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김병언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7년 6월 8일 | ISBN 9788932017860

사양 양장 · · 308쪽 | 가격 10,000원

수상/추천: 한무숙문학상

책소개

파란 하늘에 날리는 하얀 꽃씨처럼
아름답고 애잔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잊혀져가는 우리 주변의 작은 이야기들을 실감나게 되살리다
소설가 김병언의 새 소설집 『남태평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개를 소재로 한 세 가지 슬픈 사건』 『천치의 사랑』 등의 소설집을 상자한 작가가 장편소설 『木手의 칼』을 발표한 이후 8년만의 신작이다.

김병언은 이전의 소설집들에서 “한결같이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해 사회와 불화관계를 맺거나 세속적 기준에서 좌절과 실패의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문학평론가 오생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 이야기는 동시에 “약삭빠른 현실적 인간이 될 수 없는 사람들” “성격이 곧 운명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비극적 생애를 운명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그러므로 “현실과 이상 사이의 모순을 적당히 해결하기보다는 고통스런 삶으로 감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문학평론가 홍정선).

새 소설집 『남태평양』도 사회와 불화하기 일쑤인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애잔하고 따뜻하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소설집 첫머리를 장식하는 「고서점 여자」는 ‘나’의 집에 세 든 고서점 여주인과의 우정과 갑작스런 이별,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우연한 만남을 그린 작품이다. 벌이가 시원찮을 것이 뻔한 고서점을 맡은 여자에게는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이지만 그녀는 그것을 말하지 않으며 ‘나’도 굳이 캐묻지 않는다. 그녀는 곧 주변의 오해를 사게 되고 빚을 받으러 온 듯한 사람들에 쫓겨 자취 없이 사라져버린다. ‘나’는 그런 그녀를 청춘의 한 페이지로 아련하게 기억한다. 작가는 이렇듯 우리 주변 사람들의 작은 에피소드들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그 에피소드에서 끌어내는 여운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공짜로 준다는 컴퓨터를 얻으러 부자 동네에 간 산동네 소년과 그 아버지의 이야기인 「꽃씨 날리는 날」은 컴퓨터를 갖고 싶어하는 가난한 어린 소년의 마음과 가난한 사람들을 쉽사리 모욕해버리는 돈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실감 나게 묘사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이유 없이 사라져버린 소년의 할아버지와 달리 아들에게 끝끝내 컴퓨터를 얻어다주는 한 가장의 모습을 통해 비록 가난을 대물림할지라도 굴욕과 멸시만은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그린다.

어느 순간 느끼게 되는 삶의 ‘모진 아픔’
다른 작품들에서도 삶의 “모진 아픔”(「지존」) 은 곳곳에 등장한다. 「지존」은 의적을 자처하는 도둑에게 말려들어 그를 ‘지존’이라고 부르게 되는 사내와 그 ‘지존’이 어떻게 사기꾼임이 밝혀지는가를 그린 작품이다. 비록 사기꾼인 도둑이지만 ‘나’는 어느 순간 그에게 미움을 느끼지 않게 된다. ‘지존’의 정체가 밝혀지자 나는 한편으로 안도하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제국이 삽시간에 와르르 몰락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황사에 바치다」의 주인공은 먼 이국 땅에서 생의 의욕을 되찾아준 여인과 끝끝내 한 번도 만나지 못하며, 표제작 「남태평양」에서는 전설적인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어도 결국 아내를 잃고 먼바다를 떠돌아야 하는 남자의 사연이 그려진다. 소설 속 인물들이 느끼는 불안과 쓸쓸함은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불안과 쓸쓸함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

재기의 의지를 다지게 되는 그들, 그리고 우리들
문학평론가 양진오는 해설에서 김병언을 “부지불식간에 한국 사회의 비주류로 물러난 아날로그 세대의 애환과 연민, 비애, 재기의 의지를 사려 깊게 살피는 작가”라고 명명하였다. 이 말대로 『남태평양』은 어두운 사회에 짓눌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며 한편으로 이 “생활의 논리에 압도되어 전전긍긍하는 아버지, 실업자, 실직자”(해설, 「연가, 아날로그 세대에 바치는」)들이 어떻게 희망을 찾게 되는가를 그려나간다. 「꽃씨 날리는 날」의 아버지는 하루하루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돈 많은 사람들에게 결코 굴하지 않는다. 「황사에 바치다」의 주인공은 사법시험 열 번 낙방에 이국에서 경비 생활을 하면서도 다시 공부할 의지를 찾아간다. 「회생」의 김의규는 명예퇴직 이후의 자신의 처지를 비유하는 듯한 병든 개를 죽이려다 끝끝내 살려낸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가슴 한켠이 훈훈해오는 동시에 뻐근해짐을 느끼게 된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돌아볼 틈이 없었던 우리들의 이야기와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다.
해설은 김병언 소설이 주는 이러한 감동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그의 문학은 실속이 영근 문학이며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물, 사건의 추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따스한 문학이다. 그리고 이 따스함의 이면에는 얽히고설킨 삶의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결자해지의 의지가 흐르기도 한다.” 『남태평양』은 작금의 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들을 어떻게 지켜봐야 하는지에 대해 귀중한 시각을 선사할 가슴 아리면서도 유쾌한 소설집이다.

