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책

문학과지성 시인선 244

남진우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0년 7월 5일 | ISBN 9788932011783

사양 신46판 176x248mm · 123쪽 | 가격 6,000원

책소개

[개요]
시집 『타오르는 책』은 책 속의 세계와 책 읽는 자의 고독과 명상을 신선한 상상력으로 들려준다. 책 속의 세계는 죽음으로 포장된 세계이다. 그러나 그 세계는 그것을 읽는 이의 시선에 의해 마술이 풀리듯 금방 생기 있게 살아난다. 그 생동감은 타자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로부터 생겨나서 다시 주체에게 담기는 자체 순환의 힘이다. 그곳에는 소멸은 없고 끝없는 생산만이 있다. 왜냐하면 그곳은 최초에 소멸이 있었고, 이후는 소멸에서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일만이 남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런 세계를 책의 세계도 포함되는 가상 세계 또는 환(幻)의 세계로 보고, 그 세계의 생동감과 신비로움을 노래한다.

[시인의 산문]
내가 자주 오가는 길목에 서 있는 그 건물은 사층 전체가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담쟁이덩굴의 모습 또한 달라진다. 여름이면 무성한 초록 잎사귀들이 무슨 파충류의 비늘처럼 벽을 덮으며 번져가지만 그것도 한 철일 뿐, 조만간 붉게 물든 잎사귀들이 제 몸을 불사르며 시들어가는 가을이 오고야 만다. 긴 겨울 동안 담쟁이덩굴은 잎사귀를 다 떨구어버린 채 마치 고대의 상형 문자 같은 앙상한 선(線) 몇 개로 자신의 생을 지탱해나간다. 길을 지나가다가 무심코 변해버린 건물의 외관이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내심 아, 또 한 계절이 지나갔구나 하는 영탄과 함께 그 식물이 빚어내는 때로 화려하고 때로 스산한 풍경을 바라보곤 한다.

자신의 육체가 급격히 죽음을 향해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 다음부터 어머니는 하나 둘 자신의 죽음 이후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길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곁에서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 역시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까지 어머니를 사로잡고 있던 것은 당신이 떠난 후 이 세상에 남겨질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담쟁이덩굴의 모습을 보며 나도 잠시 나 없는 세상에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상념에 잠겨보곤 한다. 그리고 나 없는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내가 남긴 언어의 잔해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내가 그렇듯 내가 남긴 작품 또한 언젠가는 고아가 될 것이다. 모든 고아는, 그가 젊든 아니면 늙었든, 일말의 슬픔을 안겨준다. 아,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운 것을 보면 나도 꽤 오래 살았나보다.

[시인의 말 ]

어머니 젊으셨을 적
어느 여름날
단둘이 마주앉아 수박을 먹다가
문득 바라본 밤하늘

오늘
그처럼 문득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
아름다운 당신

2000년 여름, 남진우

목차

[차례]

▨ 시인의 말

제1부
저녁빛
모래사나이
11월의 마지막 날
기다림
타오르는 책
책 읽는 남자
공포소설을 읽는 밤
비행접시
랩소디 인 블루
겨울 저녁의 시
도서관에서의 기도
겨울 저녁의 방문객
무한 속으로
영원의 풍경

제2부
달은 계속 둥글어지고
족장의 가을 1
족장의 가을 2
초록 달팽이의 길
비단길
모래구름 아래서
항아리 속의 시인
항아리에 대한 단상
앵무새에 관한 명상
기침
솔라리스
유리병에 담긴 소식
저 짐승
먼지 속의 속삭임
주사위 놀이

제3부
정오
장님 행렬
불면
나무 뿌리는 힘이 세다
정육점의 시인
은빛 달팽이의 추적
유적지
화려한 유적
겨울 저녁의 예감
지구 최후의 날

피를 부르는 청동 불꽃
머리 둘 곳을 찾아
자정
차가운 눈
멀리 먼 곳에서
저무는 거리에서
깊은 밤 깊은 곳에
단식
사라지는 책
나그네는 길에서 쉬기도 한다

▨ 해설·청년 신비주의자의 비애·김주연

작가 소개

남진우 지음

시인 남진우는 1960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후 현재까지 시인과 평론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시집으로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타오르는 책』이 있으며, 현재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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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8 =

