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무 그늘

문학과지성 시인선 355

이태수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8년 10월 31일 | ISBN 9788932019055

사양 · 148쪽 | 가격 7,000원

책소개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에 닿는 사유와
줄기 굵은 언어를 흔드는 부드러운 힘

언론인으로 그리고 시인으로 정력적인 활동을 펼쳐온 시인 이태수의 개인 통산 열번째 시집이자 전작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문학과지성사, 2004)을 펴낸 지 4년 만에 『회화나무 그늘』을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냈다. 총 5부로 나뉜 시집 『회화나무 그늘』은 이태수 시인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시적 행보의 연장이자 새로운 시적 사유의 시작점으로 읽을 수 있다. 김선학 교수가 해설에 밝힌 것처럼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어에 닿아 있으면서 읽는 사람을 긴장시키는” 시인의 사유를 동력삼아 줄기 굵은 언어를 흔드는 힘을 만끽할 수 있는 시집이라고 하겠다.

서른네 해나 돌리던 하나의 쳇바퀴,
내가 돌던 그 바퀴에서 뛰어내렸다.
헛바퀴와 먼지투성이,
그 반대의 세월도 그 쳇바퀴에
깔리거나 희미해진다.

[……]

날이 가고, 달이 바뀌고,
어언 해가 달라졌는데도
바꿔 탄 쳇바퀴가 잘 돌지 않는다.
겨우 돌려도 헛바퀴다.
안 돌려도 제멋대로 돌아간다.

[……]

-자. 그래도 이젠, 길 없는 길로
바꿔 탄 쳇바퀴를 돌리고 돌아야지.
-「나의 쳇바퀴 4」 부분

표제작인 「회화나무 그늘」을 비롯, ‘쳇바퀴 연작’ 등 총 열네 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는 1부는 ‘시 쓰기’의 괴로움과 각오 그리고 환희를 통해 시인의 시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만족이나 자기 위안으로 끝나는 행위가 아닐 것이다. 시가 예술로 태어나 버릴 것 하나 없는 한 그루 회화나무처럼 오래오래 버티고 서 있기 위하여 보내야할 괴로운 시간들을, 시인은 과감 없이 솔직하게 보여준다. 언어에 대해 시에 대해 치열한 ‘장인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위 시에서 시인은 서른네 해도 넘게 해온 직업을 그만두고 돌아와 시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하고자 하지만, 오랫동안 해온 ‘시 쓰기’ 앞에서 그는 아직도 새로운 인식의 장을 펼치기 위한 고뇌의 괴로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그 괴로움은 절정의 순간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시인은 “-자. 그래도 이젠, 길 없는 길로 바꿔 탄 쳇바퀴를 돌리고 돌아야지”와 같은 각오를 내어 보이며 ‘쳇바퀴’로 ‘불잉걸’로 ‘회화나무’로 변형되는 시를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찾아낸다. 이 솔직하고 열의 깊은 각오들은 2부에서 절정을 피워낸다.

날 저물고 새들도 둥지에 든다.
서늘한 바람의 옷자락,
그 감촉에 몸 맡기며 숲길 돌아들면
땅거미 안으면서 어깨 추스르는 나무들
가지와 가지들 사이로 별이 뜬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지난날들이,
불현듯 그의 마지막 말들이 뜬다.
차마 잊지 못하고 있는 말들은 저토록
별이 되어 빛을 뿌린다. 하나 둘, 그리고 여럿
그 별들이 숲에 내린다. 가슴에 스며든다.
우리는 이제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음을,
다른 세상에서 더러는 그리워할 뿐임을
말해주는 건지. 가까이 다가왔다가는
이내 다시 멀어진다. 여태 애태우던
말들도, 이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제각각
허공에 빈 메아리로 떠돌고 있는지……
마음마저 더 어두워지고, 집도 점점
멀어지는, 낯선 저녁 숲길.

-「저녁 숲길」 전문

김선학 교수가 해설에서 이 시를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과 비교하며, “개인의 내적 자아를 그리움이라는 정서”로 잘 드러낸 “정감의 세계”라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시를 비롯한 2부의 시들은 시인의 정서, 그리움-정감으로 통하는 서정의 세계를 애절함의 정서를 통해 잘 보여준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타자(他者)가 아닌 자연의 일부가 되어 펼쳐 보이는 시인의 세계는 아름답고 소중하다.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시인의 시선은 부드러우며 신중하고 그 하나하나의 이름을 불러 의미가 되게 만들고 부분을 전체로 확장하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애절함은 3부에 드리워진 아우를 위한 ‘사제곡’에서 잘 드러난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우를 그리는 마음으로 적어 내려간 열두 편의 시들은 슬픔과 아픔을 가로새긴 시편이면서도 한 편 한 편 독립적인 서정을 이루는 데에 실패하지 않는다.

