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을 샀어

조경란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8년 6월 13일 | ISBN 9788932018690

사양 · 324쪽 | 가격 12,000원

수상/추천: 동인문학상

책소개

생의 상실과 깊은 절망에서 푸른 희망의 실을 자아내는
조경란 소설의 본령, 그 심원한 탐색

“언젠가는 일 대 일로 나와 당신은 만나게 될 것이다,
삶의 지도로서의 책, 그 위에서.”
─본문에서

깊은 밤, 고독과 열정으로 가득한 ‘소설가의 방’으로의 초대,
‘나’를 향한 침잠에서 ‘타인’과의 소통으로

올해로 등단 13년째로 접어든 작가 조경란이 다섯번째 소설집 『풍선을 샀어』(문학과지성사, 2008)를 발표했다. 이미 북미를 비롯한 독일과 프랑스 등지에서의 수차례에 걸친 낭독회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최근에는 장편소설 『혀』(2007)의 판권을 국내 작가로서는 최고 대우를 받으며 해외 유수의 출판사와 계약을 맺는 등 자신의 문학적 자장을 꾸준히 밖으로 넓혀온 조경란은, 그동안 ‘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주요 소설가’ 그 부동의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면서 독자와 문단의 신뢰를 받아왔다. 1996년 단편 「불란서 안경원」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이후, 다섯 편의 소설집과 다섯 편의 중·장편소설을 발표해온 조경란은 크게 “시적 광휘와 서사적 긴장”이 어우러진 자재롭고도 밀도 높은 문체로 문단과 독자의 신망과 기대에서 좀체 벗어난 적이 없다. 심미적 소설이 가닿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많은 이들이 슬픔이 응축된 단정하고도 왠지 모를 서늘함을 매복한 조경란의 소설에서 찾고 위안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년 만에 발표한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 「풍선을 샀어」(2007 이수문학상 수상후보작, 2006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를 비롯해 직전의 소설집 『국자 이야기』 이후 올해 봄까지 계간지에 발표해온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여덟 편 모두, 작가 개인이 그리고 문학출판계 시장 전반이 다변화를 요구받았던 그 4년의 시간 동안 문득 그 화려하고 분주한 관계들을 뚫고 찾아드는 고독, 글쓰기 자체에 대한 자의식과 고민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여덟 작품 속 화자는 하나같이 1인칭 주인공 ‘나’다. 여기에는 가족보다 더 긴밀한 유사가족의 틀 속에서 생활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타인과의 교통이 그다지 원활하지 못한 예민한 성격을 지녔다. 혈육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과 그로 인한 깊은 상처, 그리고 제자리를 버리고서야 비로소, 함께 있을 때 더욱 외로웠던 공포에 가까운 방황에서 자유로워지고, 몰랐던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 새로운 시작에 다가서는 인물들이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 또 다른 축은 글쓰기의 어려움과 책읽기의 행복, 이른바 “책의 존재론”을 두고 고민하는 인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글쓰기를 통해 지난한 고통을 극복해간다는 측면에서 작가 본인의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된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타인 혹은 외부와 벽을 쌓고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주인공 ‘나’들은 소통이 실현되는 실제적, 구체적인 상황을 접하고 각기 다른 치유의 길을 모색하고 때로는 도달하기도 한다. 작가 조경란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세련된 얼개가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한데, 1인 ‘나’의 자기성 혹은 개인성이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작가를 움직이고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에서 그 구성의 묘미가 빛을 발한다.

갈등과 번민, 상처와 슬픔 혹은 그보다 더욱 극적인 열망과 환희 앞에 선 인간 개개인의 미묘한 심리 변화에 천착해서, 때로는 날선 과도로 그어도 보고 둔중한 가위날로 잘라냈다가 그 모든 것들을 허허롭게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여유를 보이는 등 보다 깊은 상처의 근원을 건드리고 집요하게 좇아가는 이른바 조경란 소설의 본령을 이번 『풍선을 샀어』에서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 그 상처를 치유하는 길을 모색하는 성숙한 인물들을 만들어가는 작가적 역량, 이른바 등단 13년차 작가의 “유연한 면모, 담담한 여유”(차미령)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 바로 이번 소설집 『풍선을 샀어』가 이룬 값진 성과다.

