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신부

황지우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0년 5월 8일 | ISBN 9788932011622

사양 국판 148x210mm · 228쪽 | 가격 6,000원

분야 시극

책소개

[개요]
시인 황지우가 쓴 최초의 희곡. 우리 시대는 광주의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임동확의 ‘매장시편’, 고정희의 ‘초혼제’가 서정 영역에서, 임철우의 『봄날』이 서사 영역에서 그 기억과 반성의 몫을 하고 있었다면 『오월의 신부』는 극 영역에서의 가장 치열한 기억과 반성의 형식으로 광주의 그날을 증언할 것이다.

[시인의 말]
하고픈 이야기는 작품 안에서 대충 했다고 보고……
봄날 어느 따뜻한 무덤가에 가서 소주 한 병 비우고 싶다.
옛사람 이름 부르며 노래 한가락 흥얼거리고……
한숨 푹 자고 내려오면
마침내 나를 잊은 대상 만날까.

2000년 5월, 황지우

[해설]
신부(神父)에서 신부(新婦)로 가는 길·정과리

80년 광주는 역사의 울돌목이다. 느릿느릿 산만하게 퍼져 흘러가던 일상의 흐름이 문득 응축되면서 격발을 일으킨 장소이다. 그 장소에 다다르기까지 일상이 마냥 따분하게 흘러왔던 것은 아니다. 그것 또한 속으로 비등하면서 역사의 불길을 지피고 있었다. 그 내연(內燃)은 짧아도 10년 동안 계속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10월 유신(1972)이 있었고 민청학련(1974)이 있었다. 긴급조치 9호(1975)의 질곡하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감옥으로 끌려갔고 YH 노조 투쟁, 부마 항쟁(1979)이 일어났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6일 독재자가 사망했고 민주의 봄이 도래하는 듯싶더니 12·12 쿠데타를 통해 민주화의 불길과 압제의 탱크가 팽팽히 대치하였다. 그리고 1980년 5월 초순에 서울역 광장을 중심으로 전국을 뒤흔든 민주화 시위가 있었고 5월 18일 자정을 기하여 군부의 물리력에 의해 민주화의 열망에 대한 잔혹한 진압이 일어난다. 80년 광주는 이 잔인한 진압에 의해 터져버린 물기둥이다.

물과 불의 비유는 그냥 쓰인 것이 아니다. 물이 불로 전화하고 불이 물로 뒤바뀌는 이 광포한 연금술이 역사 그 자체이다. 그 역사는 파열한 역사이며, 봉합된 역사이고, 화농한 역사이다. 파열을 통해서 불완전 연소된 불이 시커먼 숯덩이들을 남겼고, 지배 권력이 그것을 서둘러 말의 모래로 덮어버렸으며, 그렇게 파묻힌 곳에서 상처의 부위들이 고름을 질질 흘린 역사이다. 70년대의 지층 아래를 휘몰아치던 잠재성의 물길은 한순간 불길로 타올랐다가 이렇게 다시 오열의 늪으로 돌아갔다. 어느 젊은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미친 물소”의 늪, 혹은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사산하는 여름”의 늪, 또는 우리의 집단 무의식이 지시하는 것처럼, 로터스의 늪. 늪을 규정하는 이 세 가지 형용사는, 바로 파열과 봉합과 화농이라는 반-역사의 움직임에 대한 저항을 지시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역사의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자 응전이고, 도전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늪인 것은 그 응전과 도전이 모두 잠재성 속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 광주는 그런 의미에서 선사(先史)이다. 전혀 다른 삶을 열 가능성으로 충만하지만 아직 망울을 오무리고 있는 꽃봉오리다. 아직 첫날밤을 치르지 않은 “창가에 선 나의 신부”다.