  1. killbrick
    2000.12.17 오전 12:00

    1. 들어가는 말

    처음 시집 이래로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죽음이라는 무겁고도 피하지 못할 숙명이었다. 첫 시집인『어두운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가 그의 사물을 보는 독창적인 시각과 탐구 방법이 갖추어져 인간의 고독과 모순 그리고 신비한 것들에 대한 사고들을 순전한 시적 대상을 통해서 자기만의 것들로 만들어 가는 시기였다면 두 번째 시집인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자기 안에 분명히 살아 있는 죽은 자의 시선, 즉 죽음이 살아 있으며 바로 이 죽음에 대해서 정면으로 대결하고자 한 시집이라고 보여진다. 보통 사람들보다 깊고 예민한 감수성과 직관으로 그리고 철저한 언어와 상상력을 구비해서 다루는 어둡고 끈적이는 시적 소재들에서 그는 자신과 죽은자들을 결코 분리시켜 보고 있지 않다. 그의 죽음은 항상 다른 이들(타자의 시선)과 함께 자신이 들어가 있으면서 동시에 죽음을 관조하는 혹은 죽음을 바라보는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또 다른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죽음이다.(죽음에 앞서 어떤 시선의 바라봄과 보여짐에 대한 문제는 다양한 해석적 견해를 동반하는 것으로 세부적으로 논의하는 다른 지면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의 시집에서 그러한 시인의 자의적인 시선이 항시 존재한다는 것만을 확실히 하자.)
    시집에 실린 일련의 시들에서 보여지는 죽음은 죽은 후에 모든 것이 끝나고 허무로 마감되는 그러한 종류의 죽음이 아니라 항상 눈을 뜨고 죽음을 대하고자 하는 진지한 탐구의 도정으로서 죽음에 다름 아니다. 그에게는 그러한 많은 소재들이 모두 죽음의 성격, 냄새, 특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진득하면서도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기도가 결코 진지하지 않은 것이 되지 않게 할 강렬한 이미지와 상상력과 성급하게 뱉어 낼 수 없는 시어들로 무장하고 있는 시집이 그의 두 번째 시집이었다.
    이번 『타오르는 책』은 그렇다면 어떠한 시도이자 시집인가. 성급하게 말하자면 그의 이번 시집은 죽음을 넘어선 세계를 보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의 신열들이 이루어내는 이미지이자 신열을 앓으며 겪었던 기다림의 기록이라고 보여진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적인 색채라 부를 만한 정서와는 상관없이 중세 유럽을 연상시키는 여태까지의 그의 시풍에서 우리는 그의 죽음과 관련된 사유가 우리의 일상성과 동떨어진 거대하고 암울한 공간의 여러 곳에서 탄생하고 있다는 것을 읽어 낼 수 있다. 그의 존재론적인 사고방식에서 태어난 세계라는 것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절망과 그것을 뛰어 넘고자 하는 의지가 섞여 있는데 이러한 생각들이 그 무수한 이미지들을 통해서 영원성을 맛보려 하는 한 인간의 시도를 끈질기게 형상화시켜 드러내 주고 있다. 그래서 그와 그의 시가 한때나마 인간의 의지가 저 우주적 공간을 뚫고 지나가서 통속적인 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어떤 곳에 다다를 수 있었던 무수한 시도들이 횡행하던 어둡던 시간 중세로 자꾸 돌아가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부터 시집에 쓰인 시어, 상상력, 이미지와 상징 등 시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통해 그가 시집에서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2. 본 론

    1) 죽음과 허무의 시어들
    그의 시들에는 숨쉬고 있는 생명력이 넘치는 언어들은 자취를 감춘 듯 하다. ‘밤’, ‘붉은 저녁해’, ‘부우연 먼지’, ‘빈집’, ‘모래 언덕’, ‘모래 사나이’, ‘감옥’, ‘겨울 저녁’, ‘질척하게 흐르는 밤’, ‘검은 두건’, ‘흑사병’ 등등의 시어들은 이미 죽음과의 대결을 통해 다음 단계를 기약하려고 하는 그의 결의에 맞게 철저하게 구조화된 그의 상상력의 공간들이 단단한 형태를 띄며 다가와서 시인이 내세운 관찰자에 의해서 담담하게 묘사되면서 그러다가도 섬뜩한 진실을 던져 주고 있다.

