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노벨의 결혼

이보경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2년 1월 30일 | ISBN 9788932013091

사양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364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작품 소개]
이 책의 구체적인 작업은 20세기 초 중국의 ‘소설 이론’ 읽기를 통해서 진행되는데, 실상 소설 이론의 경계를 설정하는 작업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당시는 ‘소설’ 장르의 경계가 확정되지 않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고, 문사철(文史哲)을 하나로 사고하는 중국 고전 전통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따라서 ‘소설’에 관한 논의들만 따로 뽑아낸다면 당시 지식인들의 유기적 사유를 제대로 읽어내는 데 실패하기 십상이다. 20세기 초에 발표된 글을 모두 읽어낸 후 그 가운데서 소설에 관련된 논의들의 지점을 파악해낸다면 더없이 좋은 방법인 줄은 알고 있지만, 차선책으로 ‘소설’과 직접 유관한 논의들을 먼저 점검한 다음 그것을 다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기타 문학 장르, 사학, 철학 등과 관련된 글들을 추출하여 보조 자료로 사용했음을 밝혀둔다.
―「서문: 중국적 ‘근대성’ 담론에 대한 질문」 중에서

[표지글]
이 책은 중국 근대 소설의 역사와 정체성을 파악하고 당시 소설 이론의 논의들에 나타나는 주요한 특징들을 추적해가는 저서이다. 저자는 20세기 초 중국의 ‘소설 이론’을 꼼꼼하게 읽음으로써 복잡 다기한 양상으로 형성된 소설 이론의 재편의 과정과 그 경계를 설정하고, ‘소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논의들을 폭넓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문학,역사학,철학 사상 등의 글들을 세밀하게 고찰함으로써 중국 근대 문학의 총체적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그러한 이 책은 중국 전통 문학의 영향과 당시 위협적인 서구 중심의 세계 문학인 ‘novel’에 적응해야 하는 중국의 현실적 조건, 즉 이 양자의 배척과 고무화된 문화적 바람 속에서 서구와 구별되는 형식을 만들어간 중국의 근대 소설 이론을 밀도 있게 탐색하고 있다. 그러한 연구 과정에서 이 책이 주목하는 주요 인물은 리앙치츠아오, 왕꾸어웨이, 청년 루쉰, 옌후우, 린수, 장타이옌 등을 비롯한 기타 소설 이론가들인데, 이 이론가들을 탐색하는 저자는 그들의 서로 다른, 다양한 문학적 특징을 살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교집합에 해당되는 특질을 추출해냄으로써 20세기 이후 중국 근현대 문학사의 주류적 사고의 원형을 찾아내고 있다.

[책머리에]

