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벨룽의 보물

정문길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8년 6월 27일 | ISBN 9788932018713

사양 신국판 152x225mm · 682쪽 | 가격 35,000원

책소개

문학과지성사에서 ‘현대의 지성’ 시리즈로 출간된 『니벨룽의 보물: 마르크스-엥겔스의 문서로 된 유산과 그 출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긴 유고의 행방과 그 간행의 역사를, 마르크스 사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자료의 분석을 통해 추적하는 책이다. 저자 정문길(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은 마르크스 문헌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땅에서 거의 유일한 연구자로, 이 책은 그의 『소외론 연구』(1978, 월봉저작상 수상), 『에피고넨의 시대』(1987,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수상), 『마르크스의 사상 형성과 초기 저작』(1994), 『한국 마르크스학의 지평』(2004)과 궤를 같이하는 또 하나의 역작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유고의 존재 가치는 그들의 사상적 발전의 궤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불가결한 문헌상의 증거를 제공하는 데 있다”라는 저자의 언급에서 나타나듯, 이 책은 그들의 사상사적 측면을 살피기에 앞서 문헌학•서지학적 측면에서 유고의 전승 과정을 꼼꼼히 밝혀내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도 이들의 저서를 비롯한 관련 저작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지만 그 방향이 사상사적 측면에만 치우쳐 있었던 것이 사실. 저자가 평생에 걸쳐 이룩한 학문적 업적이기도 한 이 책은, 한국의 마르크스학 연구에 있어 의미 있는 주춧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듯 이 책에서 저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유고의 전승 과정을 밝힘으로써 사상사 연구에서 기초 자료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한편, 그들 유고의 특징과 학문적 성과뿐만 아니라 그 기구한 운명까지도 역사적으로 흥미롭게 써내려간다.(문학과지성사 刊, 678쪽, 35,000원)

니벨룽의 보물, 마르크스-엥겔스의 문서로 된 유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서로 된 유산의 전승 과정과 그 간행사(刊行史)를 정리한 『니벨룽의 보물』은 저자가 일본과 독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제 마르크스-엥겔스 재단을 오가며 4년여에 걸쳐 집필•완성한 책이다. 이 연구 과정에서 저자는 국제 MEGA 위원회로부터 국제적 MEGA 편찬 사업에 참여해달라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개인적 사정으로 고사했다). 이렇게 수집한 많은 자료들을 성실하게 인용하고 그 전거(典據)를 일일이 밝힌 점이나 일목요연한 구성 및 치밀하고도 구체적인 서술방식은 이 책의 큰 장점으로, 학술적 자료집으로 쓰이는 데 손색이 없다. 특히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학술서임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어나가는 데 무리가 없다는 점이 이 책의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 제목이 가리키는 ‘니벨룽의 보물’은 바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 저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를 “니벨룽의 보물”에 비유한 독일사민당의 대표적 이론가인 칼 카우츠키의 짧은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책을 기획했다. 30대에 엥겔스로부터 마르크스의 상형문자 해독법을 배웠고 엥겔스 사후에는 마르크스의 유고를 근거로 『잉여가치 학설사』를 편집•출판했으며 이후 마르크스-엥겔스 유고의 임대와 매각 교섭 과정을 곁에서 지켜봐왔던 카우츠키는, 신화 속 니벨룽의 보물이 그러했듯이 마르크스-엥겔스의 문서로 된 유산 또한 그 소유자를 불행하게 하거나 그것을 소유한 자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는 비극의 증표로 간주했던 것. 이들 유고와 관련된 그의 경험들이 반드시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기에 부정적 측면이 부각된 것은 사실이나, 이 책을 통해 마르크스-엥겔스의 문서로 된 유산의 드라마틱한 전승과 출판 과정을 돌아본다면 그의 예언에 독자들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터다.

