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334

이원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7년 6월 22일 | ISBN 9788932017853

사양 변형판 127x205 · 140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세계는 표현하는 만큼 존재한다’
질주하라! 부딪혀라! 그리고 삐딱한 내 생을 관통하라!

몸과 몸 밖이라는 크게 이분화된 삶의 실존적 조건에 대해 독특한 표현 형식을 가져와 치밀한 묘사와 사유의 세계를 펼쳐온 시인 이원이 세번째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지성사, 2007)를 출간했다.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2001) 이후 6년 만이니 꽤 오랜만에 시집을 묶은 셈이다.
첫번째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1996)를 발표한 직후 이원은, 사물을 가리키는 한두 마디의 언어로 사물을 깊게 응시하는 눈, 흐르는 시간과 공기 그리고 감정을 입체화하는 독특한 작품 세계로 주목받았다. 두번째 시집 『야후!』를 발표한 직후, 공간과 육체가 유목의 조건을 만든다는 시인의 깨달음이 탈영토적인 디지털 세계의 삶의 양식과의 조우를 견인하고 있다는 평이 그 뒤를 이었다. 더불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전자사막’이란 용어는 이후 이원의 시를 디지털 세대, 인터넷 세대의 문화적 아이콘과 통어하게 만들었다.
여기 세번째 시집에 시인이 붙인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다. 이제껏 우리가 익숙한 이원의 시가 보여주는 그림은, 사각 틀 속에 갇힌 공간의 풍경, 모니터와 전화선, 시곗바늘을 타고 흐르는 말의 내면이었다. 시인의 말을 빌리면: “무겁다, 는 마음이 절절할 때 나는 무겁다, 라고 시 쓰지 않았다. 그냥 무겁다, 는 말 속으로 들어가 며칠이고 살았다. 그러다 그 안에 나를 방목했다. 내가 그 풍경을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그 일가로 살았을 뿐이다.”(『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中 시인 산문) 더욱이 이원은 두번째 시집에 붙인 산문에서 “존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했기 때문에 몸이 아프다고 고백했었다. 왜 그 현실을 좀더 구부리고 구기고 자르지 못했을까 하는 것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아날로그 세대의 향수처럼 지저분한 연기를 내뿜고 거리의 “영웅”인 양 내달리는 오토바이가 그의 신작 시집 제목을 차지한 이유가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영원의 찰나”를 계속 제 몸에 새기고 비명은 묻어버리고 가겠다던 시인에게, 소란스런 도로 위를 비스듬히 기울어서 질주하는 오토바이는 분명 다른 이미지, 다른 에너지로 전해졌을 법하다. 이번 시집의 변화는 바로 여기서부터 예고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이곳이 아니야
이곳 너머야 이 시간 이후야
나는 표지판은 믿지 않아
달리는 속도의 시간은 지금 여기가 전부야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고 기울고 시간도 기울고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어
기울어진 내 몸만 믿는 나는
그래 절름발이야
삐딱한 내게 생이란 말은 너무 진지하지
내 한쪽 다리는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그래서 재미있지
삐딱해서 생이지 절름발이여서 간절하지
길이 없어 질주하지
―「영웅」 부분

이원의 시는 일차적으로 사물에 밀착한 치밀한 묘사를 극단으로 밀어붙여 거기에서 얻어진 정확한 인식으로 시작한다. 이원 시가 늘 함께하는 물질 혹은 물체들은 주로 공기, 신발, 비닐봉지, 거울, 거리, 자동차, 건널목, 신호등, 모니터, 휴대폰, 플러그, 콘센트, 냉장고 등 우리가 발 딛고 선 세상의 일부이면서 한편으론 현대 디지털 문명의 차가운 이질감을 표상하는 가장 대중적인 기호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서 이원은 이 객관적 이미지들을 주관적으로 왜곡하는 이차적 작업 위에 올려놓는다. 얼굴이 비친 거울을 보고 거울 속 일그러진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선과 사유의 순환 고리는 깊이 모를 존재의 심연, 단절과 마찰에서 오는 고독을 타진한다.

