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없는 세대

볼프강 보르헤르트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0년 7월 15일 | ISBN 9788932011813

사양 · 218쪽 | 가격 7,000원

책소개

[개요]
스물여섯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작가 볼프강 보르헤르트. 보르헤르트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단편들과 대표 시 모음집.

[기획의 말]

볼프강 보르헤르트Wolfgang Borchert의 이름은 「문밖에서」라는 희곡으로 우리에게도 꽤 알려진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연극으로 상연되어 많은 관객을 모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스물여섯 살의 나이로 요절한 이 천재 작가가 낯선, 먼 이 땅에서도 그처럼 강렬한 인상으로 우리 관객(청중/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 자신의 탁월한 천재성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문화 풍토, 양자의 절묘한 궁합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보르헤르트의 천재성이라면, 1945년 세계 대전이 끝난 뒤 2년 간의 짧은 시간 안에 씌어진 그의 작품들 자체가 피할 길 없는 증거다. 「문밖에서」 이외에 그는 시를 썼고, 또 소설을 썼는데, 1949년 사후 2년 만에 『보르헤르트 전집』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아직도 폐허 그대로 남아 있는 땅 위에 서서 독일인들은 그 책을 들고 울었다. 그러나 그 울음은 속으로 삼켜지는 통곡이었을 뿐, 눈물 대신 미소가 되어 사람들의 얼굴에 번져갔다.

1970년대 중반 『전집』은 그 대부분이 ‘이별 없는 세대’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번역·출간되었고 ‘이별 없는 세대’는 젊은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번져나가 당대의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다. 독일 문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헤르만 헤세와 더불어 이 일찍 죽은 미남 청년이 매혹적으로 빨아들였다. 6?5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넘은 시절이었지만 4?9의 피가 여전히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 당시는 저 무시무시한 ‘유신’ 시대가 아니었던가. 권력자에 반대하는 한마디의 말이 생명까지 앗아가는 우리의 상황은 보르헤르트가 똑같은 이유로 생명을 잃을 뻔했던 독일의 현실과 일모(一毛)의 차이 없이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독재자에 대한 분노, 그렇기는커녕 그를 포함한 모든 현실을 따사롭게 껴안는 듯한 유머, 톡톡 끊어가면서 수많은 말들을 아끼고 숨기는 함축적인 문체, 현실의 비극을 넘어서는 보르헤르트 문학의 힘은 1970년대 한국의 비극을 이겨내는 힘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자유와 민주를 구가하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르헤르트가 간절히 요구되는 이유가 있다. 문학이 흡사 인간의 욕망을 까발리고, 비극의 모습을 늘어놓는 일로만 집중되는 것 같은 현실에 대해 자기 이해를 높이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려야 되겠다는 요구가 그것이다. 오늘 우리의 문학은 신자연주의(新自然主義) 내지 신표현주의(新表現主義)의 분위기가 강하다. 욕망과 성, 폭력은 감추어지기는커녕 벌거벗은 채로 활보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후기구조주의는 편의적으로 그 이론이 원용된다. 확실히 문학은 도덕의 맞은편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은 그 자리에서 바로 그 도덕이 도덕적인지 아닌지를 살펴본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도덕을 부수면서 다시 세운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문체인데, 보르헤르트의 문학을 우리가 거듭 다시 내놓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보르헤르트의 승리는 문체의 승리이다.

[역자 해설]

