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8년 11월 27일 | ISBN 9788932019062

사양 · 280쪽 | 가격 10,000원

분야 장편소설

책소개

철에 장악된, 지난날의 녹슬어버린 자화상

얼굴 없는 다수, 익명의 그들의 삶이 마모되어간다
아주 천천히……

다시 한 번, 작가 김숨이 불러들이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기억, 『철』

‘철’로 상징된 산업사회 이면의 어두운 기억 한 페이지를 차근차근 적어 내려간 한 편의 소설이 2008년 끝자락에 독자들을 찾아왔다.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가상의 마을, 그러나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때로는 잔혹한 우화로, 때로는 적나라한 리얼리즘 소설로 다가오는 이 작품은, 불편하지만 눈을 뗄 수 없고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지난날의 자화상이다. 이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한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과 여전히 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첫번째 장편소설 『백치들』을 통해 7~80년대에 돈을 벌기 위해 멀리 중동의 모래사막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작가 김숨이, 두번째 장편소설 『철』로 나날이 변화하는 사회 안에서 하나의 부속품처럼 살아야 했던, 철저하게 이용되다가 마모되어 쓸모없어지면 가차 없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었던, 그 시기의 아버지를 다시 한 번 불러내었다. 사막의 모래를 안고 돌아왔던 아버지가 이번엔 녹에 휩싸여 붉게 부식된 모습으로 다시금 독자들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모래’라는 자연의 물질이 ‘철’이라는 인공의 물질로 바뀌었다는 것뿐 아니라, 이 작품은 이전의 『백치들』과 맥을 같이 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사뭇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접어든 후 ‘노동’의 변화와 더불어 일어난 생활의 변화, 그것이 갖는 의미, 또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우리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이 두 작품을 ‘노동’에 대한, 혹은 ‘아버지 세대의 역사’에 대한 연작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백치들』에서 『철』까지 작가의 시선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선 제목에서부터 그 시선의 차이는 뚜렷이 드러난다. 『백치들』이 ‘노동자,’ 즉 사람에 그 초점을 맞춘 제목이라면 『철』은 ‘노동’ 그 자체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백치’는 그 시대 아버지들에 대한 찬사라고 했던 작가의 말처럼 등장인물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을 느낄 수 있었던 첫번째 장편과는 달리, 『철』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은 “철저한 유기체의 동력원”(소영현, 이후 인용은 모두 소영현의 작품 해설 중에서 발췌)으로 그려질 뿐이다. 하여 “노동에 관한 한 노동자들의 개별성은 찾아볼 수 없으며,” 관계에 의한 정보만이 그들 각자의 모습을 대변한다. 이것은 “노동자들을 복원하는 소설에서 만나기 힘든” 김숨만의 방식으로, “개별성 없는 비주체로서의 그들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작가의 날카로운 면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노동자란 노동과 자본의 교환 구조를 원활하게 움직이게 하는 유기체 동력일 뿐이며, 여기서 반드시 유지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노동의 연속일 뿐”이라는 작가의 시선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노동에 강박적으로 집착했으나 결국 노동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모습으로 전도된다. 『철』의 노동자들은 “결국 노동을 박탈당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유기체 동력원으로서의 역할을 폐기당하고, 소멸해간다.”
작가는 이 과정을 한 세대가 끝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긴 시간에 걸쳐 느리게 재생하고 있는데, 여기에 김숨 특유의 건조한 시선과 그로테스크한 장치들이 덧붙여져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기억이 불그스름한 녹을 휘감고 그 앙상한 모습을 드러낸다.
‘모래’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이국에서의 노동을 백치가 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상상으로 그려내게 하지만, ‘철’은 작품 속에서 마을 노인들이 생니까지 뽑아가며 박아 넣은 쇠 틀니처럼, 우리에게 깊숙이 박혀서 녹슬어가는 노동과 삶의 이면을 더욱 핍진하게 그려내게 하는 것이다.
한편 ‘철’을 향한 마을의 광기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꼽추는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소의 노동자가 되기 위해 타지에서 흘러든 꼽추는 등에 붙은 혹 때문에 조선소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대신 그는 이발관을 차리고 마을의 노인들을 상대로 쇠로 된 틀니를 박아 넣으며 많은 돈을 모으게 된다. 조선소 노동자가 아니기에 노동으로부터 박탈될 일도 없는 그는, 노동자들이 만드는 거대한 철선의 주인이 되려는 야망을 품는다. 하지만 조선소의 부족한 철을 모으기 위한 쇠 징발이 일어났을 때, 이발관으로 쇠 징발을 하러 온 노동자 김태식에 의해 혹에 쇠못이 박히고, 결국 그 쇠못의 녹으로 파상풍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또한 그가 철선을 사기 위해 모아둔 돈도 철과 함께 부식되어 한 줌의 먼지로 사라진다.
‘철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메시지를 더없이 따뜻한 이미지로 TV 속 CF에서 접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이 작품은 똑같은 메시지가 참으로 무시무시할 수도 있음을, 결국 그들이 믿는 것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 뿐임을 잔혹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번 작품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소영현 씨는 이 작품이 가진 힘을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자본을 통한 물신화 과정과 자본주의 발전사 그리고 개별 도시의 운명에 관한 서늘한 진실을 그로테스크화한 장치들로 탈색화함으로써 김숨의 소설이 잡아채는 것은 결국 타자라고도 명명할 수 있는 그 시절의 존재들,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결국 자기소외된 우리의 가족과 이웃 그리고 친족의 얼굴 없는 삶이다. 김숨의 소설에서 형해화된 타자의 범주는 자본과 노동 그리고 계급의 문제로 짱짱하게 조여져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김숨의 소설이 이미 지나치게 낡은 것이 되어버린 리얼리즘의 갱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김숨은 언젠가 거대한 선박이 만들어지고 있는 남쪽의 도시에서 일박을 했던 일을 떠올린다. 새벽에 숙소의 벽 너머에서 들리던 중년 남자의 울음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남자의 윽박지르는 소리. 다음 날 거대한 선박에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거대한 철선의 완성을 위해 평생을 노동에 힘쓰는 조선소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 오로지 철선의 완성을 위해 도구처럼 쓰이다가 마모되고 쓸모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작품을 쓰는 동안 무엇보다 그녀의 머릿속에 못처럼 박혔던 일개(一介)라는 낱말은 『철』에 등장한 조선소 노동자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일개일 뿐인, 세상의 모든 위대한 당신들께 이 소설을 바친다”는 작가의 말은, 끝내 철선의 실체를 정확히 보지 못하는 『철』의 여운을 더욱 깊이 새기게 한다.
‘보잘것없는 한 낱’이라는 뜻의 일개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우리는 지난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가 김숨의 소설이 갖고 있는 작지만 너무도 분명한 독자와의 소통의 문이다.

