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관계

대산세계문학총서 068

원제 Les liaisons dangereuses 1782

쇼데를로 드 라클로 지음 | 윤진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7년 12월 21일 | ISBN 9788932018287

사양 신국판 152x225mm · 560쪽 | 가격 16,000원

책소개

19세기의 스탕달을 예고한 18세기 프랑스 심리소설의 백미
프랑스대혁명의 전야, 18세기 유럽 사교계를 배경으로
사랑의 환상을 조롱하고,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파한
서간체소설 『위험한 관계』

군인이었던 작가 라클로가 군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목적으로 쓴 소설『위험한 관계』는 18세기 말, 프랑스 사교계의 허영과 성적 욕망, 부패한 사랑 게임을, 여러 인물들이 주고받는 총 175개의 편지로 낱낱이 밝힌 서간체 소설이다. 전체적으로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되었을 뿐 특별한 장치 없이 여러 목소리의 편지글이 나열된 『위험한 관계』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 발발 직전의 프랑스 귀족사회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묘사, 그리고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내밀한 심리 묘사로 18세기 프랑스 소설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마치 포병장교가 공격과 방어의 계산된 군사전략을 시행하듯 작가 라클로는, 냉철하고 치밀하게 남녀 간에 복잡하게 얽힌 사랑과 증오, 간계와 질투를 가급적 꾸밈과 환상을 배제한 채로 건조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성과 도덕이 지배하던 계몽주의 시대, 그 아래 숨겨진 적나라한 생활상을 그린 시대의 풍속화이자 감정의 굴곡을 그린 연애소설로서 『위험한 관계』는 종종 같은 시대 서간체로 씌어진 장-자크 루소(1712~1778)의 『누벨 엘로이즈Nouvelle Heloise』와 함께 이야기된다. 루소의 소설이 ‘사랑과 미덕’의 이야기라면 『위험한 관계』는 ‘악덕과 방종’의 이야기로 요약된다. 이런 측면에서 역시 18세기라는 합리적 이성의 시대에 성(性) 본능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을 시도하여 인간의 자유와 악(惡)의 문제에 천착했던 작가 사드(1740~1814)의 작품과 더불어 18세기 성 담론에 관한 중요한 자료로 읽히기도 한다.

실제 라클로는 자신의 소설이 사람들(특히 여인들)이 작품 속 인물들 같은 불행한 길에 빠지지 않도록 “사교계에서 수집하여 사람을 교화(敎化)시키기 위해 간행한 서간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세기를 훌쩍 넘긴 오늘날까지 이 소설을 지탱하는 것은 오히려 모든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사랑의 미덕에 대해서나 방종의 악덕에 대해서나 비등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 깊은 본질에 이르고자 하는 작가의 집요한 탐구의 시선이다. 『위험한 관계』에 그려진 미덕의 희생이 언제나 순수한 것은 아닐 것이며, 마찬가지로 악덕의 현실이 언제나 삶의 진실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욕망’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욕망은 충족될 듯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모두 실패하고 만다(메르테유 후작부인, 발몽 자작, 투르벨 부인, 세실, 당스니 기사 모두 그러하다). 결핍된 인간들은 충족을 위해 또 다른 대상을 찾고 또 그럴 듯한 욕망을 그려낸다. 메르테유 부인과 발몽 사이에 밀약이 거래되고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바로 이 성적 욕구와 허영, 명예욕, 소유욕 등을 망라한 인간 본래의 욕망 때문이다. 서로서로 금지된 관계를 탐식하고 위반의 욕망 안팎을 넘나드는 인물들의 복잡다단한 심리 변화가 이 작품을 숨 가쁜 속도로 읽어 내려갈 수 있게 하며 그리하여 이 작품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우리는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욕망과 허영을 흥미진진함과 비판의 시각으로 볼 수 있겠지만 결국 그 소설의 창속에 갇혀 그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우리 자신의 삶과 내면을 투영시키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의 문학적 위상과 대중적 인기는 작가 라클로가 이 작품 하나로 프랑스 현대 문학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는 점, 초판 발행 직후 단 사흘 만에 2천 부 전량이 판매되고 그 후 30여 년 동안 50쇄를 넘기는 등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점 등으로 충분히 뒷받침된다.

