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사

김학준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9년 12월 26일 | ISBN 9788932011363

사양 신국판 152x225mm · 1003쪽 | 가격 45,000원

책소개

초판 『러시아 혁명사』는 1825년 12월 당원의 반란으로부터 1917년 볼셰비크 집권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정치적·이념적 역사에 대한 기록으로 혁명의 사상과 그 실천의 논리에 대한 소개를 배경으로 인물과 사건을 중심적으로 추적한 우리나라에서 나온 이 방면의 최초의 연구서였다. 이에 덧붙여 수정·증보판 『러시아 혁명사』는 1979년 초판 이후 20년 만에 그 동안 발견된 새로운 자료들과 진전된 연구 성과들을 수용하여 러시아 혁명의 역사적 전개를 총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수정·증보판 머리말]
1979년 12월에 출판된 졸저 『러시아 혁명사』는 처음부터 모자란 곳이 적지 않았다. 우선 나의 공부와 생각이 짧았으며 자료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참으로 많은 분들이 읽어주었고 때로는 과분하게 평해주기도 했다. 그러했기에 이 졸저는 큰 부담이 되어왔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고쳐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게으름과 능력의 한계로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

그렇게 지나는 사이 어느덧 초판으로부터 꼭 20년이 지났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이 압박해왔다. 비록 흡족하지는 않다고 해도 수정할 곳은 수정하고 보완할 곳은 보완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지난 스무 해를 돌이켜보니 이 책의 주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변화가 있었음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첫째, 신간들의 출현, 그리고 그것들이 준 새로운 자료들과 새로운 해석들이다. 우선 미국 하버드 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러시아학의 세계적 대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리처드 파이프스Richard Pipes의 『러시아 혁명』1)이다. 1,000쪽에 가까운 이 방대한 책은 러시아 혁명의 시기 구분에 관해 새로운 관점들을 제시하면서, 특히 1899년의 대학생 집단 항의로부터 1924년의 레닌Vladimir Ilichi Lenin 사망까지의 약 25년을 러시아 혁명의 절정기로 보는 가운데 종전의 많은 책들이 다루지 않았거나 다루지 못했던 사건들에 대해 새로운 조명을 주었다.

둘째, 러시아 혁명의 직접적 산물인 소련의 해체, 그리고 러시아 혁명의 이념적·이론적 기관차이었던 마르크시즘·레닌이즘의 붕괴이다. 이 역사적 사건은 학자들로 하여금 자연히 러시아 혁명을 되돌이켜 생각해보게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소련의 해체를 깊이 있게 분석한 책들이 출간됐다. 그것들 가운데 대표적인 책이 프랑스의 세계적 소련학 대가인 여류 사학자 엘렌 카레르 당코스Hélène Carrére d’Encausse가 저술한 『소비에트 제국의 종언: 민족들의 승리』2)이다. 이 책은 러시아 혁명 그 자체를 다루지는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을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암시를 주었다.

셋째, 러시아 방문을 통한 현지에서의 자료 수집이다. 1991년 6월에 소련을 처음 방문한 이후 나는 소련을 포함해 러시아를 여덟 차례 방문하면서 러시아 혁명의 사적지들도 찾아보았고 러시아 혁명에 참여했던 지도자들의 생가나 무덤도 찾아보았을 뿐만 아니라3) 러시아 학자들의 러시아 혁명에 대한 인식을 접하는 가운데 새로운 자료들과 해석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새 자료들과 시각에 바탕을 두고, 이번 판은 다음과 같은 부분들을 개정하거나 보완했다. 첫째, 가장 기초적인 작업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새롭게 사실이 밝혀진 경우 그 사실로써 지난날의 서술을 대체했다. 라스푸틴의 사인(死因)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 한 작은 보기이다.

둘째, 러시아 혁명사와 관련해 꼭 들어가야 할, 또는 적어도 짧게나마 언급돼야 할 사항이었건만 지난 판에서는 빠졌던 사항들을 이번 판에서는 포함시키고자 했다. 1895년에 일어났던 호딩카 들판의 참사라든가 1909년에 일어났던 『베히Vekhi』 운동이 그 한 작은 보기들이다.

