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미지와 시

오규원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5년 6월 30일 | ISBN 9788932016108

사양 · 228쪽 | 가격 6,000원

책소개

시인 오규원의 세계관과 문학관을 만난다

저자가 직접 이야기하는 ‘날이미지로서의 시(詩)’

문지스펙트럼 시리즈로 시인 오규원의 산문집 『날이미지와 시』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발행되었다. 1968년부터 올해 상자하는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까지 9권의 시집을 낸 시인은 1965년 등단한 이래 시 속에 삶의 현장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시의 언어와 구조’의 문제를 가장 치열하게 탐구한 시인으로 이해된다. 오규원은 끊임없는 형식에 대한 탐구로 전통적인 시의 문법을 해체하고 시의 새로운 산문화 경향을 주도하였다. 그는 80년대 이후 우리 시단에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현재에도 끊임없이 ‘시와 언어’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오고 있는 우리 시의 살아 있는 전위이다.
따라서 오규원의 시론은 우리 현대시의 형식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의를 갖는다. 시인의 행보 자체가 현대시의 행보였음을 생각해볼 때 시인이 직접 구축해온 시에 대한 방법론은 우리 현대시의 문법에 관한, 매우 소중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15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다듬어온 시인의 ‘날이미지시’론을 정리하고 있으며 우리 시사에서 시적 방법론에 대한 가장 첨예한 자의식을 지닌 시인의 세계관과 문학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세계와의 순수한 호흡을 새롭게 꿈꾸다 – ‘날이미지시’에 관해

시인은 ‘책머리에’에서 80년대 후반부터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시인은 휴머니즘이라는 미명하에 인간 중심으로 모든 사물을 이해하고 명명함으로써 세계가 가려지고 왜곡되는 것을 거부해왔다. 시인은 어떤 명사로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거나 어떤 관념 하나로 세계를 해석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따라서 그냥 ‘있을 뿐’인 세계와 인간이 어떤 관계를 유지하며 수사적 인간의 존엄성을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시인이 내놓은 대답이 바로 ‘날이미지시’이다.

‘날이미지시’를 이해하는 핵심적 요소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시의 수사법으로서 은유를 거부하고 환유의 방법을 사용한다. 둘째,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관념적인 시각을 완전히 배제한다.

‘날이미지시’는 수사로서의 은유를 거부한다. 은유가 직관에 의해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정해주는 해답을 찾도록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신 인접한 사실들을 결합하고 접속시키는 환유의 방법을 사용한다. 환유적 체계야말로 개념적이거나 사변적인 의미를 부여한 흔적이 없는 ‘현상적 사실’을 드러낸다고 보고 있다. 시인의 작업은 이 ‘현상적 사실’을 이미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현상적 사실’을 이미지화하는 데 모든 힘을 쏟고 있는가. 시인은 시에 인간이 문화라는 명목으로 덧칠해놓은 지배적 관념이나 허구를 벗기고 세계의 실체인 ‘현상적 사실’을 날것, 즉 ‘날이미지’ 그대로 옮길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곡 없이 세계와 닿는 시각적 진실과 세계에 대한 직관적 인식, 그것이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날이미지’시의 요체이자 시인의 시세계이다. 시인은 이 ‘날이미지시’를 통해 관념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을 배격하고 세계와의 순수한 호흡을 새로이 꿈꾼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이러한 ‘날이미지시’를 구축하고 그에 걸맞은 탄탄한 시론을 형성해온 과정이 세세히 그려져 있다. 또한 ‘자신의 전 작업을 되돌려 복기할 수 있는 시인’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시작(詩作)의 과정을 시인의 목소리로 조목조목 짚어나가는 대목들이 곳곳에 실려 있으며 시인의 작업을 곁에서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시인의 육성으로 시인의 삶과 생활을 이야기하다 – 2부의 대담에 관하여

2부에는 시인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대담을 실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와의 대담 「언어 탐구의 궤적」에서는 시인의 성장 과정, 문학을 하기까지 시인에게 영향을 미친 것들, ‘날이미지’와 관련한 시인의 시세계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으며 이외의 대담들에서도 주로 지난 십여 년간 변모해온 시인의 시세계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대담인 만큼 1부와는 달리 다소 딱딱한 형식을 배제하고 시인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시론을 읽을 수 있다. 제자들(이창기 시인, 박형준 시인, 서울예대학보사 등)이 들여다본 오규원의 삶과 시세계, 이들에게 미친 시인의 영향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도 2부의 대담은 흥미 있게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40년에 걸친 세월 동안 우리 시단의 거목이 된 시인의 삶과 세계관, 그만의 문학관과 독특한 시론이 함께 어우러진 이 책을 접하는 것은 시인의 삶과 작품 세계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책속에서>
 