    한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과 그의 세상의 몰락을 묘사하는 위의 시에서 시인은 자신이 상정한 중세의 어느 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광기의 양상과 그 후에 이어지는 어두운 죽음의 냄새를 효과적인 시어를 통해 쉴 틈을 주지 않고 풍겨 내고 있으며 광기와 어두운 힘에 의해 결국은 ‘타오르는 불길’로 잠재워지는 세상의 모습을 강렬하게 영상화시키고 있다. 이렇듯 그의 시어들은 중세적인 공간에서 탄생하여 시인만의 개인적인 상징을 구체화시키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한 그의 형상화가 성공하는 한 요인은 시어들의 배열이 단순한 묘사에 그치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 궁극을 향해서 끝임 없이 다가가는 한편 – 이것은 시인이 사물을 바라보는 호흡과 사물의 특성이 일정하게 맞물려 생명력을 부여받는 데 있다. 그의 시집 어느 곳을 펼치고 읽어보아도 시에서 섣부른 관념어나 추상어를 찾을 수 없다 – 궁극의 저변에 깔린 배경 역시 알맞은 영상으로 자리매김하여 전체적으로 한 편의 시이자 꿈틀거리는 이미지로서의 공감각적인 효과를 성취해 가는데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상상력과 그가 사유하는 죽음이라는 것이 첫 번째와 두 번쨰 시집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나라 고유적 사상과 정서들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서구적인 공간에서 중세적인 이미지를 포획하여 그의 시들이 탄생한다는 뜻이고 이는 그가 시를 쓰는 한 방법론은 될 수 있으나 죽음과 죽음을 너머선 공간에서 진실성 추구라는 시집 전체의 의미를 우리들에게 납득시킬만큼의 설득력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이 생경한 언어들과 죽음의 냄새에 깜짝 놀라 시집을 열자 마자 덮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도 농후하다.

    2) 어두운 상상력의 끝을 넘어서
    상상력 또한 남진우 시인의 시에 있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의 상상력은 이미 언급했듯이 현세에서 무기력한 인간이 그려낼 수 있는 상상력의 선을 넘어서 독자에게 불경한 내용들을 강렬하게 인각시킬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죽음을 화두로 하여 그가 뛰어넘고자 하는 극단의 세계를 기다리기도 하고 때로는 관조하기도 하는 모습을 여러 시를 통해 살펴보자.