소설집 『풍선을 샀어』를 읽어가다보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문체와 더욱 원숙해진 철학적 사유로 견고한 단편소설의 완결성, 읽는 이로 하여금 순간 움찔하게 만드는 긴장미를 만나게 된다. 작가의 내밀한 심경을 훔쳐보는 은밀한 묘미, 더불어 1인칭 주인공 화자 ‘나’로 대변되는 작가가 타자와 교감하기 위해 극심한 떨림과 불안의 고통을 감내하고 속 깊은 숨결, 따스한 손짓을 건네는 지점이 그러하다. 고통과 불안을 껴안고 ‘나’에게 솔직해지기, 관대해지기, 그러고 나서 타인과의 화해에 이르는 쉽지 않은 고행의 과정을 오롯이 읽는 독자의 몫으로도 남겨놓는 것, 조경란의 이번 소설집에서 독자가 가장 크게 공감하게 되는 대목일 것이다.

“소설의 인물은 고흐의 그림에 대해 연인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고흐의 불안과 고통 없이 그 그림이 진정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이라고. 불안과 고통이 수놓았던 밤의 어둠은, 그것을 감싸 안는 인간의 의지와 더불어 낮의 빛 속으로 스민다. 그러한 의지가 이미지로 현상한 것이 이 소설집 곳곳의 둥근 형상들이다. ‘알’이나 ‘열매’와 같이 어떤 둥근 것들은 이제 막 가득 차게 된, 언젠가는 열리게 될 그러한 원이었다. ‘반지’와 같이 굴레인 동시에 기댈 수 있는 약속인 원도 있었고, ‘에니어그램’과 같이 각각의 점들을 전체 속에 조화시키는 원도 있었다. 지구와 화성과 토성으로 이루어진 우주적 화음을 들려주려 하는 동그라미들도 있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겠다. ‘풍선’이 있었다. 우리의 영혼을 비끄러매고 있는 매듭은 풀리고 위로 들어 올려져, 저 먼 하늘로 향한다.
시작도 끝도 없다. 그것이 원이다. 아마도 그래서 현자들은 원에서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잇는 완전성을 보았을 것이다, 그 속의 아늑한 평화를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작가가 고독하게 원들을 그려가던 밤들, 그 시간들을 자꾸 그려보고만 싶다. 간절하게 목마른 자만이 물을 찾으러 나선다. 책을 쓰고 싶다고, 언젠가는 책을 쓰겠다고 말하는 인물들이 가슴저리는 것은 왜일까. 불현듯 깨닫는다. 이 유연함, 이 담담함 안에 이제까지의 지도를 의심하며 가까스로 찍어나간 점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원들이 숨 쉬고 있었구나. 동그란 원은 그렇게 글자로 변하고, 책장으로 변하고, 한 권의 책이 되어, 바깥으로 열린다, 당신과 만난다.” _차미령(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작가의 말
만약 ‘작가의 말’에 제목을 붙인다면 ‘단편소설 쓰는 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소설들은 2004년 가을부터 올 봄까지 쓴 글입니다. 모두 깊은 밤, 혹은 새벽에 쓴 글들이지요. 그 집중된 시간이 주는 친밀감과 장엄함, 그리고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언어들. 가장 어두울 때 가장 밝은 순간을 기다리듯, 그 짙푸른 시간들 속에서 제 마음을 치고 지나갔던 울림들, 애끓는 감정들을 한자 한자 적어나갔을 것입니다. 글을 쓰는 시간이 늘 힘겹거나 고통스럽지만은 않습니다. 이따금 놀랄 만큼 정신이 맑아질 때가 있기도 하고 제 글이 저의 어떤 실현을 향해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착각이 없다면 아마 계속 글을 쓰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글 쓰는 시간은 저에게는 이를테면 창문 같은 것입니다. 제가 속해 있는 공간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한 제가 머물고 있는 이쪽 공간을 밝혀주는, 환하디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일요일에는 책장을 하나 더 들여놓을 생각입니다. 뜨거운 책, 엄격한 책, 자유로운 책, 다 읽은 책, 다시 읽을 책 등등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은 이제나저제나 큰 즐거움입니다. 책들로 빽빽이 꽂혀 있는 책장을 바라보는 일 역시 즐겁습니다. 책등에 적힌 제목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렇게 책장들 사이에 서 있으면 거대한 숲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지요. 책 자체가 좋습니다. 위안과 힘이 되는 책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책을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서 저는 사랑의 가능성과 일상적인 것들 안에 감추어진 변화의 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꽃 피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말하고, 그것을 글로 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오랜만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책을 냅니다. 고맙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독자여러분께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이 없다면 이 다섯 번째 소설집은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 글을 쓰는 동안 많은 영감을 주고 동시에 저를 깨어 있게 한 니체와 고흐, 그들의 고독에게도. 그리고 거기 멀리 있는 당신께도 안부를 전합니다. 냉정하고 막연하지만 때로 호의적인 것. 글쓰기와 인생이 그런 비슷한 리듬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제 저는 여섯번째 소설집을 쓰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개인적인 모험이자 소명입니다. 그때까지 모두들 안녕히.