셋째, 차리즘의 성립 과정과 그 성격을 밝히는 일에 상당히 많은 지면을 주었다. 지난 판이 1825년에 일어난 데카프리스트들의 반란을 제1장으로 삼았음에 비해 이번 판이 그것에 앞서 제1장과 제2장을 새로 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러한 취지에서 제2장에서는 차리즘에 대해 심각한 위기를 조성했던 푸가초프Emilian Pugachev의 반란이나 라디스체프Alexandr Radischev의 저항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자 했다.

넷째, 데카프리스트들의 반란은 ‘러시아 최초의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는데도 지난 판은 반란의 전개 양상을 묘사하는 데 치중해 참여자들의 사상을 간략히 다룬 흠을 보였다. 이번 판은 그 흠을 보완하기 위해 반란 지도자들의 사상 형성 과정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다섯째, 러시아 혁명의 전개 과정에 중요했던 사건들이라고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사건들을 이번 판에 포함시켰다. 1899년과 1900년까지 러시아의 거의 모든 대학교들에서 전개된 학생들의 집단 시위들이 그 대표적인 보기들이다.

여섯째, 지난 판은 러시아 혁명의 전개 과정을 지나치게 레닌과 트로츠키Leon Trotsky 및 스탈린Iosif Stalin 등 세 혁명가들과의 관계에 기울어져 서술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보게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번 판은 러시아 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다른 혁명가들에 대해서도 지난 판에 비해 훨씬 보다 많은 관심을 주고자 했다. 그 대표적 혁명가들이 체르니세프스키Nicolai Chernyshevsky, 플레하노프Georgi Plekhanov, 트카초프Pyotr Tkachev,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등이다.

일곱째, 혁명가들이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차리즘 체제의 대응, 예컨대 황실과 각료들의 논리와 행동은 물론 그들의 손발로 현장의 일선에 섰던 경찰의 노력, 심지어 당국과 혁명 세력 사이를 오가며 이중 정보원의 역할을 수행했던 첩자들의 암약에 대해 지난 판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조명을 주었다. 비운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Nicolai II의 ‘나약한’ 성격이 상황 전개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도 충분히 고려하고자 했다. 전반적으로, 체제와 반체제 사이의 일종의 복잡한 상호 작용이 상황 전체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어떻게 바꿔놓는가에 대해 더 자세히 썼다.

여덟째, 러시아 혁명사에서 큰 뜻을 갖는 1905년 1월의 ‘피를 흘린 일요일,’ 그리고 세계사적으로도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을 그 중요성에 걸맞게 좀더 자세히 다루고자 했다. 그래서 지난 판에는 각각 1개 장으로 된 ‘피를 흘린 일요일’과 2월 혁명 및 10월 혁명을 이번 판에서는 각각 2개 장으로 나눴다. 1905년 10월에서 12월까지 계속된 총파업에 대해서도, 그리고 10월 선언에 대해서도 훨씬 더 자세하게 쓰고자 했다.

아홉째,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처형’ 또는 ‘살해’를 별개의 장으로 삼아 자세히 다뤘다. 소련의 붕괴 시기에 새롭게 공개됐거나 발굴된 자료들은 이 사건의 진상과 성격을 보다 더 명확히 밝혔고 그것은 소련 체제의 본질을 보다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파이프스 교수가 독립된 장으로 다룬 방식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열째, 러시아 혁명의 결과로 소비에트 국가가 세워진 뒤 그 동안 혁명을 이끌었던 혁명가들의 운명은 어떻게 됐는가를 앞의 장에서 함께 설명하고자 했다. 이 물음에 관련해, 마르크스의 무덤, 레닌의 무덤, 레닌의 아내 크루프스카야의 무덤, 레닌의 연인 이네사의 무덤, 레닌 가족의 무덤, 트로츠키의 무덤, 스탈린의 무덤, 룩셈부르크의 무덤, 그리고 수많은 혁명가들의 공동 묘지라고 할 수 있는 크렘린 외벽의 무덤 등을 비롯해 많은 혁명가들의 무덤들을 돌아보았다. 다른 한편으로, 소비에트 국가가 세워진 뒤 혁명가들이 해방시키고자 했던 러시아 인민의 삶은 과연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수정·증보판이라고 해도 이 책은 지난 초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의 독창적 연구의 산물은 결코 아니다. 자료의 발굴이나 해석의 어느 측면에서도 새로운 얘기를 전혀 내놓지 못했다. 그저 이 주제와 관련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읽은 책들을 내 나름으로 소화하고 요약하고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 이 책은 다른 연구자들이 이미 출판한 저술들의 독서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러시아 혁명사에 관해 독창적인 저술이 출판되기를 바란다. 러시아 혁명사 분야의 국제 학계에서 “한국 사람의 시각에서 씌어진 러시아 혁명사로는 어떤 책이 있느냐?”고 물어올 경우 “이 책이다”라고 내놓을 만한 저술이 나올 때 나의 이 졸저는 생명을 다할 것이다.

