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로이

대산세계문학총서 075

원제 Molloy

사뮈엘 베케트 지음 | 김경의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8년 10월 31일 | ISBN 9788932019048

사양 신국판 152x225mm · 284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가장 중요한 성취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작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의 75번째 책으로,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 『몰로이』가 출간되었다. 『몰로이』는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와 함께 베케트의 소설 3부작을 구성하는 작품이다. 사실 베케트는 희곡 작가로 더욱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대표작인 『고도를 기다리며』가 이 3부작을 집필하면서 느낀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식의 일환으로 가볍게 써낸 작품이었다고 작가 스스로 고백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소설을 완성했다. 3부작은 희곡, 소설, 평론, 시 등 다양한 장르에 걸친 베케트의 수많은 명편들 중에서도 베케트의 문학 세계를 가장 잘 대표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작품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51년 프랑스의 미뉘Minuit 출판사에서 『몰로이』가 출판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 첫번째 의미는 이 소설이 프랑스 비평가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음으로써 베케트가 프랑스의 독자들에게 알려지게 됐다는 데 있다. 『몰로이』는 그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사르트르의 『구토』(1938) 이후 가장 유망한 책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 소설은 프랑스 문학사에서 소설 작법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메타소설로서 누보 로망(nouveau roman, 새 소설)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당시 이 소설이 크게 주목받았던 이유는 언어의 한계성을 다루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과 그동안 고려되지 않았던 작가 위치의 실상을 부각시키며 이야기하는 방식과 글이 씌어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메타소설적 경향을 띠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런 경향은 1950년대 프랑스 문학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며 누보 로망이라는 독특한 현상을 탄생시키게 된다. 잘 알려진 대로 누보 로망은 전통적인 형식을 답습하는 소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소설을 목표로 하는 문학 현상이다.

『몰로이』의 이러한 성취는 베케트의 예술적 신조에 기인한다. 베케트는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실패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감히 실패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실패는 예술가의 세계요, 실패로부터 움츠리는 것은 유기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생각은 예술가의 절대적 영역을 인정하는 전통적인 사상들과는 거리가 멀다. 아는 만큼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하는 작가들과는 달리, 베케트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는 것만을 말할 수 있는데,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을 표현하는 일은 불가능하므로 그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나마 자기 자신이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쓰는 글은 자아 탐구의 글로 귀착되어야 한다. 그런데 임의적 약속에 불과한 언어로 재현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진실의 근사치일 뿐이므로 참된 자아를 표현하는 것 또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가능과 무지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는 끊임없이 자기의 예술 행위를 해야 한다. 베케트의 문학 세계는 “더 잘 실패하기 위한 ‘실패의 문학’”이었던 것이다. 이런 신조하에 베케트는 오랫동안 ‘인간 삶의 부조리함’ ‘자아 탐구’ ‘언어의 한계성’ ‘글쓰기 자체의 문제들’ ‘작가의 죽음’ 등의 주제에 천착해왔다. 이러한 고민의 결실이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몰로이』다.

작품의 줄거리

『몰로이』는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몰로이가 자신의 어머니 집을 가다가 길을 잃고 숲에서 헤매던 경험을 희미한 기억을 통해 글로 쓴 것이고, 2부는 사설탐정 모랑이 몰로이를 찾으라는 임무를 띠고 여행을 떠났다가 결국 실패하고 중도에서 길을 잃게 된 이야기를 기록한 글이다.

1부는 한때 부랑자였던 몰로이의 독백으로, 단 두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지금 “어머니의 방”에 살고 있으며,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작별을 고하고, 죽어버리”려고 글을 쓴다. 몰로이는 이곳에 오기 전 어머니를 찾으러 떠났던 여행에 대해 묘사한다. 다리가 불편하여 목발을 짚고 다니는 그는 자유륜(輪)이 달린, 체인이 없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한다. 자전거 위에서 쉬는 도중 자세가 음란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체포되지만 다시 풀려난다. 이 마을 저 마을을 옮겨 다니면서 그는 지팡이를 든 늙은 남자, 경찰, 자선사업 봉사자 등 기괴한 인물들을 연쇄적으로 마주친다. 그러던 중 자전거로 개를 치어 죽이는 사고를 내고, 자전거를 포기한다. 특정한 방향 없이 걷던 그는 숲 속에 살고 있던 한 노인을 목발로 쳐서 살해한다. 마침내 그는 “어머니의 방”으로 와 원고를 쓰며 살아가게 된다.