부도덕한 인간관계의 너무도 적나라한 묘사로 인한 사회적 파장도 커서, 한때 판금 조치를 받기도 했던 『위험한 관계』는 후대 특히, 19세기와 20세기 초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스탕달과 보들레르, 앙드레 지드 등에게서 높게 평가받았고 현대의 문학평론가, 심리학자, 의료학자 들로부터는 예리한 심리 분석과 구성의 탁월함으로 주된 분석 텍스트로 사랑받아왔다. ‘사랑’의 무상함을 강조했던 20세기의 지성 앙드레 말로 역시 라클로의 이 작품을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다.

“두 주요인물 발몽과 메르테유 후작 부인의 ‘관계’는 곧 인간 의지의 ‘신화’이다. 의지와 성적 욕망으로 유지되는 이들의 결속이 그들의 행동을 더욱 대범하게 이끈다 …”
―앙드레 말로

프랑스 문학 수업 시간에 18세기 불문학, 혹은 시대와 장르에 관계없이 심리소설의 고전이자 교과서로 널리 읽히고 있는 『위험한 관계』는 이미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특히 영어판의 경우 가장 대중적이랄 수 있는 Penguin Classics와 Oxford world’s Classic의 여러 버전으로 소개되어 있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여러 차례 거듭 제작된 영화로 더 익숙한 작품이기도 한데, 영국 출신 유명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가 메가폰을 잡고 글렌 클로즈, 존 말코비치의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연기와 원작의 밀도에 가장 충실한 연출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1988년작 「위험한 관계」를 필두로, 밀로스 포먼의 1989년작 「발몽」, 그리고 로저 컴블의 1999년 할리우드판 「사랑보다 아름다움 유혹Cruel Intentions」, 그리고 배용준 ․ 이미숙 ․ 전도연 주연의 2003년 한국판 「스캔들, 조선남녀상렬지사」 등이 그것이다.

■ 본문 속으로

“단 한 번 위험한 관계를 맺은 것이 이렇게 큰 불행을 초래하는 걸까요? 그 누가 전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아무리 엄청난 불행이라도 모두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남자가 유혹하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도망갈 수 있었을 텐데! 누가 딸에게 말을 걸면 바로 경각심을 가졌을 텐데!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언제나 일이 터진 후에 오는 법이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진리, 가장 널리 알려진 진리이면서도 정작 결국 우리의 무분별한 풍속의 소용돌이 속에 묻혀버리고 아무 소용이 없게 되나 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의 이성은 불행을 경고해줄 능력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불행을 위로해주지도 못한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546쪽)

