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거인

어른들을 위한 어린이 책 길잡이

최윤정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0년 8월 10일 | ISBN 9788932011851

사양 · 230쪽 | 가격 6,000원

책소개

〔책머리에〕

거인이 슬픈 까닭은……

어른이 된 이래로 나는 순전히 어떤 한 가지 감정만 강렬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따지고 보면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슬픔과 기쁨과 노여움이 그 비율만 달리한 채 섞여 있는 것 같다.

무엇을 정말로 절실하게 원하지도 못하고, 반대로 심중에 있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런 나와는 정반대인 것 같다. 장난감 하나, 간식 하나를 조를 때의 그 간절한 몸짓, 싸운 친구 얘기를 할 때면 언뜻 내비치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 같은 야멸찬 얼굴, 게임의 규칙을 어겼거나 텔레비전 채널 선택권을 빼앗아간 상대방에게 터뜨리는 분노,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얻었을 때의 기쁨……

뒤돌아서는 순간 잊어버리는 아이들의 그런 감정들은 순간적이나마 거의 완벽해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을 순수하다고 하는 걸까. 중간 단계가 전혀 없는 감정의 극과 극을 하루에도 몇 번씩 살아내는 아이들은 제 안에 우울을 가둘 새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아이들은 참 신기하게도 탄력 있는 존재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눈을 대고 있노라면 부럽기 그지없다. 놀 줄을 모르는 내가 매번 경이롭게 느끼는 것은 너나없이 아이들은 언제 어느 때고 신나게 놀이 속에 빠져든다는 사실이다. 둘만 모이면 어떻게든 웃음이 터지는 놀이를 만들어내는 게 아이들이다. 정말이지 아이들은 놀면서 자란다. 만일 어른도 아이들처럼 놀 수 있다면 마음의 주름살이 쭉쭉 펴지면서 아이들처럼 무럭무럭 자랄 것 같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그런 신기한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내 안의 주름살들을 헤집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나는 아이들이 실컷 아이들일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놀이의 ‘반대말’인 공부가 아이들 인생의 목표처럼 되어 있는 이상한 환경밖에는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공부 열심히 하는 건 어른이 되어서도 할 수 있고 오히려 ‘놀면서 자라는’ 건 아이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처럼 놀 수는 없지만 나는 아이들 책을 보면서 논다. 내가 좋아하는 클로드 퐁티의 그림책에 슬픈 거인이 나온다. 몸집이 큰 거인은 주인공 꼬마들이 사는 ‘집나무’에 들어갈 수 없어서 슬프다. 그 거인이 꼭 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쩌면 많은 어른들이 나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가끔이지만 그런 생각으로 어린이 책들을 들여다보다가 머릿속에 꼬마전구가 켜진 것처럼 화안해질 때가 있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을, 놀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학부모들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교사들 사이에 어린이 책 읽는 풍토가 생겨났으면 좋겠다. 아예 교육대학 커리큘럼에 어린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과목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교사들이 어린이 책을 읽는다면 학교가 훨씬 다닐 만한 곳이 될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어린이 책 출판은 급작스럽게 활발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린이 책 출판 역시 경제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 책 매출이 어른 책 매출을 넘어서는 출판사가 늘어난다는 소문이나 공공연히 ‘주부 고소득 부업’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어린이 독서(논술!) 지도 광고를 볼 때마다,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성 사업에 엄청나게 사람들이 몰리는 걸 볼 때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담보로 장사를 하려는 생각만 앞세운다는 염려를 떨칠 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당연한 흐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전문가 집단의 성장이 빈약하다.

일반 문학보다 훨씬 더 전문성이 요구되는 어린이 문학에 작가들이나 평론가들뿐만 아니라 출판 담당 기자, 사서, 교사, 편집자들의 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첫 책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를 내고 나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간 계산을 하고 보니 그 동안 읽은 책이 너무 적고 쓴 글이 너무 없어서 자괴감이 든다. 더 늦어서는 안 되겠다는 조급함에 그간 써두었던 글들을 손질하고 여기저기 발표되었던 글들을 모았다. 다시 보니, 영 부끄러운 생각이 들지만 꾸밈없이 세상에 내보내기로 했다.

