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어둠의 산조

홍용희 비평집

홍용희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9년 12월 17일 | ISBN 9788932011301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40쪽 | 가격 12,000원

수상/추천: 젊은평론가상

책소개

[책머리에]

20세기의 남은 날짜를 세고 있는 도로변의 전광판 불빛이 마지막 극점을 향해 진입하고 있다. 내일이 되면 저 전광판의 수치는 다시 하나 줄어들 것이다. 겨울 바람에 일렁거리는 자동차 행렬의 꼬리를 문 불빛들이 마치 20세기를 짊어지고 기억의 역사 속으로 잠기어가는 뒷모습처럼 스산하게 느껴진다. 이렇듯 우리의 분주한 삶은 역사의 저편으로 멀어져가는 세기말의 시간 레일 위를 달리고 있었다. 특히 생래적으로 동시대의 빛과 그늘을 민감하게 가슴앓이하는 시인들에게 세기말의 시간 의식은 가장 중요한 화두로 존재했다. 그 동안 우리 시문학은 세기말의 혼돈·위기·창조·격변의 시간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세기적 전환기는 종전의 무거운 형이상학의 옷을 벗고 자신의 몸성을 복권시킨 과정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 시세계의 중심음이 머리에서 몸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머리가 로고스와 관념의 장에 해당된다면, 몸은 생활 세계가 집적된 살림의 터에 해당될 것이다. 머리가 자아를 지배하면 몸은 하나의 사물로 전락된다. 그러나 몸이 기운생동하면 머리도 신선한 삶의 혈액으로 충만되면서 생명의 활성을 얻게 된다. 1980년대말 이념의 실험적인 대결이 스러진 자리에서 느껴야 했던 허망함은 그 동안 몸을 너무 학대해왔던 것에 대한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세기말의 혼란한 불확정성의 이면에는 구체적인 살림의 기운이 생장하고 있었다. 이것은 거대 담론에서부터 미시 담론으로, 이데올로기 대신 생활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사회 변혁 대신 자기 성찰에 대한 요청으로, 위선적인 이타주의 대신 자신의 생명 가치와 개성의 복원으로 인식의 터전을 전환시키는 내적 계기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세기말은 이와 같이 내성의 공력을 강화시키는 배력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후기 산업 사회의 지배 질서 체계는 신생의 싹을 내미는 주체적 자아를 끈질기게 상실과 퇴행으로 견인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성은 주도 면밀하게 기획된 지배 이데올로기의 유령에 포섭되면서 사물화로 전락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의 신성성을 소생시킬 수 있는 출구는 무엇일까. 20세기의 황혼의 극점은 몸의 시간 리듬을 회복하기 위한 철학적 예지의 비상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몸의 현상학은 어떻게 감지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인공 낙원으로부터 저만치 먼 자리에서 실존적 아픔과 고통을 감내하는 시인들의 노래를 통해 가장 먼저 현시되지 않을까? 시인들이야말로 세기적 전환기의 카오스적 무질서와 혼돈을 감당하면서 그 속에서 터져나오는 창조적인 새로운 질서의 파동을 가장 전위에서 직시하는 존재자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은 내가 시의 숲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하는 가장 큰 동인이기도 하다.

특히 세기적 전환기의 우리 시단의 풍경은 연속적인 체계와 구조를 거부하며 요동하고 해체하고 분산하고 무한 계열화하는 산조 음악에 비견된다. 살림의 기운이 출렁거리는 산조의 다채로움은 곧 그 가악 독주자의 곡진한 삶의 체험과 운명의 반영태이기도 하다. 시의 경우도 이와 같아서, 다양하게 펼쳐진 시의 숲에 대한 탐색은 곧 그 시인들의 서로 다른 내면 풍경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의 실체를 명징하게 인식하는 계기로 다가오기도 한다. 시의 숲의 심연이 때로는 섬뜩하게 나의 운명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 섬뜩함이 나를 시에 대한 감상과 향유의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인지도 모른다.

1999년 12월, 이제 곧 20세기는 저물어가고 21세기의 서막이 열릴 것이다. 사실 이것은 서운해할 일도 가슴 벅찰 일도 아니다. 저물어가는 20세기의 시간 레일을 달려온 길은 21세기를 맞이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시간 의식은 21세기의 지층 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이것을 얼마나 깊이 있게 호흡하느냐에 있다.

그 동안 쓴 평론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고 보니 어설픈 모습에 저절로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어쨌든 내가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될 나의 맨얼굴이 아닌가. 좀더 큰 문학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이 부끄러움을 어느 정도 자위하기로 한다. 그 동안 나의 삶과 문학 공부에 도움을 준 주위의 많은 분들과 이 책의 간행을 위해 애써준 문학과지성사 편집부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1999년 12월, 홍용희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일상성의 제국, 그 이데올로기적 구성체: 90년대 문학에 나타난 신소재에 대해
생명주의 문학을 위한 제언
신생의 꿈과 언어

제2부
마음의 열린 길: 최하림의 시세계
견딤 혹은 둥근 시간의 물살: 김명인의 시세계
박명의 현상학: 이성복의 근작 시세계
순수의 성채: 박이도의 시세계
소요의 시학: 임영조의 시세계
허심(虛心)의 자유와 평정을 향해: 오세영의 시세계
수정의 연금술: 이기철의 시세계
성찰과 열반의 꿈: 황지우의 시세계
사랑과 외로움의 먼 길: 정호승의 시세계
생명을 사는 언어: 김지하의 시세계
사랑을 향한 열림의 언어: 정현종론

제3부
꽃의 산조: 이승하·박태일·이영진의 근작 시세계
어둠의 주술, 신성한 적의: 김정란의 시세계
적멸의 안과 밖: 이상호와 최승호의 시세계
그리움을 사는 언어: 안도현론
신성의 위기와 재생: 고진하론
그늘 깊은 노래: 박해석의 시세계
길 없는 길의 시학: 박세현의 시세계
삶의 욕망과 죽음의 충동: 박주택론
닫힌 공간과 폐허 의식: 이윤학론
비극적인 세계 인식과 내성의 견인력: 이대흠론
여백의 사유: 장철문론

작가 소개

홍용희 지음

1966년 안동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및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분에 「사랑을 향한 열림의 언어―정현종론」이 당선되어 평단에 등장했다. 저서로 『김지하 문학 연구』가 있으며, 편저로 『그날이 오늘이라면―통일 시대를 향한 남북한 문학』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강사와 평택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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