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와 문체-오형엽 비평집

오형엽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1년 10월 18일 | ISBN 9788932012872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92쪽 | 가격 14,000원

수상/추천: 젊은평론가상

책소개

[작품 소개]

1994년 월간 『현대시』 신인상에,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한 젊은 평론가 오형엽의 첫 비평집.

[책머리에]

첫 비평집을 낸다. 등단 이후에 발표한 글들 중에서 유사한 관심 분야의 글들을 모은 것이다. 유사한 관심 분야의 글들을 추리다 보니 애착이 가는 다수의 글들이 다음 기회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그 동안의 평론 활동은 스스로의 무지와 무능과 게으름에 대한 회의와 자책의 연속이었다. 그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글들을 엮어 책으로 펴내면서 회의와 자책은 몇 곱절 가중된다. 좀더 깊고 넓은 시야로 우리 시대 문학의 안과 밖을 들여다보고 체계적으로 서술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옳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숙한 상태에서 비평집을 내게 된 것은, 이 부족함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반성과 도약의 계기로 삼는 것도 약간의 의미는 있으리라는 자기 위안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안 암중모색해온 비평적 탐색의 모습이 어렴풋하게나마 윤곽이 잡히는 듯한 느낌이 이 책을 내는 무모함을 부추겼다. 그 동안의 평론 활동을 돌아보면서 나의 비평적 관심과 시각이 ‘신체’와 ‘문체’라는 두 영역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느낀다. 일단 ‘신체’는 사유와 행위의 동인, 즉 문학적 주체의 위치에 놓이고, ‘문체’는 그 주체가 드러나는 방식, 즉 문학적 행위의 결과물의 위치에 놓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문학에 있어서 ‘신체’와 ‘문체’의 관계는 ‘내용’과 ‘형식’의 관계라는 전통적인 문학적 테마로 환원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신체’와 ‘문체’의 관계는 ‘신체적 주체의 시학’이라는 차원에서 단순히 내용/형식의 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문학적 테마를 발생시킨다. ‘신체’라는 용어는 1990년대 이후 문학뿐 아니라 문화와 사회 전반에서 유행하고 있는 ‘몸의 담론’이 ‘육체성’의 차원으로 흐르는 경향에 대한 반성적 의도에서 사용된다. 몸의 담론이 흥성하는 까닭은 우리의 몸이 사회, 문화, 역사, 윤리 등의 다양한 코드들이 공시적・통시적으로 작동하며 만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그 가역적 탈코드화가 일어나는 창조적 행위의 가능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 대부분의 몸의 담론들이 보여주는 주된 문제점은 육체와 욕망의 문제를 지식, 기술, 자본, 언어, 윤리 등과 다층적・다방향적으로 얽힌 주제로 다루면서도 몸에 대한 존재론적・인식론적 해명은 방기하는 데 있다. 이러한 현상에는 다분히 육체성의 복권을 통해 그 동안 권위를 지켜왔던 이성적 주체의 해체를 기정 사실화하거나 완성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정신과 이성에 의해 주변부에 버려졌던 육체를 인간 주체의 실체로 복원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몸을 이성과 대립 개념으로 보는 관점은 현대성의 담론이 지닌 정신/육체, 의식/대상의 이분법과 등을 맞대고 있는 또 하나의 이분법일 뿐이다. 따라서 나는 ‘육체’라는 용어와 ‘신체’라는 용어를 구분하여 사용하고자 하는데, ‘육체’는 유물론적인 몸으로서 흔히 ‘정신’ 혹은 ‘이성’과 대립 개념으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이다. ‘신체’는 의식이 살로 변한 육화된 의식을 의미하며, 따라서 몸과 의식, 몸과 이성은 서로의 경계를 확연히 구분지을 수 없을 만큼 대화와 긴장의 상호 침투적 관계로 통일되어 있다. 사실 ‘신체’는 의식과 대상, 정신과 육체, 사유와 감각, 주관과 객관, 능동성과 수동성, 내용과 형식 등을 구분하는 이성적 인식 이전에 존재하는 보다 근원적인 영역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체적 주체’는 기존의 현대성이 주장하는 ‘이성적 주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이성보다 더 근본적인 영역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체’는 현대적 이성에 의해 이분법적 구분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경우, 그 이분법의 경계에서 경계를 넘어서 역동적으로 상호 침투하는 무정형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결국 ‘신체적 주체’는 ‘이성적 주체’를 단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선험적이고 당위적인 권위를 탈영역화하면서 그 긍정적인 측면을 끌어안는 개념이다. 우리는 몸과 함께 태어난 것처럼 이성과 함께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게 될 이성은 신체와 분리되거나 타자성을 억압하는 기존의 이성이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신체적 주체’는 비이성의 체험을 포함하는 새로운 이성의 개념인 것이다. 그리하여 ‘신체적 주체의 시학’은 우리 문학에서 전통적으로 지속되어온 ‘동일성의 시학’과 1990년대 이후 형성되어온 ‘포스트모던 시학’으로부터 동시에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영역을 확보한다. 기존의 ‘동일성의 시학’은 세계를 자아의 내면 속에 포섭하는 주체의 자기 동일성을 문학적 존재 방식의 핵심으로 삼는다. 이 동일성의 시학이 주체의 통합을 강조한다면, ‘포스트모던 시학’이 강조하는 것은 주체의 분열과 끝없는 미끄러짐이다. 