이 역사의 의미를 추본(推本)하지 않는다면, 광주는 자칫 우연한 들불에 지나지 않게 된다. 『오월의 신부(新婦)』는 이 역사성의 의미에 대한 뚜렷한 인식과 물음으로부터 솟아오른 또 하나의 물기둥이다. 제1부 1장의 무대가 서울역인 까닭은 그래서이다. 80년 광주를 다루되 그것을, 당시의 언론이 지칭한 것처럼 일회적인 “사태”로 다루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 첫 무대를 광주로부터 서울역으로 이동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건에, 우리가 흔히 말하고 있듯이, ‘민중 항쟁’의 성수를 뿌리기도 어렵다는 것을 작가는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항쟁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어떤 개념들도 섣부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항쟁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 항쟁의 성격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지나치게 거칠고 규정적인 명명들을 제외한다면, 아직 충분히 제기되지 않았다.

‘프롤로그’는 바로 이 점에 대한 작가의 고민에서 나왔다. 광주 항쟁의 한복판에 있던 두 사람이 살아남았다. 프롤로그는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서 발언된다.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죽은 사람들이 있었고 사건은 종결되었으며 살아남은 사람은 그 사건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프롤로그는 에필로그가 아닌가? 미련과 회한으로 질척대는 후일담이 아닌가? 광주는 지금 지속되지도 않으며 다시 똑같게 되풀이되지도 않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추억하고 반추하고 기념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에필로그를 감히 프롤로그로 세웠다. 왜냐하면 이 압살된 항쟁의 역사에 에필로그는 아직 씌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들이 후일담처럼 말하는 것은 모두 가짜다. 아니, 이 가짜 에필로그들이 그대로 프롤로그가 되어야 한다. 이 에필로그는 불구의 프롤로그다. 살아남은 자가 모두 망가진 자들이듯이. 그렇다. 두 사람이 살아남았다. 한 사람은 신념을 잃어버렸고 다른 한 사람은 미쳐버렸다. 무엇을 잃었고, 어떻게 돌았나, 그것이 이 시극의 첫 물음이다.

4·19가 그러하듯이 광주도 총체적 사건이다. 정치학이나 경제학의 돋보기를 들이대도 결코 해명되지 않는 무엇이 있다. 4·19를 정치학과 경제학만으로 조명하면 5·16 이후의 집단 무의식적인 문화적 흐름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야경 국가의 경제 제일주의와 경쟁하며 전개된 한국인의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문화적 움직임이 어떻게 한국 문화의 자산을 풍부히 개발함과 동시에 독재 비판과 민주화의 험로를 개척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려면 그 사건의 덩어리를 통째로 감당해야만 한다.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때 4·19와 5·16을 동일선상에서 파악하는 사회과학의 폭력이 야기된다(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광주도 그러한가? 아직 우리는 확실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을 두고 수없이 많은 글들이 씌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들은 폭력의 직접성과 역사 해석의 도식성 사이를 숨가쁘게 왕복하면서 연소(燃燒)하였다. ‘광주 학살 사진전’ 같은 예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폭력의 직접성은 가차없는 고발의 게릴라전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노선 투쟁의 격렬한 경련으로 나타난 도식적 역사 해석들이 그 직접성의 밑에 밑줄 그어져 표시된다. 여기에는 현장과 이데올로기가 있다. 이 죽음의 현장 속에서 삶의 더운 숨결이 피어나려면 이 현장을 반추와 성찰의 장으로 만드는 문화적 작업이 끼여들어야 한다. 초기 임철우의 정신병리학, 최윤의 집단 죄의식의 무대화, 최두석의 ‘이야기 시론,’ 김현의 폭력 연구 등이 광주 체험이 자극한 문화적 작업들인데 이것들은 80년대의 정치적 투쟁을 휘감고 있었던 이념 투쟁 혹은 논쟁과 동떨어진 곳에서 별도로 진행되었으며, 그래서 그것들은 한편으로는 광주의 ‘실상’을 왜곡한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작업의 의미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정치적 투쟁은 생의 구체성을 외면하였고 생의 구체성은 제 이름을 얻지 못한 채 말소되고 있었다.