마르크스-엥겔스 유고의 드라마틱한 전승과 그 간행사

먼저 이 책의 1부는 마르크스가 필생의 대작 『자본론』을 미완성으로 남겨두고 사망하자, 그의 문서로 된 유산의 최초 상속자인 엥겔스가 이를 바탕으로 『자본론』 제2, 3권을 완성하기 위해 죽는 순간까지 10여 년을 헌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엥겔스의 말년, 그들의 유고를 획득하려는 마르크스의 막내딸 엘리노와 독일사민당 간의 미묘한 갈등이 전개되면서, 이들 문서로 된 유산의 상속을 둘러싼 드라마는 그 숙명적 서막을 열게 된다.
책의 2부에서는 엥겔스 사후 1920년까지 엘리노와 독일사민당으로 양분된 그들의 문서로 된 유산이 출판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 출판된 이들의 저작은 체계와 내용 면에서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 것들로 마르크스의 저작권이 만료되는 1913년을 경과하게 된다. 이 책의 3부와 4부는 이렇듯 초기에 출판된 마르크스-엥겔스의 저작집이 갖는 결함을 극복하고자 이들의 “역사적-비판적” 전집을 기획•출판한 모스크바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MEI의 전집 출판 사업을 서술하고 있다.
제5부와 6부는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한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여 년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1933년 히틀러에 의한 나치스 정권의 등장은 마르크스-엥겔스의 문서로 된 유산의 안위를 크게 위협하는 사건으로, 독일사민당은 우선 이들의 유고를 코펜하겐과 파리로 소개시키고 망명지 프라하에서 반나치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독일사민당 망명 지도부는 나치의 정치적 압박과 전시 중의 핍박한 재정 형편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마르크스-엥겔스의 유고를 포함한 사민당-아키브를 암스테르담의 국제사회사연구소에 매각하게 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전후 독일이 사민당-아키브의 일부 장서를 회수하는 한편, 동독의 경우 모스크바 연구소의 협력을 얻어 러시아어판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에 근거한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MEW』을 출판할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동독에서 출판된 이 『저작집』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 대부분을 포괄하고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적 편향으로 인해 전집으로서의 완전성에는 크게 못 미쳤다. 따라서 앞서 나온 제1차 MEGA의 편집 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역사적-비판적” 전집에 대한 요구가 전기한 저작집의 편찬 과정에서 제기되었는데, 이는 스탈린 사망 이후의 정치적 해빙 무드와 궤를 같이한다.
이 책의 제7부는 모스크바와 베를린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가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신MEGA를 발간하는 과정을 살피고 있으며, 제8부에서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그때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어오던 신MEGA 출판 사업이 1930년대의 구MEAG처럼 중단 위기에 처하게 되자 이의 발행권을 위양 받은 국제 마르크스-엥겔스 재단IMES이 MEGA 프로젝트를 어떻게 계승•발전시키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렇듯 모두 여덟 개의 부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마르크스 사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 서술방식을 통해 마르스크와 엥겔스의 유고의 드라마틱한 전승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칼 카우츠키가 “이미 사망한 바그너가 니벨룽의 보물을 둘러싼 사건들을 중심으로 일련의 드라마를 만들었듯이, 제2의 바그너는 아마 마르크스-엥겔스의 유고가 겪는 운명들을 보면서 새로운 드라마를 쓰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와 같이, 굴곡진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한 편의 ‘드라마’이자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건’이기도 하다. 국제 마르크스-엥겔스 재단이 위임 받은 신MEGA 프로젝트는 현재 전체 예정 권수의 절반을 출간(2007년 기준)했고, 2020년까지 완간될 예정이다. 이제 저자의 말처럼 “마르크스-엥겔스의 문서로 된 유산들이 더 이상 니벨하임의 동굴이나 라임의 하상(河床)에 사장된 보물이 아니라, 잘 단련된 보검이나 저주가 풀린 반지로서 재현될 것을 기대”해본다.
680여 쪽의 본문 중간 중간 내용을 정리하는 표를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으며, 책의 앞부분에도 16쪽의 화보를 실어 보다 생생한 독서가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책의 뒤에는 <연표로 본 마르크스-엥겔스의 문서로 된 전승과 출판>을 덧붙임으로써 책 전체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