동일성의 시학이 자아와 이성으로 수렴된다면, 포스트모던 시학은 타자와 육체성으로 수렴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문학에서 1990년대 이후 진행되어온 다양한 문학적 흐름들은 이처럼 동일성의 시학과 포스트모던 시학을 양극단에 놓은 일종의 스펙트럼 속에 배치될 수 있을 것이다. ‘신체적 주체의 시학’은 이 두 대립항의 경계에서 몸이 지닌 일종의 상호 침투적 역동성을 통해 그 경계를 가로지르며 생성되는 것이다. 신체적 주체는 동일자와 타자, 주체의 통합과 분열, 의식과 무의식, 문명과 자연 등의 경계에 위치해 있으면서 투신(投身)을 통해 그 경계를 넘나드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이 신체에 육화되어 있듯이, 신체는 세계 속에 세계화되어 있다. 그리고 신체는 세계-내-존재의 운반이다. 즉 세계 속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또한 신체는 이성 및 의식의 영역과도 만나지만 의식과 본능, 현실과 환상, 욕망과 결핍이 교차하는 무의식의 영역과도 만난다. 그리하여 신체적 주체는 육화된 의식 및 무의식과 세계 사이의 상호 침투를 통해 역동적인 흐름을 지속하면서 구속과 정체(停滯)를 넘어간다. 이런 까닭에 ‘신체적 주체의 시학’은 텍스트 분석에 있어서 내재 분석이 사회 역사적 차원 및 정신 분석적 차원과 만나고 엇갈리는 교차점을 포착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신체적 주체의 시학’은 그 속성상 여성주의 및 생태주의 문학으로 전개되며 상호 침투를 시도하고 있거나 예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성과 여성, 문명과 자연 사이에서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상호 지속하게 하고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통합하는 앎과 실천의 방법을 신체의 원리가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나와 타인, 혹은 나와 세계가 존재하는 모든 공간의 모태이며 발생적 공간이다. 즉 나의 몸과 타인의 몸과 세계의 몸은 보다 근원적인 영역에서 더 큰 하나의 몸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신체적 주체’는 ‘문체’를 통해서만 발현된다. ‘문체’는 시인과 소설가가 세계에 빌려준 몸을 다시 말에 빌려주는 데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비평가는 시인과 소설가가 남긴 말의 미세한 무늬, 즉 문체를 추적함으로써 그 비밀스런 몸의 자세를 엿볼 수밖에 없다. 문체를 통하지 않고는 신체에 도달할 수 없다. 텍스트가 지닌 언어적 측면인 문체를 정밀히 분석함으로써 그 신체적 주체가 지닌 몸의 내밀한 태도와 숨은 목소리를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신체적 주체가 세계와 부딪쳐 언어를 결정(結晶)시키는 과정과, 언어가 신체적 주체와 세계를 끌어안는 과정이 한 점에서 만난다. 세계와 몸과 언어가 상호 침투하며 융합되는 신비로운 체험이 바로 창작의 체험이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말은 곧 몸이 되고, 문체는 곧 신체가 된다. 문체를 통해 신체에 이르는 이러한 과정은 비평 방식으로서 ‘미시적 이론화’라는 용어로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 구성 및 이론화 작업은 비평의 기본 임무이자 생명이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의 우리 비평은 현실의 구체적 근거 및 작품의 질료에 기반하지 않은 채 과도하게 비평 이념에 집착하는 태도, 즉 거시 비평의 영역에 치중한 입법 비평과 지도 비평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현대사의 질곡 및 모순과 맞서 싸우는 대항의 논리에 의해 이데올로기적 혹은 대 사회적 비판 담론이 힘을 얻어온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탈정치화되고 중층적으로 변모된 사회적・문화적 현실의 양상은 비평에 있어서도 세밀하고 정치한 미시 비평을 요구하게 된다. 1990년대 이후 비평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문학을 작품의 내재적 가치를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로 인해 융성한 작품론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텍스트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해석하는 작품론의 수준에서 우리 시대의 비평은 이전의 비평이 얻지 못한 성과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거시 비평의 폐해 못지 않게 작품 해석에 치중하는 이 미시 분석이 가져온 폐해가 있는데, 그것은 작품 추수주의의 한계이다. 따라서 현 단계 문학 비평에서 요청되는 것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는 새로운 경향의 작품들을 좇아 그 의미를 해석하고 내재적・미학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정신 분석적 차원의 해명과 평가 작업을 동시에 추구하는 일이다. 텍스트에 대한 세밀하고 정치한 분석을 경유하되, 다시 그것을 사회적・문화적・문학사적 맥락 속에서 자리매김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문제 구성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비평집에 수록된 평론들의 일관된 태도는 구체적인 텍스트의 문체 분석으로부터 이론화로 진행되는 귀납적 방법으로서 ‘미시적 이론화’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평 이념으로서 완전히 정립되지 못한 이 작업들은 그 자체로 나의 부족한 사유와 미숙한 비평 능력의 결과이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텍스트의 질료와 이론 사이를 왕복하는 ‘미시적 이론화’가 언제나 정립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으로서 과정 중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도 기인하는 것이다.