1999년 9월부터 저지앙성(浙江省) 진후아(金華)에 있는 저지앙 사범대학에 교환 학생 자격으로 가 있었다. 진후아는 저지앙성의 한가운데 위치한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한때 성도(省都)가 될 뻔한 적도 있었다고 했으나 항저우(杭州)의 유명세에 눌려 지금은 그저 조용한 소도시로 남아 있는 곳이다. 그곳 학교에는 외국인이 전부 해야 5명에 불과했고, 그 도시를 통틀어보아도 10명 남짓할지나 모르겠다. 시간이 머물러 있는 듯한 평온함을 더는 견디지 못해 예정을 미처 채우지도 못하고 10개월 만에 도망치듯 빠져나왔지만 그 덕분으로 어쭙잖은 논문이나마 완성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진후아는 중국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물건을 드문드문 늘어놓고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한국이 나라 이름인지 중국의 어느 지방 이름인지도 모르는 난전의 장사치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학교인데도 ‘너무 넓은’ 교정에서 길을 잃고 울어버린 적이 있다고 쑥스럽게 고백하는 산간 벽지 출신의 대학생, 문화 혁명 때 하방(下放)하여 문맹의 농촌 처녀와 결혼해 지금은 학교 한 모퉁이를 빌려 식탁 두어 개를 놓고 꾀죄죄한 식당을 하고 있는 늘 웃는 얼굴의 역사과 교수까지 한결같이 순진한 ‘라오빠이싱(老百姓)’의 전형들이었다. 그곳에서 지내면서 나는 너무 현대적인 인간이구나, 라는 자책에 시달리곤 했다. 사람들의 밑도끝도없는 친절을 부담스러워하면서, 내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막기 위해 멀쩡한 거짓말까지 일삼으면서, 나는 얼마나 소외된 인간인가, 아니, 소외를 자초하는 인간이구나, 라는 사실을 번연히 깨닫고 말았다.‘현대적인 인간’으로서 나는 진후아 사람들과 하나 되기를 포기하고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관찰하기로 마음먹은 바에야 그들을 제대로 보아낼 리 만무했지만 하릴없이 거기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내가 갖고 있지 못하는 인간다움을 흠뻑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순진성을 그저 속 편한 찬탄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었다. 국경일이나 나라에 큰 행사가 있을 때면 그것을 이데올로기 교육의 호기로 삼아 텔레비전 방송망을 통해서 전국으로 내보내는 소위 리엔후안후에이(聯歡會)라는 버라이어티 쇼를 보고 15억 중국인이 다 같이 ‘용의 자손’ ‘황제(黃帝)의 아들’이라는 선전에 감격하는 사람들, 떵샤오핑(鄧小平)이 “건강에 좋다”고 했으므로 태극권을 하는 것이 마냥 즐거운 사람들, 홍수 대란에 인간 방어벽으로 나간 해방군을 그저 한없이 존경하는 사람들, 도대체 이런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전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지금은 비록 형해만 남은 사회주의라고 하더라도 공동체의 소중함을 몸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인격으로서의 인간 개체에 대한 존중이 부재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모순된 현상들이 중국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그 외진 도시에도 아동 문학을 연구하는 일본인 석사생 한 명이 자료 조사차 왔다. 대학교 과 선배─실은 그저 이름만 들었을 뿐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선배였다─와 1990년대 초반 뻬이징(北京)의 한 대학에서 기숙사 방을 같이 쓰면서 동고동락을 했다는 이야기에 그만 혹해서 일주일 남짓 내 방에서 먹여주고 재워준 적이 있었다. 이 친구가 어느 날 문득 “중국 사람은 꼭 바퀴벌레 같아”라고 내뱉었다. 순간 이 사람이 소위 선진국에서 왔다고 자기가 ‘문명인’이라고 젠체하는 것인가, 불끈 화가 치솟았다. 그런데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중의 하나이면서 역사가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는 놀라운 생명력─인간이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이 ‘생명의 지속’에 대한 욕망에 다름아니지 않는가─을 보여준다는 뜻에서 한 비유였던 것이다. 아직도 그때 그 목소리가 떠오르면 괘씸해하는 편이지만, 시간이 격해서인지 간혹 그리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세기 초 지식인들을 괴롭혔던 중국인의 ‘노예 근성’은 이를 두고 한 말은 아닌지? 리앙치츠아오, 왕꾸어웨이, 루쉰 등이 그렇게 비판했던 저열한 국민성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이 중국을 일구어나간 힘은 아닌지? 게다가 우리가 흔히 민중의 생명력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는 ‘풀’과 그 친구가 말한 ‘바퀴벌레’ 사이에 무슨 차이점이 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삶을 제대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중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고, 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졸저는 「20세기 초 중국의 소설 이론 재편 연구」라는 제목으로 제출된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 보완한 글이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적인 논거를 제대로 갖춘 논문이라기보다는 20세기 말에 중국에 가서 중국인들을 보고 느끼고 겪은 감각적인 소감이 20세기 초 지식인들의 문론 읽기에 투영된 보다 느슨한 형식의 글쓰기에 불과하다. 글의 수준이란 게 이렇게 뻔한데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보아주신 분들이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 돌이켜보면 논문을 쓴답시고 20세기 초 중국 지식인들을 마음속에, 머릿속에 달고 다닐 때가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싶다. 논문의 주제는 동아시아의 근대성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차에 지도 교수이신 정진배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잡아나갔다. 실제 여기에 인용된 글들의 대부분은 수업에서 읽고 토론했던 글이니 선생님과 동학(同學)들의 자극이 없었다면 고민이 영글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어쭙잖은 논문을 부여잡고 3년여 씨름하는 내내 때마다 논평해주시고 직접 첨삭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시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선생님의 애정에 송구스러울 뿐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중국 문학 연구라는 공부길로 인도해주셨고, 공부하는 모양새를 늘 탐탁하지 않게 여기시면서도 한켠에 믿음을 가지고 10여 년 이상 지켜봐주신 유중하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우리말과 우리 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외국 문학 연구자의 기본 소양이 되어야 한다는 소중한 가르침을 주신 분이다. 개성이 다른 두 분에게서 공부가 무엇인지, 공부하는 삶이란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았으니 앞으로 공부를 계속해나갈 일만 남은 셈이다. 중국 문학에 대한 지나친 애정 때문에 한국인으로서의 입장이 무화되는 측면이 있음을 아프게 지적해주신 전형준 선생님, 그리고 논문의 모자라는 점에 대해 꼼꼼하게 지적해주신 백영길 선생님, 김장환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어쭙잖은 글을 출판하도록 허락해준 서남재단과 문학과지성사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평생을 초등학생들 속에서 묻혀 지내신 아버지, 늘그막에 이제서야 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신 어머니, 두 분의 소박한 삶에 조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며 이 책을 바친다.