거울: 내가 들여다보면 내가 사라져버리는 벽 또는
언어
[…]
어제의 시간과 내일의 시간이 거울로 걸어 들어와
조우한다 복받쳐올라 서로 아무 말 못한다 쓰다듬
지도 못한다 한없이 쳐다보고만 있다 거울을 보면
입을 다물게 되는 이유다
-「거울을 위하여」 부분

거울 속의 얼굴이 나 대신 입을 벌린다 그곳의 밤이
얼굴을 한 줄 한 줄 벗겨낸다 맨살이 새잎 나고 꽃
필 것처럼 깜깜하다 거울로 들어가는 문을 찾지 못해
내게는 오늘의 밤이 계속된다 얼굴이 낯설어진다 내가
거울 밖으로 고개를 다 돌리기도 전에 거울 속의 얼굴이
뒤통수를 보인다 사랑은 공포여서 나는 거울 밖으로
걸어나온다 몇 걸음도 걷지 못하고 나를 두고 거울의
밤 속으로 사라진 얼굴이 벌써 그립다
―「얼굴이 그립다」 부분

시인은 주관적 심리를 개입시켜 현실을 왜곡, 굴절시키거나 과장 확대하는 이런 표현 방법은 객관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세계와 대상들의 면모를 더 잘 알 수 있게 하고 현실과 대상이 숨기고 있는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자연스레 어둡고 몽환적이고 성찰적인 색채의 시들로 이어진다. 그 가운데 이번 시집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제까지 그의 시가 몸 바깥, 사물의 외부, 공기와 접선하는 상황에 주로 시선을 빼앗겼던 데 반해 최근의 시는 둥글고 부드러운 몸, 몸의 내부, 사물의 그림자, 그림자가 품고 있는 깊이 등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사물의 내면, 언어의 내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시선의 깊이 말이다.

[…]
십수 년째 커지는 아이를 아직도 자궁 밖으로 밀어내지 못했는지
여자의 그림자가 터질 듯하다 그러나 때로 어두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니 때로 아름다운 것은 어두운 것이다. 그림자는 몸을
밀며 계속 어둡다
―「사막에서는 그림자도 장엄하다」 부분

한 남자가 오른손으로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 끝을 말아쥐고
걸어간다 비닐봉지는 내내 마르지 않을 슬픔처럼 남자의 발
근처까지 죽 늘어진다. 비닐봉지의 숨통을 말아쥔 손은 부드
럽다 단호하다 무엇이 숨통을 조이는지 남자 위의 어둑어둑
해지는 허공에도 오래된 입가처럼 주름이 진다 주름 속이 가
파르다 격렬하다
―「한 남자가 간다」 부분

이처럼 이원 시에서 사물의 이미지는 스스로 운동하면서 평면성과 수동성 대신 입체성과 능동성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여기에 질주하는 오토바이와 그 뒤를 따르는 도로와 공기의 팽창은 우리로 하여금 정지된 공간의 역설적인 운동성뿐 아니라 역동적인 생명력까지 느끼게 한다. 벽에 한사코 부딪히는 아이들의 동작을 따라가는 시선은 그러한 느낌을 더욱 구체화한다. ‘진득진득’하고 ‘달콤’한 표현까지 등장하는 이원의 시는 금속 혹은 시멘트가 아닌 진한 살붙이들의 냄새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이른다.