『신체와 문체』라는 제목을 붙인 이 비평집은 이러한 문제 의식과 사유를 토대로 구상되었다. 제1부 ‘주변과 경계의 시학’은 최근 우리 문학의 특징과 경향을 조망하며 전체적 지형도를 그린다. 1990년대 이후의 문학적 흐름을 ‘주변의 시학’과 ‘경계의 시학’으로 설명하면서, 이 전환기적 상황을 ‘열린 주체’와 ‘대화적 비평’으로 타개하려는 모색을 보여준다. 제2부 ‘새로운 주체를 찾아서’는 최근시에 나타난 문제적 징후들을 포착한 테마 비평인데, ‘열린 주체’와 ‘대화적 비평’의 구체적 시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김수영과 김지하의 시에서 새로운 주체의 양상을 발견한 후, 후배 시인들에 의해 그 테마가 어떻게 계승되고 변모되는지를 살피면서 새로운 주체를 모색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제3부는 이러한 모색의 과정에서 형성된 ‘신체적 주체의 시학’에 해당하는 시인들의 시적 특징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시인론 혹은 작품론이며, 제4부 ‘죽음, 혹은 주체 소멸 이후의 생’은 1990년대 시의 중요한 테마를 이루는 소위 죽음의 시학에 해당하는 시인들의 죽음 이후의 시적 경로를 조명하는 시인론 혹은 작품론이다. 죽음은 탈주체의 원심력이 극단으로 전개된 자리에서 빚어지는 주체 소멸의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속하는 시인들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죽음을 경유하여 삶과 죽음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는 듯한데, 신체는 이 죽음 이후의 시적 경로를 가능케 하는 하나의 계기로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제5부 ‘소설적 주체와 문체’는 1990년대 이후 주요 작가들의 소설적 특징을 주체와 문체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평가하는 작가론 혹은 작품론이다.

이 비평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가르침과 격려와 충고 등으로 은혜를 베풀어주신 많은 분들이 떠올랐다. 문학을 공부한 이래 지금까지 줄곧 세계를 보는 눈과 문학적 사유의 길을 열어주신 김인환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사실 고백하건대, 이 책을 구성하는 주된 모티프는 큰 산처럼 서 있는 선생님의 사유에 근접하기 위해 암중모색하는 가운데 얻어진 것이다. 아직도 그 산에 오르는 수많은 길들이 남아 있고, 그 길 위에서 암중모색해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는 것은 행운이자 축복이다. 또한 모교의 은사님들, 특히 김종길 선생님, 최동호 선생님, 김흥규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이분들은 아실지 모르지만, 나는 이분들이 뿜어주신 문학적 공기를 호흡하면서 생각하고 공부하며 글을 쓰는 법을 배워왔다. 비평가의 길을 걷게 하시고 그 여정에서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유종호 선생님과 도정일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서투른 글들을 엮어 책으로 펴내주신 문학과지성사의 선생님들과 편집부 식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 모든 분들의 후의에 보답하는 길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을 쓰는 일이라 생각하며 정진을 다짐한다.
2001년 10월 오형엽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주변과 경계의 시학주변의 시학

경계의 시학
열린 주체와 대화적 비평
전환기적 모색, 현대와 탈현대의 경계에서_1990년대 시의 지형도

제2부 새로운 주체를 찾아서

주체와 해탈, 중심과 확산의 변증법_김수영과 김지하의 시
신체적 주체의 시 쓰기_송재학과/박서원/이경림의 시
전복적 상상력, 탈주체의 시적 전략_서정학/이철성/성기완의 시

제3부 신체적 주체의 시학사이의 시학_정현종론

발견의 시학_정진규론
자연의 숨결, 시간의 사유_최영철의 시세계
서정과 패러디, 양식의 통합과 분화_유하론
잠과 웃음의 방식_김기택론

제4부 죽음, 혹은 주체 소멸 이후의 생

책과 불의 상징, 경계 너머의 길_남진우의 시세계
동백과 산경(山經), 상징의 신화적 차원_송찬호의 시세계
물의 환(幻), 바람의 뼈_김태동론
시간의 미궁_윤의섭의 시세계

제5부 소설적 주체와 문체

관계의 해체와 상호 주체성의 새로운 관계_최시한론
회귀, 혹은 되살아남의 길_신경숙론
댄디즘, 혹은 변형된 영웅의 이야기_1990년대 소설을 보는 한 시각

작가 소개

오형엽 지음

지은이 오형엽은 1965년생으로,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현대시』 신인상을 수상했고,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주요 저서로 『신체와 문체』 『주름과 기억』 등의 비평집과, 『한국 근대시와 시론의 구조적 연구』 『현대시의 지형과 맥락』 『현대문학의 구조와 계보』 『문학과 수사학』 등의 문학 연구서를 펴냈다. 역서로 『이성의 수사학』이 있다. 제3회 젊은 평론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현대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수원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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