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지디마자 시선집

원제 時間

지디마자 지음 | 백지운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9년 6월 29일 | ISBN 9788932019710

사양 신국판 152x225mm · 243쪽 | 가격 10,000원

분야 외국시

책소개

중국 소수민족을 대표하는 걸출한 시인 지디마자
변방의 복잡한 현실과 풍부한 문화가 이뤄낸 독특한 시 시계

“지디마자의 시를 읽으면 영혼을 울리는 힘이 느껴진다”

중국의 소수민족인 이족(彝族) 출신 시인 지디마자(吉狄馬加)의 시선집 『시간』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되었다. 1985년 시집 『첫사랑의 노래』로 문단에 데뷔한 지디마자는 소박한 언어, 청신한 이미지,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짙은 감성과 철리(哲理)가 담겨 있는 시를 꾸준히 발표해오면서 중국 현대 시단에 깊은 영향을 미친 시인이다.

중국 서남부 산악지대인 쓰촨 성(四川 省) 량산(凉山)에서 자치구를 형성하여 살고 있는 이족은 중국의 대표적인 소수민족으로, 그 선조들이 고유 언어와 문자로 방대한 양의 경전과 비문(碑文)을 남겼을 만큼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고 있다. 문화대혁명이 종결되고 1980년대 이후 이른바 신시기가 시작되면서 중국 문단에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자, 풍부한 문화적 전통의 영향을 받은 이족 출신 작가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데, 지디마자는 이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지디마자의 초기 시를 살펴보면 선명한 민족적 색채와 정서를 느낄 수 있다. 깊이 각인된 민족성……. 그의 시에는 자신의 민족과 그 터전인 대지에 대한 진지한 사랑이 넘쳐흐른다. 이족이 살고 있는 지역의 명산인 ‘다량 산’과 ‘샤오량 산,’ 이족의 전통적 악기인 ‘커우시엔,’ ‘마부’ 등 지디마자가 선택한 시어는 이족의 역사, 문화, 신화, 풍속, 그리고 현재의 생존 양상을 드러내어, 오랜 민족의 내면세계를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고 있다.

나는 커우시엔
빛나는 소녀의 시간에서
적막한 노년까지
영원히 그녀의 가슴을 지키리
나는 커우시엔
운명은 나를
그녀의 심장 옆에 잠들라 하네
그녀는 내가 있어
슬픔과 기쁨을
모두 어둠에 털어놓지
―「커우시엔의 변명」 부분

지디마자는 이렇게 민족적인 색채가 짙은 시를 쓰는 것이 이족이라는 개별 민족의 운명에 대한 사색이자, 나날이 가속화하는 문화동질화의 추세 속에 문화의 개성이 압살당하는 데 대한 반항이자 분노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단순히 민족성에 호소하는 작품인 것만은 아니다. 그의 시는 이족의 오랜 문명을 지속시킬 뿐 아니라 그것에 살아 있는 시대의 숨결을 부여하여 이족의 문화를 전혀 알지 못하는 독자들에게도 보편적인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아직 기억해?
저 질러부터로 통하는 작은 길을
어느 단꿀이 흐르는 황혼녘에
당신이 내게 말했지
내 뜨개바늘을 잃어버렸어요
빨리 좀 찾아줘요
(나는 온 길바닥을 찾아 헤맸어)

아직 기억해?
저 질러부터로 통하는 작은 길을
어느 침울한 저녁
내가 당신에게 말했지
내 심장을 깊숙이 찌르는 것이
바로 당신의 바늘이었어
(그녀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어)
―「대답」 전문

어떤 사내가 두건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주었네
멀리서 들려온 천둥 탓일까
어느 초여름의 쌀쌀한 기운 탓일까
그녀는 외지 놈과 달아나버렸지
원래 한여름 저녁 무렵쯤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돌아오니 이미 겨울날 새벽녘이었어
그로부터 그녀는 밤이면 달빛 아래서
남몰래 두건에 수놓인 체크무늬를 세고 있다네
―「두건」 부분

최근 들어 그의 창작은 고향-민족으로부터 세계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그의 시는 휴머니즘과 박애주의 그리고 인류와 세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이런 면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시로 2005년에 발표된 「절망과 희망 사이」가 있다. 지디마자는 예루살렘에서 발발한 통근 버스 폭발 사건을 보고, 전쟁과 유혈 충돌에 대한 분노와 평화에 대한 지향을 펼쳐내는 이 시를 지었다.

이 도시의 역사는
숙명처럼
탄생하던 날부터
배반과 증오가 인간을 따라다녔다
이곳의 돌을 쓰다듬자
인류의 눈물이 만져졌다
[……]
예루살렘의 성서
마지막 장에 무엇이 씌어 있는지
나는 모르지
그러나 희망과 절망 사이
예루살렘 이 고도에는
오로지 하나의 선택이 있으니
―바로 평화!
―「절망과 희망 사이」 부분

지디마자의 시는 중국을 넘어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면서, 2006년 러시아작가협회로부터 숄로호프문학상을, 불가리아작가협회로부터 표창을 받는 등 본격적으로 국제 시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이번 발간된 한국어판 『시간』은 지디마자의 10여 권의 시집 중에서 107편의 대표 시를 묶어 2007년 중국의 운남인민출판사(雲南人民出版社)에서 출간된 동명의 시집을 완역한 것이다.