2008년 6월 조경란 씀

작가 소개

조경란 지음

조경란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불란서 안경원」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1997; 개정판 2006) 『나의 자줏빛 소파』(2000) 『코끼리를 찾아서』(2002) 『국자 이야기』(2004), 중편소설 『움직임』(1998; 2003),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1997) 『가족의 기원』(1999)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2001) 『혀』(2007) 그리고 산문집으로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2003) 등이 있다. 문학동네작가상(1996),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2), 현대문학상(2003) 등을 수상했다.

독자 리뷰(1)

독자 리뷰 남기기

7 + 10 =

  1. cactus
    2008.12.04 오전 11:57

    오릇하게 소설만을 쓰는 작가, 당연 모든 작품은 같을 수는 없다. 같아서도 안 될 것이다. 조경란을 떠올리면, 아무말 없이 곁에서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를 만나는 듯한 느낌, 가만 마주 앉아 켜켜히 쌓아둔 슬픔을 가져갈 것 같은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글 때문이리라.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소설, ‘나의 자줏빛 소파’, ‘불란서 안경원’을 참 좋아한다. 장편도 만났지만, 단편에서 느껴지는 조경란의 글이 더 좋다.

    풍선을 꼭 사야할 것만 같았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유독 떠나는 이, 남겨진 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나를 지켜주는 이들은 언젠가 모두 나를 떠나고 만다. 죽음으로 인한 영원한 부재이거나, 사랑의 이별, 그래도 남겨진 이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어김없이 하루를 맞이하고 살아내야 한다.

    매번 그녀의 소설에는 요리가 등장하고, 나이가 등장한다. ‘풍선을 샀어’ 에서 독일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어린 조카와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한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여성 화자가 많았던 기존의 소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남성 화자가 등장하는 두 소설, ‘달팽이에게’ 와 ‘달걀’ 이 갖는 변화는 크다. 예상할 수 없는 아니, 치유할 길이 없는 알츠아이머, 파킨슨, 치매라는 질병을 안고 사는 소설 속, 고모, 엄마, 이모.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내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가족의 죽음, 부모를 대신해 나를 키워주고 지켜주던 고모, 이모의 죽음을 말하지만, 결국 남성 화자를 통해 여자를 이야기한다. 고모라는 여자, 이모라는 여자, 그들이 사랑한 여자들에 대한 초상이다.

    남편을 찾아 낯선 도시에 지도 한 장을 의지하며 길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형란의 첫번째 책’. 형란에게 지도는 남편에게로 가는 유일한 길이며,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할머니가 손녀인 나를 떠나보내는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손녀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작가의 전작에서도 항상 결핍은 있었다. 다만, 그 전작들에서는 결핍, 그대로로 남았다. 이 소설집에서는 부재를 채울 수 있는 긍정, 희망을 보여준다. 부드러워지고, 느슨한 느낌을 받는다. 어쩜 작가 역시 삶에 대해 떠남에 대해 좀 자유로운게 아닐까 싶다.

    쓴다는 건 종이 위에 나를, 나의 표상 하나를 거기에 내려놓는다는 게 아닐까요. 이것은 보잘것없는 지도 한 장에 불과하지만 이 얇고, 가벼운 한 장 종이 위에 나는 나의 첫번째 표상을 내려놓았어요.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첫번째 책입니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단 한 권의 책과 조우할 수 있듯이 이 지도 또한 누군가와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서로 다른 곳에 있지만 1월의 편서풍과 7월의 무역풍 속에서 우리는 간은 바람과 같은 기후로 살고 있듯. 우리의 은밀한 의식은 이 한 페이지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119~120 쪽

    인간의 고독, 우울함, 내면의 출렁임을 하나 하나 풀어나가는 ‘밤이 깊었네’, ‘마흔에 대한 추측’은 가끔씩 소리 내어 웃거나 울고 싶은 우리네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소설은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독일에서 니체를 공부하고 돌아온 이도 독일로 사랑을 찾아 떠나는 이도 홀로 남겨졌지만 우울을 이겨내려는 몸짓들도 다르지만 하나의 모습이다. 고립되지 않고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려 애쓰는 흔적들이 조경란의 변화인지 모른다. 서른을 노래했던 작가, 이제 그녀는 마흔을 노래한다. 치열한 삶, 둔탁하면서도 날카롭던 그녀의 글을 떠올리기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떻게 할까.

    그녀의 책을 만나면서 나 역시 내게 올 마흔이라는 초상을 그려본다. 모나지 않기를, 혹여 두려움이 닥쳐오더라도 나만의 풍선을 기억하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