대한 에피의 신뢰도는 서서히 떨어져갔다. 에피가 케씬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자고 남편에게 간청하였을 때, 인스테텐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치면서 에피는 커다란 배신감을 느낀다. 인스테텐이 에피 자신보다도 사회적 이목과 출세를 인생의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스테텐이 아내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이유는, 유령 때문에 집을 팔았다는 쑥덕공론이 그의 귀족 신분과 사회적 지위에 손상을 주기 때문이었다. 인스테텐은 모든 세상사를 사회적 기준에 맞추어 해석하며, 사회적 기준은 바로 그의 사고의 알파요 오메가이기 때문에 아내의 불안을 덜어주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사회적 고려에 더 큰 관심을 둔 것이다.

에피는 남편의 군대 시절 친구 크람파스와 우연하고 공교로운 기회에 혼외 관계를 갖는다. 그녀가 나중에 고백했듯, 크람파스는 단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잊어버린’ 남자에 불과하였으며, 에피가 탈출구로서 휩쓸려버린 사랑의 유희에 불과하였다. 소설에서 ‘슐론’이나 ‘조크’라는 불가사이한 자연현상이 상징하고 있듯이, 에피는 올바르지 못한 부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고자 노력했지만, 불행히도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여성에게 충성스러운 친절을 보이면서 여성의 심리를 잘 다룰 줄 아는 경솔한 카사노바 크람파스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금지된 것, 비밀스러운 것이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에피와 크람파스와의 부절적한 관계는 7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둘 사이의 비밀 편지 묶음이 우연한 기회에 인스테텐의 눈에 띄면서, 소설은 대전환을 갖고 당시의 관습대로 에피의 운명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인스테텐이 크람파스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그를 현장에서 사살한 것은, 그 자신의 개인적 복수 감정 때문이 아니고 오로지 사회의 이목과 명예 때문이었다. ‘인간은 전체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전체가 지시하는 규범을 따라야 한다’라는 인스테텐의 고백에서 개인의 행복보다는 사회와 명예를 우상으로 섬기는 그의 경직된 사회관이 드러난다. 그가 절친한 친구 뷜러스도르프에게 에피의 해묵은 부정을 이미 발설했고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난 이상, 그 사건은 이미 사회의 수중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앞서 유령의 문제에 대한 태도에서 이미 언급되었듯이, 인스테텐은 그의 모든 의식 구조가 사회에 얽매여 있고, 사회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사회를 초월한 행동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인스테텐은 훗날 자신의 행동이 무가치하다고 여기며 자신의 인생은 ‘실패작’이었다고 고백하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사회의 대변자 인스테텐은 완전한 패배를 느낀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는 행복이 존재하며, 그도 과거 한때는 그러한 행복을 소유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못하며 또 가질 수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며, 사회를 떠나 명예나 규범이 없는 아프리카 같은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심경을 밝히고, 처절한 불행과 고독 속에서 불행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에피는 이혼당한 후, 고통과 은둔의 생활을 산다. 에피는 그녀의 계급 사회로부터, 또 그녀가 낳은 딸 안니로부터 외면당한다. 사회는 부정한 여성 에피를 결코 용납하지 않고, 에피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다.

호엔 크레멘에 다시 돌아와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도 에피는 옛날의 건강을 되찾지 못하고, 폐결핵으로 서서히 죽어가지만, 그녀의 영혼은 원숙한 인간성에 도달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 초연한 태도를 보여, 죽음이란 세상의 축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며, 설령 그 시기가 좀 앞당겨졌다 해도 그리 애석할 일이 아니라는 체념의 경지를 갖는다.

에피는 죽음 직전에 인스테텐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에피는 ‘그가 한 행동은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가 올바르게 행동한 것이라고’ 이해하며 죽어간다. 그것은 스스로 불행의 올가미 속에서 후회와 고통의 삶을 사는 인스테텐을 훨씬 능가하는 모습이며, 에피가 도달한 휴머니티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책 속으로

인스테텐은 친절하고 훌륭하지만 연인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에피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자신감 때문에 에피에게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프리드리히가 등잔불을 갖고 오면 인스테텐은 에피의 방에서 그의 방으로 들어가는 게 거의 하나의 규칙이었다. 그는 늘 “난 아직 끝내야 할 복잡한 일이 있소”라는 말을 남겼다. 문에 커튼이 쳐져 있어서 법률 서류 넘기는 소리, 심지어는 펜을 끼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이럴 때면 롤로가 와서 그녀 앞에 있는 벽난로 양탄자 위에 엎드렸다. 마치 ‘제가 다시 당신을 보살펴드리죠. 다른 사람이 하지 않으니까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139쪽)

두세 번 그녀의 입술에서 기도가 새어 나왔으나 돌연 그게 죽은 낱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공포에 떨었다. 동시에 마법의 영역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그 속에서 헤쳐나오려 하지 않았다.
“에피!”라는 음성이 그녀의 귓전에서 나지막하게 울렸다. 그녀는 남자의 떨리는 음성을 들었다. 그다음에 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서, 그녀가 계속 오므리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들을 폈다. 그러고는 거기에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는 마치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사람들은 숲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녀 앞 약간 떨어진 곳에서 재빠르게 앞으로 달려가는 썰매들의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점점 확실해졌다. (220~21쪽)

요한나는 신문을 손에 들고 굵은 잉크 선으로 줄쳐진 부분을 조그만 소리로 읽었다.

마감 직전,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어제 아침 동(東)폼멜 해수욕장 케씬에서 본청(카이트 가 소재) 고문관 V. I와 크람파스 소령과의 사이에 결투가 일어나서 크람파스 소령이 사망했다고 함. 소령과 아직 젊고 아름다운 고문관 부인과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고 함.

“이런 신문들이 도대체 뭘 잔뜩 써 갈기고 있담.”
알고 있던 새 소식이 이미 다 알려져서 김샜다는 표정으로 요한나가 말했다. (337~38쪽)

“그이가 이것만은 꼭 아셨으면 해요. 저의 제일 행복한 시절에 속하는 투병 생활 동안 전 그이의 모든 행동이 옳았다는 걸 분명히 깨달았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가련한 크람파스의 사건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이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저를 가장 괴롭혔던 것으로서 제가 낳은 자식이 제게 방어 태세를 취하도록 교육시켰던 그이의 처사도 옳았어요. 그게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고 너무나도 저를 가슴 아프게 했지만 말예요. 제가 이렇게 그가 옳았다고 생각하며 죽어갔다고 그이에게 전해주세요. 이 같은 내 진심을 전해주면 그에게 위로가 될 것이고 용기를 북돋워줄 것이며 어쩌면 모든 것에 대해 다 좋게 생각하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그이는 천성으로 선량한 면을 많이 갖고 있으며 사랑을 지니지 않는 사람들의 고상함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405~06쪽)

목차

에피 브리스트

옮긴이의 말·테오도르 폰타네의 걸작, 『에피 브리스트』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2년 8월 28일 | 최종 업데이트 2012년 8월 28일

ISBN 978-89-320-1994-9 | 가격 10,000원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1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