이번 판의 출판에 즈음해 문학과지성사 대표 김병익(金炳翼) 선배에게 다시 감사하고자 한다. 김선배는 초판 때도 출판을 권유해주어 실질적으로 이 책의 산파 역할을 맡았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에는 수정되고 보완돼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또 사실의 확인에서나 판단에서 잘못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잘못들이 고의의 결과는 아니지만 그것들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독자들의 많은 가르침을 기대하고자 한다. 겸허하게, 그리고 감사히 받아들여 다음 쇄 또는 다음 판에서 고칠 것임을 약속한다.

1999년 11월 15일, 인천대학교 연구실에서, 지은이 씀

주)
1) Richard Pipes, The Russian Revolution(New York: Alfred A. Knopf, 1990).
2) Hélène Carrére d’Encausse, The End of the Soviet Empire: The Triumph of the Nations, tr. from French by Franklin Philip(New York: A New Repulic Book, Basic Books, 1993), Ch. Ⅰ.
3) 지은이는 이 순례에 기초하여 다음의 책을 출판했다: 김학준, 『붉은 영웅들의 삶과 이상: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자들의 발자취』(서울: 동아일보사, 1997).

[책머리에]
혁명이란 단어가 모든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하던 시대가 있었다. 유럽의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2백여 년에 걸쳤던 시대가 바로 그러한 시대였다. 이 대변혁의 시대에 젊은이들은 혁명의 깃발 아래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졌고 혁명의 열기 속에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던 것이다.