절망 위의 언어 ─보르헤르트의 문학과 삶

보르헤르트의 전집이 독일에서 출판된 것은 1949년. 그것을 내가 우리말로 처음 번역하여 출판한 것은 1975년 4월이었다. 그때 나는 이 책을 읽고 왜 이제서야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을까 무척 안타까워하면서 단숨에 번역해버렸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만큼 흥분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소위 ‘유신’ 시절이었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한마디의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자칫 그것이 행해질 경우 ‘사형’을 포함한 어마어마한 형벌이 주어지던 시절. 겁많은 소시민이었던 나로서는 보르헤르트의 담대한 기백에 질시나 부러움 대신 경이로운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역시 사형이라는 두 글자가 눈앞에 떨어져 있던 스무 살 안팎의 청년 아니었던가. 나치의 히틀러는 그렇게 그를 가두고 죽이려 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렇게는 죽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나에게 경이로 다가왔던 것은 그의 용기만은 아니었다. 그는 싸움꾼이나 레지스탕스는 아니었으니까. 그는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년이었으며, 아름다운 언어의 생산자, 아, 그리고 무엇보다 절망을 초월하는 저 유머의 명인(名人)이었다!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는 독재자쯤은 젊은 그의 웃음과 언어 속에서 한 뼘의 크기로 작아져 있었고 마침내 지워지고 있었다. 그것이 대체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보르헤르트 문체라고 할 수 있는 짧은 단문을 통해…… 그러나 그는 그것을 넉넉히 해냈다. 그 놀라운 마음씨와 능력이 내게는 엄청난 경이였다.

스물여섯 살에 죽은 보르헤르트를 독일 문학이 20세기 중반에 갖게 되었다는 것은 독일 문학 자신의 기대하지 못했던 행운이었다. 10대에 전쟁에 끌려가서 죽음이 오락가락하는 상황 속에서 메모 형식의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천재. 불후의 명작으로 남은 「문밖에서」를 포함한 모든 작품들을 결국 전쟁이 끝난 다음 기껏 2년 남짓 동안 병상에서 쓸 수밖에 없었던 그는, 이른바 문단과는 짧은 일생 동안 아무런 교통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이 빛을 보게 되자 독일 문단은 물론, 유럽은 전율을 금치 못했다. 죽음 앞에서의 침착함은 물론, 원수를 사랑으로 쳐다보는 의연함, 그것을 습기 가득 찬, 그러면서도 단아한 문장으로 극복해내는 언어 사랑의 힘. 사실상 이런 세계는 독일 문학이 그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보르헤르트의 이름은 그의 수려하면서도 앳된 얼굴과 함께 독일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독일 문학은 원래 보르헤르트적 유머, 혹은 유연성과는 상당한 거리를 지닌 문학이었다.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듯이 낭만주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환상적 이상주의는 관념에 빠지기 일쑤였고, 그리하여 아주 자주 난해하다는 평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저널리즘에 대한 경멸, 대중성에 대한 혐오 같은 것도 독일 문학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이런 전통이 커다란 도전과 만나면서 독일 문학의 모습을 다양하게 만든 계기는 20세기 중반 헤르만 헤세의 등장이다. 양극성(兩極性)의 극복을 변증법적 지양을 통해 이룩하고자 하였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추상 관념의 끊임없는 운동을 통해 이상향에 이르고자 하는 욕구는, 현존하는 삶의 모든 실상들에 대해 당연히 비판적·부정적 시선을 심어주고, 작품들을 재미없게 만들기 쉽다. 실제로 독일 문학의 거장인 괴테나 토마스 만, 카프카는 물론, 독일 정신의 핵심을 형성하는 낭만주의 작가 노발리스, 혹은 횔덜린의 경우도 이 점에 있어서는 모두 하나의 카테고리에 속한다.

헤세는 그러나 달랐다. 그는 다양한 요소들을 갖고 살아가는 인간과, 역시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자 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함께 받아들인 그의 주제는 공존이었고, 그것을 가능케 한 방법은 유머였다. 어느 한쪽을 버리거나 바꾸어가면서 새로운 무엇을 도출해내는 것도 좋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그 특성들을 살리자는 것. 이때 유머로 그들을 감싸주어야 그들은 나쁜 점 대신 좋은 점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문장은 훨씬 쉬워졌고 독자 대중들과의 교통도 원활해졌다. 보르헤르트도 기본적으로는 헤세의 이 같은 유머 정신에 가깝게 있다. 보다 놀라운 점은, 헤세와는 아주 다른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아스러움이다.