2부는 자크 모랑이라는 이름의 사설탐정의 독백이다. 모랑은 탐정사무실 소장 유디로부터 몰로이를 쫓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는 반항하는 기질이 있는 아들 자크를 데리고 임무를 수행하러 간다. 그들은 한 지방을 돌아다니는데, 기상 악화, 음식 부족, 모랑의 건강 악화 등의 문제로 발목이 묶이게 된다. 그는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오라고 시킨다. 그사이, 모랑은 몰로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낯선 남자를 살해한 뒤, 시체를 숲에 유기한다. 아들은 돌아오지 않고, 그는 힘겹게 집으로 돌아간다. 모랑은 몇 가지 괴이한 신학적인 질문을 제기하는데, 이 문제들은 그가 미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뒤이어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다른 질문들도 제기한다. 건강이 악화되어 다리를 못 쓰게 된 모랑은 몰로이처럼 목발을 사용하게 된다. 집에 돌아온 모랑은 자아 속에 있는 억눌린 몰로이를 목격하는 공포와 절망의 경험에 대하여 거기서 얻은 교훈을 가지고 편안하게 보고서를 쓰라는 ‘목소리’의 권고를 받는다. 소설은 모랑이 보고서의 시작 부분을 어떻게 작성하는지를 보여주며 끝이 난다.

책 속으로

나는 어머니의 방에 있다. 이젠 내가 여기서 산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아마 앰뷸런스에 실려 왔거나, 어떤 차에 실려 온 것은 확실하다. 누군가가 날 도와주었다. 나 혼자서는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매주마다 오는 그 사람, 아마도 내가 여기 있게 된 것이 그 사람 덕분일지도 모른다. 본인은 아니라지만. 그는 나에게 돈을 좀 주고는 원고를 가져간다. 원고지 매수가 많으면, 돈도 많이 준다. 그렇다, 나는 요즘, 약간은 예전처럼 일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더 이상은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나, 나는 이제 내게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작별을 고하고, 죽어버리고 싶다. (9쪽)

그가 말하는 것을 내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내가 말하는 것을 그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가 실제로 아무것도 몰랐거나, 아니면 그가 나를 자기 옆에 두길 원했던 것 같다. 난 신중하게 이 네번째의 가설에 끌리는데, 왜냐하면 내가 떠나려고 했을 때 그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재빠르게 목발 하나를 빼서 그의 머리통을 한 방 세게 후려쳤다. 그러니까 그가 잠잠해졌다. 역겨운 늙은이. 나는 일어서서 내 길을 다시 갔다. 그런데 몇 발자국 가지 않아서, 그 시기의 몇 발자국은 내게는 큰 것이었다, 나는 그를 살펴보려고 되돌아서 그를 향해 다시 갔다. (123쪽)

내 보고서는 길어질 것이다. 아마 끝내지 못할 수도 있다. 내 이름은 모랑, 자크 모랑이다. 그렇게 불린다. 나는 볼 장 다 본 사람이다. 내 아들도 그렇다. 그 녀석은 분명 그걸 짐작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자신이 인생의 문턱, 진정한 인생의 문턱 앞에 와 있다고 믿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 그것은 맞는 얘기다. 아들의 이름도 나처럼 자크다. 이것이 혼동거리가 될 수는 없다. (137쪽)

그는 한 손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거기서 비키라고 그에게 다시 한 번 말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도 쥐었다 폈다 하며 내 쪽으로 다가오던 하얀 그 손이 생각난다. 마치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 뒤에, 아마도 훨씬 뒤에, 나는 머리가 짓이겨진 채로 땅바닥에 누워 있는 그를 발견했다. 어떻게 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더 분명하게 가르쳐줄 수 없어서 유감이다. 그것은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내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렀는데 이제 와서 문학적으로 빠질 생각은 없다. 나 자신은 아무 데도 다친 곳이 없었다, 아니, 있었다, 몇 군데 할퀸 상처가 있었는데 그다음 날 발견했다. (227~28쪽)

목차

제1부
제2부
옮긴이 해설·베케트와 실패의 문학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작가 소개

사뮈엘 베케트 지음

190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1923년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전공했다. 1928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강사로 부임하여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던 제임스 조이스를 만났다.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비평문을 공식적인 첫 글로 발표하고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일랜드인이지만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베케트는 전쟁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프랑스어와 영어 2개 국어로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 『몰로이』(1951), 『말론 죽다』(1951), 『이름 붙일 수 없는 자』(1953) 등의 소설과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1952) 외에도 단막극 및 비평서 등 다수의 라디오 드라마와 몇 편의 시집이 있다. 베케트는 정형화된 예술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예술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시도로 당시 문단에 가히 혁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말년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다가 1989년 파리에서 숨을 거뒀다.

김경의 옮김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마르크 블로크 대학에서 시네마와 오디오비주얼 학과를 수료하였다. 이후 같은 대학에서 영어영문학 학사학위를 받았고, 프랑스 문학과 영문학 간의 비교문학을 중심으로 석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현재 프리랜서로서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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