    시 「비행접시」의 전문이다. 이 시에는 전체 시집을 통과하는 인식을 시작화(詩作化)하는 과정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고 해도 좋을 듯 하다. 부분1 에서 ‘딱딱한 / 씹을 수 없는 /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는 / 저 근엄한 음식 // ‘이라고 시인이 제시한 것은 다른 것도 아닌 바로 책을 말한다. 그것은 ‘칼로 썰리지도 않고 / 수저나 젓가락이 파고들 수 없는’ 것으로 그저 ‘식탁을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다’ 그리고 부분2 에서 시인을 ‘책을 먹고자’ 한다. 시집의 초반부를 관통하고 있는 시어인 ‘책’은 시인이 세상을 알아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동시에 부단한 독서를 통해서 ‘모래 사나이를 찾아’서 ’11월의 마지막 날’까지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바닥에 흩어진 꽃다발과 휴지 조각’이라는 흔적만을 접하게 되는, 시인의 죽음을 넘어선 곳으로 여행을 의도할 때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아가 ‘책’은 그러한 수단 이상의 의미를 띄기도 하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지는 극단에의 체험에 등장하여(‘타오르는 책’, ‘책 읽는 남자’, ‘공포소설을 읽는 밤’, ‘도서관에서의 기도’ 등) 결국 우리 삶의 근원적인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열쇠로서 시집의 중심에 놓여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다시 「비행접시」로 돌아와 시인은 책을 씹어 먹고자 하지만 ‘완강하게 닫히고 마는 책’은 끝없이 그 부피를 크게 하며 뿜어대는 ‘창백한 불빛’으로 시인을 압도하고 만다. 그리고 부분3 에서 시인은 책의 어설픈 독해를 시도한다. ‘누군가의 피로 쓰여진’ 그 책은 ‘읽어나가는 내(시인) 눈동자를 뜨겁게 달구며 /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른다’. ‘쉴새없이 학살과 거역의 외침을 내뱉는 책’을 통해 시인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깨우침도 삶의 긍정적인 인식도 아니다. 그가 시도하는 무수한 고백적인 독서 행위를 통해 ‘손에도 입가에도 붉은 피가 묻어’ 버린 시인은 마침내는 부분4 에서 책의 저편에 자리한 망자들과 조우한다. ‘사각의 관속에서 / 흐느적거리며 솟아오르는 저 망령들’은 시인의 귓가로 다가와 ‘은밀한 주문을 속삭’이며, ‘책 저편 아득한 곳으로’ ‘함께 떠나자고’ 말한다. ‘아무리 읽어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 그런 세계로’ 인도하는 망령들과 숙명적인 현실의 테두리에 사로잡혀 덜덜 떨고 있는 시인. 이때 시인은 ‘산 자들의 아우성’을 듣게 된다. 이 아우성을 통해 우리는 산(현실) 사람들과 죽음의 세계를 넘은 곳(아득한 곳)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시인의 현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시인은 유혹에 넘어가 아득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또 하나의 책’을 남기는데 그친다.
    그의 운명이 더욱 거대한 운명을 향한 하나의 입문서로 남겨져 기록되어진 또 하나의 망자의 책을 낳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분5 에서 현재(‘오늘’)의 시인이 보게 되는 것은 ‘식탁의 접시 위에 올려진 한 권의 책’ 이며, 그 책이 어느덧 ‘마술처럼 스윽 떠올라, 눈부신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장면을 목도하는 것이다.
    결국 ‘비행접시’는 시인이 상정해 놓은 개인적인 상징으로서 우리의 인식이 따라갈 듯, 알 수 있을 듯 하면서 종국에 과정에 가서는 결코 알 수 없고, 다가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욕망의 매개체이면서 동시에 알 수 없다 하더라도 대상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영원불멸한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그의 시는 시인만의 특정한 상상력의 공간 속에서 구조화된 각각의 과정(깨달음의 과정, 또는 궁극적인 허무에의 시도)을 아주 뚜렷한 행위들로 보여줌으로서 독자에게 뛰어난 상상력의 공간을 제시해 주고 있다. 독자들은 그들이 읽은 시속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키워 낼 뿐더러 자신에 맞는 사유들을 진행시켜 가는 동안 남진우의 시들의 진면목을 하나씩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이 시 「비행접시」는 제목에서 볼 수 있는 상징성과 더불어 남진우가 생각하는 시작의 구체적인 사유(책을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는 철저한 인문주의자적 사유)가 드러나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시이다.
    또 다른 예로서 「모래 사나이」에서는 ‘모래 언덕 너머’ 어떤 곳, 「11월의 마지막 날」에서는 ‘깊은 밝은 곳’, 「겨울 저녁의 시」에서는 ‘어둠 저편’ 그리고「도서관에서의 기도」에서는 ‘저 글자들의 산 / 죽은 나무의 무덤’으로 시인은 다다를 수 없는 극단의 풍경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글자들의 산 과 죽은 나무의 무덤’을 지나 ‘모래 언덕 너머’ ‘깊은 밝은 곳’의 ‘어둠 저편’에 풍경을 생각하며 그러한 시도를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과 그러한 자신의 숙명적 고독감을 토로하고 상징화한 것들이 이 완벽한 상상 속의 시집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시의 1연에서 시인은 시인 자신의 고독한 탐구 행위를 ‘죽은 자들의 음식을 차리는’ 경건한 행위로 나타내고 있다. 그 ‘엄숙한 의식’은 ‘어슴푸레 빛나는 물잔’과 ‘둥근 접시들 사이’에서 ‘시계 바늘이 가리킬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치러지고 그 동안에는 ‘화분의 꽃들이 더욱 진한 향기를 피워올리’게 된다. 하지만 결국 시인이 혼자 하는 일은 그러한 행위를 준비하는 것일 뿐이다. 의식이 끝나면 ‘마저 거두지 못한 말들을 주워 백지 위에 쌓는’ 일만 남았을 뿐 그의 고독한 탐구 행위는 ‘어슴푸레한 빛을 볼 수도 없는 것이며 그들이 먹고 마시는 향연 속에서 제외되고 꽃들이 품어 내는 진한 향기도 맡을 수 없는 종류의 일이다. 하지만 그의 시적 행위는 계속 될 것이며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랩소디 인 블루’라 말하며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초월의 경지에 다다른 시인은 자꾸만 부각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아무도 위로해 줄 수 없을 때 역시 상상 속의 시속으로 살며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계속 기다린다. 그 궁극을 향한 시도를 준비하고, 그 시도의 와중에도 잠깐 기다리고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시인은 기다린다. 「겨울 저녁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느 날 ‘안개처럼’ 다가와 전해 주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알게 된 시인은 ‘겨울 대지의 관이 닫히며 죽은 사람을 보낼 때’ 그때 ‘유리창 옆에 서서’ ‘어둠 저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를 지켜본다’며 시를 맺고 있다.