황지우는 처음으로 영역들의 교향악을 완성하려고 한다. 정치적 이념 투쟁의 개념들과 구체적 개별자의 삶의 의미를 어우르려 한다. 그 의도를 명료하게 지시하는 하나의 구절이 있는데,

아, 오월의 흰 꽃들 다 지는데/비듬처럼 쌓인 내 어깨, 누가 털어주나?

가 그것이다. 오월의 흰 꽃들은 낙화하자마자 바로 역사의 상징으로 솟아올라 은하계의 빛점으로 박히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히려 여전히 이 땅에 머물러 있다. 머물러 비듬처럼 내 어깨 위에 쌓인다. 비듬처럼 쌓여 그것은 나를 고뇌 속으로 몰아넣는다. “비듬처럼 쌓인 내 어깨”의 야릇한 오문은 그래서 나온다. 바로 쓰자면, “내 어깨 위에 비듬처럼 쌓인 흰 꽃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주어와 상황보어를 뒤바꾸어버린다. 그 뒤바꿈을 통해 자수(字數)를 줄였을 뿐 아니라 내 어깨를 강조하면서 내 어깨를 비듬 그 자체로 만든다. 내 어깨는 비듬처럼 곧 무너질 것같이 한없이 무거운, 고뇌로 가득 찬 어깨가 된다. 문법적 도치가 곧바로 은유(압축)의 효과를 낸 예다. 이 비유를 왜 썼는가? 광주 5월을 바로 역사의 상징으로 쓰려고(用) 한 움직임은 무수히 있었다. 그것은 이미 5월의 사건을 휘몰아가는 그 자체의 에너지이기도 하였다. 보라, ‘코러스’의 이 함성을:

여기는 광주! 솟아라, 불의 분수여!
하늘을 용접(鎔接)하는 불꽃이여, 순수한 피여!
어둠을 찌르는 빛의 가시여, 꽃피어나라!

또한, 보라, 이 말을 받아 외치는 ‘강혁’의 음성을: “여기 우리 심장 갈라/불의 용광로에 붓나니/우리는 피끓는 청춘!/솟아라, 불의 분수여!/우리의 피를 먹은 나무여!” 그러나 가장 순수한 피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묻기도 전에 이 피의 분수는 가장 더러운 총알들에 의해 하나하나 저격당했다. 그것은 더럽혀져 비듬이 되어 살아남은 자의 어깨 위에 우수수 쌓인다. 그러니, 광주는 역사의 상징이 아니다. 상징이 되기에는 그것은 아직 역사가 아니다. 무엇인가가 미결되었다. 오월의 흰 꽃은 여기에 머물러야만 한다. 머물러 더럽고 지지한 생을 끌고 가야만 한다.

총체적 사건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완결의 형식으로서가 아니라 미결의 양태로 역사를 제시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자로 그것을 잘라내면 안 된다. 몇 개의 자를 추가로 동원해도 끝까지 남는 살점이 있다. 이 살점은 모든 해석학들의 맹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숱한 해석학들의 조명에 의해서만 어둠으로 남는 부분이다. 그렇게 해서 어둠 자체로 밝게 드러나는 지대이다.