오토바이에 끌려가는 도로의 끝으로 아파트가 줄줄이 따라온다
뽑혀져 나온 아파트의 뿌리는 너덜너덜한 녹슨 철근이다
썩을 줄 모르는 길과 뿌리에서도 잘 삭은 흙냄새가 나고
사방에서 몰려든 햇빛들은 물을 파먹는다
오토바이는 새처럼 뿌리의 벼랑인 허공을 좋아하고
아파트 창들은 허공에서도 벽에 간 금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
―「오토바이」 부분

자궁을 찢고 나온 적이 있는 아이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몸이 점점 더 불어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세운 벽을 뚫고 다시 벽을 세우고 다시 뚫는다 아이들은
진득진득하고 달콤하다 몸에서 떨어져본 적이 없는 그림자도
벽을 계속 밀어낸다 벽 위까지 튕겨 오르던 그림자는 벽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림자는 벽 속으로 스미지 않는다
높고 가파른 벽 너머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벽 너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뛴다
―「나이키 1」 부분

시집 해설에서 평론가 문혜원은, 시인이 “현상 너머의 어떤 것을 찾고 있다. 전자공간으로 상징되는 현실이 불모와 편리함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것이라면, 이원은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되 그 너머의 것을 들여다보고자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이원에게 주요한 키워드 가운데 그림자와 거울을 예로 들면서, “그림자가 몸 안에 겹쳐져 있다가 밖을 향해 빠져나오는 것이라면, 거울은 몸의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와 같은 것”이라고 덧붙인다.

거울 속의 허공에 들어가 있으니 나는 허공의 몸이다
허공이 들여다보는 허공이다 허공이 지우고 있는 허공
이다 몸이 허공의 내부인 빛과 자주 부딪친다 소리가
나지 않는 몸을 빛이 문고리처럼 잡고 자꾸만 흔든다
그러나 거울의 허공은 몸의 기억을 켜는 법이 없어 나는
소리의 깊이가 되어간다 ―「그러나 나는 어디에 있는가」 부분

다시, ‘오토바이’로 돌아가서 이야기하면, 시인이 말하는 것은 분명 폭주족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그것이 아니다. 시인은 오토바이 위에 생계 혹은 삶의 무게를 싣고 일단 내달려야 하는 사람의 모습에 시선을 얹고 있다. 사물의 정면이 아니라 측면의 속도감, 후면에 드리워지는 그림자 그리고 그 속의 살내음에 주목하고 있다. 보이는 것이 모두 옳다거나 전부일 수 없을 때, 그런 인생의 무게가 느껴질 때 오토바이는 “두 개의 닳고 닳은” 바퀴로 길을 타고, 그 길에 파도를 솟구치게 하고, 시인을 “이곳 너머” “이 시간 이후”로 끌어당긴다.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를 읽고 있으면 우리는 삭막하고 메마른 공간, 우리들이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전자사막 속의 사람 냄새와 근원을 향해 치닫는 사물들의 질주,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면서 길게 드리우는 삶의 그림자를 온몸으로 통과하게 된다. 지상의 텅 빈 공간에게 존재의 의미를 물으면서 시작했던 시인의 시는 달리고 질주하며 허공에까지 닿았다가 다시 지상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 앞날개 소개글 中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의 세계에서는 확정적이고 단단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은 흘러내리고 섞이고 유동적이다. 고정되고 확실한 것은 없다. 기계와 몸이 뒤섞이고, 사물은 서로 경계나 구분 없이 침범하고 변환한다.

■ 뒤표지 시인 산문 中

내가 노래하는 방식으로서가 아닌 용접의 방식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언어에 함부로 피와 살을 이식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언어에나 어울릴 법한 풍경을 덧입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함부로 헐렁한 내부를 들인 언어를 가져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가 강렬해지고 과격해질 때 그것은 언어의 내부와는 상관없는 것임을, 언어의 외피만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어의 내부를 바꾸고 싶다. 세계는, 대상은 표현하는 만큼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테이블’을 ‘표현의 열정’으로 심장이 뛰는 ‘새’로 만든 퐁주처럼, 격렬한 외부가 아니라 격렬한 내부를 가진 언어를 만들고 싶어 한다.

작가 소개

이원 지음

1992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를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사랑은 탄생하라』 『나는 나의 다정한 얼룩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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