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풍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235

이태수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9년 11월 18일 | ISBN 9788932011219

사양 신46판 176x248mm · 118쪽 | 가격 5,000원

수상/추천: 가톨릭문화상

책소개

[내용 소개]
시집 『내 마음의 풍란』은 드러나지 않는 삶의 이면에 대한 노래다. 그 이면은 숨겨져 있거나 가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큰 줄기에서 비켜나 있는 곁줄기이다. 돌올한 사물이나 인물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허공이나 적막·풍경 같은 것들이다. 시인이 이러한 배경에 눈을 돌리는 것은 그곳에 자신의 마음의 결들이 비치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에서 ‘그’는 나의 이면이며, 시인은 이런 배경을 조명함으로써 삶을 온전하게 회복시킨다.

[시인의 말]
한 세기가 저물고 있다. 되돌아보면 지나온 길 위의 발자국들이 부끄럽다. 더구나 최근 몇 년 동안은 마음이 무겁고, 낯선 터널 속을 완행 열차로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맑고 밝은 세상이 그리웠다. 이 여덟번째 시집에는 그런 마음의 흔적들을 담았다. 세기말의 어둠 속에서 작은 불 하나 밝혀 들고 싶은 심정으로……
1999년 11월, 李太洙

[시인의 산문]
원효는 작은 것을 크게 보는 혜안을 지니고 있었으며, 불꽃과도 같은 열정을 가졌으면서도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을 지녔던 고승이다. 큰 산과 같은 자부심을 안으로 다스리고 있으면서도 바깥으로는 누운 풀과 같이 자기를 낮춘 그의 지혜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부끄럽게 만든다. 더구나 그는 높이 나는 봉황의 기상을 품었지만 산기슭에서 낮게 지저귀는 작은 새의 행복마저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가? 원효의 일깨움과는 멀리 떨어지거나 거꾸로 치닫고 있지 않은지…… 어둡고 무거웠던 최근 이태 동안에는 새삼 그 같은 생각에 불을 지피면서 뒤틀리기만 했던 일상과 낯익은 문제에도 눈을 돌리곤 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그것을 품어주는 방도, 집도 허공에 떠서 흔들리거나 떠도는 것만 같았다.

이즈음은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마음을 비우면서 따스하고 그윽해질 수 있는 ‘고즈넉한 길 ’을 찾아나서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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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꽃잎이 없는 녹색 꽃의 시
―이태수 시의 즉물적 세계 인식

이성복

이태수의 시를 처음 대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다소 의아한 느낌을 갖게 되리라 생각된다. 그 의아함은 그의 시가 낯설고 생소한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친숙한 어법으로 범상한 내용들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의 시는 여백과 긴장을 중시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비유를 비롯한 여러 수사적 기법 또한 일상적 언어 사용의 한계를 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가 제시해보이는 세계는 일상 세계의 복사 내지는 전사에 지나지 않는 경우마저 있으며, 소박한 감정 이입과 단순한 투사의 세계일 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 안에서 우연히 눈에 띄는 “나는 마냥 상투적으로 숨을 쉰다”(p. 38)라는 구절은 예사롭게 읽히지 않는다. 시 또한 영혼의 호흡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애써 기억한다면, 어쩌면 역설일지도 모를 그 구절은 이태수 시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암시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태수의 시가 상투적이라는 점에 있다기보다는, 그것이 의도적 선택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점에 있다. 스스로 자신의 시가 범속한 생활 세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음을 확인하고 기억하는 시인의 오랜 시작 활동은 사실 그 내용과 방법에서 그 같은 의도의 흔적을 드러낸다. 비유컨대 그의 시는 입 속에서 굴리며 빨아먹는 눈깔사탕이나, 미끼와 함께 부드럽게 입 속으로 들어오는 낚싯바늘처럼, 읽는 이로 하여금 아무런 심리적 부담이나 경계심을 갖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이하고 비근한 모습을 띰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불안하고 불편한 느낌을 갖게 한다. 다시 말해 이태수의 시는, 어쩌면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허술하게 보이게 함으로써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며, 또한 그것이 어쩌면 시인 자신의 계획된 시적 전략일지 모른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그 달콤한 눈깔사탕이 때로 우리의 혀를 깨물게 해 피 흘리게 하듯이, 그 부드러운 낚싯바늘이 한 번 입술을 꿰뚫고 나면 다시는 빠지지 않듯이, 어쩌면 이태수 시의 이 같은 모습들은 오만한 독자를 유인하는 고도의 술책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다음 짧은 구절은 그의 시의 한 특성을 암시해준다.