_2002년 1월 이보경

목차

서남 동양학술총서 간행사

책머리에

서문_ 중국적 ‘근대성’ 담론에 대한 질문
      1. 비판적 문제 제기
      2. 연구의 좌표점
        Ⅰ. 연구 동향
        Ⅱ. 연구 범위 및 대상

제1장 소설 이론 재편의 배경_연안 지역의 신사(紳士)
       1. 지식인의 자리
         Ⅰ. 연안 지역과 서구와의 소통 실상  
         Ⅱ. 신사(紳士) 계층의 도기합일(道器合一)적 사유
       2. 동서고금을 보는 시각
         Ⅰ. 새로운 것(新)과 오래된 것(舊)
         Ⅱ. 문명의 기호들 : 진화, 소설
       3. 외국 문학 가져오기
         Ⅰ. 선택적 번역
         Ⅱ. 개념의 창조

제2장 소설 이론 재편의 실제_문(文)과 노벨novel의 결혼
       1. ‘문(文)’의 해체와 재구성
         Ⅰ. ‘허언(虛言)’으로서의 ‘문’
         Ⅱ. 문학의 존재 방식
         Ⅲ. 민족 문학과 아속(雅俗) 문제 
         Ⅳ. 소설의 분화
       2. 문화적 영웅에 대한 호명
         Ⅰ. 양강의 미(陽剛之美
         Ⅱ. 여성성 지우기
       3. 낙관적 우환 의식
         Ⅰ. 대단원 구조 비판
         Ⅱ. 대동 세계의

제3장 소설 이론 재편의 성격_내용 변혁의 이데올로기
       1. 신소설의 내용과 구소설의 형식      
         Ⅰ. 서구 소설 형식의 발
         Ⅱ. 장회체와 설서인의 세계
         Ⅲ. 형식감에서 형이상학적 분석으로
       2. 그물망 찢기(衝決網羅
         Ⅰ. 형식의 만화경
          Ⅱ. 선회와 되감기

발문 중국적 ‘근대성’에 대한 상상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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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이보경 지음

1969년 경북 출생.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중어중문학 석사 및 박사 과정를 수료했으며, 1999년 8월부터 1년 간 中國浙江師範大學에서 高級進修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동서문명의 조오와 근대 중국 지식인의 번역관」이라는 과제로 박사후 과정 연수 중이며, 연세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역서로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공역, 張法 저, 푸른숲, 1999), 『내게는 이름이 없다』(余華 저, 푸른숲, 2000)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丁玲의 초기 소설집 『어둠 속에서(在黑暗中)』에 대한 연구」 「20세기 초 중국의 소설 이론 재편 연구」 「두 개의 저울추, 충실성과 가독성―魯迅 雜文 번역의 실례」 「눈의 비행―그물망에서의 탈주」 「조동일: 동아시아 문학론 구상을 위한 참조 체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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