■ 책 속으로

마르크스의 문서로 된 유산은 크게 보아 그가 남긴 출판된 저서 및 논문과 평론, 초고, 발췌, 서간문, 각종 문건, 그리고 장서들로 구성된다. 먼저 마르크스 생전에 출판된 저서는 『자본론』 제1권을 비롯한 수권의 저서에 한정되어 있으나 잡지와 신문에 발표된 논문이나 평론, 그리고 기사는 상당히 방대한 양에 이른다. 특히 그가 주관한 1843~1844년의 『라인 신문』이나 1844년의 『독불 연지』, 1848~1849년의 『신라인 신문』, 그리고 1852~1861년 동안 거의 10년에 걸쳐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 기고한 글, 국제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하면서 쓴 연설문이나 논박서 등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들 저서나 출판물의 자용본(自用本)에 기재된 각종 수정 지시나 난외방주 및 밑줄, 옆줄 등은 그의 사상적 발전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한다. (……)
마르크스의 발췌노트는 그가 학창 시절 이래 읽은 각종 서적의 발췌 초록이나 메모들로 모두 180권에 달하며, 이는 그의 개별적 저작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위해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평생에 걸쳐 작성된 이처럼 방대한 발췌노트가 반드시 일관적일 수는 없다. 그의 발췌노트는 대개 다음과 같은 3단계의 작업 과정에 걸쳐 있다. 우선 첫 단계는 단순한 발췌나 요점을 정리한 것으로 이는 정확하고도 완벽하게 원고의 작성에 이용된다. 이러한 형태는 통상 그가 처음으로 작업하는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으로 그는 이 첫째 단계에 근거하여 주석적 메모를 붙이고, 이에 따라 내용을 부연하거나 그가 원하는 논의의 방향으로 이를 재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기왕의 자료를 충분히 소화하여 노트를 만듦으로써 그의 발췌를 간결한 문장으로 압축하여 정리하고 있다.
한편 발췌노트와 더불어 마르크스의 정신적 작업의 산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그의 개인 장서를 일별하는 일이다. (……) 그는 크기나 제본의 형태, 또는 종이질이나 인쇄의 차이를 가리지 않고 책의 귀를 접거나, 난외에 연필로 글을 쓰거나 줄을 긋고 일정한 기호를 달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 다시 그 발췌노트나 책을 꺼내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곤 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개인 장서를 복원하는 일은 발췌노트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갖는다. (제1부 1장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그의 유고 39~41쪽)

사실 엥겔스 사후의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의 출판은 많은 문제를 노출했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엘리노가 마르크스의 저작이라고 믿고 출판한 『혁명과 반혁명』(1896)의 저자가 실은 엥겔스였다는 점이나, 카우츠키가 오랜 기간에 걸쳐 편찬•출판한 마르크스의 『잉여가치 학설사』(1905~1910)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의도했던 기왕에 출판된 『자본론』 제1~3권의 후속편인 제4권이 아니라 그것과 병렬적인 독립된 저작인 것처럼 출판되었다는 점이다. (……)
그러나 이 시기에 출판된 마르크스-엥겔스의 유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13년에 발행된 『마르크스-엥겔스 왕복서간집』이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왕복서간은 파울 마이어가 지적한 것처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와 동일시되기에 그것의 보관과 출판은 “사민당-아키브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로서 그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우선 이들 두 사람의 서간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유고의 보관•관리와 출판권이 베벨과 더불어, 당시 수정주의 논쟁을 야기한 장본인인 베른슈타인에게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민당 내의 치열한 수정주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서간집의 편찬에서 베른슈타인을 배제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이들 두 사람의 왕복서간에는 치열한 이론적 논의, 즉 기회주의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과 혁명적 문구의 사용, 그리고 수많은 당대의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솔직한 평가와 가감 없는 비판이 기술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들―특히 당시에도 생존하여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는―인사들에 대한 기술 내용을 편지에 쓰인 대로 공개하느냐, 아니면 이를 완화하거나 삭제하느냐 하는 일들이 편찬상의 중요한 과제요 또 난관이었다. (……) 사실 이 왕복서간집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마르크스-엥겔스의 위대한 유산의 중요 부분이 처음으로 출판된 것으로, 이는 국제노동운동사에 있어서 하나의 사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서간집은 독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니, 망명지의 레닌은 이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근원적이고도 세계 변혁적인 목표를 향한 가장 심원한 이해”를 읽었다고 쓰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르크스-엥겔스 왕복서간집』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레닌으로 하여금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본격적인 마르크스-엥겔스 연구를 가능하게 한 하나의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제2부 2장 독일사민당-아키브 120~22쪽)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MEI가 발족하던 당시의 리야자노프의 출판 계획은 우선 마르크스-엥겔스의 러시아어판 전집Sočinenija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료의 수집 과정에서 특히 “[베른슈타인이 소장한] 자료의 면밀한 분류와 독일사민당-아키브에 보관되어 있던 마르크스-엥겔스의 미간 유고들을 엄밀히 검토하게 되고, 거기에서 너무나도 많은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들을 접하게” 된 리야자노프는 원래이 편집 계획을 수정하여 마르크스-엥겔스의 국제판 전집MEGA 출판 계획을 병행하게 되었다. (……)
특히 그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두 창시자의 문서로 된 유산 전체를 완벽하게 잘 정리하여 연구에 기여케 하려는 시도가 아직도 없었기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기간(旣刊)이나 미간(未刊)의 유고를 완벽하게 집성하거나 비판적-학술적으로 출판하는 데는 엄청난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거나,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또 부분적으로 부정확하고 불완전하게 출판된 모든 자료들에 학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시 말하면 “모든 학문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그들 저작의 비판적 전집”을 출판하려는 기획을 하게 된 것이다. (제4부 1장 최초의 “역사적-비판적” 전집의 발행 229~30쪽)

