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남으로서의 과학

복거일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7년 6월 22일 | ISBN 9788932017891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28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육체의 한계, 인식의 감옥, 상식의 압제로부터의 해방”
문학과 역사,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들며
작가 복거일이 놀라운 통찰력으로 빚어낸 개념적 돌파들……
과학,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소설가이자, 시인·사회 평론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복거일 작가의 ‘과학을 소재로 한 사회 평론집’ 『벗어남으로서의 과학』이 문학과지성사 ‘현대의 지성’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과학을 통해 육체의 한계, 인식의 감옥, 상식의 압제 등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주장이다. 그동안 여러 잡지들에 기고한 글들과 강연 내용들 중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 문학 및 역사와 과학 간에 형성된 연결고리들을 주제별로 세분해 네 가지 카테고리로 묶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보수적 논객’에서부터 ‘진정한 자유주의자’까지 다양한 해석을 불러왔던 복거일 작가의 학문적 배경 및 인식의 전환점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독서를 제공한다.
제1부 ‘육체의 꿈’은 과학 및 사회적 진보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살피고 있으며, 제2부 ‘진화적 진보’는 찰스 다윈에서 비롯된 진화론이 에른스트 마이어, 에드워드 윌슨, 조지 윌리엄스, 매트 리들리,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파생된 연구 동향들이 우리의 인식을 어떻게 진보시켰는지 추적하고 있다. 이어지는 제3부 ‘지식의 변경’은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에 깊이 파고든 과학의 다양한 면모들을 스펙터클하게 보여주며, 제4부 ‘가능성의 영역’은 문학과 과학이 친밀하게 만날 수 있는 ‘과학소설’에 관한 유용한 정보들을 친절하게 풀이해주고 있다.
복거일 작가에 따르면, 과학은 점점 더 깊숙이 우리 생활 속에 개입해 들어와 수많은 한계들로부터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일러주었지만, 정작 “근대가 시작되면서 일반 사람들에게 낯설어”지기 시작해 이제는 “지식인들에게도 점점 낯설게 되었”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분야가 다른 과학자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실질적으로 막혔다.” 그로 인해 과학적 배경에 따라 해석되어야 할 많은 정책 결정들이 원활하게 소통되지 못한 채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낡은 지식을 지닌 것은 흔히 아예 모르는 것보다 나쁘다”고.
“낡은 지식을 지닌 것은
아예 모르는 것보다 나쁘다.”

내성의 한계와 관련하여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과학만이 지식을 찾는 우리의 눈길을 인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지식이라 부르는 지식은,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의 멋진 표현을 빌리면, ‘알려진 앎known known’이다. 즉 우리가 안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종류이다. 그 둘레에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이 알려진 것known unknown’이 있다. 이 방대한 지식의 집합 너머엔 우리가 ‘모른다는 것도 모르는 것unknown unknown’이 있다. 지금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이런 종류의 지식이 우리의 미래를 다듬어낼 지식이다. 정의(定義)에 의해, 우리는 그런 지식이 무엇인지도 얼마나 방대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과학만이 우리의 눈길을 그런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 (「책머리에」, 8쪽)

저자는 본래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소설가로 데뷔한 이후 ‘대체 역사 소설’이라는 과학소설적 기법을 선보이며 과학소설로서 본격문학을 하는 등 문단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그뿐 아니라 시, 소설, 산문, 사회 평론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가장 적극적으로 피력하며 지식인으로서의 역할과 소임을 다해왔다. 그의 다양한 독서 편력과 사고의 유연함은 문학과 역사,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빛나는 통찰들을 보여준다. 특히 과학 지식으로 말미암은 예견들은 이른바 ‘개념적 돌파’를 이루며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번에 출간한 『벗어남으로서의 과학』은 인문학자로서 동시대 과학의 향방을 일목요연하게 짚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에 값한다.
저자는 『벗어남으로서의 과학』을 통해 ‘인간의 노후화’ ‘호주제 폐지’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합리적 접근’ ‘혼혈인 문제’ ‘신뢰의 중요성’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우리 일상과 긴밀하게 연결된 부분들을 거론한다. 우리 사회의 ‘출산 기피 현상’에 대해서는 삶을 즐기기 좋은 시간과 가임기가 일치하는 것의 아쉬움을 토로하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특권 계층이 있다면, 그것은 가임기 여성”일 것이라며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촉구한다. 또한 ‘호주제’ 문제에 관해서도 “천만 년 넘게 이어진 여성 족외혼에서 나온 관행들”을 충분한 논의 없이 폐지부터 하는 것보다는 “그런 관행들이 나오게 된 생물적 논리를 먼저 살핀 뒤에 조심스럽게 다듬어가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과거 우리 역사에서 강대국과의 약속을 어김으로써 치러야 했던 고통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신뢰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대목들은 FTA 등 굵직한 외교적 현안들을 목전에 둔 우리의 모습들을 되돌아보도록 만든다.
저자가 제기하는 주장들은 동시대의 학문적 업적들을 두루 살피는 차원을 넘어 미래를 예견하는 통찰로서 읽힌다. 이는 그의 관심사가 넓으면서도 깊고, 서로 유기적으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터이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은 ‘과학적 앎’을 통해 우리의 한계들을 뛰어넘자는 뜻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우리 모습들을 한 발짝 벗어난 곳에서 거시적으로 통찰함으로써 ‘진정한 앎’을 얻는 독서를 제공할 것이다.