■ 수록 작품 소개

「고서점 여자」
고등학생인 ‘나’는 새로 집에 세 들게 된 고서점의 젊은 여주인과 친해진다. 어느 날 서점에 자주 들르던 노신사가 술에 취해 서점에 드러눕게 되고 ‘나’는 그녀와 함께 노신사를 깨워 내보내려 하지만 그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튿날 오해를 한 노신사의 아들과 딸이 찾아와 그녀에게 거친 말을 하며 행패를 부리고 그녀는 지지 않고 그들에 맞선다. 그날 이후 그녀는 어떤 사람들에 쫓겨 불시에 사라진다. 스무 해가 지나 대학 교수가 된 나에게 그녀가 전화를 걸어오고 그들은 그녀의 집에서 해후한다.
「꽃씨 날리는 날」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를 둔 동우네는 산동네에서 살아간다. 주인집 아들의 컴퓨터를 늘 부러워하던 동우는 생활정보지를 뒤져 컴퓨터를 공짜로 준다는 집과 연락을 한다. 컴퓨터를 받으러 가기로 한 일요일, 동우와 아버지가 당도한 한 아파트에서 그들은 컴퓨터를 주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없다는 주인 여자의 말을 듣는다. 동우와 아버지는 컴퓨터를 주겠다는 약속을 한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지친 동우가 그 집에 자꾸 전화를 걸자 주인은 짜증을 내고 아버지와 주인 여자 사이에 시비가 붙는다. 속이 상하고 억울해진 동우는 아버지를 두고 돌아가버리려 하지만 먼발치에서 끝내 컴퓨터를 찾아오는 아버지를 보게 된다.

「지존」
‘나’는 아내와 이혼하고 직업도 없는 상태로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간다. 그런 ‘나’의 집에 어느 날 밤 도둑이 든다. 이 도둑은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다며 자금을 모으러 다니는 중이라는 식으로 말을 하며 자신을 ‘지존’이라 불러달라고 한다. 동지가 되어 자신에게 협력하라는 사내의 말에 반신반의하던 ‘나’는 점점 ‘지존’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그에게 미움을 느끼지 않는 자신을 깨닫는다. 그러나 몰래 신고한 딸로 인해 출동한 경찰이 ‘지존’을 잡아가고 경찰서에서 그의 전과와 사기 행각이 낱낱이 드러난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가슴 한 구석에서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황사에 바치다」
밸런타인 데이에 사무실 직원들이 받은 꽃을 보며 ‘나’는 갑자기 회상에 잠긴다. 사법시험에서 열 번이나 탈락한 직후 ‘나’는 모든 의욕을 잃고 아는 사람의 주선으로 회사의 경비가 되어 중동으로 떠난다. 밤 근무를 맡아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나’는 어느 날 잘못 걸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아루아라는 이름의 이 중동 여성은 그에게 밤마다 전화를 걸기 시작하고 상냥한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 다시금 공부를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그들은 마침내 만날 약속을 하고 아루아는 신호로 붉은 장미를 들고 있을 테니 자신을 알아봐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회사의 일정이 바뀌어 서둘러 귀국하게 되고 그들은 끝내 만나지 못한다.

「회생」
명퇴자인 ‘나’는 같은 처지인 친구 김의규의 갑작스런 산행 제안을 받고 그를 따라나선다. 김의규는 병들어 애물단지가 된 애완견 한 마리를 산에 데려가 파묻을 생각이었다. 김의규는 산에 올라 혼자 개를 처치하겠다고 말하고 다시 내려온다. 그러나 산 아래에서 술을 마시려 하는 두 사람의 앞에 갑자기 비틀거리는 개 한 마리가 나타나고 김의규는 그 개를 안고 부리나케 사라져버린다. 뒤의 이야기가 궁금하던 ‘나’는 며칠이 지난 후 김의규에게 전화를 걸고 김의규는 의외로 밝은 목소리로 개가 병을 이겨내고 살았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나’는 김의규의 정신력이 그 개를 살렸을 거라고 격려해준다.