(……) 그(리야자노프)는 텍스트의 엄밀한 재현을 이 전집이 가져야 할 제1의 미덕으로 강조하고 있다. 특히 “문자로 기록된 그들의 모든 정신적 증거물을 완벽하고 체계적으로 집대성하는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은 “좁은 의미에서의 저작이나 인쇄된 논설만이 아니라 미완성의 노작, 미발간의 논설과 단편까지도 포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두 사람의 예비적 작업 성과(자료 모음, 초안, 스케치, 원초고, 개별 저작에 채택되지 않은 단편들)도 꼭 같이 최대한 이용하여 필요할 경우 게재”하고, “마르크스-엥겔스의 서간문은 그들 두 사람의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받은 제3자의 편지들도 포함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이 프로스펙트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모든 편지와 저작은 원래의 텍스트에 나타나는 언어로in der Sprache des Originaltextes 재현되고 편자의 서론이나 주석은 독일어로 기술될 것”이라는 표현이다. 이는 마르크스-엥겔스의 국제판 전집에 사용될 기본적 언어가 그들 두 사람의 모국어인 독일어임을 명시적으로 천명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제4부 1장 최초의 “역사적-비판적” 전집의 발행 235~36쪽)

우리는 가끔 오늘날의 시점에서 독일사민당-아키브의 IISG 매각 문제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다시 말하면 IISG가 재정적으로 역경에 처한 SOPADE를 밀어붙여 마르크스-엥겔스 유고를 포함한 사민당-아키브를 헐값에 매입했다는 것이다. 1937년 말 나치 정권의 위협을 받은 체코 정부가 SOPADE의 기관지 『노이어 포아베르츠』의 가판을 금지하고, SOPADE 역시 빠른 시일 안에 파리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당-아키브의 매각을 통한 자금의 조달이 없었다면 SOPADE는 존망의 기로에서 헤매야 할 형편이었다. 게다가 당-아키브 역시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었고, 망명 사민당의 2대 기둥인 벨스와 크루머넬이 중병을 앓고 있어 SOPADE로서는 전쟁의 위협에서 이를 관리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따라서 매각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38년 4월 26일, 드 리메가 크루머넬에게 보낸 편지에서“(당-아키브의) 소유권을 우리에게 양도하는 것이 인류를 위해 이를 망실치 않는 유일한 길이란 점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한 것은 당시의 절박한 사정을 표현한 것으로 우리가 이를 액면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네덜란드가 전통적으로 중립국이었기에 유럽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자료의 관리에 적합했다는 점과, 1938년 9월 29일 히틀러와 챔벌레인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턴 지역의 할양을 포함하는 제3제국의 국경 수정을 승인하는 뮌헨협정을 체결하자 전쟁의 도래를 감지한 포스트후무스가 신속히 마르크스-엥겔스 유고를 비롯한 귀중 자료의 피난 계획을 수립한 것 등을 통해 증명된다. (제5부 4장 망명 독일사민당의 재정 악화와 당-아키브의 매각의 매각 360~61쪽)