무수한 음역이 있다. 우리는 적어도 3개의 음역을 고려할 때만 5월 광주의 장송곡을 연주할 수가 있다. 우선, 맨 위에 성스러움의 차원 혹은 의미화의 고지가 있다. 학자들이 서둘러 깃발 꽂고 하산하는 지점이다. 맨 아래에는 생활의 지평선이 놓여 있다. 거기는 무의미의 지대이다. 아니 의미의 버려짐에 의해서 의미화를 강하게 충동하는 무의미화의 영역이다. 그리고 가운데에 이른바 광주의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삶의 의미와 무의미가, 정치와 생활이 접맥되는 연결부이다. 사건이 없으면 성(聖)과 속(俗)은 만나지 못한다. 그러니 만나야 한다. 그러나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 속은 성의 속스런 대리물에 지나지 않는다. 혹은 성은 속의 화려한 포장지로만 기능한다. 성과 속은, 의미와 무의미는 각각 자율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오월의 신부』의 일차적 판은 이 세 층위의 직접적인 연결선들로 직조된다. 때문에 이 판의 선의 방향은 수직적이다. 속으로부터 성으로의 계단, 혹은 사다리, 그것이 광주의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다리는 위태롭다. 바깥의 물리적 세력 때문만이 아니라 스스로 위태롭다. 성의 고지에 날리는 깃발들은 크게 도덕주의와 원리주의로 대별된다. 도덕주의의 뒤에 도사린 것은 “성자의 반열에 오르는 계단에서 목숨쯤이야/입장료라고 생각”하는 순교자의 욕망이다. 원리주의의 이마에 돋은 심줄은 “이 불은 조합주의자의 불쏘시개가 아냐. 빈민을 믿지 마!/이 불은 노동 해방의 불!/요원의 들불로 저 공단으로 가야 할 불!”이라고 말하는 개념의 횡포이다. 하나는 개인의 욕망이며 다른 하나는 지식의 욕망이다. 그 지식은 저 개인의 욕망이 저에게서 인간의 나약한 육체를 벗어 던진 결과로 태어난 것이다. 이 욕망은 자기 기만을 낳는다.

속의 지대에 미만히 퍼져 흐르는 것은 자기 모멸의 감정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을 좋아하지 못”하고, “누구보다도 자기가 자기를 무시”한다. “우리는 똥을 암데나 갈겨”버린다. 이 지대의 종족들은 ‘인간’의 울타리 바깥으로 철거되었다. 그들은 꼽추·난쟁이·찐따와 동격이다. 이들 속에서 태어난 지식인인 허인호가 절름발이인 것은 이중의 상징을 갖는다. 이 빈민들의 자기 모멸, 즉 자기 부정을 가리키는 게 그 하나이고, 허인호의 이중성, 혹은 분열을 가리키는 게 그 둘이다. 이 이중적 불구성을 극복하려면 ‘자존’이 이 땅에 심어져야 한다. “처음으로 욕이 아닌 내 이름”을 누군가가 불러주어야 한다. 그것을 세우려고 성-고지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그 길은 자칫 도덕주의와 원리주의의 도구가 되는 길, 다시 자학으로 빠져드는 길일 수도 있다. 정말 “저들은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저들 스스로 낙원을 만들었나이다”라고 장신부는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 낙원에는 겨우 골조가 심어졌을 뿐이다. 다른 방향도 있다. 이들이라고 왜 스스로를 존대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행위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부정의 형태로만(한씨의 경우) 나타나서 스스로의 이름을 얻지 못하거나, 거짓 대리물에 자기의 존재를 의탁한다(“박찬희 따블유비씨 프라이급 세계 참피욘 2차 방어전, 봐야 한단 말이요./어, 씨벌, 이게 전국민적 관심산디……”라고 말하는 광남의 경우). 이 속의 지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조와 거짓 의식이다(지나가는 길에 덧붙이자면, 이 거짓 의식은 동시에 자기 의식〔각성〕의 모태이다. 광남이 죽음을 앞둔 도청에서 다시 “박찬희 따블유비씨 프라이급 세계 참피욘”을 말하는 것은 그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물론, 그는 곧 이어서 “나는야 광주 도청 시민군의 기동타격대장”이라고 말해 박찬희와 자신을 동렬에 세운다. 그리고 의도적인 사투리도 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거짓 의식이 자기 의식과 등가라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둘의 상관성은 무의식의 전개상 필연적이다. 그 둘은 오래도록 상보하며 동시에 길항한다).

