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63

제xvi권 제3호 통권 63호 2003년 가을호 0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엮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3년 8월 20일 | ISBN

사양 신국판 152x225mm · 426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문학과사회』 가을호를 엮으며

지난 8월 4일, 신문과 방송은 일제히 이날 아침에 확인된 한 남자의 충격적인 죽음을 보도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의 2세 경영자였으며, 이른바 ‘대북사업’을 주도한 기업인의 투신자살 소식이었다. 저널리즘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정치적 배경과 그 파장에 대해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하여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같은 날, 신문과 방송은 또 한 남자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이 남자는 학교 성적 하락을 비관하여 자살한 아들의 뒤를 이어 자기 집에서 아들과 같은 방식으로 자살한 남자였다. 거물급 경영인의 자살 소식에 가려 이 남자의 죽음은 저널리즘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전자에 비하면 후자의 자살은 그 사회적 의미가 크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날, 자기 의지에 의해 생을 마감한 두 남자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서의 전형적인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멀지 않다.

한 남자는 대기업의 경영주였고 한 남자는 평범한 가장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아버지다움’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남자들이었다. 그들이 자살을 결행한 대기업의 집무실과 자기 집 방 안이라는 공간은, 이들의 죽음을 규정하는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선명한 상징성을 갖는다. 살아남은 자들은 죽음을 결행한 사람의 내면에 대해 함부로 말할 자격이 없다. 가령 기업인의 죽음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저 범람하는 정치적·선정적 담론들을 보라. 두 남자의 죽음에 대해, 다만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죽음은 이 사회의 지배적 상징 질서가 호명하고 요구하는 ‘아버지-남성’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데서 연루된 죽음으로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이들은 체제가 ‘아버지-남성’의 이름에게 요구하는 권위와 책임의 무게를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감수’하거나, 혹은 그 요구에 대해 ‘복수’한 것일까?

우리가 ‘남성성’에 관한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단지 이 ‘불쌍한 아버지’들의 상황을 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가부장적인 상징 질서 안에서 ‘남성’이라는 이름은 무거운 이름이면서 동시에 권력관계의 상부에 속하는 이름이다. 그러니 이 사회의 ‘아버지’들이 불쌍하다면, 그것은 ‘가장 기 살리기’ 운동 등의 가부장적인 발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체제 안에서의 ‘남성성’에 관한 호명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하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먼저, ‘남성다움’ 혹은 ‘남성성’이 인간 본질에 대한 본래적인 명명이 아니라, ‘여성성’과 마찬가지로 젠더gender라는 사회문화적인 구별 짓기에 의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적 표상이자 가설이라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한국 사회의 역사적 현실과 재래적인 가족 문화의 소산이다.

페미니즘 혹은 포스트 페미니즘 이론이 사회와 인간을 보는 유력하고 진보적인 잣대의 하나로 부각된 이후, 여성성에 관한 탐구는 다양한 현실 분석과 이론적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남성은 여성성의 대비적 존재로서 단순하고 자명한 실체를 가진 것으로 인식되곤 했다. 그런데 이 여성성에 관한 탐구가 보다 입체적인 것이 되려면, ‘남성성’ 내부의 중층적인 이데올로기적 지형 역시 좀더 적극적인 성찰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다. 이는 남성성에 대한 가부장제적인 호명을 벗겨내는 작업, ‘남성=아버지’의 이데올로기적 주술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의 문학과 대중문화 안에서 새로운 ‘남성성’의 이미지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성’이라는 신화의 사회문화적 기원과 계보학을 탐색하면서 동시에 해체하는 작업은, 개체에게 덧씌워진 이데올로기적 명명법을 비판적으로 해체하려는 문학-예술 일반의 미학적 고투와 만난다.

『문학과사회』가 ‘남성이라는 신화’를 문제 삼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이번 특집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참여해주었다. 정유성씨의 글은 한국에서의 남성성이 형성되는 사회적 현실과 그 이념을 비판적으로 설명하면서 남성이 “젠더의 의미에서 상징적인 자살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반성적 요구를 제기한다. 홍기령씨의 글은 신화적인 세계에서의 남성성의 구현 방식을 탐구하고 있는데, 고대 바빌론의 창조신화를 대상으로 심리학적인 방법론을 참고하여 남성성의 신화적 표상들을 비교·분석한다. 심진경씨의 글은 “남성의 세계를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그리고 있는” 김훈의 소설에서, 사회경제적 정황과 여성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구성되며 재현되는가’를 분석한다. 김훈 소설 속의 남성성이 기존의 정형화된 남성성과 어떻게 같으면서 다른가를 살펴보면서, 궁극적으로는 한국 문학에 등장하는 남성성의 운명을 측량하려 한다. 김소영씨의 글은 한국에서의 남성성의 형성이 역사적 트라우마와 관련된다는 전제 아래, 이와 연관된 한국 영화에 대한 국지적 계보학을 그리면서, 그것은 어떻게 남성성의 이념을 구성해왔는가를 비판적으로 질문한다.

목차

『문학과사회』 가을호를 엮으며

특집:‘남성’이라는 신화
한국의 남성성: 사람 죽이는 억지 춘향 _정유성
신화 속의 남성: 고대 바빌론 창조 신화 「에누마 엘리시」를 통해서 _홍기령
경계에 선 남성성: 김훈의 소설을 중심으로 _심진경
운명의 손?: 역사적 트라우마와 한국의 남성성 _김소영


여기가 거기 아닌가! 외 3편 _정현종
향나무 일기장 외 3편 _김명인
내가 백설공주 된 날의 이야기 외 3편 _김혜순
서울,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외 3편 _정일근
땅 속의 꽃 외 3편 _나희덕
피지에서 난 담배 피지 외 3편 _연왕모
피터래빗 저격사건 _유형진

소설
4가 네거리의 축대 _김원일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_김연수
나는 편의점에 간다 _김애란
숨어 있는 그림들(4): 호모 비아토르 _이윤기〔연재 마지막 회〕

비판 문화론
판타지와 대항-기억으로서의 브리콜라주: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양가적 상상력 _김지훈

이 작가: 이성복
작가의 편지 _이성복
몸의 언어와 삶의 진실 _성민엽

문학 공간 2003: 가을
좌담 한국 문학아, 역설의 칼을 품고 자의식의 고개를 넘어가세나 _정혜경·최현식·정과리

기획 21세기
프랑스 상스에 은둔해 있는 파스칼 키냐르를 찾아서 _송의경

제15회 怡山문학상 수상작 발표
허만하 시집,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비평·논문
공동체와 타자: 배수아 소설 속의 가치론과 의미론 _이수형

서평 공간
박천홍,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_김동식
히로마쓰 와타루, 『근대초극론』 _이경훈
임지현·사카이 나오키, 『오만과 편견』 _와타나베 나오키
임영방,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미술』 _노성두
김서정 비평집, 『어린이문학 만세』 _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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