■ 책 속으로

불행하게도, 삶을 즐기는 데 좋은 시기와 자식을 낳아 기르는 데 좋은 시기는 겹친다. 초조에서 폐경까지의 가임기는 길지만, 임신의 적기는 대략 16세부터 스무 해 남짓한 기간이다. 이 기간에 여성들은 삶을 즐기거나 즐기기 위한 준비에 바쁘다. 산모의 평균 초산 연령이 28세를 넘겼다는 사실이 가리키듯,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임신의 최적기에 결혼하는 여성들은 이미 소수이고 점점 줄어들고 있다. [……]
물론 아이를 가진 여성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중요하다. 특히 충분한 유급 출산 휴가, 육아 비용의 보조, 탁아 시설의 확충, 6세 미만 자녀를 가진 근로자들의 ‘탄력적 근무 시간’과 같은 조치들은 당장 시급하다. 그러나 그런 경제적 지원은 출산의 유도보다는 임신과 육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어야 옳다. 태아와 유아의 환경을 보다 낫게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한 투자는 없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특권 계층이 있다면, 그것은 가임기 여성일 터이다.
이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논의의 맥락을 한껏 넓혀야 한다. 어떤 현상이 생물적·문화적 수준에서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면, 사회 정책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만으로는 제대로 살피기 어렵다. (「육체의 반역」, 55~57쪽)

이런 상황에서 남성들은 자기 아내들이 자신들의 자식들만을 낳도록 하기 위해서 여성 족외혼을 선호했을 터이고, 여성들은 높은 ‘남성 부모 투자MPI’를 얻기 위해 여성 족외혼에 동의했을 터이다. 여성들로선 남성 족외혼의 여러 이점들보다 여성 족외혼에서야 가능한 높은 MPI가 더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즉 여성 족외혼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이로운 제도였다.
여성 족외혼은 여성들이 동의했으므로 생겨나고 이어질 수 있었으리라는 점은 강조되어야 한다. 아마도 이런 사정이 대부분의 여성들이 급진적 여성운동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까닭일 것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거나 의식적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여성 족외혼에 바탕을 둔 전통적 가족 체계가 자신들에게 다른 어떤 구도보다도 큰 혜택을 준다는 것을, 그리고 급진적 여성운동이 가족 제도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
모든 여성들의 궁극적 목표는 배우자들의 MPI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권리와 복지를 늘리려 애쓰는 이들은 MPI를 격려하는 기구들과 정책들을 도입해야 한다. MPI가 부족한 가족들이 사회적 지원을 받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특권을 누릴 계층이 있다면, 그것은 가임기의 여성들일 터이다. 그리고 임신했거나 수유하는 여성들에 대한 지원보다 효율이 높은 사회적 투자는 없다. 태아들이 좋고 안정적인 환경을 누리도록 하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사람의 운명은 실질적으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특권엔 나름의 책무가 따른다. 윌리엄스의 통찰대로, 여성과 남성의 자식들에 대한 투자는 나름으로 균형을 이루게 마련이다. 그런 균형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산술적 동등을 기계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여성이 누려야 할 특권을 근본적 수준에서 해친다. (「이상과 천성의 충돌: 호주제와 부성주의(父姓主義)」), 74~75/84쪽)

사정이 그러하므로, ‘단일 민족’이란 개념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순수한 핏줄’이란 개념을 숭상하는 것은 이론적 근거가 무척 약하고 현실적으로 모두에게 해롭다.
민족이 내구적 단위라는 생각도 그르다. 민족에 가장 가까운 생물학적 단위는 개체들의 모임인 개체군population인데, 위에서 살핀 것처럼, 개체군은 아주 연약하고 안팎으로 끊임없이 바뀌는 집단이다. 따라서 민족을 단단하고 불변적이며 내구적인 단위로 여기는 민족주의는 언뜻 보기보다 근거가 튼실하지 못하다.
그렇게 부실한 주장이 힘을 얻어서 중요한 사회적 이념과 기준으로 쓰이면, 어쩔 수 없이 갖가지 폐해들이 나오게 된다. 그런 폐해들 가운데 지금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민족에 대한 그른 생각이 우리 사회의 진화를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환경이 빠르게 바뀌므로, 현대의 모든 사회들은 끊임없이 적응하면서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민족이 단단하고 불변적이며 내구적인 단위라는 생각과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는 생각이 결합하면, 아주 배타적이고 과거지향적인 사조가 필연적으로 사회를 덮는다. (「혼혈인에 대한 차별」, 119~20쪽)