이 속과 성의 만남은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방금 본 대로 하자면, 성은 자기 욕망을 순환한다. 속은 자기 모멸의 지표들을 끝없이 이동한다. 수직적인 것에 대한 지향은 끝없는 평행선, 즉 수평성의 종착지 없는 열차를 타고 있다. 원래 성은 빛이다. 가장 밝은 것이다. 그러나 성과 속이 만나는 현장에서 이 밝음은 가장 어둡다. 최루탄과 연기에 의해서만 어둔 것이 아니다. 분절되지 못하는 소리들의 혼잡으로도 어둡다. 성이 지상의 언어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모순이 극복되려면, 저마다 자율적 세계인 그것들이 자신의 자율성 또는 자신의 완강한 껍질이 붕괴되어야 한다. 그것이 상대방의 압력에 의해서 내부의 해체 재구축 과정을 맞아야 한다.

성의 수직성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개인의 욕망 혹은 지식의 욕망이라고 방금 말했다. 그 때문에 불가피하게 성의 수직성은 다른 차원을 향해 열린다. 바로 남녀간의 사랑의 영역으로. 남녀간의 사랑은 공동체적 이상의 가장 개인화된 형식이다. 이 차원이 열리는 것은 성의 고지가 본래 개인의 욕망으로 축조되었던 때문이다. 그러나 드러난 개념과 감추어진 욕망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둘은 서로를 훼손하거나 해체한다. 가령, 혁이 민정을 범한 것은 전자에 해당한다. 해체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수직성의 사다리를 수평 방향으로 비스듬히 놓을 때. 첫 무대에서의 현식과 민정의 위치는 그 점에서 시사적이다. 현식은 “무대 중앙 돌출부 상단”에 서 있고, 민정은 “왼쪽 돌출부 중간쯤”에 서 있다. “지금 내 발 아래 교각에서 물결치는 강물이/그 흐름을 바꾸고 있는데, 나는 왜 아직도 혼자인가!”를 고뇌하는 현식, 즉 이념과 갈등하며 최종적으로 그 이념의 실천가로 남는 현식은 무대 중앙의 전면에 나서 있으며, “아름다운 것들 보면 늘/오빠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민정, 즉 세상에 대한 사랑을 개인에 대한 사랑으로 수렴시키는 민정은 왼쪽 중간에 서 있다. 그 가운데 전체가 세상을 가리킨다면, 이 세 존재가 이루는 모양은 삼각형이다. 이 삼각형은 성의 수직성이 경사면을 가질 때 비로소 지상에 발을 디딜 수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더 나아가, 이 삼각형, 즉 수직성의 수평적인 것으로의 이동은 결코 완결되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된다는 것을 그것은 암시한다. 왜냐하면, 이 삼각형은 동시에 현식-민정-혁, 민정-현식-혜숙, 현식-혜숙-영진으로 변주되는 삼각 관계를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내가 약간 불만인 것은 왜 삼각 관계의 변이체들을 현식-민정의 관계로 수렴시켰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광주를 하나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은 내적 욕구에 시달렸을 것이다).

이 삼각형의 드러남은 이 성스런 공간의 밑자리를 속이 이루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고백에 다름아니다. 그 고백을 통해서 성은, 즉 지식과 도덕은 서서히 하강한다. 지식은 원리에서 실학으로 바뀌고, 도덕은 막상 현장에는 아무도 없는 텅 빈 도덕이 아니라 “누군가는,/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있어줘야 한다는” 양심의 문제, 도덕가 스스로의 가슴을 향해 화살을 돌리는 자기 성찰의 도덕으로 바뀐다.

속은 어떻게 성과 만나는가? 처음에 광주의 주민들은 아주 우발적으로, 가령, 시위를 구경하다가 곤봉에 맞아서, 혹은 “우리 아가씨들이 적십자병원에 피 주러 간당께, 따라갔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그런데 마침내 그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갖는다. 3부 18장에서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이 서로 제 이름을 밝히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그들이 분절된 언어를 가진 존재, 즉 의식인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열흘간의 ‘광주’를 결속시켜주었던 ‘밥과 피의 공동체’”이다. 밥과 피의 공동체는, 그런데, 무엇인가? 그것은 태생의 공동체, 계급의 공동체가 아니다. 열흘 간의 광주에서 밥은 바로 그들이 스스로 치른 고난, 즉 노동을 가리키며, 피는 그들이 흘린 피, 즉 상처를 가리킨다. 밥과 피의 공동체는 함(행위)과 상처의 공동체이다.