낯익은 길을 걷는다. 그런데도 이 길은
점점 더 낯설다. [……] (p. 13)

이처럼 범상한 진술을 통해 시인이 우리에게 강조하려는 것은 바로 우리 주위의 모든 ‘낯익은’ 것들이 그저 범상한 존재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요컨대 이태수 시의 본질은 모든 낯익은 것들이 실제로는 ‘낯설다’는 전언에 있다. 이 시집 전체에서 시인이 끊임없이 낯익은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은, 오로지 우리와 더불어 존재하는 사물들의 낯섦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 낯섦은 이태수 시에서 결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또한 모습을 드러낸다 하더라도 지극히 미세하고 섬세한 시각을 갖춘 독자가 아니고서는 알아차리기 힘들다. 사실 그의 시는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 낯선 것들을 기다리는 끈질긴 인내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이 시집 도처에서 그 낯선 것들이 출현하는 지극히 짧은 한순간을 위해, 범상한 풍경들을 도저한 성실성을 가지고 묘사한다. 그 풍경들을 대하는 독자는 그것이 앞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어 때로는 불안하기까지 하다. 가령 다음과 같은 산문적인 묘사들은 이 시집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녘이 붉게 설레다 가라앉는다.
땅거미 짙어지는 산 발치, 잎새 떨구는
나뭇가지 사이로 둥그렇게 달이 떠오른다.
작은 별들은 이마 조아리며
하늘 자락 여기저기 모여 앉는다. (p. 16)

산길에 든다. 나무와 바위,
키 작은 풀들도 제자리에 놓여 있다.
세상은 뒤죽박죽 돌아가지만
멧새들은 숲속에서 제 소리로 지저귀고
구름은 한가로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p. 24)

장마를 딛고 힘겹게 돌아온 아침 햇살이
뜨락 가득 붐빈다. 기죽어 있던 나팔꽃, 그
며칠 만의 풋풋한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능소화들도 환하고 부드럽다. [……] (p. 44)

아마도 인용된 시들을 행갈이하지 않고 늘어놓는다면 시라고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떤 이유에서 이처럼 비경제적인 어법을 고수하는 것일까. 이 점에서 그가 나무 시편들 가운데 하나로서 찬양하는 굴거리나무의 꽃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 오래 전에 만났을 때와 꼭같이 굴거리나무는 다른 나무의 그늘에 서서 꽃잎이 없는 녹색 꽃을 피워올리고 있는가 봅니다. (p. 74)

굴거리나무의 꽃은 꽃잎이 없고, 그 꽃의 빛깔 또한 나뭇잎과 마찬가지로 녹색이어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아니라 꽃으로 인식조차 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태수 시의 언어는 일상 언어 혹은 산문 언어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어떤 긴장이나 충격도 내장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소박하고 순수한 굴거리나무의 꽃이 겸허한 그 나무의 고유한 아름다움이듯이, 이태수 시의 언어는 시인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는 고유한 방법이라 할 것이다.

