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픽션

박형서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6년 10월 30일 | ISBN 9788932017365

사양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284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신나고 기발하다!
몽상가 박형서의 유쾌한 픽션들

‘‘개콘’보다 웃기는 소설?’ 유쾌한 상상력으로 문단에 분명하게 자기 이름을 새긴 작가, 박형서

주목 받는 젊은 작가 박형서의 새 소설집 『자정의 픽션』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다. 박형서는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2003년 첫번째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문학과지성사)을 펴낸 바 있으며 3년 만에 두번째 소설집을 발표하였다. 72년생인 작가 박형서는 동세대 작가인 김중혁, 이기호, 편혜영 등과 함께 한국 문단에 젊은 숨결을 불어넣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나가는 신세대 작가로서의 몫을 정확히 해내고 있다. 한국 문단에서 박형서는‘독특하고 극단적인 상상력’을 가진 작가로 평가되는데, 이번 소설집에서는 첫번째 소설집에서 보여주었던 그 새로운 상상력에다 재미를 추가하여 한바탕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단편소설들을 선보인다.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에서 박형서는 기괴하고 극단적이면서 멜랑콜리한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당시 한 일간지에는 박형서의 첫번째 소설집에 대해 ‘‘엽기’의 행간에 흐르는 처연한 슬픔의 감성’이 돋보인다는 서평이 실리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세계의 저간을 이루는 기괴하고 극단적인 상상력은 이번 작품집에서도 변함없으나 그 처연한 멜랑콜리는 유쾌한 유머에게 자리를 내준 듯하다. 해설을 쓴 김형중(문학평론가)은 박형서의 이번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에 대해 소설의 ‘진정한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개연성’이란 손톱만큼도 없으며 오로지 유쾌할 뿐이라고 증언한다. 덧붙여 박형서는 요즘 일군의 젊은 작가, 읽히는 작가들이 즐겨 쓰는 편집증적 서사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의 편집증은 그들처럼 위장된 편집증이 아니며, 현실을 끝없이 참조하는 편집증도 아닌 ‘진짜’ 편집증 그 자체라고 설명하며 작가 박형서의 한국 문단에서의 자리를 분명히 구별 짓는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자정의 픽션』은 우리에게 묻는다, 대답하기는 힘들다

당신이 정말로 알아두어야 할 건 없다. 당신이 모르는, 몰랐다간 큰일 날 일이란 세상에 없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는다. 때문에 모두가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삶의 중심이 아닌, 이 세계 언저리를 유령처럼 배회하는, 당신도 나와 함께 알아두면 좋을 것들을 중얼거릴 뿐이다. 그러다 당신에게 알려도 괜찮겠다 싶으면 글로 옮기는 것이다. ‘노동’이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들기에 그렇게 나온 글을 남에게 팔아먹으려면 좀 쑥스럽지만, 그 외엔 별다른 벌이가 없으므로 무료로 배포하는 건 곤란하다. _박형서

박형서에게 있어 소설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구가 아니다. 그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갖고 있지 않다. 『문학과사회』 2006년 겨울호에 실리는 ‘작가의 편지’에서 직접 밝혔듯이 박형서는 ‘정말로 알아두어야 할 건 없’고 우리가 ‘모르는, 몰랐다간 큰일 날 일이란 세상에 없다’고 믿는다. ‘개콘’보다 웃기는 소설이라는 평(한겨레)을 받은 단편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는 웃기기 위한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는 웃기기 위한 수단으로서 연구논문의 형식을 이용하여 소설을 쓰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논쟁의 기술」에 나오는 ‘은근히 겁주기’ ‘무시하기’ ‘얄밉게 웃기’ ‘정신없이 들이대기’ ‘막나가기’ 등의 소제목 또한 순수하게 웃음만을 유발할 뿐 문학작품이 통상 갖는 교훈이나 함의의 영역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하여 그는 소설의 내용이 아닌 소설의 존재 형식, 소설 그 자체에 대해서 고민한다. 이 여덟 편의 단편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과연 ‘소설’이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소설’은 왜, 어떻게 씌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고민하기 위해 모든 소설적 정의로부터 달아난 것이다.

대부분의 문학 개론서에서 소설은 이렇게 정의된다. “일정한 분량의 언어로 이루어진 개연성 있는 허구.” 도대체 어떤 소설이 이 어마어마한 범주를 아우르는 정의를 피해 달아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회심의 미소? 아직 짓기엔 이르다. 박형서 소설이 있으니까. _김형중(문학평론가)

자정의 시대, 자정의 소설

「날개」에서 ‘나’는 170년 후의 미래를 배경으로 거인을 사랑하는 한 여자를 본다. 이것은 단지 ‘눈을 감고, 팔을 벌리고,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원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박형서는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마주친 주변의 인물들과 사물들이 소설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변형되어 등장하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대머리가 멋진 내 친구 K’의 상가에 갔다가 만난 노파에게서 받은 인상에 대한 술회로 시작하는 「날개」는 소설이 창작되는 과정 그 자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박형서의 소설에서 상상력은 이렇게 그 자체 창작의 비밀이자 구성원리, 나아가 주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 소설에서 문학적 상상력이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하여 다시, 문학적 상상력이 문제다.
_심진경(문학평론가), 『현대문학』 2005년 11월호.