(……) 제2소치네니야는 MEGA와 같이 “역사적-비판적” 판본처럼 학술적이기보다는 “대중판Leseausgabe”이었다. 그럼에도 이 신판은 1950년대와 60년대는 물론이고, 보권까지 포함하여 완간된 1980년대 초까지도 마르크스-엥겔스의 문서로 된 방대한 유산을 가장 포괄적으로 출판한 저작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이 전집은 그들이 집필한 원어(原語)가 아닌 러시아어로 번역•발간되었다는 취약점은 있으나 마르크스-엥겔스의 전집 출판에 관한 한 아무런 지적•경험적 축적이 없었던 1950년대의 동독독의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가 이를 그들이 기획하는 새로운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의 모범으로 삼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제6부 3장 망명 동독에서의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 출판 계획과 러시아어판 저작집 421쪽)

모두 39권과 4권의 보권으로 구성된 MEW는 오늘날 독일은 물론이요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이 이용되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저작집이다. (……) MEW는 제2권 서문에서도 분명히 밝힌 바와 같이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역사적-비판적 전집”보다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작들을 아주 짧은 기간에, 가급적 완벽하게 수록한 대중적 저작집을 겨냥하고 있었다. (……) 연구용 판본이나 대중판은 그 수록 작품이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MEW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모든 저작을 수록치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MEW는 편집 당시 발견된 거의 모든 저서, 저작, 논설들은 물론이고, 초고, 초안, 준비 노작까지도 발췌하여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서간 부분은 당시로서는 완벽한 4,171통의 서간문을 게재했는데, 거기에는 그들이 제3자에게 보낸 편지들도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다시 말하면 비록 역사적-비판적 전집에는 이르지 못하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더 많은 저작을 포함시키려는 소치네니야나 MEW 편집진들의 노력이 정치권의 이데올로기적 이해와 일치하여 저작집을 비교적 짧은 기간에 완성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저작집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제6부 4장 독일어판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의 편집과 출판 432~34쪽)

구MEGA로부터 신MEGA의 단절이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부분은 1940년대 말 이래 발달한 새로운 편찬학에 기초하여 편집 기준을 확정함으로써 고도의 학문적•문헌학적 수준을 확보한 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발췌노트는 물론이요 그들에게 “보낸” 제3자의 서간까지도 포용하는 절대적인 완전성의 추구, 4개 부별 텍스트의 연대기적 순서의 엄격한 적용, 근대화된 이문의 재현, 텍스트에 나타나는 원어의 채택, 그리고 텍스트에 대한 풍부한 주석 등은 신MEGA의 특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편집된 텍스트와 연대기적 순서에 따른 이문의 재현은 역사적-비판적 전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 쌍의 짝으로서 하나의 통일성을 형성하고, 또 상대를 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초고나 제1쇄, 최종본 등 그 어느 단계의 작품에도 우선권이 부여되지 않은 채 개개 텍스트를 발전적 인식을 추적하는 하나의 전거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편집된 텍스트는 제1쇄나 초고의 최종본처럼 초기의 초고나 판본이 이용되고, 나머지 판본은 발전 과정을 보이기 위해 연대순으로 병렬적으로 재현시켰다. (제7부 3장 신MEGA 정규권의 출판과 성과 509~10쪽)

■ 차례

책머리에/ 약어 일람/ 일러두기/ 프롤로그

제1부 미완의 『자본론』과 이의 완성을 위한 유고의 상속

1장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그의 유고
1. 마르크스 필생의 대작, 『자본론』|2. 마르크스의 말년과 사망|3. 마르크스 사후의 서재 정리|4. 마르크스의 문서로 된 유산: 저작, 논설, 유고, 서간, 그리고 장서

2장 프리드리히 엥겔스: 마르크스 유고의 최초 상속자
1. 엥겔스의 『자본론』 제2권의 편집과 발행|2.『자본론』 제3권과 엥겔스의 말년|3.『자본론』 제4권과 마르크스의 난해한 상형문자 해독 방법의 전수|4. 1890년: 독일 정치사의 분수령|5. 니미의 사망과 루이제의 등장: 유고를 둘러싼 새로운 분쟁의 씨앗|6. 엥겔스 최후의 대륙 여행