사실 이태수 시에서 거의 무의미하다 할 만큼,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평범한 장면들의 묘사는 시인의 의도적인 노림수의 산물일 것이다. 또한 그 노림수의 목표는 묘사되는 장면들로부터 독자들이 기대하는 소위 시적인 의미를 애초부터 배제함으로써, 의미가 개입되기 이전 세계의 즉물적인 상태를 드러내보이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시인이 한 편의 시를 통해서 기도하는 낯익은 것들의 ‘낯설게 하기’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다음 시는 지금까지 이태수 시를 읽어왔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가랑비 내리다 발길을 거둔다. 새들은
젖은 둥지 박차며 하늘 깊이 날아오르고
잎새 가득 단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줄지어 미끄러져내린다. 그 사이로
작은 용수철들처럼 멧새 소리 튕겨오른다.
느릿느릿, 또는 빠른 걸음으로
바람이 지나간다. 구름을 떠밀면서,
풀숲의 빗물을 떨어뜨리면서.
이따금 어떤 바람은 바위와 돌들,
엎드려 잠든 길들도 흔들어 깨운다. (p. 60)

따지고 보면 이 시 또한 앞서 인용한 세 단락의 시와 하등 다를 바 없는 풍경 묘사다. 군데군데 사물의 의인화와 평범한 직유가 눈에 띄기도 하지만, 이 시 또한 앞서의 시와 마찬가지로 은유의 자장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다. 여기서 사물들은 단지 날아오르고, 미끄러져내리고, 튕겨오르고, 지나갈 뿐이다. 그것들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들은 인간의 시선과 더불어 안과 거죽, 표면과 심층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비정형과 비의미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시는 평범하면서도 심상치 않으며, 지극히 낯익으면서도 낯설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아무런 새로움도, 놀라움도 없는 이 비시적(非詩的)인 세계는 독자가 기대하는 새롭고도 놀라운 시적인 것에 대한 기대를 여지없이 무시해버린다. 그 대신 어떤 인위적 조작과 가공이 개입되기 이전의, 세계의 즉물적 투명성을 들여다보게 한다.

[……] 또 한 잎
낙엽이 떨어져내리고, 적막이 그 잎새를
온몸으로 감싸안고 있다.
낙엽은 적막에 깊이 감싸여
그 중심을 이루며 투명해지고 있다. (p. 14)

마치 거울 안에 비친 세계처럼 바람도 먼지도 어지럽힐 수 없는 풍경,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숨결이나 목소리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풍경, 그 투명한 풍경 속에서는 소리와 색깔, 형체 있는 것과 형체 없는 것이 서로 은밀히 감싸고 감싸이는 친화적인 관계를 맺는다. 평범한 묘사 속에서, 사물들은 마치 언뜻언뜻 꼬리를 치는 연못 속 잉어처럼 희번덕대는 제 속내 모습을 드러내보인다. 그것들은 인간적 의미의 세계 바깥에서 단지 존재하기 위해 존재할 뿐, 자신을 과시하거나 은닉하지 않는다. 거의 선적(禪的)인 느낌을 주는 이 같은 즉물적 투명성은 그러나 고도의 집중 끝에 오는 돌연한 일탈이라기보다는 평상심의 한 끝자락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무위이면서 또한 무자연인 그 존재태는 이 시집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우선 “천천히, 오래오래/부드럽게, 낮게, 비워지”(p. 11)는 “물”의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 물은, 지나온 길 지우며
푸르고 맑아진다. [……] (p. 9)

초록 잎새에 맺혀 둥글게 글썽이는
물방울들은 한결같이 유리창 쪽으로 설렌다. (p. 44)

“길 없는 길을 가져서”(p. 31) 화자에게는 부럽기만 한 “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 새 한 마리가 문득
한 나뭇가지에서 다른 나뭇가지로 옮겨 앉는다. (p. 16)

어디에 갔다 왔는지 나의 새는
부리가 하얗네 발톱이 파랗네 (p. 101)