박형서의 소설쓰기가 이렇듯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김형중의 조심스러운 진단대로 ‘그 한 고리의 순환주기를 다 마쳤’기 때문일 수 있다. 찬란했던 소설의 시대는 이제 저물었고 소설에게도 자정의 시간이 오는가? 박형서는 「작가의 말」에서 ‘자정’이라는 시간에 대해 소설이 발생한 이후의 시간이며 동시에 그 이전의 시간도 될 수 있다는 본인의 생각을 밝힌다. 이는 심진경이 박형서의 소설을 두고 소설이라는 장르의 발생점을 더듬어 환기시켜준다고 지적한 것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박형서의 소설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은 이번 소설집에서 유쾌함, 웃김, 막나감으로 일관되게 포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박형서의 이번 새 소설집이 한국 문단에 다시없는 ‘웃기는’ 활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음은 『자정의 픽션』에 실린 「작가의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자정’이란 가라타니 고진이 그리워하는 ‘요란했던 근대’이후의 시간이다. 동시에 서사문학이라는 대가족 안에서 소설이 태동하던, 태아처럼 웅크린 채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홀로 자문해보던 근대 이전의 저 먼 ‘새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정’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얕은 꿈을 꾸거나 혹은 잠을 이루지 못해 고단하게 중얼거리는 시간이다.
어느 쪽이든, 아침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_박형서, 「작가의 말」 중에서

■ 수록작품 발표지면

논쟁의 기술 – 세계의문학 2006년 봄호
날개 – 문학과사회 2005년 가을호
노란 육교 – 한국문학 2006년 가을호
물속의 아이 – 웹진 문장, 2005년 10월호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 현대문학 2006년 9월호
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 – 한국문학 2004년 가을호
진실의 방으로 – 문예중앙 2005년 봄호
두유전쟁 – PARA21 2004년 여름호

■ 작품 줄거리

논쟁의 기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논쟁을 벌이며 그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을 습득해왔다. 그리고 언제나 패배만 하던 아버지와의 논쟁에서 처음 승리한 이후로 별다른 실패 없이 논쟁 상대들을 물리쳐왔다. 그러던 어느 날 만난 현교수와의 논쟁에서 ‘나’는 처참한 패배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말싸움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며 그 말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유쾌하고 거침없는 필치로 그려보인 소설.

날개
친구의 상가에 다녀온 ‘나’는 그곳에서 본 노파에게 깊은 인상을 받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간다. 지금으로부터 170년 후의 식민지 행성에 사는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한 거인의 이야기이다. 여자와 거인은 만 시간가량 사랑하다가 거인이 갑작스레 죽어버림으로써 영원히 이별한다. 여자는 거인의 팔뚝 살점을 채취해 그와 닮은 아들을 얻는다. 그리고 클수록 거인과 닮아가는 아들에게서 예전의 거인의 모습을 본다. SF적인 분위기의 사랑 이야기가 재치 넘치는 문체 속에 아름답게 펼쳐진다.

노란 육교
죽은 사람들이 나타나는 길이 발견된다. 그리고 그곳에 노란 육교가 세워진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그 길을 찾아가고 길은 명소가 되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길 주변에는 상가들이 들어서고 길은 여러 사람의 관심 속에 부흥을 맞는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길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노란 육교를 제외하고는 길이 가졌던 한때의 영광을 보여주는 모든 것이 자취 없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고, 죽은 사람들은 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언젠가 희미하게 잊혀지고 마는 현실을 죽음 그 자체를 소재로 하여 그려낸 소설.

물속의 아이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자해를 한다. 동생에게 엄마의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계단에 스스로 몸을 날려 떨어지고 난 후 엄마의 품이 자기의 독차지가 되자, 계속해서 자해를 되풀이한다. 그러나 아이의 이런 집착이 계속되면서, 아빠도 엄마의 곁을 떠나고 동생도 죽고 엄마와 둘만 남게 된다. 그제서야 아이는 엄마와의 완벽한 관계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엄마와의 관계도 끝나고 만다.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사실은 음란물이라는 전제 하에 연구 논문의 형태로 써낸 소설. 소설 속 필자는 「사랑손님과 어머니」라는 소설이 그동안 실제와는 전혀 다른 왜곡된 방향으로 읽혀져왔다며 이 소설이 사실은 사랑손님과 옥희 사이의 성애를 교묘하게 다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로 ‘달걀’을 주요한 키워드로 꼽는다. 달걀을 고환의 상징으로 보며, 옥희 어머니가 아닌 옥희가 실은 사랑손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세세한 검토와 면밀한 증거들로 뒷받침된 박형서식 유머의 결정판!

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
무료함에 지친 ‘나’는 어느 날 스스로 자신의 성기를 잘라낸다. 그리고 바지를 입어보며 성기가 없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소변을 보다가 이번엔 성기가 없다는 것에 불편을 느끼고 실로 꿰매어 붙이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어린 시절에 본 형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소설.

진실의 방으로
O는 어느 날 낯선 곳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경감’이라는 자와 ‘사내’가 있다. ‘경감’은 그곳이 ‘진실의 방’이라는 것을 O에게 알려주고 ‘사내’로부터 진실을 듣기 위해 그를 고문한다. ‘사내’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경감’의 고문이 점점 혹독해지던 어느 순간 O는 ‘경감’의 고문을 돕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사내’는 죽고 O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두유전쟁
한국에 살고 있는 성범수는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머릿기름을 갖고 있다. 그의 머릿기름은 하루 이백만 배럴에 해당하는 원유와 맞먹는 유분을 포함하고 있다. 그 때문에 성범수는 미군에 납치되고 성범수를 되찾으려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다. 다소 황당할 수 있는 소재가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인물들의 개인사를 곁들여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목차

논쟁의 기술
날개
노란 육교
물속의 아이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
진실의 방으로
두유전쟁

해설|소설 이전, 혹은 이후의 소설_김형중
작가의 말

작가 소개

박형서 지음

197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자정의 픽션』 『핸드메이드 픽션』, 장편소설 『새벽의 나나』가 있다. 대산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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