첫 책이 출판되고 나서 많은 독자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났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독서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어떤 책이 좋은 책이냐고. 그들에게 일일이 대답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나도 그들과 똑같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보다 내가 조금 나을 수 있다면 그건 순전히 내가 그 문제에 대해서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이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여전히 나는 그런 물음을 내게 던지는 사람들 앞에서 난감하다.

여기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런 난감한 심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꼼꼼히 따져본 데에 불과하다. 내 부족한 책을 세심하게 읽고 편지를 보내준 독자들에게 대답하지 못했던 것은 전혀 바빠서가 아니라 이런 속사정 때문이다. 그들의 자극이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글을 쓰게 했다, 아니 한다. 여기 실린 글들이 답장 받지 못한 그들의 서운함, 답장하지 못한 나의 무성의함을 좀 덜어주기를 바란다.

비 없는 장마가 지나가버린 2000년 여름
최윤정

목차

〔차례〕

책머리에|

책 구경 사람 구경|

1. 생활과 전통 그리고 문화|
2. 개들에 의한 인간에 대한 사유|
3. 나쁜 어린이 표 대 나쁜 선생님 표|
4.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5. 독재와 폭력을 지켜보는 아이들|
6. 대단하고 근사하고 겸허한 돼지|
7. 추상과 일상|
8.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9. 느림, 그리고 서투름|
10. 유년으로 난 창|

어린이 책 속의 페미니즘|

1. 굳센 여자 섬세한 남자|
2. 가장 좋은 신랑감을 찾아서|
3. 너희들은 돼지야|
4. 도대체 아빠들이 왜 필요한 거예요?|

흑과 백, 그리고 그 사이|

1. 애매한 목소리, 모호한 희망|
2. 편가르기, 무엇이 문제인가?|
3. 웃으면서도 생각할 수 있다|
4. 좀 다른 이분법|

지금, 여기서의 한국 어린이 문학|

1. 한국 어린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2. 1999년 하반기 어린이 문학|
3. 왜 동화를 쓰는가?|

애니메이션 세계 명작, 무엇이 문제인가|
─『아기 돼지 삼형제』의 경우

1. 시작하는 말|
2. 엄마돼지와 아기돼지|
3. 아기돼지 세 마리의 성격 차이|
4. 늑대의 출현|
5. 속임수의 힘|
6. 두루뭉수리한 해피 엔딩|
7. 늑대를 잡아먹는 아기돼지|
8. 끝맺는 말|

다이제스트, 무엇을 어떻게 줄이고 있나|
─『피노키오』의 경우

1.‘완역’이 의미하는 것|
2. 애니메이션 『피노키오』, 그리고 완역 『삐노끼오의 모험』|
3. 말하는 나무토막, 피노키오의 전신|
4. 성격 없는 피노키오|
5. 파란 머리 요정, 영원한 모성|
6. 교훈도 살고 작품도 살고|
7. 기계적 축약|

독서 교육, 어려운 숙제|

1. 독서 지도를 한다는 것은|
2. 책, 습관, 즐거움|
3. 내 아이 책만 골라주면 될까?|
4. 프랑스의 방학 교육|
5. 변화하고 있는 어린이 문학|

원문 출처|

작가 소개

최윤정 지음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와 파리3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린이 책에 눈을 떴다.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로 어린이 책에 대한 작업을 시작하여 지금은 어린이 청소년 문학 전문 출판사 ‘바람의아이들’ 대표로 있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면서 아이들과 책과 교육에 대해서 부단히 성찰하고 작가, 편집자, 사서, 교사 등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우리 어린이 문학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 『양파 이야기』 『미래의 독자』 『슬픈 거인』 『그림책』 등이 있으며, 『글쓰기 다이어리』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내 꿈은 기적』 등을 번역했다. 201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공로 훈장을 받았다. 현재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하여 블로그(http://blog.naver.com/ehjnee)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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