다만 소리와 빛깔과 동작만으로 존재하는 세계, 다시 말해 모든 사물이 소리와 빛깔과 동작만으로 환원되어 개념화 혹은 관념화될 수 없는 세계, 그 속에서 다음 구절들은 지구로 들어온 외계인처럼 낯설게만 느껴진다. 아니, 사실은 그 구절들이 낯선 게 아니라, 우리의 인식이 한번도 익숙한 관습과 상식의 울타리를 넘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개울물은 조금씩 돌들을 밀며 간다. (p. 64)

길들은 비로소 둥글게 풀꽃들을 끌어안네. (p. 53)

바람 소리가 앞산을 도로 제자리로 끌고 간다. (p. 52)

여기서 사물들은 인간이 틈입할 수 없는 자기네만의 고유한 세상을 이루고 자기네끼리만 교통한다. 개울물은 돌을 밀고, 길은 풀꽃을 끌어안으며, 바람은 산을 끌고 간다. 사물들은 끼리끼리 동행하고 포옹하면서, 서로를 “제자리”에 있게 한다. 또한 그것들은 화자인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이”(p. 32) 각기 “제자리에서 깊어지고”(p. 17) “제 소리로 지저귀”(p. 24)거나, “제멋대로 울”(p. 63)고, “제 둥지로 돌아가”(p. 19)며,

야생화의 뺨은 여전히 발그레 상기돼 있다. (p. 61)

그럴 즈음 벚나무는 새벽 쪽으로 온몸을 밀어붙이며 초록빛을 뿜어냅니다. (p. 72)

분홍빛 이마와 그 윗부분의 밀선이 가슴 한복판에 둥근 열매를 안겨줍니다. (p. 72)

에서처럼 자신의 성과 생명의 고유한 빛깔을 아름답게 흘리는 것이다. 때로 그것들은 “바위 위에 허리 구부리고 서 있는 소나무”처럼 제 “뿌리에 힘을”(p. 51) 줄 뿐, 자신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럴 때 화자는 스스로 다다를 수 없는 사물들의 깊은 세계를 “서럽도록” 들여다보며 탄식한다.

물길 따라 내려가보아도, 나는 푸르게
깊어지지 않는다. 맑아지지 않는다. (p. 9)

그가 아무리 사물들의 말을 듣기 위해 “적막 속에 낮게 낮게 엎드린다”(p. 16) 해도, 또한 아무리 그것들을 “가까이 느끼기 위하여/키를 낮”(p. 53)춘다 해도, 그것들은 “둥글게 풀꽃들을 끌어안”는 길처럼 따뜻하게 그를 맞아주지 않는다. 즉 그는 그것들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품어져 심하게 앓고 있는(p. 10) 자신을 발견하며, 그 “허공에 발 뻗는”(p. 13) 풍란처럼 그의 생각은 “투명하고 둥근 물방울처럼 글썽”(p. 24)일 뿐이다. 그맘때 그토록 투명하고 정밀한 사물 세계는 화자의 눈앞에 낯설고 부조리한 풍경으로 전도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잔고기들만 이따금 물가로 튀어오르고, 큰 고기들은
물 속에 깊이 깊이 잠긴다. [……] (p. 33)

패랭이가 패랭이꽃을 피우지 않고
누군가가 물 없는 강에 배를 띄운다. (p. 45)

한편으로는 매우 우의적인 느낌을 주는 이러한 풍경은 시적 자아와 대상의 관계가 결코 화해롭지 못함을 암시한다. 큰 것과 작은 것, 잠김과 튀어오름, 있음과 없음의 대립 구조 위에 성립하는 이 진술들은 “뒤죽박죽 돌아가는”(p. 24) 세상을 희화화하고 풍자하는 시적 자아의 의도를 진하게 드러낸다. 이에 반해 이태수 시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주체와 대상의 행복한 만남은 양자의 공존과 공생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고추잠자리의 두 날개가 마음을 끌어당긴다.
함께 파닥거린다. [……] (p. 20)

그리고 이 같은 대상과의 ‘함께 파닥거림’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매우 아름다운 대상 친화적인 고백이 가능해지며,

