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달의 기억

서준환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4년 10월 11일 | ISBN 9788932015439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20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언어의 정상성을 파괴하는 예외적 언어로서의 문학!
전위적이고 모더니즘적인 문학의 전통을 이어가는 젊은 작가의 첫 소설집

문학의 통상적인 관습을 넘어서 예외성을 추구하는 문학이 있다. 이런 문학에서는 규칙의 위반이 문학성을 위해 허용되는 불가피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추구되어야 할 목적이 된다. 여기서 예외성은 문학성과 동의어이다. 기존 언어의 형식과 규칙을 과격하게 파괴하는 전위적, 실험적 문학이 여기에 해당된다.
서준환의 소설들은 전위적 문학의 전통 속에서 극단적인 예외성을 추구한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첫 소설집 「너는 달의 기억」은 언어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 즉 언어가 언어 외부의 현실을 지시한다는 원리에 도전한다. 언어는 현실을 지시하고 그것과 관련됨으로써 의미를 가진다. 언어 외적 현실은 언어의 근거이며, 언어를 일정한 규칙 속에 묶어 두는 구속력을 발휘한다. 서준환의 소설은 언어와 현실의 관련 고리를 끊어버림으로써 언어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린다. 지시성의 부정과 함께 현실의 구속력을 벗어난 자유로운 언어의 공간이 생겨나며, 이 공간 속에서 작가는 기이한 꿈과도 같은 독특한 환상의 세계를 구축한다.

먼저 그는 전통적인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을 해체한다. 문학평론가 김태환에 따르면 서준환 소설 속의 ‘그’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사용된다. 예컨대 ‘그’는 글이나 말 속에서 이미 언급된, ‘나’와 ‘너’ 이외의 어떤 사람을 가리킨다. 대명사는 원래 등장인물 중 누구라도 가리킬 수 있는 말이며 근접해 있는 보통 명사나 고유 명사를 대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준환의 「무숙자」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인 ‘그’는 항상 ‘그’이며 다른 등장인물들은 항상 다른 등장인물들이다. 대명사가 지닌 고유의 기능이 파괴된 것이다. 이러한 대명사의 파괴는 다른 소설에서도 드러난다. 「변기」에 등장하는 Y노인과 그 아들인 T는 Y노인이 변기에 빨려들어간 뒤 나타난 ‘그’로 다시 등장한다. 이 ‘그’는 Y노인인 것 같기도 하고 또 T인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Y노인도, 또 T도 아니며, 이들과 완전히 무관한 것도 아닌 제3의 인물이다. 이렇게 서준환의 소설에서 ‘그’는 고유 명사와의 관련을 잃고 독자적인 기호가 되며 특정한 개인의 경계 역시 무너지고 있다.
그러나 묘사의 사용은 특정한 인물에게 귀속되어야 마땅해 보이는 부분들이 이중, 삼중으로 다른 인물들에게 적용된다. 가령 다음과 같은 부분들을 보자.

얼마 못 가서 한 여자가 합승을 했다. 베이지색 블라우스 차림의 그 여자는 커피색 스타킹의 이음선이 아슬아슬하게 드러날 정도로 짧은 가죽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앞좌석에 앉은 그녀의 머릿결은 열어둔 차창으로 새어들어오는 바람결에 흩날리며 끊임없이 향긋한 샴푸 냄새를 풍겨왔다.(p. 8)

앞좌석에 앉은 그 여자는 베이지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으며 짧은 가죽 스커트 밑으로 커피색 스타킹의 이음선이 아슬아슬하게 드러나 있는 허벅지를 포개놓고 있었다. 살짝 열어둔 차창 틈으로 습진 저녁 바람이 불어 와 앞에 앉은 여자의 머릿결에서 향긋한 샴푸 냄새를 퍼뜨렸다.(p. 18)

흡사한 묘사는 아가씨로 변신한 소녀 유로(「수족관」)에게서도 발견된다. 동일한 묘사가 이중, 삼중으로 서로 다른 인물들에게 적용된 결과, 그 묘사는 사실 어떤 인물도 지시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는 작가의 묘사가 특정한 인물에만 적용될 수 있는, 충분히 개별화된 표현이 아니라 작가가 임의로 만들어 놓고 이런저런 대목에서 활용하는 상투적 언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서준환 소설의 언어가 지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은 소설집 곳곳에 흩어져 있다. 소설 속에서 상투어들은 거듭하여 사용되며 수없이 반복되는 가운데 현실로부터 멀어지며 지시력을 상실하고 언어 자체로서의 언어가 된다. 작가는 상투어가 상투어라는 것, 그것이 아무런 지시적 효력도 갖지 못한다는 것을 명백히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그는 아무런 반성 없이 습관적으로 상투어를 써먹는 사람들과 구별된다. 작가는 상투어,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의 언어에 대해 효력 정지를 선언한다.
또한 서준환의 소설 속에는 유사하게 반복되면서 변주되는 장면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언어의 지시성이 부정되는 과정에서 독자는 한편으로는 현란한 음악적 변주를 듣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물과 사건 들이 모든 상식과 현실 논리를 뛰어넘어 부단한 증식과 복제, 변형, 합성, 분열, 대치를 거듭하는 환상적 세계와 대면하게 된다. 소설의 음악적 구성은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와 조응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위해 언어의 기본 규칙을 파괴하고 통사론을 파괴하는 것일까? 서준환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국면은 그의 소설이 의미와 지시 사이에 균열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서준환은 의미의 동일성(이 글에서 ‘유사성’이라고 명명된 것)과 지시 대상의 동일성을 철저히 분리한다. 그 결과 한 편에서는 동일성이 파괴되어 완전한 해체와 혼란에 빠져든 환상적 세계가 출현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동일한 것의 끊임없는 반복과 변주로 고도의 통일성 있는 구성을 갖춘 음악적 소설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서준환이 정상성을 파괴하면서 예외적인 언어로서의 문학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게 있어 ‘아방가르드’는 미학적인 혁신이기에 앞서 세상을 향한 분노와 고통의 언어로 이해된다. 한 작품에 드러나는 등장인물조차 그 실체가 불분명하며 끊임없는 마디의 변주와 반복을 통해서 서사와 소설의 얼개마저도 해체하고 있는 그의 소설은 실체로서의 권위와 정형화되고 관습화된 것들에 대해 흠집을 내려는 현대 예술의 역할에 보다 근접해 있으면서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수족관
너는 달의 기억
외출
변기
투틀즈와 타이거릴리는 죽었다
무숙자
초연한 내맡김

해설 언어와 음악·김태환

작가의 말

작가 소개

서준환 지음

2001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했다. 소설집 『너는 달의 기억』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 장편소설 『골드베르크 변주곡』 『로베스피에르의 죽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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