●● 작품의 줄거리
땅이 황폐하여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바다가 가깝지 않아 어부가 될 수도 없으며, 공장도 들어서지 않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던 한 가난한 마을의 북쪽에 조선소가 세워진다. 조선소는 튼튼한 몸을 가진 남자들이라면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내주었고, 그 소식을 듣고 마을 남자들은 물론 타지에서도 건장한 남자들이 조선소에서 노동을 하기 시작한다.
거대한 철선을 만든다는 소문이 무성한 조선소에서는 커다란 용광로에 불을 지피고 많은 양을 철을 생산해낸다. 그리고 곧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일정한 금액의 임금으로 마을은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게 되고, 철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생활도 빠르게 변화해간다. 마을 사람들은 점점 노동을 종교처럼 받들고 자신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바꾼 철을 신봉하기에 이른다. 마치 하나의 부속품처럼 노동을 반복하며 그것에 길들여지는 남자들과 무쇠 식칼을 사들이는 것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여자들, 그리고 생니를 뽑아 그 자리에 쇠로 된 틀니를 해 넣는 것에 혈안이 된 노인들까지, 조선소와 철에 대한 마을의 이 같은 맹목적인 믿음은, 철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겨 녹을 퍼 먹거나 벙어리인 자식의 말문을 트이게 하기 위해 녹을 입속에 마구 넣어 숨통이 끊어지게 하는 등의 끔찍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마을에 넘쳐나던 철은 시간이 지나자 부식되어서 공기 중에 녹으로 떠다니게 된다. 순식간에 안개처럼 내려앉은 녹 속에서 조선소 노동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피를 토하고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쇠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침묵을 지키며 노동을 반복하는 조선소 노동자들, 그 노동자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 떠돌이 장사꾼들, 노동을 죄악시하며 절대자의 구원을 전파하는 검은 옷의 여자들, 스스로를 철선의 주인이라 주장하는 사람 등 마을은 철은 둘러싸고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 된다. 한때 조선소의 노동자였으나 노동을 박탈당하는 사람이 하나둘씩 늘어나 비렁뱅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기도 한다. 또한 조선소 노동자가 되기 위해 마을에 들어왔으나 등에 난 혹 때문에 노동자가 되지 못한 꼽추는 이발관을 차려 쇠로 만든 틀니를 사람들에게 만들어주며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한편 마을에서는 철선의 완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국박람회를 개최하기에 이르지만 철선의 실체는 아무도 보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던 것만큼 박람회 자체도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만국박람회가 남긴 것은 처치 곤란한 비둘기들뿐. 오히려 그 이후 부족해진 철을 위해 마을에서는 쇠 징발이 벌어지고, 그 일로 꼽추는 조선소 노동자에 의해 혹에 쇠못이 박힌다. 결국 그 쇠못은 꼽추의 혹에서 녹슬어가고 꼽추를 죽음으로 이끈다. 철선이 완성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꼽추는 그동안 모아둔 돈을 들고 철선을 사기 위해 조선소를 찾아가지만 가는 도중에 그만 죽고 만 것이다. 또한 꼽추의 금고에 든 돈뭉치도 쇠로 된 틀니 속에 묻혀 함께 부식되어 바스러져 흩어진다.
사흘 밤낮으로 장대비가 그치지 않더니, 마을은 불어나는 물속으로 잠겨간다. 물을 피해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간 사람들의 눈앞에 드디어 철선이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역시 만국박람회장에서처럼 눈이 부셔서 형체를 뚜렷이 알아볼 수 없다.