    ‘겨울 저녁’이라는 특정한 시간이 그가 기다리고 있는 시간과 겹쳐지면서 그는 망자의 얼굴을 보게 되지만 결국 그 기다림의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순간이었고 이제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의 눈빛과 마주치게 된다는 우울한 현실을 직시하는 시에서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말한다는 것에 대해서 허무해지는 자기 인식의 극단을 보게 된다.
    그의 다른 시「도서관에서의 기도」는 어떠한가? 책에 대한 강박관념이 어디만큼 진척되어야 이런 말들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부터 생기게 되는 이 시를 인간이라는 존재의 허무함을 뚫고 지나가서 궁극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초인적인 의지의 한 숭고한 발현으로 파악하는 순간, 우리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더 이상 허무해지지 않기 위한 시인의 실존적 고뇌의 치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러한 일련의 시도를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그는 항상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사라진 후에야 존재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어떤 초월적 형상을 그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 형상은 항상 나중에 극적인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다가가는 순간에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궁극의 준비 단계를 끊임없는 상상력을 통해 자꾸 구현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죽음과 죽음 이후의 생이란 것이 만약에 존재한다면 시인의 운명은 그런 것들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물음을 통해서 쉼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의 머리 속에 구현해 낸 것을 흰 백지에 글로 쓰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초월적 존재의 궤적을 따라가서 자신이 직접 초월적 존재와 대면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며 그 언젠가 불타오르는 상상력의 시어들과 더불어 시인도 사그라질 때, 그가 맞이할 검은 그림자도 그를 낯설어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남진우의 시가 의도하는 목적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내며 더욱 단단한 구조물로 새로운 음성적 신화를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면서 자꾸 망자들을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두 번째 시집이 망자의 소환을 통한(痛恨)을 통해 객관적인 죽음에의 이미지를 만나고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였다면 이 세 번째 시집은 죽음 너머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열망에 다름 아닌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 「겨울 저녁의 방문객」에서와 같이 ‘그대와 나 우리말고 우리 곁에 있는 그는’ 항상 시인이 염두에 두는 부분이다. ‘모래사나이’와 ‘한 남자의 그림자’를 통해 ‘우리 곁에 앉아서’ ‘그대 이야기를 듣고 있으며’ ‘그대와 나 / 그리고 우리 곁에 없으면서 우리 곁에 있는 / 그’의 존재에 대한 긍정은 나중에 ‘자리에 떨어져 빛나고 있는 창백한 머리카락 한 점’을 통해 드러난다. 그러나 시에서 화자는 ‘내가 지어낸 하나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하며 ‘나와 그대 사이 건너갈 수 없는 시간의 저편에서 우리의 모습을 엿보고 우리의 말을 엿듣는 그는 어쩌면 환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며 말한다.
    결국 보통 사람들이 품는 궁극에 대한 인식은 상대방(그대)이라는 다른 타자와의 대화를 거치면서 사그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고 현실에 대한 시인의 인식은 이렇듯 단호할 뿐이다.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동시에 인간의 조건이 친절하게 규정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인은 그저 자신의 기다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계속 시를 써 가면서, 우울하며 고독한 그의 작업을 ‘랩소디 인 블루’라 칭하며 홀로 쓸쓸한 독백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시인이 판단한 비관적인 세계 인식이 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이렇게 어둡고 비관적인 곳이지만 그 세상을 이 유한한 인간이 넘어 볼 수 없을까?’ 하며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 남진우라는 시인이 품고 있는 시인으로서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의 시들에서 허무적이며 무한에 대한 동경(「무한 속으로」,「영원의 풍경」)에 안타까운 나머지 애틋한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 것도 시인의 철저한 자기 인식의 결과일 것이다.

