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하실의 애완동물

김나정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9년 7월 6일 | ISBN 9788932019529

사양 양장 · · 267쪽 | 가격 9,500원

책소개

밑도 끝도 없는 호기심으로 엿본 일상의 은밀함

“무엇을, 혹은 누구를 보셨습니까?”

섬세한 구성과 치밀한 관찰,
도발하듯 때론 침묵으로 써 내려간 이 세계의 비밀!

거침없는 상상력, 끝없는 호기심의 작가로 기억될 소설가 김나정의 첫 소설집 『내 지하실의 애완동물』(문학과지성사, 2009)이 발간되었다. ‘새로운 알고리즘의 알레고리’를 선보이며, 독창적 행보를 해온 김나정의 9편의 단편들은 여지껏 보아왔던 소설들과 이제 막 태어나기 시작하는 새로운 소설들의 ‘교두보’이자 너무 낯설어 외려 친근한, 이야기의 ‘신대륙’을 보여줄 것이다.

새로운, 새로운!
어릴 적, 누구나 쥐고 읽으며 빠져들던 동화 속의 세계, 혹은 만화 속의 세계는 너무 많은 비밀을 내포하고 있던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증명한다. 그러나, 하나둘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의 호기심은 점점 사라져간다. 상상하던 것들이 좌절되거나, 실제가 되는 동안 우리의 궁금증들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익숙해져가고 있는 중이다. 모르는 체로 불가능성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꾼의 탄생_“멍멍아. 머엉멍아.”
이야기꾼이야 늘, 들어본 듯한 이야기들로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모든 서사 구조에는 원형이 있다. 원형의 변형, 변형의 변형을 통과하여, 지금 여기에 이야기들은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다. 어쩌면 이 시대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에 빠져 있다. ‘새롭다’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 정도로. 지금 새롭다는 말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 막 도착한 ‘새로운’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장하여, 느리지만, 꾸준한 행보로 자기 영역을 만들고 넓혀가던 소설가 김나정의 소설집 『내 지하실의 애완동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생생 속 생경
김나정의 소설들은 신기하다. 소설 내 모든 일들이 현실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도시/동네 같은 그녀의 소설들은, ‘배철’ ‘이괄호’ ‘이수현’ 등 조금도 낯설지 않은 이름의 주인공들로 꾸려진다. 이 모순에서 태어나는 신기함이 김나정 소설의 ‘힘’이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9편의 소설들은 하나 같이 ‘생생함 속 생경함’의 에너지로 읽는 이를 압도한다. 이 압도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내 근처로부터 ‘거리두기’(사물을 멀리 떨어뜨리거나 혹은, 내가 멀리 떨어져서)는 늘 냉혹한 판단을 갖게 한다.

위선과 악이 부끄럽지 않은 한국 사회, 아비규환의 이 아수라장에서 살아가다보니 인간의 본성과 욕망과 행위가 상호 작용하여 빚어내는 윤리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일이 무척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선의와 적의가 날카롭게 부딪치는 검술 시합 같은 것이기에 이런 고민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말이지요. [……] 이 소설책은 수다스럽지 않은 조용한 목소리로 인랸의 여러 국면에 대해 물음을 던집니다.
_해설 「착시를 부르는 얼굴」 중에서

어쩌면 너무 뻔한 이야기, ‘위선과 악’이라는 전혀 새롭지 않는 주제는 그러나, 아직도 혹은 더욱더 이야기되어야 하는, 다뤄져야 하는 주제다. 이 소설집의 해설을 맡은 허윤진 씨가 “아수라장”이라 표현한, 한국 사회라면 피할 수 없다. 그렇기 하기 위해 생경함은 꼭 필요하다.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적당한 악과 적당한 위선이 너무 익숙해진 까닭이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서 혹은 멀리 떨어뜨려놓고 그 거리에서 ‘지금’을 봐야 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필수불가결의 해결을 요구하는 ‘지금’이 당면해 있는 문제다. 이 “조용한 목소리”는 그렇기 때문에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새로움’이다. 어쩌면 ‘낯설음’과 유사한 이 ‘새로움’이라는 도구는 그러나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는 점에서 ‘낯설음’과 차별된다.