80년대 후반부터 나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사고의 흔적은 그 무렵 쓴 여러 작품에도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본격화된 것은 90년대 초부터이다. 나는 나(주체) 중심의 관점을 버리고, 시적 수사도 은유적 언어체계를 주변부로 돌리고 환유적 언어체계를 중심부에 놓았다. 그리고 관념을 배제하고 언어가 존재의 현상 그 자체가 되도록 했다. 그리고 현상 그 자체가 된 언어를, 즉 사변화되거나 개념화되기 전의 현상화된 언어를 ‘날이미지’라고 하고, 날이미지로 된 시를 ‘날이미지시’라고 이름 붙였다.
―‘책머리에’ 에서
 
세계는 파편화된 이미지, 파편화된 개념 속에 있지 않다. 세계는 ‘전적’으로 있다. 그 전적인 존재의 본질, 존재의 언어는 왜곡되지 않은 ‘사실적 현상’을 통해서 보아야 한다. 그 왜곡되지 않은 ‘사실적 현상’이 ‘날이미지로서의 현상’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찾는다. (p. 47)
 
시와 이미지: 나는 시에게 구원이나 해탈을 요구하지 않았다. 진리나 사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시에게 요구한 것은 인간이 만든 그와 같은 모든 관념의 허구에게 벗어난 세계였다. 궁극적으로 한없이 투명할 수밖에 없을 그 세계는, 물론, 언어 예술에서는 시의 언어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가능성의 우주이다. 그러므로, 내가 시에게 절박하게 요구한 것도 인간이 문화라는 명목으로 덧칠해놓은 지배적 관념이나 허구를 벗기고, 세계의 실체인 ‘頭頭物物’의 말(현상적 사실)을 날것, 즉 ‘날〔生〕이미지’ 그대로 옮겨달라는 것이었다.
 
구조와 형식: ‘두두’며 ‘물물’은 관념으로 살거나 종속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도 전체와 부분 또는 상하의 수직 구조로 되어 있지는 않다. 세계는 개체와 집합 또는 상호 수평적 연관 관계의 구조라고 말해야 한다. 숲에 있는 한그루 나무를 보라. 그 나무는 숲의 부분이거나 종속적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진리며 실체인 완전한 개체이다. 시의 세계 또는 작품과 작품의 세계도 그러하며, 그러므로 그것들은 현상적 사실과 상호 연관 관계의 언어인 ‘개방적 구조’로써 말을 하기도 한다. 나의 시 또한 그러한 개방적 이미지와 구조이기를 꿈꾼다. (pp. 80~81)
 
언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어서 그것은 인간 욕망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아니다, 그것은 인간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천의 얼굴을 한 인간의 욕망 그 자체이다. 지배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언어를 지배하고 소유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다. 언어는 언제나 욕망하는 구조와 체계로 바뀐다. 그러나 나는 참 ‘나’와 있고 싶다. 지배와 소유라는 이 욕망의 통일천하에서 숨이 막힌다. 그래서 나는 ‘나’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내 욕망의 구조(관념)와 체계(은유)를 비운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했었더라면 어찌 내가 이렇게 했겠는가? 더구나 내가 시인인데, 어찌 그리하겠는가?
(pp. 87~88)
 
저의 ‘날이미지시’는 개념적이고 사변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날것으로서의 사물과 사물의 현상을 이미지화하는 것을 특성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 사물을 주관적으로 관념화하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 터입니다. (p. 150)
이렇게 천천히 읽어가면 ‘누란’과 그곳으로 가는 길도 보이고, 묻힌 길을 하늘에서 보기도 하고, 드러난 길의 허상도 보고, 우리들 사고의 얽힌 그리고 흐린 길도 보면서, 세계를 이해하고 함께 사는 또 하나의 방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p. 157)
목차
책머리에
 
1부
은유적 체계와 환유적 체계
‘살아 있는 것’을 위한 註解
조주의 말
수사적 인간
풍경의 의식
시작 노트
날이미지시와 관련어
날이미지의 시
 
2부
언어 탐구의 궤적
한 시인의 현상적 의미의 재발견
무릉, 수사적 인간, 날이미지
날이미지시와 무의미시의 차이 그리고 예술
견자와 날이미지시
 
출전
작가 소개

오규원 지음

본명은 규옥(圭沃). 1941년 경남 밀양 삼랑진에서 출생하였고, 부산사범학교를 거쳐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가 초회 추천되고, 1968년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1971) 『순례』(1973) 『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 『이 땅에 씌어지는 抒情詩』(1981)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1987) 『사랑의 감옥』(1991)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1995)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1999)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2005) 『두두』(2008, 유고시집)과 『오규원 시 전집』(전2권, 2002) 등이 있다. 그리고 시선집 『한 잎의 여자』(1998), 시론집 『현실과 극기』(1976) 『언어와 삶』(1983) 『날이미지와 시』(2005) 등과 시 창작이론집 『현대시작법』(1990)이 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대문학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2007년 2월 2일에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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