혁명이란 말 한마디가 그 시대 젊은이들의 정열을 흡수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리고 정치의 원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는 것은, 결국 정치적 낭만주의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적 낭만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현실 정치에의 직접적 참여를 통하여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이성적 질서를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이 대하의 물줄기처럼 도도히 흘러나가는 사회―그 사회에는 정치적 낭만주의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정치적 낭만주의가 힘을 쓰고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비록 오늘은 가난하고 괴롭다 하여도 내일에의 꿈이 있기에 행복할 수 있다. 사람이란 반드시 이른바 오늘의 ‘부귀영화’로써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정녕 사람은 정신적인 존재다. 그러기에 그에게는 일상적인 안락은 오히려 권태를 더할 뿐이며, 그 안락이 스스로를 안락사(安樂死)시키는 무서운 독소로 비쳐질 수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기대가, 비록 그 기대의 표현 자체가 금압되는 것이라 하여도, 그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일깨워주고 그 스스로의 삶을 값지게 해주는 활력소로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의 질서에 대한 평가와 내일의 질서에 대한 기대를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한 것을 나는 일단 정치 사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물론 정치 사상을 이렇게 정의할 때, 그것은 정치 사상의 속성 가운데 보수적인 성격을 사상(捨象)시키고 대항적 성격을 더욱 부각시켰다는 반론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정치적 낭만주의자들에게 정치 사상은 정녕 대항적 성격이 그 본역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혁명과 정치 사상이 서로 만나는 것이다. 그 둘은 모두 현실 질서에 대해 비판적이며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지향한다. 물론 정치 사상은, 사상이란 말이 나타내고 있듯이, 혁명에 비해 보다 관념적이고 덜 행동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추종 세력과 지지 세력을 얻기 전에는 한낱 관념에 지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어떠한 혁명도 그에 훨씬 앞서서 반드시 그 혁명의 이론적·정신적 원천이 되는 정치 사상의 출현을 보았던 것이다. 미국의 혁명이 있기에 앞서 로크John Locke의 민주주의 정치 사상이 나타났었고, 프랑스의 대혁명이 있기에 앞서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사회계약론이 전개되었으며, 러시아 혁명에 앞서 마르크스Karl Marx의 공산주의 이론이 출현했던 것이다. 일체의 혁명이 이론서 위에서 시작되었다는 뜻에서, 현실적 혁명은 종이 위에서 출발한다고 말한 풀브라이트William Fullbright의 이른바 ‘지상(紙上) 혁명론revolution on paper’은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구미(歐美)에 있어서는 혁명의 열기가 가라앉았다. 스탠리 와그너Stanley Wagner 같은 이의 표현으로는 이제 인류는 “혁명의 종말”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동시에 하나의 유행어가 되어버린 ‘이데올로기의 종말’이란 말이 적절히 나타내고 있듯이, 정치 사상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도 가셔버렸다. 상황이 이처럼 바뀌어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과학 기술의 발달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 사회적 발전 속에 있다. 구미에서 볼 수 있었던 ‘빈곤 상태에서 복지 사회로의 전환’은 바로 이러한 사회 발전의 결과였고, 이에 따라 사회적 긴장은 누그러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차차 어떤 청사진을 놓고 사회적 조화를 바탕으로 하는 유토피아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공작(工作)에 의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게 된 것이다. 또한 생활이 비교적 넉넉해지면서, 그리고 일상적인 생활의 재미가 커지면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혁명보다는 보수(保守)와 현상 유지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구미의 부유한 지역과는 달리 아시아와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지역에서는 ‘혁명의 종말’이 아니라 ‘혁명의 여명’이,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종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여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들 지역의 내재적 성격을 고려할 때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종속적인 지위에 있으며 따라서 국제 자본의 지배 아래, 그리고 그와 결탁한 국내의 보수 매판 세력의 통치 아래 내부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을 뿐인 대부분의 후진 국가들에 있어서, 혁명과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진보적 이데올로기야말로 높은 점화력(點火力)을 지닌 채 민중의 의식 저변을 도도히 관류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후진 국가들, 라틴아메리카의 국제 경제학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종속 국가들에 있어서는, ‘혁명의 종말’이 아니라 ‘혁명의 여명’이,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종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여명’이 시작되고 있다는 관찰은 물론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지적한 아롱Raymond Aron 같은 학자들에 의해 이미 제시된 것이다. 확실히 그들은 보수(保守)하려고 해야 보수할 것이 거의 없고 오히려 새로운 가치 체계와 이에 따른 새로운 질서의 출현 및 그의 정착이 갈구되는 후진 국가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혁명이라는 점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혁명적 진보의 사상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아울러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인식의 세계와는 직접적인 관계없이 실제에 있어서 전후의 후진 국가들은 혁명적 열기 속에 잠겨 있었다. 혁명적 진보의 사상을 강력히 포지하고 있는 엘리트가 현실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에는 물론 집권 엘리트에 의해 혁명은 국가 건설의 바탕이 되었다. 그렇지 못한 경우, 즉 여전히 외세의 신식민 세력과 그리고 국내의 소수 보수 세력과 결탁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면서 민중이 강력히 요구하는 사회경제적 변혁을 금압하는 반(反)역사적 세력이 현실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 대항 엘리트에 의해 혁명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볼 때, 후진 국가의 정치는 바로 혁명이라는 이념적 테마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가령 찰스 앤더슨Charles W. Anderson과 같은 정치학자가 “혁명은 격렬한 갈등 속에 태어난 새로운 국가들의 이념적 테마이어왔다. 오늘날 혁명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와 함께 개발이 덜 된 나라들의 대부분에 있어서 정치적 수사(修辭)의 기본 개념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각도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후진 국가들에 있어서 혁명이 정치의 핵심적 테마로 등장하면서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 혁명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일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확실히 역사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하나의 법칙성을 갖고 움직이고 있으며, 또한 오늘은 과거의 연장이며 내일은 오늘의 축적인 것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연장과 축적이 변증법적 발전의 결과라는 점이다. 역사적 발전을 단선적으로 이해하려 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 것은 그 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오를 범하지 않으면서 역사를 다시 살핀다는 것은 분명히 오늘의 성찰에 있어서 중대한 교훈을 추출하는 작업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역사적 혁명에 대한 개별적 및 총체적 연구는 역사학자들에게는 물론 비교사적(比較史的) 접근 방법을 취하는 입장의 정치학자들에게도 주요한 학문적 작업의 하나였다. 사학과 정치학의 두 분야에서 혁명에 대한 의미 깊은 연구가 잇달아 나오고 있으며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극적 테마가 아직도 충분히 진(盡)하지 않았다는 데 의견의 일치가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연구도 마찬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인류의 기록된 역사에 있어서 정부의 수립에까지 이른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그가 지닌 상당한 역사적 의의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전후 후진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에게 준 깊은 영향 때문에, 실로 많은 역사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의 주요한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아마도 러시아 혁명에 직·간접으로 연결되는 연구 업적을 조사한다면 그 방대한 양에 압도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혁명에 대한 연구 업적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러시아 혁명은 그 단초(端初)부터 따져나간다면 실로 백여 년의 역사를 갖는 역사적 대사변이었고 그처럼 한 세기가 지나면서 무수한 색채의 이론과 사상 및 인물들이 서로 대립하고 화합하면서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관련되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사회경제적 구조와 그 모순이 모두 그 역사적 사변에 연결되어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무수한 실개천과 냇물, 그리고 강하(江河)를 모두 흡수하면서 때로는 평원을 지나고 때로는 험준한 계곡을 거치며 때로는 얼고 때로는 녹은 채 흐르고 흘러 마침내 도도한 장강(長江)의 형세로서 대해(大海)에 이른 형상이었다고 할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성격이 이렇기에 그것은 가령 마르크스주의라는 단일한 사상이나 또는 레닌이라는 단일한 인물로 설명되기에는 지극히 어려운 측면들을 안고 있다. 마르크스와 레닌을 합친다 해도 그들의 그림자만으로는 도저히 러시아 혁명 전체를 덮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다만 그들이 살던 역사적 시점에서 자신의 혼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역사적 몫을 다하였을 뿐이다. 물론 그 진정한 평가는 차치하고 말이다.