성은 속으로 가라앉고 속에는 성이 가득 찬다. 그래서 성과 속은 만난다. 아마도 현식과 민정의 결혼은 이 성과 속의 만남을 상징화시키는 절차일 것이다(민정은 대학생이면서도 특이하게도 속의 성화됨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기능한다. 여기에는 꽤 복잡한 레퍼런스가 개입해 있는 듯하다). 그것은 동시에 “쇠파이프에 터져 피 흐르는 저 이마”와 절름발이인 허인호의 다리를 입술(현식과 민정의 입술은 물론 첫 키스의 입술, 즉 만남의 탄생을 가리키는 것이다)로 지양하는 절차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 의미가 완결되는 것은 아님을 작가는 잘 알고 있었다. 성화된 속은 성이 본래 가지고 있는 폭력성(권력성)을 스스로 해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허인호가 TNT의 뇌관을 뽑은 것은 바로 그것을 가리킨다.

그러니 이 성과 속의 만남은 한순간으로 끝난다. 그리고 시민군은 진압되었고 세상은 다시 무사한 표정을 띠게 되었다. 그래서 “광천동 낙원은/저 사람 빨갱이다, 저 사람 미쳤다는 주민들 항의로 깨져버렸”을 정도이다. 성의 대리인은 냉담자가 된다. 그러나, 저 순간은 “TNT 뇌관에서 뽑은 못을 〔우리의〕 이마에 박아버린” 순간이다. 우리는 그 순간을, 그 순간의 영원한 유예를 잊지 못할 것이다. 허인호가 미친 성자로 살아남았듯이, 저 순간은 영원히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저것은 언제나 첫날밤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축의금을 요구할 것이다(제목이 『오월의 신부』인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것이 아마 광주의 역사적 의미이리라.

『오월의 신부』가 염원의 형식으로 짜놓은 광주의 운명 뒤에 있는 것은 1980년 5월 광주의 죽음의 명단에 “소위, 양심이 직업인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부끄러운 사실이다. 성(聖)의 성채에 이미 진입한 사람들, 아래로 다시 내려갈 일없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었던가? 너는 서울역에서 돌아와 고교 야구를 보고 있지 않았던가? 너는 석사 논문을 써야 한다는 핑계로 하숙방에 처박혀 있지 않았던가? 그 물음이 계속 나를 찌른다.

목차

[차례]
등장인물

프롤로그

제1부 핏자국 위로 지나간 나비
1장 오, 청춘은 괴로워라
2장 광천동 낙원의 축일
3장 갈리는 두 길
4장 피의 날들
5장 혜숙의 죽음
6장 진공
7장 개기일식

제2부 징헌 사랑
8장 해방제의(解放祭儀)
9장 진혼
10장 고립
11장 대립
12장 그대 젊은 날의 극광(極光)이여

제3부 바람의 탑
13장 장백의(長白衣) 행진
14장 화약고 위의 시간들
15장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16장 마지막 메시지
17장 황혼
18장 주머니에 주민등록번호를 넣으며
19장 문 앞에서
20장 바람의 고요한 내부
21장 혼배성사
22장 마지막 목소리들

에필로그

<해설> 신부(神父)에서 신부(新婦)로 가는 길·정과리

작가 소개

황지우

시인 황지우는 1952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 서울대 인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연혁(沿革)」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고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문학과지성』에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는 너다』 『게 눈 속의 연꽃』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와 시선집으로 『성(聖)가족』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등을, 그 외 시극 『오월의 신부』, 산문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1983) 현대문학상(1991) 소월시문학상(1994) 대산문학상(1999) 백석문학상(1999) 옥관문화훈장(2006)을 수상했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거쳐 1997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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