벚꽃 흐드러진 봄밤의 경주 보문단지, 처음 가본 조그마한 연못가. 같이 간 한 제자가 감탄사를 연발하더군요. “아, 저기 벚꽃우물 안의 달 좀 보세요.”

못물에 비친 달 들여다보며 영영 만날 수 없는 아우 생각에 젖다가 담뱃불 비벼 끄고 고개를 들었지요. 웬 조화인지, 그게 정말이더군요.

자욱한 벚꽃 사이로 둥글게 뚫린 밤하늘, 그 한가운데 멈춰선 듯 떠 있는 달. 음 이월 보름 그다음 다음 날 환한 달의 눈물겹도록 화사한 언저리……

[……]

그 제자의 감탄사도 귓전을 떠나지 않아 시 쓴다는 게 부끄러운 데다, 지난해 이날 밤 아우가 세상 떠나고 난 뒤 흩날리던 벚꽃들, 낮에 군위천주교묘원 아우 곁에서 본 벚꽃들도 그 우물에 포개져 다가오기 때문이었지요.

-「벚꽃우물」 부분

시집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정서와 맥락이 닿아 있는 3부의 시들은 ‘별,’ ‘술,’ ‘사진,’ ‘이메일,’ 우물 등의 객관적 상관물을 통과하여 감상적인 태도를 넘어서 시인의 아우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 슬픔이 전달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시인이 거주하고 있는 범물동에서 써내려간 ‘범물시편’이 주가 되어 꾸려진 4부와 ‘헌정시’ 등으로 꾸려진 5부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특히 이따금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범물시편은 일상이 어떻게 시로 이동할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주목해볼 만한 시편이다. 시 속에서 살고 있는 시인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곳에서 시를 찾아내어 시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숨 쉬고 있는 것임을 증명해낸다. ‘내다보는 사람’으로서의 이태수 시인, 그의 열 번째 시집 회화나무 그늘은 의미와 사유로 충만한 한 그루의 나무로 이렇게 버티고 있다. 그 힘은 일상에서 비롯되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에 귀를 기울이고 눈독 들여 우리에게 들려주는 시인의 발화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시인의 말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마음,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다. 어쩌면 더욱 가벼워지고 헐거워졌는지도 모른다. 첫 일터로 발을 들여놓아 서른네 해 동안 외길을 걸어온 신문사를 떠나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시와 일 사이의 갈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를 좀더 가까이, 느긋하게, 끌어안고 싶다. 허탈하면서도 무언가 새로운 길이 열릴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다. 이 열번째 시집을 먼저 일찍 세상을 떠난 아우를 기리며 지나온 길들에 바친다.
2008년 10월 이태수

차례

제1부
불잉걸 하나
나의 쳇바퀴 2
나의 쳇바퀴 3
나의 쳇바퀴 4
깊은 밤, 시를 쓰다가
요즘 나의 시는
흰 머리카락
어떤 추돌
화화나무 그늘
티끌 또는 이녁 바람
물소리 따라 마음은
그의 발걸음 소리
길이 끝난 곳에서
마음 가는 길로만

제2부
유등 연지 1
유등 연지 2
야생 난 한 포기
건천 지나다가
다시 건천 지나다가
다시 감포에서
어떤 으능나무
고요의 안쪽
유월, 이 하루
지리산 오솔길
마음의 잎새 몇 잎
가을 어느 날
저녁 숲길
손톱달

제3부
하관(下官)
아우 먼저 가고
주막에서
술 안의 저잣거리
너의 풋가슴
그 청바다도 두고
배꽃에 달빛 내려
모자(母子)별
시적 인간에 대하여
캔터베리 소식
또 저물 무렵
벚꽃우물

제4부
먼 불빛
칩거 며칠
황사바람
어떤 봄날
촛불이 하나
봄비
봄꿈
밤샘, 천정, 미망
길, 길들
무명(無明)
광음(光陰)
이제야 길을 바꿔

제5부
청복(淸福)
귀리에게
봄, 허공
초롱불
물불
마음 노래
황혼의 노래
작은 풀꽃
우리 독도 1
우리 독도 2
내 고향 새실
내 마음의 십자가
성모 마리아
천사
옥빛 하늘

해설 김선학 · ‘그림자의 그늘’에서 ‘회화나무 그늘’ 까지·

뒤 표지 글

낯익은 길을 걷고 있으면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빠져든다. 하지만 안간힘으로 그 길을 버리거나 벗어나 헤매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낯익은 길에 다시 발길이 닿아 있게 마련이다.