진화는 목적론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방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진화는 진보를 함축한다. 진화가 보이는 진보적 추세들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중심적인 것은 정보처리 능력의 향상이다. 이 세상에 대한 정보들을 얻는 감각 기관들의 발달과 그 정보들을 처리하는 신경계의 발달은 이런 진보적 추세에서 두드러진 사건들이었다. 특히 뇌의 출현은 혁명적이었으니, 그것은 문화의 출현을 필연적으로 만들었고, 마침내 유전자-밈 공진화를 낳았다.
이 모든 진보적 현상들에서 중심적 존재는 개체들이었다.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단위라는 사실은 개체들을 진화의 중심적 존재들로 만들었다. 그리고 뇌의 출현은 개체들의 정보처리 능력에 혁명을 일으켰다. 자연히, 개체들이 지닌 엄청난 정보처리 능력은 진화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아울러 원래 유전자들의 ‘생존 기계’와 ‘수레’로 나타난 개체들은 이제 스스로 결정하는 독립적 존재들이 되었다.
개인들에게 자유를 한껏 보장하는 것이 옳다는 자유주의 이념은 이런 진화적 사실들에서 튼튼한 철학적 토대를 발견한다. 진화론이 발전된 모습을 갖추기 훨씬 전에 자유주의 철학자들이 뒤에 진화생물학이 증명할 이론들에 바탕을 두고 이념을 정립했다는 사실은 감탄스럽다. 이제 자유주의자들은 진화생물학의 성과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그들의 이념을 다듬어야 할 것이다. (「제2장 진화론적 진보」, 175~76쪽)

과학소설은 본질적으로 현대 문명의 발전에 대해 문학이 보인 반응이다. 문학이 그것을 낳은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므로, 과학과 기술이 현대 사회에 미친 혁명적 영향은 당연히 현대 문학에 뚜렷이 반영되었다. 이 얘기는 물론 예술의 다른 분야들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얘기해서, 문학은 과학과 기술이 현대 사회의 결정적 동인으로 등장한 상황에 대해서 다른 예술 분야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
과학소설의 이런 기능에는 ‘개념적 돌파conceptual breakthrough’가 필연적으로 따른다. 개념적 돌파는 패러다임(과학철학에서 쓰이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의 변화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실제로 거의 모든 과학소설 작품들은, 크든 작든, 개념적 돌파를 포함한다. 개념적 돌파는 작품 안에서 일어나는 것만이 아니며, 적잖은 작가들이 독자들 마음에서 그것이 일어나도록 작품을 구성한다. 개념적 돌파는 물론 과학소설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그것은 분명히 과학소설의 가장 중요한 특질들 가운데 하나이다. (「과학소설의 지형」, 271~74쪽)

목차

제1부 육체의 꿈
황금률의 생물학적 바탕
성공의 비결
실질적 영생의 전망
인간의 지속적 노후화
육체의 반역
이상과 천성의 충돌: 호주제와 부성주의(父姓主義)
성매매에 대한 합리적 태도
혼혈인들에 대한 차별

제2부 진화적 진보
제1장 진화의 뜻
제2장 진화론적 진보

제3부 지식의 변경
과학의 가려진 변경
과학 전쟁’의 한국적 측면
지식의 성장과 윤리의 진화
상생과 경쟁의 조화
덕성의 기원과 성격
넓은 화폭에 그린 인류 역사
사람의 환경
전통의 창조적 계승
다시 부푸는 돛폭
말라리아에 대한 무관심
인공지능에 대한 회의적 눈길

제4부 가능성의 영역
과학소설의 지형
1. 과학소설의 중요성
2. 널리 알려진 과학소설 작품들
3. 과학소설의 정의
4. 과학소설의 역사
5. 과학소설의 영역
6. 과학소설의 성격과 기능
7. 과학소설의 주요 주제들
8. 과학소설 속의 과학
9. 과학소설에 관한 정보
10. 과학소설 분야의 상(賞)들
11. 일반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들
12. 한국의 과학소설

작가 소개

복거일 지음

1946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며, 소설가이자, 시인․사회 평론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 『높은 땅 낮은 이야기』 『역사 속의 나그네』 『파란 달 아래』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 『목성 잠언집』 『숨은 나라의 병아리 마법사』 『보이지 않는 손』 『그라운드 제로』 등과 소설집 『애틋함의 로마』, 시집 『五丈原의 가을』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가 있다. 사회 평론집으로는 『현실과 지향』 『진단과 처방』 『쓸모없는 지식을 찾아서』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역사를 이끈 위대한 지혜들』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경제적 자유의 회복』 『자유주의의 시련』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 등과 산문집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 『소수를 위한 변명』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동화를 위한 계산』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서정적 풍경, 보나르 풍의 그림에 담긴』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복거일의 세계환상소설사전』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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