    시 「타오르는 책」에서 역시 시인의 비극적인 세계관이 보여진다. 더 이상 타오를 수 없는 삶. 갈수록 차가워져 가는 세상의 모습들 속에서 우리는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있는 ‘식어버린’ 시인의 우울한 내면을 볼 수 있다.
    비록「도서관의 기도」에서 보여주듯이 ‘종이 뭉치들’을 ‘빙그레 웃고 있는 갓난애’로 순간 착각했던 시인이지만 자신의 숙명이 「환」에서처럼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속삭임 혹은 빛이 상처처럼 환하다’라는 것을 알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생의 쓰고 상처 입은 부분을 환한 것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시인의 진면목은 갈 길이 멀기 때문에 그 길을 보며 막막하게 여겨 제풀에 포기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길의 노정에 서서 잠깐 쉬며 기다림을 유지하는 내면의 조율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3) 구조화된 이미지, 개인적 상징의 세계
    시집의 2부에 실린 각 시들의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시인은 그 처절한 궁극에 도달의 노력과 그 인식과 상상력을 잠시 다른 사물들로 돌려 생각하고자 한다.
    초반부에서 보여준 내면의 치열한 인식의 도정을 그리는 것에서 잠깐 물러나 그야 말로 ‘머리 둘 곳을 찾아’ 기대어 쉬는 일련의 작업이 2부를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쉬는 것은 무위도식하며 멍청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사물에 대한 그의 사고는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부여되는 조건을 파악하는 과정과 동시에 시인의 기나긴 내면으로 도정에도 적용되는 지속적인 탐구의 한 형식을 띄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은 그가 파악하는 각각의 사물들에서 시인이 간파해 내는 개성들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서 하나의 뛰어난 구조를 보여주고 있음으로 나타난다. 아래의 시뿐만 아니라 시집 전체에서 독자들은 시인이 말하는 사물이 어디에 위치하며 어떤 작용을 거쳐 시인에게 어떠한 감정을 일으키는지 확연하게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의 탐구는 여러 방면의 사물과 인간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달은 계속 둥글어지고」에서는 ‘수박을 먹고 있는 그녀’를 보며 ‘베어문 자리가 아프도록 너무 아름다워’ 그러한 순간의 아름다움으로서 달을 바라보고 있다.
    이전 시집에서 그가 주목한 달이 푸른 인광을 품어 대는 ‘유골단지'(「달」)였다면 이 시와 「항아리 속의 시인」에서의 달의 의미는 조금은 긍정적인 양상을 띈다고 하겠다. 「달은 계속 둥글어지고」에서 달은 그대를 바라보고 그대와 함께 달을 바라보는 순간에 느껴지는 아름다움의 한 상관물로 보여진다. 눈을 감으며 수박의 씨를 발라내는 행위에서 변하는 달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순간 ‘길 잃은 바람 한 줄기’가 나타나 ‘먼 하늘만 바라보’게 만들어 놓은 찰나적 인식의 순간, 모든 변화의 순전한 증인으로서 시인은 달을 등장시킨다. 그러한 반면 「항아리 속의 시인」에서의 달은 ‘달빛이 발효되어 항아리를 가득 채우는 술’로 변함으로서 ‘신호가 와도 / 술에 곯아떨어진 도둑들은 세상 모르게 자는’ 결과를 가져와 사십 인의 도둑에게도 긍정적인 화해의 정서를 부여하고 있다. 달에 대한 그의 구조화는 상징의 긍정적인 의미로 인해 여유로워지는 시인의 사물을 바라보는 포용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시인은 항아리에 관심을 가진다. 항아리가 주는 딱 벌린 입구를 보며 시인은 다른 상상력을 시험하며 관찰하다가 그러한 항아리에 기어이 들어가고야 마는데 「항아리에 대한 단상」에서 시인은 바닥까지 들어가서 항아리를 느끼고 경험하여 겪는 변형된 극단에의 체험을 표현하고 있다.