지디마자는 발군의 시인이다. 그의 시는 민족성과 세계성이 통일된 경지에 도달해 있다. 민족성과 세계성의 융합은 창작 초기부터 그의 일관된 시적 주제였지만, 뒤로 갈수록 한층 자각적으로 심화되었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그의 창작은 고향-민족으로부터 세계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의 풍부한 상상력과 소박한 언어, 청신한 이미지들에는 짙은 감성과 생활의 철리(哲理)가 담겨 있으며, 그 자각적 민족애와 인류의식은 중국 당대 문단에 전무후무한 것일뿐더러 세계문학에도 소중한 기여를 하고 있다.
_양위메이(楊玉梅), 「지디마자―민족정신과 인류의식의 시적 해석」 중에서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한국은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 유구한 문화전통을 자랑하는 이 나라에 나는 특별한 인상을 받았다. 시인의 영감으로, 한국인이 오랜 민족문화와 뿌리 깊은 역사적 유전자를 계승하면서 또한 열린 마음으로 현대정신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수도 서울은 전형적인 예이다. 전통과 현대를 걸쳐 있는 이 도시는 선택과 지양 사이에서 끊임없이 배회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 도시의 동방적 분위기에 한층 친밀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 안에 내포된 창조적인 현대 정신에 감동을 받았다. 내 시집이 한국어로 출판되어 나온다는 소식에 기쁨으로 들떴던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리라. 나의 시가 또 다른 시성(詩性)을 지닌 언어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으리라는 생각에, 내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기대로 충만하다. 이는 한중 문화교류의 성과이며 한중 작가 간의 두터운 우애가 맺은 결실이다. 이 시집이 한국어로 출판될 수 있도록 애써주신 홍정선 선생님과 역자 백지운 씨에게 감사드린다. 번역가의 탁월한 재능 없이, 다른 민족의 언어로 된 시를 상상할 수 있을까. 과거에 나는 시의 번역이란 번역가의 모험이거나 벼랑 끝에서 얻은 구사일생, 아니 오로지 벼랑 끝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번 시집의 한국어판 출간이 나와 한국의 독자들 사이에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주리라 믿는다. 나의 시가 아름다운 한국어를 통해 비상할 힘을 얻기를, 모든 한국 독자들의 숭고한 영혼의 세계로 날아오르기를 바랄 뿐이다.

2009년 6월, 베이징에서
지디마자

목차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또 다른 언어로의 비상

자화상
사냥꾼의 바위
대답
‘잠’의 화음
이족, 불을 말하다
커우시엔의 변명
민가(民歌)
대비
늙은 투우
죽은 투우
어머니의 손
검은 강물
두건
오래된 대지
커우시엔 켜는 노인
이족의 노래
강물에 감사하다
나의 소원
나에게
「송혼경(送魂經)」을 들으며
이해
잃어버린 전통
구리라다의 암양(巖羊)
부락의 리듬
자장가
인상

추억의 노래
블랙 랩소디
바위
산 그림자
고향의 신령
세월
사라진 조각
산속
추모
먼 곳
쓴 메밀
땅속에 묻힌 단어
보이지 않는 사람
비모를 지켜라
비모의 음성
기수
샤오홍의 하얼빈
안장
산골 소녀에게
첫사랑
마지막 외침
꿈의 변주곡
의미
추모집에 제(題)함
이주한 부락
성회절의 기도
이마얼보
황혼의 그리움
가을날의 초상
부투어 소녀
지난날
제사(題辭)
먼 산
이족이 꿈꾸는 얼굴
하얀 세상

보이지 않는 파동
고향의 화장터
태양
왜냐하면……
나는 갈망한다
영혼의 주소
부투어의 소녀에게
무제
이족
염소
이방인
살바토레 콰시모도의 적에게
편지
가을날
그리스도와 총독
사자산의 선사
집시
가을의 눈
고통에 바치는 송가
환영사
술 생각
티베트의 개
팔(八)거리
마지막 술꾼
암초의 최후
만리장성
세상의 끝
사슴의 변신
토담
원주민에 바치는 노래
오키프의 정원
이십세기를 돌아보며
청춘 예찬
대지에 감사를
누나와 고모들에게
자유
1987년에 보내다
절망과 희망 사이
듣자 하니……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한다
생명의 경외
세상의 강물에게
추억의 협궤열차
시간

해설|지디마자의 『시간』―민족정신과 민족문화를 말하다․양종저(楊宗澤)
해설|지디마자―민족정신과 인류의식의 시적 해석․양위메이(楊玉梅)

작가 소개

지디마자 지음

1961년 중국 쓰촨 성(四川省) 량산(凉山)에서 소수민족인 이족(彝族)으로 태어났다. 시난민주학원(西南民族學院) 중문과를 졸업했다. 1985년 첫 시집 『첫사랑의 노래』를 발표한 이래 현재까지 『어느 이족의 꿈』 『땅속에 묻힌 단어』 등 10여 편의 시집을 출판했다. 신시(新詩) 상, 전국소수민족문학시가최고상, 쓰촨 성 문학상, 민족문학시가상, 충칭 문학상 등 중국의 국가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그의 시는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스페인어, 불가리아어, 세르비아어, 마케도니아어, 루마니아어, 몽골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국제 시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06년에는 러시아작가협회로부터 숄로호프문학상을, 불가리아작가협회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회장, 중국시가학회 상임 부회장, 중화전국청년연합회 부주석, 10차 전국정협(政協) 정협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칭하이 성(靑海省)의 부성장을 맡고 있다.

백지운 옮김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중국 근현대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일본과 아시아』(공역), 『제국의 눈』(공역), 『열렬한 책읽기』, 『위미』 등이 있다. 현재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근대 동아시아의 문학 및 문화에 대한 비교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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