3장 엥겔스의 최후와 유고를 둘러싼 작은 소동
1.『자본론』 제3권의 완성|2. 루이제와 엘리노(투시)의 불화|3. 니미의 사생아 프레디 문제

제2부 엥겔스의 사망과 마르크스-엥겔스 유고의 행방

1장 엥겔스 사후의 유고의 행방
1. 엥겔스의 유언서 집행|2. 모올의 저작을 출판하려는 엘리노의 정력적 노력|3. 엘리노의 사망과 마르크스 유고의 행방

2장 독일의 사민당-아키브
1. 망명지에서 설립된 사민당-아키브|2. 마르크스-엥겔스 장서의 당-아키브 편입|3. 니콜라예프스키의 마르크스-엥겔스 장서 목록 작성|4. 마르크스-엥겔스 유고의 사민당-아키브 도착

3장 “역사적-비판적” 전집 이전의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의 출판
1. 사상가의 문서로 된 유산과 전집의 의미|2. 미완성으로 끝난 마르크스의 최초의 저작집|3. 마르크스 사후의 전집 출판에 대한 엥겔스의 입장|4. 엥겔스 사후의 저작집 및 서간집 출판|5. 오스트리아-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전집 출판 계획

제3부 새로운 연구 중심으로 떠오른 모스크바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

1장 베를린의 사민당과 모스크바의 볼셰비키

2장 10월 혁명 이전의 리야자노프의 마르크스-엥겔스 연구
1. 마르크스의 『동방문제』와 관련된 연구: 대영박물관에서의 자료 수집|2. 『인터내셔널 관련 문서집』 편찬과 마르크스-엥겔스 유고의 열람|3. 전집 출판에 대한 리야자노프의 집념

3장 모스크바의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
1. 연구소의 설립|2. 레닌의 사피스키: 전폭적 지원의 단서|3. 개인 장서의 매입과 연구실 중심의 도서 배치|4. 아키브의 구축과 마르크스-엥겔스 관련 문서와 유고의 복사

4장 전집 출판을 위한 사민당-아키브 소장 유고의 복사
1. 독일사민당-아키브 소장 유고의 복사와 저작권 교섭|2. 정치적 긴장의 고조와 사민당-아키브 자료의 복사 금지

5장 『독일 이데올로기』 유고를 둘러싼 스캔들
1. 리야자노프와 구스타프 마이어의 논쟁|2. 『독일 이데올로기』 초고 일부의 독일 내 출판을 둘러싼 당내 논쟁

6장 파국: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와 사민당-아키브의 결별

제4부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 최초의 “역사적-비판적” 전집 발행

1장 최초의 “역사적-비판적” 전집의 발행
1. 마르크스-엥겔스 공동 전집의 문제|2. MEGA1 편찬의 기본 원칙|3. MEGA1 각 부의 권별 구성의 구체화|4. MEGA1의 발간

2장 리야자노프와 스탈린의 알력
1. 1930년의 리야자노프: 생애의 정점|2. 리야자노프의 숙청

3장 아도라츠키에 의한 MEGA의 속간과 중단
1.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의 레닌 연구소에의 합병|2. 연구원의 숙청과 조직의 개편|3.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의 MEGA 속간|4. 제1차 MEGA 프로젝트의 종언

제5부 파시즘의 대두와 마르크스-엥겔스 유고의 소개, 그리고 매각

1장 독일에서의 파시즘 대두

2장 독일사민당-아키브와 마르크스-엥겔스 유고의 소개
1. 마르크스-엥겔스 유고의 덴마크로의 소개|2. 독일사민당-아키브의 실질적 중심 자료의 파리 이송|3. 제3의 경로를 거친 사민당-아키브 소장 자료의 유출과 소개

3장 망명 독일사민당의 재정적 압박과 당-아키브의 매각에 대한 유혹
1. 사민당-아키브의 매각, 혹은 대여와 관련된 최초의 제안|2. 센세이셔널한 러시아의 사민당-아키브 매입 제의|3. 사민당-아키브의 대여와 관련한 교섭 주체의 변경|4. 부하린의 파리 출현: 파국으로 치닫는 러시아 측 유고 임대 교섭|5. 모스크바의 정치 재판과 유고 매각 교섭의 결렬