    ‘항아리 속에서 바깥을 꿈꾸는’ 시인은 거대한 우주로 소급되어지는 궁극의 항아리를 상상하게 되고 마침내 항아리를 먹어 치우다가 어느덧 자신도 항아리로 변해서 항아리 속으로 곤두박질치게 되고 종국에 온몸이 조각나 깨져 나갈 때 항아리 바깥이 항아리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 시의 내용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러한 합일의 순간까지 치닫게 되는 항아리의 욕망이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먹어 치우는 욕망은 죽음이든 성욕이든 그 극단을 꿈꾸게 된다는 것에서 인간의 숙명을 암시한다. 하지만 우리의 몸이 깨져 나가는 죽음의 경계에서야 이루어지는 ‘항아리 속과 바깥의 일치된 합일’은 끝없는 숙명에의 유혹이 강렬한 만큼의 궁극적인 것을 내포하는 상징으로서 시에서 보여지고 있다.
    「초록색 달팽이의 길」은 달팽이의 길을 따라가는 시인의 기억 속으로 밀려들어와서 기억을 무너뜨리고 사라져 가는 ‘무서운’, ‘죽음의 습기’를 보여주는 시이고 「앵무새에 관한 명상」은 관찰한 대상과 시인의 전도된 위치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결국은 ‘조그만 새장 속에 갇힌 새’일 뿐임을 인식하게 되는 시이다.
    두 편의 시는 엄숙한 주제를 두고 골몰하는 시인의 기억과 자신의 인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침윤 당하기 쉽고 보호막이라는 것도 얼마나 허술한지를 극명하게 인식하여 보여주고 있다. 달팽이의 침윤과 앵무새의 명령에 시인은 ‘잠자코 지켜볼 뿐’이며 무방비 상태에서 ‘조용히 어루만지는 누군가의 손’을 느낄 뿐이다. 그의 이러한 반성적이며 성찰적인 시들은 이윽고 「모래구름 아래서」에서 자신이라는 존재의 사라짐에 대해 긍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게 된다.
    반면 시인이 거쳐간 숙명적 조건들과의 싸움은 자신의 현실뿐만 아니라 상상의 구조물들로 형상화된 죽음의 풍경들에서도 드러날 만큼 치열했다. 시의 기다림과, 시인의 기다림은 항상 시의 내면에서 끝없는 대결을 상정하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그가 의식하는 ‘소통(「유리병에 담긴 소식」)’과 ‘시선(「저 짐승」)’에의 치열한 탐구에서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의식의 깨어 있음 역시 여러 시에서 드러나는 데 「새」에서는 ‘들리지 않기라도 하면 / 이상스레 그리워지는 내 머릿속의 새’의 노래로 「불면」에서는 ‘모래 시계 속에서’ ‘모래 대신 떨어지는 내 핏방울’로 「정육점의 시인」에서는 ‘피에 물들어 줄줄이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말’들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깨어 있음을 속에서 시인은 자신처럼 궁극의 운명과 대결하는 세상의 무수한 사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장님 행렬」에서 ‘도처가 절벽이다’라고 말하는 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와 ‘돌’을 뽑기 위해서 진실로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나갈 장님의 모습을,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나무 뿌리는 힘이 세다」에서 나타나는 ‘한없이 깊고 어두운 나날들’을 관통하는 ‘나무뿌리’들은 ‘어두운 지층 밑’에서 ‘음험한 파충류의 무리’들과 ‘멍들도록 싸우지만’ 결국 ‘꿈틀거리며 다시 뻗어나가고’있다. 그리고「은빛 달팽이의 추적」에서 시인은 ‘그(달팽이)’가 오직 ‘고독을 무기’로 하여 오히려 ‘안정된 것은 어둠뿐이다’라는 인식에 다다르고 마침내 ‘빛과 어둠의 경계선에서 꿈틀거리며’ 지상을 넘어서 ‘저 은하계 저편 별과 별 사이’를 나아가는 성공적인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렇듯 치열한 시의 탐구로 항상 긴장하며 기다림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시인은 일련의 궁극과 기다림의 변증법적인 과정을 실험한 시작을 통해서 이른바 초월적 경지에 다다르게 되고 그런 그에게 더 이상 어떠한 궁극의 선결 조건들도 요구되지 않게 된다.