먼지투성이의 ‘지금·여기’를 뛰어넘고 싶은, 그러면서도 다시 ‘여기·지금’을 끌어안게 되고 마는, 이 두 겹의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는지…… 떠나다가 되돌아오고, 되돌아와서는 이내 떠나고 싶어지는 이 갈등, 이 모순, 이 반복, 이 ‘물 위의 기름방울’을.

헤매면 헤맬수록 길들은 아득하게 물러선다. 그래도 길을 나서며 꿈을 꾼다. 헛돌고 있을 뿐인 나의 쳇바퀴, 이 가혹하기 그지없는 쳇바퀴 돌리기와 그 속에서의 돌고 돌기― 나이 들면서는 아마도 초월에의 꿈이 점차 현실세계에 대한 애착과도 가까이 손잡고 있는가보다.

작가 소개

이태수 지음

시인 이태수(李太洙)는 1947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그림자의 그늘』(1979), 『우울한 비상(飛翔)의 꿈』(1982), 『물 속의 푸른 방』(1986),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1990), 『꿈속의 사닥다리』(1993), 『그의 집은 둥글다』(1995), 『안동 시편』(1997), 『내 마음의 풍란』(1999),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2004), 『회화나무 그늘』(2008), 『침묵의 푸른 이랑』(2012), 육필시집 『유등 연지』  등을 상자했다. 매일신문 논설주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등을 지냈으며, 대구시문화상(1986, 문학), 동서문학상(1996), 한국가톨릭문학상(2000), 천상병시문학상(2005), 대구예술대상(2008) 등을 수상했다.

독자 리뷰(1)

독자 리뷰 남기기

2 + 3 =

  1. jhlee329
    2009.01.20 오후 2:05

    길의 현상학
    이 진 흥(시인)
    <1>
    이태수 시인은 1979년 첫 시집 [그림자의 그늘] 이후 30년 만에 10번째 시집 [회화나무 그늘]을 상재하였다. 공교롭게도 첫 시집과 이번의 시집 제목에 “그늘”이 들어있어 그의 키워드가 그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시집을 관류하는 시적 기본어는 “길”로 보이고, 우리는 이 시집을 길의 현상학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우선 시인 자신이 시집의 서문에 해당하는 < 시인의 말>에서 “이 열 번째 시집을 먼저 일찍 세상을 떠난 아우를 기리며 지나온 길들에 바친다.”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집은 세상을 떠난 그의 아우와 지금까지 그가 지나온 길(들)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시집의 제 3부는 그야말로 먼저 세상을 떠난 < 아우에 대한 간절하고 애타는 시적 절규>(김선학의 해설)로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시집은 < 시인의 말>에서 보이듯 그의 < 지나온 길들>에 대한 헌사라 할 수 있으므로 그 < 길들>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흔히 우리는 삶의 여정을 길에 비유하고 자신은 그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라고 한다. 우리는 그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헤어진다. 그 길에서 나무와 돌과 강을 만나고 골짜기의 꽃과 헤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길을 가는 존재이며 길은 삶의 내용이 된다. 그런데 길이란 우선 물리적인 통로이다. 길은 그 모양이나 용도에 따라서 오솔길과 한길 혹은 산길과 들길로 나뉘기도 하고, 뱃길과 철길이 되기도 한다. 길은 우리의 눈길이나 손길 혹은 발길이 되기도 하며 삶의 수단이나 방도를 나타내는 살 길이나 손쓸 길로 불리기도 하고, 군인의 길이나 시인의 길이 되기도 하며, 인생길 혹은 진리의 길(道)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길은 매우 다양한 양태와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시인들은 그것을 다채로운 삶의 은유로 즐겨 쓰는데, 특히 이태수 시인은 누구보다도 그것을 그의 시적 주제로 혹은 사유의 단서로 삼고 있다. 따라서 조금만 그의 시를 눈여겨보면 도처에 길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예컨대 이 시집에는 길이라는 시어가 전체 67편의 작품 중에서 36편에 등장하고, 한 작품(마음 가는 길로만)에서 무려 11회나 나타나기도 한다. 한 시집에 그렇게 많은 < 길(들)>이 등장하는 것을 시인이 의식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길의 빈도수가 그렇게 높다는 것은 시인의 무의식이 그것을 절실하게 찾고 생각하고 붙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시집을 해명하는 데는 바로 이 < 길>이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2>
    시인은 < 어느 봄날, 눈 딱 감고(32(괄호 안의 숫자는 인용된 시집의 쪽수임))> < 서른네 해나 돌리던 하나의 쳇바퀴,/ 내가 돌던 그 바퀴에서 뛰어(16)>내렸다면서 지금까지 < 서른네 해 동안 외길을 걸어온 신문사를 떠나 조금은 자유로워졌다.[시인의 말]>고 말한다. 그는 < 더 이상 안 가고 싶은 길은 가지 않기로>하고 오래 꿈꿔온 < 가고 싶은 길을 가기로 했다(32)>고 한다. 그리고 나서 보니 이제야 자신이 < 잘 들여다>보이는데 이상하게도 < 더 잘 보이므로 두렵고 아득해진다.(16)>고 고백한다. 두렵고 아득해지는 것은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낯설기 때문이다. 우선 표제시(24-25)에서 < 달려온 길들>과 < 가야할 길>에 대한 불안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길을 달리다가, 어디로 가려하기보다 그저 길을 따라 자동차로 달리다가, 낯선 산자락 마을 어귀에 멈춰 섰다. 그 순간, 내가 달려온 길들이 거꾸로 돌아가려 하자 늙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그 길을 붙들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한 백 년 정도는 그랬을까. 마을 초입의 회화나무는 제자리에서 오가는 길들을 끌어안고 있었는지 모른다. 세월 따라 사람들은 이 마을을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했으며, 나처럼 뜬금없이 머뭇거리기도 했으련만, 두껍기 그지없는 회화나무 그늘.