4장 망명 독일사민당의 재정적 위기와 당-아키브의 매각
1. 스웨덴 사민당 및 미국 버클리 대학과의 매각 교섭|2. 네덜란드 국제사회사연구소에의 당-아키브 매각

제6부 종전 후 자료의 수복과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의 출판

1장 제2차 세계대전의 종언과 분산된 자료의 수복‧정리
1. 마르크스-엥겔스의 유고를 포함한 독일사민당-아키브의 암스테르담 ‘복귀’|2. 모스크바 마르크스-엥겔스-레닌-연구소의 우파 소개와 복귀, 그리고 전후의 자료 수집|3. 동베를린 연구소의 사민당-아키브 장서 복원 사업|4. 서독 지역의 사민당-아키브 복원 작업|5. 마르크스-엥겔스 개인 장서의 복원과 목록화

2장 신MEGA 이전의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의 출판
1. 종전 직후 소련 점령 지역의 정치적 정세|2. 전후 독일에서의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의 출판과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의 설립

3장 동독에서의 마르크스-엥겔스-저작집 출판 계획과 러시아어판 저작집
1. “1953년, 칼 마르크스의 해”|2. 모스크바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의 제1, 제2소치네니야 출판

4장 독일어판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의 편집과 출판
1. MEW의 출판 경과|2. MEW의 특징과 정치적•학문적 성과

제7부 새로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의 기획과 출판

1장 1950년대와 60년대의 신MEGA 발간 기획
1. 스탈린의 사망과 신MEGA의 태동(1955~1964)|2. 신MEGA의 출판을 위한 기본적 프레임의 구축(1965~1968)

2장 신MEGA 시쇄판(1972): 신MEGA 출판의 신호탄
1. 서구의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 출판|2. 베를린 MEGA 작업팀의 인적 충원과 조직의 확대|3. 신MEGA 프로스펙트의 구체화|4. 편집 원칙의 상세화와 신MEGA 시쇄판의 발행

3장 신MEGA 정규권의 출판과 성과
1. 신MEGA의 출판과 이를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2. 신MEGA 정규권의 출판과 중단|3. 동독 시대에 발행된 MEGA와 그 학문적 성과|4. 양날의 칼: 아카데미즘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갈등

제8부 국제 마르크스-엥겔스 재단의 창설과 신MEGA의 학술화와 국제화

1장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국제 마르크스-엥겔스 재단의 결성
1. 공산권의 붕괴와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의 해체|2. 국제 마르크스-엥겔스 재단의 설립

2장 MEGA의 지속적 발간을 위한 국제적 호소와 지원
1. MEGA의 지속적 발간을 위한 국제 학계의 호소|2. 베를린 MEGA 재단의 구좌 폐쇄에 반대하는 지식인의 호소|3. 통독 이후 대학의 정리와 MEGA 사업의 축소 및 폐지

3장 변화된 환경에서의 새로운 편집 기준의 수립
1. MEGA 사업의 아카데미로의 편입|2. 국제 마르크스-엥겔스 재단의 새로운 편집 기준: 엑상프로방스 회의

4장 MEGA 계획의 새로운 조정: 새로운 프로스펙트의 작성
1. MEGA 플랜의 개정을 위한 전제|2. 제I부: 저서•논설•초안|3. 제II부: 『자본론』과 그 준비초고|4. 제III부: 왕복서간|5. 제IV부: 발췌노트와 메모

5장 IMES의 신MEGA 편집과 출판 현황
1. 편집 그룹의 국제적 확대|2.신 MEGA의 출판 현황

6장 요약: 국제 마르크스-엥겔스 재단에 의한 신MEGA의 발행과 전망

에필로그/ 참고문헌/ 감사의 말/ 찾아보기

작가 소개

정문길 지음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소외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소외론 연구』(1978, 월봉저작상), 『에피고넨의 시대』(1987,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마르크스의 사상 형성과 초기 저작』(1994), 『한국 마르크스학의 지평: 마르크스-엥겔스 텍스트의 편찬과 연구』(2004), Die deutsche Ideologie und MEGA-Arbeit(2007), 『니벨룽의 보물: 마르크스-엥겔스의 문서로 된 유산과 그 출판』(2008, 한국출판문화상 학술 부문)과 산문집 『정문길 교수의 보쿰 통신』(1998)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포이에르바하』(198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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