멀구슬나무의 껍질은 남갈색 겉옷을 입고 있습니다. 추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나는 같은 빛깔의 속옷을 입고 서 있습니다. [……] (p. 73)

마침내 이 시집의 백미로 여겨질 수 있는 다음의 무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회화나무 작은 잎새들은 달걀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지만 밑동은 둥급니다. 앞쪽은 푸르고 뒤쪽은 잿빛이며, 가지의 마디마다 어긋나게 돋아난 잎새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

나는 이따금 회화나무를 올려다봅니다. 우리에게 약이 되는 槐米들이 槐花로 바뀌고, 槐實과 槐耳들이 무르익는 동안 회화나무 밑에서 서성거리곤 합니다. [……] (pp. 78~79)

위의 시 앞 단락에서 우리는 어떤 수사로도 장식되지 않은 직접적이고 즉물적인 묘사에 접하게 된다. ‘뾰족하다’ ‘둥글다’ ‘푸르다’ ‘잿빛이다’ ‘어긋나다’ 등 사물의 형태와 색깔을 나타내는 기본적인 형용사들로 구성되는 회화나무의 작은 잎새들은 오직 화자의 ‘아름답다’라는 고백을 끌어낼 뿐이다. 마치 유리판 밑의 그림처럼 들여다볼 수는 있으나 들어갈 수 없으며, 바라볼 수는 있으나 만져볼 수 없는 투명한 대상 세계의 아름다움은 이 시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그 뾰족함과 둥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물, 또는 젖은 꿈
그 무엇, 또는 물에 대하여
그를 더듬어 기리지만
느낌의 저쪽에는
적막, 또는 그의 그림
적막, 또는 늦가을 저녁
적막, 또는 빈집에서
그래도 나는 꿈꾼다
한겨울의 귀향
생각은 물방울처럼
작은 불 하나 밝혀 들고
낮고 깊게, 하지만 넓고 높게

제2부
새에게
슬픈 우화 1
슬픈 우화 2
슬픈 우화 3
슬픈 우화 4
슬픈 우화 5
슬픈 우화 6
슬픈 우화 7
하늘은 물주머니인지
폭우, 그는 가뭇없고
아침, 장마는 가고
하지만 나는
태풍 뒤의 풍경

제3부
이른 봄빛
봄 사월
자그마한 풀꽃
봄·휴가
봄은 오다가 가버리고
봄이 와도 봄은 오지 않고
비 갠 뒤, 산길에서
늦은 오후, 산길에서
풀벌레 소리, 산길에서
다시 가을은 깊어
늦가을 비
어떤 찬가

제4부
이팝나무
벚나무
멀구슬나무
굴거리나무
황칠나무
느릅나무 그늘
회화나무와 조지훈
꿈꾸는 먼지알
만촌동 시절이 주마등 같다
정자 바다 앞에서

제5부

떠나야 할 길은 멀고
가버린 날들
창가에 앉아
네 옷자락마저 못 붙잡고
두드러기
바위와 소나무
팔공산
강물
나의 새는
그대에게
울릉도 뱃노래
새봄을 위한 기도

[해설] 꽃잎이 없는 녹색 꽃의 시·이성복

작가 소개

이태수 지음

시인 이태수(李太洙)는 1947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그림자의 그늘』(1979), 『우울한 비상(飛翔)의 꿈』(1982), 『물 속의 푸른 방』(1986),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1990), 『꿈속의 사닥다리』(1993), 『그의 집은 둥글다』(1995), 『안동 시편』(1997), 『내 마음의 풍란』(1999),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2004), 『회화나무 그늘』(2008), 『침묵의 푸른 이랑』(2012), 육필시집 『유등 연지』  등을 상자했다. 매일신문 논설주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등을 지냈으며, 대구시문화상(1986, 문학), 동서문학상(1996), 한국가톨릭문학상(2000), 천상병시문학상(2005), 대구예술대상(2008)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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