문학적 글쓰기는 허구이기에, 세계에 대한 하나의 가정형 문장과도 같다. [……] 작가는 가정법의 삶을 수백 번 수천 번 살고 살린다.
_해설 「착시를 부르는 얼굴」 중에서

허윤진 씨의 지적대로, ‘가정법’의 새로움은 ‘문장’이면서 동시에 ‘삶’이다. 그리고 이 ‘가정’은 “만일 당신의 삶이라면”임과 동시에 “이와 다를 바 없다”라는 결정형의 문장이기도 하다. 소설은 전제를 붙인 삶과 다름 아닌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틀스의 다섯번째 멤버」의 소녀도, 「《 》」의 주인공 괄호도 안쓰럽거나, 우스꽝스럽지만, 사실 그들은 우리 속의 파편이라고 하나의 ‘가정법’으로 말하고 있다. 그 가정법을 증명하는 것은 익명성이다. 이 익명성은 ‘가정’을 ‘가정’한다. 이번 소설집 속 모든 소설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익명의 존재들은 그런 ‘가정법’의 증명이다. 이러한 익명을 통해 작가는 그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고 독자들을 불러 모은다.

이렇게 ‘생생함과 생경함’의 혼재 속에서, 가정과 익명을 이용하며, 『내 지하실의 애완동물』은 낯익은 새로움을 창출한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창출한 ‘새로움’을 수단으로 하여 더 나간다는 것이다. 한 발짝 더 간 곳은 어쩌면 너무 뻔한 그러나,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닌 것들의 세계이며, 그 세계는 다시 우리를, 똑바로 가리키고 있다. 멀리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이 새로운 이야기꾼으로부터 우리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내용 요약

「비틀스의 다섯번째 멤버」
소설가 김나정의 시작.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작이다. “구성 요소들을 하나의 전체 속에 적절하게 배열 혹은 반복하여 일정한 분위기와 정서를 산출하는 능력에 있어 탁월하다”(박완서, 김화영)는 평을 받았다. 바닷가 어떤 도시의 여관에서 벌어지는 파국을 개입없이 조용한 시선으로 따라가는 수작이다.

「이것은 개가 아니다」
키우던 개를 ‘곱게’ 버리려는 한 남자의 여정을 재치 있고, 조금은 유머러스하게, 그러나 정작 작가 본인은 조금도 웃지 않는 채 펼쳐놓는다. 아무리 버리려 해도 도저히 버려지지 않는 개를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독자들은 자신의 가슴 속에 난, 알 수 없는 크기의 구멍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 》」
‘문장 부호’로 된 특이한 제목을 가진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이괄호’의 이름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현대인의 은밀하고 치졸한 욕망을 상징한다. 어느 날 취업준비생인 이괄호는 골목에서 동사 직전의 여인을 발견한다. 우여곡절 끝에 지하실에 내려놓은 여자는 그러나, 이상하다. 욕망에 핑계를 덧입혀 사랑인 척 여자와 관계를 맺는 괄호. 그러나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되자, 이내 모든 것으로 부터 도망쳐버리고 만다.

「주관식 생존문제」
고아 배철은 두 번이나 입양된 행운아이자, 두 번 다 파행을 당하게 된 불운한 아이. 세번째 입양은 마지막 기회다. 윤수란 새로운 이름(자아)을 얻은 배철은 파행되지 않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 열심이다. 그러나 곤란한 일이 생겼다. 그토록 싫어하는 삼계탕을 먹어야 한다니, 그것도 매일. 탐욕과 관계에 대한 고찰.

「하멜른」
「비틀스의 다섯번째 멤버」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소설이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잔인할 정도로 건조한 시선을 통해 대숲에 살게 되는, 결핍된 이들로 구성된 가정의 몰락을 효과적으로 그려내었다. 마치 연작 그림을 보는 듯한 이 소설에서 작가의 필력과 섬세함의 전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성장 소설의 성인 버전으로도 읽을 수 있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가족 속 숨어 있는 ‘비밀의 존재’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폭로한다.

「너희들」
인류의 종말이 혹은, 종말에 가까운 재앙이 예고된다면? 아버지와 새엄마에게 버림을 받게 된 남매의 이야기는 전통 서사의 틀을 차용하면서,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래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몸서리처지도록 사실적인 묘사는 그리하여 소설이라는 허구의 장르를 ‘생생함’ 위로 연착륙한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바둑이도?」
메타적 글쓰기에 가까운 이 소설은 줄기차게 “행운의 편지”의 기원과 그 의미를 추적한다. 끊임없이 변주되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우리는 허를 찔린 듯 그대로 멈춰 의지와 사실, 우연의 역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소설집 내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는 이 소설은, 다변적인 서사의 확장으로 김나정 소설의 미래, 그 한 면을 드러낸다.