●● 작품 속으로
동틀 녘, 무리를 이룬 발소리가 마을을 흔들어 깨웠다. 그것은 조선소로 향하는 노동자들의 발소리였다. 발소리는 점점 더 규칙적이고 우렁차졌으며 빨라지고 있었다. 김만도는 걸음을 재촉하며, 무리를 이룬 발소리에 자신의 발소리가 무참히 섞여드는 것을 느꼈다. 밤새 낀 안개가 채 걷히지 않아 노동자들은 마치 죽은 물고기가 물에 떠내려가듯 한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무리를 이룬 발소리가 척, 척, 척 만들어내는 울림에 따라 마을은 지진에 든 듯 흔들렸다. 언 송장에 다시 피가 흐르듯, 밤새 죽은 듯 잠들었던 마을이 꿈틀꿈틀 깨어났다. (p. 9)

죽은 여자아이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마을에 퍼졌다. 소문은 이러했다. 건어물 집 여자는 녹이 딸의 막힌 목을 뚫어줄 것이라고 믿고는, 발버둥 치는 딸의 입속으로 녹을 마구 퍼 넣었고, 한 솥단지나 되는 녹을 퍼 넣은 뒤에야 딸이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파랗게 질린 딸을 끌어안고 두려움에 떨던 건어물 집 여자는, 늦은 밤 딸을 몰래 광포천에 내다 버렸다. 순전히 녹 때문에 건어물 집 딸이 비명횡사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녹이 몹쓸 병을 낫게 하는 신비한 효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여자아이가 죽은 것 때문에 날마다 복용하던 녹을 끊는 늙은이는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쇠와 쇠에서 발생하는 녹의 효용에 맹목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pp. 40~41)

“시체잖아!”
황개남이 눈이 동그래져서는 소리 질렀다. 그것은 물에 퉁퉁 불어터진 꼽추의 시신이었다. 등에 난 혹을 하늘로 향하고서는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틀니들이 허기진 물고기들처럼 꼽추의 몸뚱이에 바글바글 달라붙어 있었다. 죽은 비둘기의 날개가 축복이라도 하듯 꼽추의 머리를 뒤덮고 있었다. 혹에 박힌 쇠못 주변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한순간 쇠못이 쑥 뽑아져 나왔다. 마을에서 쇠 징발이 있던 해 조선소 노동자 김태식이 박아 넣었던 쇠못은, 허무할 만큼 빠르게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저기, 철선이다!”
그때 누군가 마을이 떠나가도록 소리 질렀고, 지붕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북쪽을 향해 젖은 몸을 일으켰다.
그 누군가 또 “철선이다!” 하고 소리 질렀지만 햇빛이 너무나 눈부셔서 사람들은 철선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긴장된 침묵에 잠긴 채 서로의 눈치만 살피던 사람들은 저마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철선’을 탄식처럼 외쳐댔다. 언젠가 만국박람회장에서처럼, 빛이 한순간 점멸하듯 사라져버릴까 두려워하며…… (p. 259)

●● 목차
프롤로그

에필로그

해설 철의 시대를 기억하라·소영현
작가의 말

작가 소개

김숨 지음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간과 쓸개』 『국수』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장편소설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듣기 시간』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김현문학패, 요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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