「남태평양」
‘나’는 남태평양의 피지에서 형인 ‘황대협’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친구로부터 전해 듣는다. ‘나’의 형인 황명수는 고등학생 시절 미군에게 희롱당하는 여성을 구해준 이후 ‘황대협’이라는 별칭을 얻는다. T시에서 전설적인 주먹으로 알려지게 된 그는 차례차례 도전해오는 맞수들을 물리치고 그들을 친구로 삼는다. 대학 졸업 이후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한 그는 조건은 좋으나 마음에 들지 않는 혼처와 결혼을 성사시키려는 부모에게 반발해 한 여자를 집에 데려오고 살림을 차린다.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직업을 알아보던 그는 결국 해외 근무를 하게 되고 그의 귀국 바로 직전에 아내는 자취 없이 사라져버린다. 몇 년이 지나도 아내 찾기를 포기하지 않던 그는 ‘나’의 앞에 한 여자아이를 데려오고 그 아이가 죽어버린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자신의 딸이라고 선언해버린다. 가족들 몰래 채권업자의 해결사 노릇을 하던 황명수는 문제가 생기자 결국 딸과 가족들을 두고 남태평양을 떠돌며 살아가게 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어지간히 지친 나는 일단 한숨을 돌려볼 요량으로 마른 풀 위에 주저앉았다. 서녘 하늘에서 노을이 꺼져가고 있었다. 전에 없이 서글픈 노을이었다. 설마 죽기야 할까 하는 근거 없는 낙관과 이러다 어이없는 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떨리는 가슴속에서 뒤엉켰다. 한편으로는 후회막급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닌 단풍철을 빈둥빈둥 다 보내고 나서 왜 하필 춥고 낙엽 진 산에 올랐단 말인가. 나아가서 그동안의 내 삶이 얼마나 객기와 충동에 이끌려 왔던가…….
추위와 어둠이 내리는 겨울산은 참으로 막막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특히나 아직 미성년인 딸아이와 아들 녀석이 눈에 어른거렸다. 죽는 게 뭐 대수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내가 죽더라도 누군가가 내 주검을 발견하기까지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의 죽음을 알지 못할 거라는 점이 다소 서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 그게 내 눈에 띤 사실이 너무나 황감하다. 거뭇거뭇한 잎사귀들을 매단 나뭇가지들과 윤곽이 흐려져 가는 능선들…… 실낱 같은 희망조차 찾아볼 수 없는 풍광 속에서 어떤 작은 사각의 빛이 문득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나는 일종의 전율에 휩싸인 채 아스라한 그 빛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어떤 인공의 구조물 같았다. 그 구조물이 거의 다 소멸된 상태에 놓인 노을이 던지는 마지막 한줄기 빛, 그 빛을 한순간 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정신없이 그것을 향해 달려갔다. 그것이 익사 직전의 막막대해에 던져진 단 하나의 구명대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섰을 땐, 실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거기가 대승령의 정상임을 알리는 입간판이었다. 거기엔 친절하게도, 내가 하산할 방향으로 작정한 장수대까지 ‘2.7km’라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고백건대, 요즘 내가 간절히 찾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대승령의 입간판 같은 것이다. 내 삶은 너무나 피폐하고 일그러져 버렸다. 나는 다시 길을 찾아야만 할 것 같다. 행여 이 소설집이 어떤 의미에서 그 입간판의 역할을 해줄까 기대하는 건 망상일까.

이 소설집을 발간해주는 문학과지성사에 감사한다. 그리고 해설을 써주신 양진오 선생님께도 깊이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표제작의 실마리를 제공해주신 왕년의 협객, 김하영 숙부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2007년 5월
김병언

목차

고서점 여자
꽃씨 날리는 날
지존
황사에 바치다
회생
남태평양

해설 : 연가, 아날로그 세대에 바치는_양진오
작가의 말

작가 소개

김병언 지음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문학과사회』에 「이삭 줍기」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으며, 소설집 『개를 소재로 한 세 가지 슬픈 사건』 『천치의 사랑』과 장편소설 『木手의 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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