    그 그늘에 깃들어 바라보면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가며 펄럭이는 바람의 옷자락. 갈 곳 잃은 마음은 그 위에 실릴 뿐, 눈앞이 자꾸만 흐리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할는지, 이름 모를 새들은 뭐라고 채근하듯 지저귀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여태 먼 길을 떠돌았으나 내가 걷거나 달려온 길들이 길 밖으로 쓰러져 뒹군다. 다시 가야 할 길도 저 회화나무가 품고 있는지, 이내 놓아줄 건지, 하늘을 끌어당기며 허공 향해 묵묵부답 서 있는 그 그늘 아래 내 몸도 마음도 붙잡혀 있다.
    [회화나무 그늘] 전문

    시인은 < 그저 길을 따라> 달리다가 < 낯선 산자락 마을 어귀에 멈춰>선다. 그가 달려온 길들이 거꾸로 돌아가려 하자 < 늙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 길을 붙들고 서서 내려다>본다. 그 나무의 그늘은 < 두껍기 그지 없>고 < 이름 모를 새들은 뭐라고 채근하듯 지저귀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이제는 < 눈앞이 자꾸만 흐>려지고 < 달려온 길들이 길 밖으로 쓰러져> 뒹구는데, 시인은 < 허공 향해 묵묵부답 서 있는> 회화나무의 두꺼운 그늘 아래 붙잡혀 있다. 그야말로 미토스적인 정황이다. 분석심리학을 빌린다면 아마도 늙은 회화나무는 꿈속의 현명한 노인 혹은 거인(또는 신)이고, 두꺼운 그늘은 시인의 깊은 무의식 속에 웅크리고 있는 마음속의 어두운 반려자(그림자)일 것이다. 현명한 노인은 시인에게 이름모를 새들을 시켜서 지저귀지만(말을 건네지만) 딱하게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낯선 것은 두려운 법, 시인은 두려움 속에서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 그래도 이젠, 길 없는 길로/ 바꿔 탄 쳇바퀴를 돌리고 돌려야(17)>겠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낯익은 길로 걸어왔지만 이제 시인은 < 늘 가던 길이 낯설어진다(26)>고 한다. 낯선 것은 불안하게 한다. 일상인은 낯익은 사물의 겉모습만 스쳐보기 때문에 그것의 본질을 잊고 산다. 그러나 일상성이 깨지면 사물은 갑자기 낯설어지고 그 낯설음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실존을 각성케 한다. 그러한 예를 우리는 카프카의 소설 < 변신>에서 본다.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문득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 때부터 주변의 모든 것들로부터 철저하게 소외/고립되면서 그는 일상성에 매몰되었던 자신의 실존과 조우하는 것이다.
    시인은 낯익은 일상성을 깨뜨리고 낯선 정황 속에서 자신을 각성하는 실존이다. 그는 노력하므로 헤맨다. 길 잃고 헤매는 것은 그의 숙명이다. 시인은 지금까지 < 떠밀려 다니던 길(32)>을 버리고 이제는 < 가고 싶은 길> 혹은 < 오래 꿈꿔온 길(32)>로만 가겠다면서 돌리던 쳇바퀴에서 뛰어내렸지만 그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다시 < 바꿔 탄 쳇바퀴(17)>일 뿐이다. 오히려 이제는 < 거미줄에 단단히 발목 잡혔는지/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91)>고, < 지나온 길도 가야할 길도 아프게 젖어 허공에 흩어(97)>지며, 길들이 제멋대로 그를 < 끌고 간다.(96)>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시인은 다시 멀리 희망의 < 불빛 한 가닥(83)>을 발견한다.