■ 작품 줄거리 요약

소설은 악마적인 간계와 매력의 후작 부인 메르테유와 시대의 뛰어난 바람둥이 자작 발몽이 중심인물이다. 자작은 후작 부인의 부추김을 받아, 지체 높은 귀족의 영애 세실을 유혹하는 데 성공하며, 후작 부인은 세실이 남몰래 사모하는 당스니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다. 또 발몽은 정숙한 법원장 부인인 투르벨 부인의 마음을 빼앗는데, 그 과정에서 발몽 역시 그녀에 대한 진심을 발견하지만 결국엔 메르테유 부인과의 밀약과 허영으로 가득 한 승부욕으로 그녀를 죽게 한다. 남녀의 난삽한 관계 속에서 어린 양 세실은 사건의 전말을 모른 채 절망과 슬픔을 안고 수도원에 들어간다. 발몽은 결국 기사 당스니와의 결투에서 죽음을 맞는다. 메르테유 후작부인은 그간의 추잡한 일들이 낱낱이 밝혀져(정작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피소되고 파산한다. 결국 병까지 얻어 야반도주를 하고 만다.
이 둘 메르테유와 발몽은 원래 공통된 목적으로 손을 잡은 관계다. 과거에 메르테유는 제르쿠르 백작에게 배반당한 일이 있었다. 그녀와 연인 사이였던 백작이 어느 지방장관의 부인과 사랑에 빠져 그녀의 곁을 떠났고, 그 부인 또한 사랑하는 제르쿠르를 위해 당시 자신의 애인이었던 발몽을 버렸던 것이다. 이때부터 발몽과 메르테유는 호시탐탐 이들에게 복수할 때를 엿본다. 그러나 돈과 명예로 사랑과 결혼 역시 지참금 신세가 되어가고 있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제르쿠르 백작은 두둑한 지참금을 가져오는 귀족 가문의 영애 세실과의 결혼을 추진한다. 메르테유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몽을 부추겨 세실을 유혹할 것을 제안한다. 발몽의 성공과 함께 메르테유 역시 세실의 애인이었던 당스니를 차지한다. 발몽은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타고난 미모와 지성, 정숙함과 두터운 신앙심으로 사교계에서 조용히 신망을 쌓은 법원장 부인 투르벨을 농락하려고 한다. 물론 이 역시 메르테유 부인의 은근한 질투와 성적 욕망이 결합한 간계가 한몫을 한다. 자신의 미모뿐 아니라 남녀의 연애감정마저 하찮게 여겼던 투르벨 부인에게 감당 못할 발몽의 유혹은 치명적이었다. 권태로운 거짓 사랑 놀음에 질린 발몽에게 투르벨 부인은 그리 쉬운 상대는 아니었으나 한번 유혹에 성공하고서는 걷잡을 수 없는 애욕과 애증의 블랙홀로 모두가 빠져들어간다. 메르테유 부인의 은근한 유혹과 그녀와의 계약, 투르벨 부인의 진실한 사랑 앞에서 갈등하던 발몽은 결국 투르벨 부인을 버리고, 버림받고 농락당한 사실을 알게 된 투르벨 부인은 결국 자살을 택한다. 이에 충격을 받고 갈팡질팡하던 발몽은 세실의 연인 당스니의 결투 제안에 나갔다가 역시 목숨을 잃게 된다. 돈 주앙의 화신인 듯한 발몽의 죽음, 세실의 실연의 전말을 모른 채로 오히려 남을 격정하는 그녀의 어머니 볼랑주 부인, 발몽과 메르테유 부인과의 밀약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살에 이르는 투르벨 부인, 자신 역시 메르테유의 유혹에 몸을 내맡기고서도 세실의 진실을 외면했던 당스니의 어리석은 살인, 무엇보다 진실한 삶과 공허한 승부욕 사이에서 자신의 자아를 잃고 재산과 명예 모두를 빼앗겼던 메르테유 부인 맞은 각각의 결말 모두가 인간 삶의 미묘한 구석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 소개

쇼데를로 드 라클로 지음

쇼데를로 드 라클로Choderlos de Laclos(1741~1803)
1741년 프랑스의 아미앵에서 태어났다. 1760년 신흥 귀족 집안의 아들로서 군인의 길을 걷기로 하고, 라페르 왕립포병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스트라스부르, 그르노블, 브장송 등 포병대에 근무하면서 틈틈이 희곡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1770년에 『마르고에게 보내는 편지Epître à Margot』를, 1773년에 『추억, 에글레에게 보내는 편지Les Souvenirs, épître à Eglée』를 발표한다. 1777년 리코보니 부인(Marie-Jeanne Riccoboni)의 소설을 각색한 오페라 코미크「에르네스틴Ernestine」 발표하나, 파리의 이탈리아 극장 무대에서 단 한 번 공연한 후 막을 내린다. 1782년에 5년에 걸친 집필 끝에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를 출간하고, 이것이 사흘 만에 초판 2천 부가 모두 판매되는 기록을 세운다. 1783년 사회개혁을 통해 여성을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논문「여성의 교육에 대하여De l’éducation des femmes」를 쓰기도 했던 라클로는 1788년 군대생활을 청산하고 왕가의 일원이면서 혁명정신을 지지하던 오를레앙 공의 비서관이 되어 자코뱅파 일원으로 공화정 설립에 적극 참여한다. 그러나 1793년 로베스피에르가 집권하면서 투옥되었다가 1800년 같은 포병장교 출신인 나폴레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다시 군에 복귀한다. 3년 뒤 이탈리아의 타란토에서 병으로 사망한다.

윤진 옮김

아주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자서전의 규약』 『페르디두르케』 『사탄의 태양 아래』 『위험한 관계』 『목로주점』 『문학 생산의 이론을 위하여』 『알렉시·은총의 일격』 『주군의 여인』 『파울리나 1880』 『루』 『만』 『물질적 삶』 『에로스의 눈물』 『태평양을 막는 제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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