    결국 한참을 인식의 문제와 싸우며 영원을 동경하면서도 그 흔적의 추구에까지밖에 도달하지 못한 시인은 여러 사물을 바라보며 내면화시키는 일련의 사물에 대한 탐구를 통해 ‘또 다른 인식’을 얻어내고, 기다림이라는 자신의 숙명도 인정한 채 결국 ‘부스스 웃으며 손 내미는 것을’ 따라서 ‘모래 속에서 지워져가는’ 종말을 감내하게 된다. 그의 ‘또 다른 인식’이라는 것은 궁극과 기다림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한 초월의 인식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의 인식을 통에서 ‘우주선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혹성 솔라리스는 시인의 진정한 ‘내 사랑’이 되는 것이다. ‘죽은 어머니 자살한 연인 버려진 아이 / 부글부글 끓는 용암 위로 끝없이 금속의 비가 내리는 그곳’ 이며 ‘그림자와 싸워야 하는 그곳’이지만 ‘내 사랑’이라고 인정하는 시 「솔라리스」에서 시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혼곤한 잠에 빠지’는 것일 뿐이다. 그의 모든 시적 과정들을 ‘물 밑으로 가라앉아가며’ 비로소 시인의 모든 인식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게 된다.

    3. 맺는 말

    이러한 성공적인 궁극에 대한 인식과 기다림의 여유는 시 「지구 최후의 날」에서 궁극적인 최후가 시인의 말처럼 ‘오히려 평안하다’ 라고 말할 수 있게 한다. 궁극을 넘어서서 항상 생각했던 그의 탐구, 모든 현실적 숙명을 받아들인 체 달팽이처럼 세상의 어둠을 고독을 무기로 천천히 걸아 갔던 시인에게 있어서 당연한 대사가 아닐 수 없다. 그에게 최후의 순간은 시의 액면 그대로의 세상, ‘풀과 나무들 짐승들이 정답게 어울리고’, ‘넘치도록 다사로운 햇살 아래 졸고 있는 미풍’을 느끼는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심히 좋았’던 그런 순간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멀고 생경하기만 하다. 인식과 실재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집의 후반부에서는 여러 명상의 순간들( 「유적지」,「자정」,「단식」,「멀리 먼 곳에서」등)과 인식의 짧은 쉼을 의미하는 시들(「머리 둘 곳을 찾아」,「저무는 거리에서」「깊은 밤 깊은 곳에」등)이 나름의 인식의 깊이로 인하여 상당한 여운을 가지지만 어떤 정형화된 생각의 틀을 정한 다음에 그런 공식에 따라서 변형시키는 시들을 낳아서 종국에는 따분한 신비주의로 비추어질 염려가 있다.
    시라는 것이 자아 탐구의 일종이며 그러한 탐구 과정은 그 특성상 결코 반복되어져서 지루해지고 같은 인식만을 연거푸 주장하는 논리를 띄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이 시집 이후 드러나는 다른 시편들은 그러한 인식이 앞선 나머지 어떤 딱딱한 전언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시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두 편의 마지막 부분이다. 인식의 종국에서 ‘사라지는 책’과 더불어 ‘떨어져내리는 해골’이 되어 운명을 마감하는 자아의 모습은 ‘나는 텅 비어가고’와 ‘책은 글자들로 한없이 부풀어오른다’는 극명한 대조로 드러난다. 하지만 시인은 「나그네는 길에서 쉬기도 한다」라는 시에서조차 이러한 자아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지만 ‘흘러가고 흘러올 뿐//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라고 말로 그의 운명에 대한 대결 의식과 끝없는 탐구에의 의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독자를 매료시키고 있는 부분도 이러한 그의 의지와 인식의 결과물들이 탄생시킨 한편의 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극명한 사고들은 단 한 편의 시에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삶의 모습들이 죽음을 통해 비로소 정확하게 드러나 보이고 현실의 모습들은 현실과는 다른 상상의 영역들에 의해서 더욱 생기를 띄며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들은 아름답다.
    하지만 시의 형식을 넘어서서 시의 인식이 먼저 와 닿기 때문일까?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그의 시들은 비극적인 운명의 부각을 통해서 한없이 텅 비어 가는 자신을 그려 가면서 점차 아포리즘화 되어 가는 경향이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또한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그의 시어들이 우리나라의 시들에서는 찾기 힘든 중세적 이미지들에 많이 의지를 하고 있다는 부분은 책의 서평에서 김주연이 말했듯이 그가 시를 쓰면서 겪는 ‘신비주의자의 비애’감을 더욱 증가시키는 것일 아닐까? 더불어 거기에는 무수히 많이 쏟아져 나오는 출판물들에 대하여 정확하고 객관적인 시각과 척도로서 평을 하는 평론가라는 자신의 부가적인 직업적 의식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의 비애감은 단지 남진우라는 시인 하나만의 비애는 아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모든 문학이 혐의를 벗기 어려운 문제임이 극명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진우와 같은 시인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우리의 것으로 우리만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시작(詩作)과 탐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평과 창작의 경계에 섬과 동시에 너무나 아름답고 치열한 방황과 고뇌의 부산물인 그의 시집 『타오르는 책』을 덮으면서, 그가 새로운 의지와 상상력을 표명하기 위한 방법적 회의와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의 세계를 통해서 죽음에 이르는 무한한 방황이 의미 있는 것으로 구현되어 또 다른 하나의 불꽃으로 타올라 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