러시아 혁명에 관한 외국 학계의 연구는 이제 큰 물줄기의 몇 개를 잡아놓은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은 물줄기들은 그 상류에까지 찾아가고 있는 형편이라고 하겠다. 실로 많은 연구자들이 진지한 탐색자의 자세로서 때로는 그 탐색 자체를 용공시하는 극우적인 세력의 의혹과 싸우고 때로는 러시아 혁명을 교조주의적으로만 해석하려는 극좌적인 세력의 비난과 겨루면서 묵묵히 역사에 대한 심판의 외로운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러시아 혁명에 대한 연구는 지극히 부진하다고 보겠다. 정치학계에서는 물론 사학계에 있어서도 러시아 혁명에 대한 입문서 정도의 교과서도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 책은 이 공백을 메우려는 소박한 노력의 하나이다. 바꿔 말하여 이 책은 러시아 혁명에 관한 국제적 연구 업적을 비판적인 안목에서 정리해서 국내에 소개하려는 하나의 개설서인 것이다.

바깥의 밝은 세계와는 두꺼운 벽을 쌓고 전제 정치의 어두움 속에 신음하고 있던 제정(帝政) 러시아의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 그 어두움을 무너뜨리려는 총성이 일었다. 1825년 12월 14일의 일이다. 전제 정치를 유지시켜주고 있는 핵심적인 기둥의 하나인 장교단에서 전제 정치의 타도를 외치는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러시아 역사에서 흔히 ‘데카프리스트들의 반란the Decembrist revolt’이라 불리는 이 청년 장교 및 지식인의 반란은 곧 진압되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현실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역사에 있어서 중대한 뜻을 가진다. 그 사건으로 러시아의 얼어붙은 땅속에 혁명의 씨앗이 심어졌던 것이다. 그 씨앗이 전제 정치의 두꺼운 지층을 뚫고 싹을 틔워 러시아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를 바꾼 러시아 혁명의 나무로 성장하기까지는 무려 92년이 소요되었다.

이 책은 이 92년 간의 역사를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 유의하면서 기술하였다. 첫째, 제정의 체제가 타도되고 새 질서가 세워져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생애를 살펴보았다. 혁명아로서의 그 괴로운 삶을 살아간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는가에 대한 관심이 이 측면에 더 많은 조명을 주게 되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그리고 그 사회를 위해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란 역시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비록 나와는 사상을 달리한다 하여도 깊은 관심으로써 그들을 보고자 하였다. 둘째, 그러한 사람들의 이론과 사상 체계를 살펴보았다. 인간은 역시 사상을 가질 때 위대하다는 것이 나의 소박한 믿음이다. 살찐 돼지보다 여윈 소크라테스Socrates가 되고자 한다는 말이 진실임을 나는 믿고 있다. 사상이란 그것이 상식과의 부단한 투쟁의 결과라고 생각할 때 그것은 더욱 존귀하게 보여지는 것이다. 일상적인 행복을 보장해주는 상식에의 도전적 회의가 있을 때 사상의 새로운 지평은 열리는 법이다.