    왜 이토록이나 떠돌고 헛돌았지
    남은 거라고는 바람과 먼지

    저물기 전에 또 어디로 가야 하지
    등 떠미는 저 먼지와 바람

    차마 못 버려서 지고 있는 이 짐과
    허공의 빈 메아리

    그래도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무명(無明) 속 먼 불빛 한 가닥
    [먼 불빛] 전문

    돌아보면 지금까지 삶은 떠돌고 헛돈 일이며 남은 것은 바람과 먼지뿐이다. 그리고 저물기 전에 또 어딘가로 가야 한다. 버릴 수 없는 짐을 지고 허공의 메아리를 들으며 등 떠미는 먼지와 바람에 밀려 또 어디론가 가야 하는 게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돌아보면 <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멧새들의 따스한 지저귐(50)>이 들려오고, < 마음 비우고 길 다 버리고> 보면 < 가르마처럼 열리는 숲 속 길,// 햇살 뛰어내리며 되비추는/ 우리의 저 오솔길 한 줄기(51)>가 보인다. 그것은 마치 눈먼 일상의 거부할 수 없는 시지포스적인 노역 속에서도 <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무명(無明) 속 먼 불빛 한 가닥>인 것이다.

    <3>
    생각건대 인간은 길을 찾아가는 혹은 길을 만들어가는 존재이다. 대자로서의 인간은 즉자인 사물과 달리 미완/결핍의 존재로서 끊임없이 자기를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자유의 길을 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의 앞에는 많은 길(들)이 있다. 길이 많아서 역설적으로 인간은 길을 잃고 헤맨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헤맨다. (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고 말한다. 여기서 < 헤맨다(irren)>는 말은 길을 잃어 헤맨다는 의미이다. 그런 뜻에서 헤맨다는 것은 자신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앞에서 우리는 이 시집을 길의 현상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집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 길>에 관한 분명한 의미를 시인 자신이 시집의 뒤표지에서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 낯익은 길을 걷고 있으면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빠져>들지만 < 안간힘으로 그 길을 버리거나 벗어나 헤매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낯익은 길에 다시 발길이 닿아 있게 마련>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낯익음과 낯설음의 사이를 전전하면서 < 물 위의 기름방울>같은 존재자로서의 갈등과 모순을 고백한다. 즉 < ‘지금·여기’를 뛰어넘고 싶>어 하면서도 < 다시 ‘여기·지금’을 끌어안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신의 < 두 겹의 마음>이 빚어내는 갈등과 모순과 반복이 바로 자신이며 마치 < 물 위의 기름방울>처럼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 헤매면 헤맬수록 길들은 아득하게 물러>서지만, < 그래도 길을 나서며 꿈을 꾼다.>고 한다. 마치 저 시지포스의 형벌처럼 헛도는 쳇바퀴를 돌리면서 그는 이제 < 초월에의 꿈이 점차 현실세계에 대한 애착과도 가까이 손잡고 있는가보다.>고 말한다.
    우리는 소위 존재망각의 일상성 속에서 피동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횔덜린의 말처럼 인간은 그러나 지상에 시인으로(dichterisch) 살고 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일상의 낯익은 길에서 비일상의 낯선 길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태수 시인은 그의 오래된 쳇바퀴에서 뛰어내리지만 그가 내린 곳 역시 < 바꿔 탄 쳇바퀴(16)>일 뿐이다. 그래도 시인은 다시 길을 나서며 < 초월에의 꿈>을 꾸면서도 그것이 < 점차 현실세계에 대한 애착과도 가까이 손잡고 있>다고 느낀다. 초월에의 꿈과 현실세계에 대한 애착 사이에서 < 물 위의 기름방울>로 떠도는 시인의 실존적 고뇌를 노래한 것이 시집 [회화나무 그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