전쟁이 끝나고 훨씬 뒤, 보르헤르트가 이미 세상을 떠난 어느 날, 뒤에 노벨 상을 받은 하인리히 뵐은 「폐허 문학에 대한 고백」이라는 글에서, 마치 보르헤르트를 추모하듯 독일 문학에 필요한 것은 절망이 아니라 유머라고 갈파하였다. 유머만이 초월의 힘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날이 갈수록 유효해지고 있다. 이 책을 처음 번역 출판한 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다시 문지 스펙트럼으로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절판된 책을 요구하는 숱한 독자들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는 것도 그 이유이다. 나를 볼 때마다 이 책을 다시 내도록 권면해온 소설가 홍성원 형의 채근도 그 요청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전쟁소설들을 쓰면서, 또 하드보일드 문체를 높이 평가하는 그의 성원이 우리 소설계에 소중한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목차

기획의 말

단편

적설|여기 있어줘요, 기린 아저씨|눈에서 얼어 죽은 고양이|밤꾀꼬리가 노래한다
|열차의 오후와 밤 |허공에 떠도는 한밤의 소리 |까마귀도 밤이면 집을 찾는데……
|지붕 위의 대화 |라디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 |신의 눈 |어둠에 싸인 세 박사 |빵
|이별 없는 세대 |부엌 시계 |키 작은 모차르트 |아마도 그녀는 장밋빛 속옷을 입었지
|내 창백한 형제 |네 명의 병사 |구주희 놀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커피 맛 |지나가버렸네
|민들레꽃 |예수는 함께 일하지 않는다 |도시

등불, 밤, 별들
─함부르크를 위한 시

등불의 꿈||저녁 노래|함부르크에서|전설 |비 |키스 |아란카 |이별 폭풍 프롤로그
|조개들, 조개들 |바람과 장미 |청적갈색빛 대도시의 노래| 대도시 |골동품들

역자 해설

절망 위의 언어

작가 연보

작가 소개

김주연

김주연은 1941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대학과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을 연구했다. 1965년부터 문학 비평 활동을 시작했고, 『문학과지성』 편집 동인으로 활약했다. 주요 저서로 『상황과 인간』 『문학비평론』 『변동 사회와 작가』 『새로운 꿈을 위하여』 『문학을 넘어서』 『문학과 정신의 힘』 『문학, 그 영원한 모순과 더불어』 『사랑과 권력』 『가짜의 진실, 그 환상』 『디지털 욕망과 문학의 현혹』 『근대 논의 이후의 문학』 『미니멀 투어 스토리 만들기』 『문학, 영상을 만나다』 『사라진 낭만의 아이러니』 등의 문학평론집과 『고트프리트 벤 연구』 『독일시인론』 『독일문학의 본질』 『독일 비평사』 등의 독문학 연구서를 펴냈다. 한국독어독문학회 학회장, 한국문학번역원장(2009~2011)을 역임했다. 30여 년간 숙명여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석좌교수를 지내기도 했다(2011~2013). 김환태 평론문학상(1990), 우경문화저술상(1991), 팔봉비평문학상(1995) 등을 수상하고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2004)을 수훈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볼프강 보르헤르트

볼프강 보르헤르트Wolfgang Borchert (1921~1947)
1921년 독일 함부르크의 에펜도르프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살에 시를 쓰기 시작해 고등학교 시절 함부르크의 유력 일간지에 시를 발표하고, 졸업 후에는 서점 직원으로 일하면서 연극 수업을 받았다. 배우로 활동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혹독한 전쟁을 체험했다. 군 복무 시절 자해 혐의로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감옥과 전장을 오가는 가혹한 생활로 인해 병을 얻었다. 1945년 프랑스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이송되던 중에 탈주한 그는 함부르크로 돌아와 극장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하지만, 병이 악화되어 결국 쓰러지고 만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죽음을 앞둔 2년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병상에서 집필되었다. 1947년 11월 20일 스물여섯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 생전에 출간된 시집 『가로등, 밤, 별들』과 단편집 『민들레』가 있으며, 사후에 출간된 단편집 『이번 화요일에』와 유고를 함께 묶은 『보르헤르트 전집』 등이 있다.

조현실

조현실은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서울대에서 불문학 석사 학위를, 이화여대에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는 『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등 까모 시리즈 외에 『가족 이야기』『운하의 소녀』『뚱보, 내 인생』『공주의 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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