러시아 혁명은 무엇보다 이러한 무수한 색깔의 이론과 사상의 결과였다. 따라서 나는 러시아 혁명에 관련된 사람들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었으며, 어떻게 해서 그 같은 사상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를 보고자 하였다. 물론 이들의 사상 가운데 나의 세계관이나 사상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 많음도 사실이다. 그들의 사상이나 이론 가운데 상당한 부분은 비판되어야 마땅한 것이 많다는 점 역시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순전히 학술적인 소개와 비판의 목적에서 비교적 상세히 다뤄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정치 사상 분야에 대한 소양과 훈련이 약하기 때문에 제대로 소화·처리하지 못한 대목이 많다는 점을 미리 고백한다.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로 좋은 지적을 해주시면 다음 기회에 수정 또는 증보의 방법으로 이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1979년 8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 연구실, 김학준

[고마움의 말]
1976년 가을 졸저인 『소련 정치론』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학계로부터 분에 넘치는 격려의 평을 받았다. 이에 힘입어 그 책의 앞부분의 한 참고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 러시아 혁명사를 쓰고 싶다는 의욕을 갖게 됐다. 특히 러시아 혁명에 대한 사회경제적 분석 및 사상사적 분석에 밝으면 밝을수록 오늘날의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이해가 보다 쉬워지리라는 생각은 그 의욕을 더욱 자극했다.

마침 월간지 『세대』의 발행인이요 주간인 동학(同學) 권영빈(權寧彬) 사학도(史學徒)가 나에게 귀중한 지면을 내어주면서 2년 반여의 연재를 허용해줌으로써 나의 의욕을 구체화해주었다. 『세대』에 연재할 때는 늘 시간에 쫓겨 여러 책들을 참고하지 못하고 몇 권의 책에 의존하고 있었다. 특히 버트램 월프Bertram D. Wolfe의 『혁명을 이룩한 세 사람Three Who Made a Revolution』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서, 그 글은 솔직히 고백하건대 편술(編述)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몇 출판사들로부터 책으로 묶어 내주겠다는 고마운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연재의 원형대로는 도저히 책을 낼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 사이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으며, 특히 1978년 12월초부터 1979년 2월말까지 90여 일에 걸쳤던 미국의 저명한 대학교의 소련 문제 연구소 순례는 새로운 자료 입수에 큰 도움을 주었다. 원래 이 여행의 목적은 소련의 동아시아 정책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의 수집에 있었는데, 약간의 외도를 한 셈이 됐다. 어떻든 이 책의 자료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저자는 여행의 기회와 비용을 베풀어주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의 초대 소장 이해영(李海英) 교수님과 그를 이은 현소장 이홍구(李洪九) 교수님 및 같은 분야의 연구원 김용구(金容九) 교수님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자 한다. 또한 저자의 짧은 여행 동안 자료 수집을 이모저모로 도와준 두 분, 즉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하용출(河龍出) 석사와, 그리고 시애틀 소재 워싱턴 대학교의 이정복(李正馥) 박사 두 분께 고마움을 표하고자 한다.

저자는 이 또 하나의 졸저의 출판을 맡아준 문학과지성사의 김병익(金炳翼) 학형 및 김주연(金柱演) 학형을 포함한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다시 교정 및 색인 작성의 어려운 작업을 전적으로 맡아 지혜롭게 처리해준 서울대학교 조교 이서항(李瑞恒) 석사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백운선(白雲善) 석사 및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출신의 김기정(金基禎) 학사의 학문적 열정을 높이 치하하는 바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자신의 바쁜 유학 기간 중 본저에 관련된 많은 책을 일일이 골라 보내주고 집필을 격려해준 아내 강기원(姜基遠)과 저자의 바쁜 집필 생활로 시간을 할애받지 못한 딸 은수(恩秀)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함께 표한다.

1979년 8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 연구실, 김학준

작가 소개

김학준 지음

김학준은 인천 출신으로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뒤 서울대 교수, 국회의원,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 및 단국대 이사장, 동아일보 편집논설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버클리대, 동경대, 뮌헨대, 비엔나대, 런던대, 우드로윌슨국제연구소 등에서 연구했다. 대표작 『한국 정치론』으로 1983년 한국정치학회학술상을 받았다. 현재 인천대학교 총장으로 일하면서, 비상근무보수직으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한국정치학회장, 한국국가기록연구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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