「우리 동네 꽃도령」
종말을 예언한 무당의 딸(장님)의 예언과 그 예언을 지켜주고 싶은 아비의 좌충우돌을 그려낸 소설. 예언을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무능한 아비는 눈치만 볼 뿐이다. 문예지 등에 발표된 적이 없는 소설로, 이번 소설집을 위해 특별히 쓰였다. 암담한 운명의 소유자인 꽃도령과 그 딸의, 실패가 예정된 미래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측은함도, 동정심도 아닌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의 불편 어린 당혹감이다.

「구」
김나정의 장기를 모두 볼 수 있는 탁월한 작품이다. 유괴를 통해 가족을 일어버린 가족의 깊숙한 내면, 그속에 잠재되어 있는 잔인함을 여자 아이의 눈으로 샅샅이 드러낸다. “틀림없다. 그 여자다”라는 인상적인 구절로 시작되는 이 소설의 결말은 한 세계를 구축한 소설집의 마지막으로도 조금의 손색이 없을 것이다.

■본문에서

나는 연필을 쥐고 창밖을 내다본다. 창 저편은 캄캄하다. 허공이다.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꿈과 삶의 경계는 지워진다. 얼굴 없는 여자들도 나와 함께 깨끗하게 사라질 것이다.
십자가는 오늘도 불을 밝히고 있다. 방바닥에 붉은 빛이 고여 있다. 수현이는 여덟 해를 살았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애는 언제까지나 여덟 살 어린아이로 남아 있다. 그 애의 생은 거기서 멈췄다. 초록 원피스를 입은 동생은 자라지도 늙지도 않는다. 내가 만난 젊고 늙은 아홉 여자는 웃고 슬퍼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디선가 생은 이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그 애의 생을 끊임없이 잇대주고 싶었다.
나는 공책을 꾹꾹 눌러 펼친다. 잊지 말자. 잊지 않기 위해서는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빠짐없이 적어두어야 한다. 이야기 속 여자들은 점점 자라나고, 모습을 달리한다. 내 앞에 백지가 있다. 첫 줄에 ‘9’라고 썼다. 손에 연필을 꼭 쥔다. 나는 한 줄 한 줄 아홉번째 여자에 대해 써내려간다.

틀림없다, 그 여자다.
나는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던 그 여자와 우연히 마주쳤다. 살아생전 한 번쯤은 만날 거라고 믿고 싶었다.
-「구」 중에서

작가의 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버지가 레고 블록을 보냈다. 우주기지와 스위트 홈, 두 세트였다. 가지고 놀다보니, 섞였다. 우주 비행사들은 영국제 찻잔을 들었고, 우주기지에는 삼각뿔 나무가 섰다. 우듬지에 문어 괴물과 종달새가 둥우리를 틀었다. 조립식 주택의 앞마당에는 우주선 발사대가 섰는데, 나는 모가지가 잘 빠지는 레고 인형들을 거기 태워 벽에 던졌다. 잘도 박살났다. 주섬주섬 주워 이리저리 끼워 오후의 티 파티로 부활시키고자 했다. 조각들이 턱없이 모자랐다. 레고 인간들은 침묵했다. 그린 듯한 미소만 지었다. 나야 막막했다. 그럴싸한 뭔가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쉽사리 버림받았다. 다행히 뒤죽박죽은 나의 장기(長技)였다.

*

불탄 집, 잿더미를 뒤져 쓸 만한 것을 찾았다. 못만 한 줌 나왔다. 몹쓸 못이었다. 아무 데나 박아댔다. 흰 벽의 검은 대가리들, 종일 종알거렸다. 내 벽의 얇음을 알았다.

*

도톰한 양털 조끼 갖고 싶어
눈 맞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오랫동안 눈만 왔네, 에취
눈 내리는 흰 벌판에
발자국만
타닥, 타다닥, 타닥
맨 어깨 위에
토닥, 토닥, 토다닥
눈이 내려앉아, 에취

갓 태어난 새끼 양의 콧등
막 첫눈 보고 갸우뚱
눈 속에서 빙빙 도는
이 흰 털들은 누구 거지?

가볍게

어깨를 적시는 따뜻한,
털 깎인 하얀 달이 저기, 에취
눈 맞으며
왈츠 스텝으로 반짝반짝
내게 가볍게, 와주었던
도톰히, 나를 감싸주었던 모든 것들아
고맙다
토닥토닥

2009년 6월
김나정

작가 소개

김나정 지음

2003년 『동아일보』 단편소설 부문 당선, 2007년 『문학동네』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 2010년 『한국일보』 희곡 부문이 당선되어 등단. 단편소설집으로『내 지하실의 애완동물』(2009, 문학과지성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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